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0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01화(200/300)
201화 승계식 (3)
“어후, 찾느라 고생했네.”
사키 히나는 옷에 붙은 나뭇잎을 떼어내며 칭얼거렸다. 그래도 아까보단 조숙해진 차림새다.
그래, 내가 알고 있던 일본 전통 복장은 저런 느낌이다. 그 코스프레 같은 헐벗은 옷이 아니라.
나는 지긋한 눈으로 사키 히나를 보았다. 그녀는 내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한참을 옷을 터는 것도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는 듯이.
일단 불쑥 등장하긴 했는데 이후 계획은 세워 두지 못한 모양. 눈동자가 팽글팽글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니.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료조가 제 언니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어머, 얘 좀 봐. 언니 봤는데 눈이 그게 뭐니, 눈이. 인사는 못 할망정?!”
이때다 싶었는지 사키 히나가 료조를 타박했다.
힐끔힐끔 내 눈치를 살피면서도 동생한테 기승은 부려야 하는 건가? 그럴 거면 입술이나 떨지를 말든가.
그래도 물러서지 않는 건 가상했다. 보통은 살기에 노출되면 다시는 마주칠 엄두조차 못 내니까. 사키 히나는 드문 경우였다.
“하, 어이가 없네.”
침묵을 유지하던 료조가 헛웃음을 흘렸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손이 이내 그녀의 머리를 헝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웬 언니 행세야. 짜증 나게.”
입질이 왔음을 느꼈는지 사키 히나가 픽 웃었다. 그녀는 부채로 촥 펼쳐 입을 가렸다.
“배는 달라도, ‘사키’라는 성씨는 공유하는 사이잖아. 그리고 집안에서 료조 너한테 나 정도로 상냥하게 대해 주는 사람 또 있을까?”
주도권을 잡은 사키 히나가 신이 나서 말문이 열었다. 부채를 잔망스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뭐,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보기 좋다 얘. 친구도 잘 사귄 것 같고.”
한마디씩 덧댈수록 료조의 미간에 주름도 같이 잡혔다.
“그래도 좀 많이 의외긴 해, 료조. 그렇게 혼자가 좋다던 애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생각이 바뀌었을까?”
“…….”
“우정 같은 거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기회주의적으로 변한 건 또 아닌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사키 히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조소했다. 그녀는 나를 한차례 힐끔거렸다.
“그냥 별거 아니야. 이복동생이긴 해도 동생이 성장한 거 같아서 기분이 좋다? 이 정도?”
나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만 봤다. 남의 가정사나 연애사는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다.
‘그런데 둘 관계가 엄청 묘한 거 같네.’
이런 의아한 속내를 알아챘는지 사키 히나가 흠칫하며 털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목덜미 뒤틀어 나를 돌아봤다.
그녀에게 물었다.
“왜 더 안 하고? 내가 가족 상봉을 방해했나? 빠져 줘?”
한 발 내디뎠다. 그에 맞춰 사키 히나는 한 발짝 물러섰다.
“아, 아니. 괘, 괜찮습니다. 그대로 계셔도 무방합니다, 검마 님.”
사키 히나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뺨이 씰룩이는 게 얼굴 근육에 힘 좀 준 모양.
“사실 오후의 실례를 사죄하고자 검마 님을 찾아온 겁니다. 본 목적은 료조를 찾으러 온 게 아니란 거죠.”
“근데 내 위치는 어떻게 알고? 설마 뭐, 미행한 건 아닐 테고. 멍청이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그렇지?”
사키 히나의 어깨가 말렸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항변했다.
“다다, 당연합니다. 미행은 무슨. 저희 측 고용인으로부터 이쪽으로 오셨다는 정보를 받아 후다닥 달려온 겁니다, 호호.”
“그래. 명색에 료조의 언니인데 그 정도로 머리가 없진 않겠지.”
사키 히나는 빠득 이를 갈았다. 코지마를 향한 충성도만큼은 그 누구 못지않은 그녀였다.
웬만해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버지를 따를 치였다. 그런 아버지께 인정받으려면 강검마를 어떻게든 꼬드겨야 한다.
그러나 막상 앞에 마주 서니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열렬했던 그녀의 충성심은 물 먹은 모래성처럼 사그라들었다.
예의 검붉은 살기가 넘실넘실 일렁이는 것 같았다. 끈적끈적한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듯했다.
