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0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04화(203/300)
204화 승계식 (6)
늦가을치고도 하늘이 높아 보이는 정오였다.
햇빛이 안구가 따가우리만치 유독 쨍한 섬광을 흩뿌렸다. 그 밑에선 수백 대의 카메라가 한쪽을 바라보며 불을 뿜어 댔고. 그 모습은 마치 지상의 인간이 태양과 맞서는 듯했다.
피사체는 아직 등장 전이었다. 기자들의 이 비경제적인 작업은 지금이 아닌 잠시 후를 위한 준비였다.
기자들은 카메라와 본관 대문을 번갈아 주시했다. 비장함이 채워진 눈동자는 그들의 손에 들린 렌즈처럼 투명했다. 그러면서 셔터를 조였다 풀며 렌즈 초점을 점검했다.
섬세함과 번거로움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기자들은 마다하지 않았다. 단지 저 문이 열리는 찰나의 순간을 가장 빨리, 더 많이, 그리고 보다 정확하게. 그 염원을 담은 손길로 렌즈 조리개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웨폰이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여행 동아리 부원과 함께 승계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순간 누군가 웨폰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치고 간 당사자는 까딱 성의 없이 사과한 뒤에 가던 길을 마저 갔다. 그에 웨폰은 헛웃음을 흘렸다.
평소라면 한바탕 으르렁거렸을 상황. 하지만 오늘 한정으론 흔한 현상 중 하나였다.
웨폰은 일대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으로 뭉친 행렬은 몹시도 거대해, 그 자체만으로 장엄했다.
‘어후,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평일인데, 다들 출근 안 해?’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호아킨 아카데미를 여백 없이 채웠으니. 승계식을 찾은 사람 수는 어림짐작도 힘들 터였다.
그 인파 사이를 레드카펫이 붉은 강처럼 길게 가로질렀다. 본관 대문부터 시작한 카펫은 눈을 가늘게 떠야 보이는 저 멀리 단상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보고 있자니 카펫의 빨강이 정신을 빨아먹는 듯했다. 원색의 강렬함은 사람의 혼을 흡수하기도 하는 것이다.
웨폰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팔꿈치로 료조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괜히 말을 걸었다.
“야야, 사키. 기자들 눈빛 좀 봐. 얼굴만 보면 무슨 종군 기자 같지 않냐?”
그녀의 눈썹이 곱게 휘었다. 말을 그리하면서 들뜬 기색인 웨폰이 못내 한심하게 보였다. 신발 부리라도 밟아 줄까 하다가 이내 관두기로 했다.
료조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럴 만도 하지. 무려 반세기 만에 있는 대사건이잖아. 그리고 우리야 칠성이 누군지 알고 있지만, 기자들은 아직 모르잖아. 태연한 우리가 이상한 거지, 저 사람들이 오버하는 게 아니야.”
“하여간에 말이야, 기자란 양반들이 저리 흥분을 못 감춰서야. 이따가 새로운 칠성이 누구인지 알면 완전히 까무러쳐서 카메라나 안 떨굴는지 모르겠네.”
웨폰이 끌끌 혀를 차며 도리질했다. 료조는 그런 옆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새끼가 커서 훗날 꼰대가 되는구나.
웨폰은 현재 우쭐한 상태였다. 자신은 알고 저들은 모른다. 그런 얄팍한 허영심이 십 대 소년을 한순간에 꼰대로 탈바꿈시켰다.
료조는 훌륭한 꼰대 꿈나무에게서 신경을 껐다. 그러고는 목을 뒤로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쾌청한 가을 하늘이 연청색 눈동자를 가득 메웠다.
하늘색이 서로 맞닿았다. 차이점은 다만 구름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료조는 쌀쌀맞은 바람을 느끼며 정신을 환기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구름과 태양, 하늘을 응시하던 때였다.
누군가 그녀의 옷을 툭툭 짧게 당겼다. 료조는 젖혔던 고개를 내렸다. 햇살을 맞아 번뜩이는 안경알 한 쌍이 그녀의 시야에 맺혔다. 산하나였다. 그녀가 말했다.
“기분이 많이 싱숭생숭한가 보네, 사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엊그제까지 같은 부원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너무 높이 올라가 버리면.”