밤 풍경과 맞물린 강검마의 모습은 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강검마는 상정 범위 밖의 무엇이었다. 제아무리 아버지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꾀어내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저 괴물에겐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먹히지 않을 터였다.
“용무 끝났으면 이제 가. 오랜만에 그 얼굴 보니까 벌써 현기증 오는 거 같으니까.”
료조가 축객령의 손짓을 보냈다. 히나는 뒤틀릴 뻔한 입꼬리를 부채로 펼쳐 가렸다. 그러나 새하얀 눈가에 맺힌 혈관은 숨기지 못했다.
“호호, 요놈의 계집애.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말 하나는 예쁘게 한다니까? 이러니까 다른 형제들이 너를 살갑게 못 대하잖니.”
“웃기네. 살갑게 못 대하기는 그냥 싫어하는 거면서. 그리고 그런 속 좁은 녀석들이랑 희희낙락거릴 바엔 그냥 혼자가 나아.”
“…….”
“그리고 히나, 너 갑자기 웬 언니 행세야? 검마 앞이라고 생색내는 거 뻔히 보여. 그래, 네가 그나마 나를 챙겨줬‘던’건 인정. 근데 결국 너도 다른 놈들에게 편승했잖아. 안 그래?”
사키 히나는 무어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료조, 쟤가 하는 말이 딱히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마따나 다른 형제들은 료조를 질시하기에만 바빴다.
오 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네 번째 부인의 막내라는 서열의 끄트머리에 있었던 꼬마를, 아버지는 대뜸 후계자로 선정했다.
다들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모두가 료조에게 등 돌렸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름 료조와 나쁘지 않았던 히나 본인마저도. 그에 한편으론 죄책감을 느꼈지만 애써 억눌렀다.
그 이상으로 히나는 아버지의 인정에 목말라 있었다.
그래도 다른 형제들처럼 대놓고 선 넘는 이지메는 하지 않았다는 게, 작은 양심이었다.
물론 정도만 약했을 뿐 동참한 건 변함없었다.
료조는 살인적인 코지마식 교육을 수학했다. 몸과 정신을 축내는 혹독한 방식이었으나 그녀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료조는 꿋꿋이 버텼다. 아버지의 인정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그녀에게 관심이 치우칠수록 가문 내에서 엄마의 대접이 상승했기에.
그럴수록 형제들의 눈은 표독스럽게 번들거렸지만.
료조는 그 시기 어린 시선을 달리 받아들였다.
패자들의 질투라 생각하면 픽 코웃음이 나왔다.
와중에 료조의 편은 하나둘 가문 내에서 종적을 감췄다.
편의를 봐줬던 고용인들도, 나이대가 비슷해 같이 놀던 이웃집 친구도. 돌연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이젠 절궁 가 안에서 그녀의 우군은 한 사람만이 남았을 무렵.
엄마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처음엔 어디 여행이라도 떠난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얼마 안 있어 료조는 깨달았다.
주변인들처럼 엄마 또한 연무처럼 사라졌다는 것을. 그 모든 게 사키 코지마의 수작이라는 것을 말이다.
료조는 그 길로 코지마에게 달려갔다. 바락바락 추궁하기도 전에 코지마는 순순히 인정했다.
‘맞다. 내가 그랬다.’
‘어째서!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내 엄마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을 그렇게 쫓아내는 게 말이나 돼?!’
‘료조.’
코지마는 한숨을 내쉬며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뒷짐 진 채 다가와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이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그건 네 엄마도 아는 사실이며 내게 사랑을 바라지 않았어.’
‘그, 그치만.’
‘쉽게 말해 주마. 네 엄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단 뜻이다. 그녀도 나름의 사정 때문에 나와 혼약했던 것이지. 이해했나?’
료조의 어린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그녀가 코를 훌쩍거리며 소리쳤다.
‘사, 사랑하지 않았어도 굳이 쫓아낼 필욘 없었잖아! 나 때문이야? 나한테 방해가 될까 봐?’
‘네 엄마는 제 발로 너를 떠난 것이다. 나는 그걸 승낙했을 뿐이고.’
‘마, 마마, 말도 안 돼.’
코지마는 등을 보였다. 그늘이 드리운 뒷모습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꼭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말을 전해 주라더군.’
료조는 그날로 모든 가족을 잃었다.
* * *
슬픈 침묵이 일었다. 쌀쌀해진 밤바람 탓인지 사키 히나의 머리가 차게 식었다.
한순간에 료조를 향한 원망이 하질 것 없이 느껴졌다.