“…….”
료조는 당황한 눈으로 산하나를 바라보았다. 선배가 이토록 살갑게 먼저 말을 걸었던 적이 있던가? 보통 그녀는 말을 받는 입장이었지 먼저 입을 열진 않았다.
료조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선배 말대로 붕 뜨는 기분이긴 해. 근데 막, 엄청나게 신기하고 믿기지 않고 그러진 않아. 생각해 봐. 검마 걔가 지금껏 해 왔던 일들이 더 말이 안 되지 않아?”
그녀의 말에 산하나가 자그맣게 웃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 군단장 두 명 참살에, 또… 기타 등등. 여튼 십 대 아이가 이룰 수 있는 업적은 아닌 건 맞아. 굳이 있다면 딱 ‘한 명’ 정도가 떠오르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검마를 발로르 호아킨과 가장 많이 비교하잖아.”
“음, 글쎄. 내가 말한 건 시조의 영웅은 아니긴 한데. 료조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도 맞을 수 있겠다.”
“발로르 호아킨 말고 검마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
료조가 당황한 기색으로 반문했다. 산하나는 소리 없는 말간 미소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대상이 인간이라고는 말 안 했는데?”
“그럼 선배가 말한 건 누군데……?”
“그건… 비밀. 수수께끼 정도로 남겨 둘게, 너 이런 수수께끼 좋아하는 거 같아서. 힌트를 주자면… 너무 흑백논리로 생각하지 말 것. 그 정도이려나?”
그렇게 말하면서 산하나는 다시 본관 대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녀는 상당히 즐거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산하나, 당신이 내겐 가장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야.’
료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산하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 인간, 정말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뭐가 있는 건 분명해.’
산하나의 심상찮음을 바로 알아챈 건 강검마였다. 누구랑 닮은 것 같지 않냐고 했던가. 그땐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지금 와선 어렴풋이 알 듯 말 듯 했다.
‘확실히 산하나는 우리가 알 만한 누군가와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어.’
문제는 그게 누구인지 되짚어볼수록 더 묘연해진다는 점이었다, 마치 손가락 마디 사이로 모래가 줄줄 새듯이. 강하게 떠올리려 하면 현기증이 치밀었다.
‘이 사람을, 앞으로 더 용의 주시해야겠네.’
둥-둥-
갑작스레 앞쪽에서 터져 나오는 북소리. 심장 박동처럼 들리는 북소리에 엄숙한 정적이 가라앉았다. 수십만의 시선을 한데로 묶는 적막이었다. 그들은 굳게 닫혀 있는 본관 대문을 바라봤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는 대신, 침 넘어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뿌우우우……!
기립해 서 있던 나팔수들이 일거에 소리를 뿜었다. 나팔과 북소리가 낮게 맞물렸다. 사람들은 쿵쿵 뛰는 심장을 생생히 느꼈다.
저 대문이 열리면 나오는 자가 누구일지, 혹여 자신이 지지하는 영웅은 아닐지, 이명은 무엇일지 흥분에 겨운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그들은 뭐가 됐건, 누가 됐건 큰 상관 없었다. 역사의 한순간이 곧이었다. 그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두 눈이 설렘으로 반짝이기엔 충분했다.
“새로이 등극한 칠성 영웅께서 나오십니다.”
대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공격적으로 카메라와 밀착했다. 저격총 스코프에 갖다 대는 것처럼. 더불어서 지금 이 순간, 인파는 일대를 가득 채우다 못해 넘칠 지경이었다. 그 모두는 환호성을 목구멍에 장전한 채였다.
이윽고 환히 벌어진 대문 사이로 신형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그곳에 쏠려 있던 눈들이 찢어져라 커진 건 그와 동시였다. 기자들도 눈을 카메라에서 뗐다. 설혹 잘못 본 게 아닐까, 맨눈으로 보기 위해서.
저벅.
검은 구두가 새빨간 융단을 밟는다. 사람들은 눈가를 비비고서 다시 떴다. 짙은 쌍꺼풀이 생겼다. 누군가 무심코 입을 뗐다.
“저, 저 사람, 사시미 검성 아니야?”