어쩌면 맹목적인 충성이 걷혀서 뇌에 바람이 통한 탓일지도. 그렇다면 강검마의 덕분이겠지.
재수 없는 동생 년. 주변의 인정을 받을수록 료조의 낯빛은 어두워졌는데.
‘료조 쟤, 저런 표정도 짓는 애였어?’
몇 개월 만에 본 동생의 눈엔 활력이 머물러 있었다. 이 역시 강검마의 영향이리라.
여전히 재수 없는 상판이다. 사이 좋은 자매로도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쳇.’
사키 히나는 홱 뒤돌았다. 어차피 강검마를 꾀어낸다는 획책도 어그러진 마당이다.
더는 이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강검마와 눈이라도 스치면 오금이 시리기도 했고.
총총걸음으로 물러서려던 차에 히나는 문득 말을 꺼냈다.
“야, 료조.‘”
“뭐.”
“언니한테 말버릇하고는. …그 뭐시야. 네 엄마 어디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
료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히나는 어색하게 뺨을 긁적였다.
“큰 기대는 하지 말고. 갈게.”
그렇게 히나의 모습이 둔덕 너머로 사라졌다. 료조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뭐래.”
다시금 찾아든 한적한 분위기. 멀뚱히 서 있는 내게 료조가 툭 말했다.
“빅스빅이 말해서 온 거지? 칠성 영웅 운운하면서.”
[뜨끔!]내 주머니에서 흠칫 놀란 소리가 났다. 풍선처럼 맥이 빠진 료조는 이내 미간을 짚었다.
“하여간 인공지능이 걱정은 많고 입은 깃털처럼 가벼워서야. 이참에 코드 좀 손 봐줘야겠네.”
[…….]료조는 털썩 벤치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앉아서 이야기하자.”
“…그.”
“화 난 거 아니야. 검마, 네가 잘못한 것도 없잖아. 어린애도 아니고 화낼 대상을 잘못 짚거나 하진 않아. 그냥.”
료조가 머뭇거리며 숨을 달싹였다. 그녀는 빼꼼 눈만 들고서 야트막이 투덜거렸다.
“아깐 좀 섭섭해서 그랬어. 나름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
“그런데 네 이야기는 조금 나중에 듣는 거로 하고.”
료조가 고개를 들었다. 밤새 하늘을 가렸던 먹구름이 가시고 달빛이 아카데미에 내려앉았다.
그녀는 도로 고개를 내려 나를 보았다. 하늘색 눈은 오늘따라 유독 맑았다.
“내가 어떻게 자라 왔는지 검마, 너한테 말해 줄게. 그러니까 내 이야기 끝나면. 그때, 네 이야기를 해줘.”
* * *
같은 시각, 아카데미 부속 병원 313호실.
성 과장이 병상에 누운 채 골몰하고 있었다. 퇴원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그 이후엔 몇 달간 요양 휴가를 보내고 협회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검마 님의 ‘이명’을 내가 지어야 한다니.”
영웅 협회 내부에 이명 작명부서가 따로 개설되어 있었다. 검제, 창성, 현자, 절궁. 칠성의 이명도 그 부서가 담당해 작명했었다.
한데도 어째서. 입원 중인 성 과장에게 이런 과분한 업무가 할당됐는가. 그건 창성의 특명 때문이었다.
‘자네가 강검마의 활약을 직접 본 인물 아닌가? 그러면 자네만큼 잘 지을 사람도 없겠지.’
성 과장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은 상명하복이 당연시되는 사회다. 하물며 영웅 협회 NO. 2의 특임이었다. 까라면 까야 했다.
“그래도.”
강검마는 생명의 은원이다. 그런 분을 위해 이명을 바칠 수 있다니. 시름과는 별개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검마 님만을 위한 이명이어야 해. 전에도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성 과장은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필이면 ‘검’ 자가 들어간 이명이 수두룩 빽빽했다. 검성, 검제, 검왕, 검귀.
문득 성 과장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구름이 짙게 끼어 검은 하늘은 그분을 떠올리게 했다.
“!”
성 과장은 급하게 수첩을 꺼내 두 글자를 휘갈겨 적었다. 글씨를 쳐다보는 눈에 우직함이 담겼다.
성 과장이 희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이거면 됐어.”
곧바로 성 과장은 수첩을 찍은 사진을 창성에게 전송했다. 답신은 1분이 채 안 돼서 날아왔다.
[진행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