그를 시작으로, 소란은 입을 타고 조용히 퍼져 나갔다. 종래에 강검마를 모르는 이는 극히 드물었다. 호아킨 참사의 영웅, 명문가 출신 영웅들을 참교육한 천재 생도 아닌가.
해서 세간은 강검마를 전도유망한 영웅으로 평했다. 사람들도 그에는 군소리 없이 동의했다.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유망’하다는 의미였다. 사람들은 여행 동아리 부원과 달리 내막을 모른다. 따라서 저 새파랗게 어린 소년의 등장은 그들에게 파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그렇지, 저건 너무 어린 게 아니냐?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기자들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이리처럼 번뜩였다.
저벅.
그러는 동안에도 좌벽처럼 갈라진 인파를 뚫는 걸음은 계속됐다. 햇빛을 머금은 백의가 희게 나부꼈다. 강검마가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소란이 잠잠해졌다.
저벅.
검제, 현자, 창성, 절궁. 네 명의 영웅이 강검마 뒤로 따라붙었다. 언뜻 강검마가 그들을 이끌고 행차하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의 눈길이 다시 맨 앞에서 걷는 발길을 쫓았다. 덤덤하기 그지없는 표정. 언뜻 나른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이다. 이런 의아한 시선은 한두 번 겪는 게 아니라는 듯. 이 거대한 인파 속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은 강검마를, 모두가 멍하니 응시했다.
저 무심함을 띤 검은 눈. 그로 말미암아 모두는 가슴에서 뭔가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경외감이었다. 성인도 채 되지 않은 십 대 소년에게 말이다.
“부장…….”
웨폰이 중얼거렸다. 그는 벅차오름을 한계치까지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부장에게 처음으로 목숨을 빚졌을 적에 웨폰은 이 장면을 어슴푸레 상상해 보았다. 회칼을 두 자루 쥐고서 머메이드를 향해 투신하던 그 모습. 그뿐인가, 호아킨 참사에서도 역시나 모두를 대신해 나섰다.
웨폰은 알고 있다, 강검마가 나서기까지의 이면엔 숱한 고뇌와 불안이 있었다는 것을. 그런 부분에선 부장 역시 사람이고, 자신과 같은 생도였다.
그렇기에 더욱 부장이 대단한 것이었다. 그 모든 걸 감내하고서 강자와 맞선다. 그러고도 인정과 이해를 바라지 않았다. 같은 동아리 부원들에게도 말을 아꼈다. 묵묵히 자신 혼자 짊어지고자 했다.
웨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간적이면서 초인적인 인간, 그리고 친구가 끝내 인정받는 순간이기에. 그는 이 북받침을 참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친구는 환호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그 시작을 끊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그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빵빵해진 폐부로 크게 외쳤다.
“이 멍청이들아!”
엄중한 분위기를 들쑤시듯이 웨폰은 한 번 더 소리친다.
“더 열렬히 환호하라고! 새로운 칠성 영웅이잖아!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한순간 모두가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은 잠깐 서로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 나서서 거들었다.
“강검마!”
한 남생도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목청이 터져라 부른다. 일전에 강검마를 무시했던 용 클래스의 남 생도였다. 그는 호아킨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했다.
이어서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마 님!”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 있던 혼이었다. 옆에 있던 최설아가 주둥이를 막으려다 이내 포기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서 결국 혼에게 입을 보탰다.
“축하드립니다! 주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강검마!”
“强劍魔!”
“Gang Gum-ma!”
세계 방방곡곡의 언어가 산발적으로 솟구쳤다. 그렇게 시작된 환호성으로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호아킨 아카데미 전체가 들끓었다. 냉큼 정신을 깨운 기자진은 이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광경에 검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그는 선두를 걷는 백의에 눈을 두었다. 황금 실로 잘 새겨진 두 글자가 망막에 어렸다.
누군가는 저 이명이 다소 과한 게 아니냐는 소리를 낼 수 있다. 거만하리만치 지고한 별호였으니. 그러나 저 소년에게만큼은 저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천검.”
두 글자의 질감을 곱씹으면서 검제는 고개를 살짝 올렸다.
가을치고도 오늘따라 유달리 하늘이 높아 보인다.
과연 기분 탓일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상념을 하면서 검제는 걸음을 마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