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1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10화(209/300)
210화 나만의 작은 교실 (2)
점심시간, 인파로부터 피난차 온 학원장실.
“그래서 오늘은 어땠어, 검마야? 칠성이 된 후 처음으로 보내는 아카데미 생활은?”
소파에 늘어져 있는 내게 메디아가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꽤 재밌는 모양이다. 오전의 내가 어땠는지 뻔히 알면서도 굳이 묻는 걸 보면. 나는 힘겹게 허리를 세워 바로 앉았다.
“…이게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후폭풍이 심하더라고요. 솔직히 이 정도면 정상 수업은 불가능할 정도지 싶었습니다.”
“그러게나 말이야. 검마, 네 얼굴을 보니까 확실히 이대로면 수업 전에 매일 생도들 진정시키거나 교통정리가 필요할 거 같긴 하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당장에 무슨 방법을 도입하기는 좀 그래. 안 그래도 승계식이 끝난 지 얼마 안 돼서 교직원 측이나 행정실도 뒷정리로 좀 바쁘거든. 음- 그래도 진짜 임시방편이 하나 있긴 한데. 검마, 네가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네.”
“마음에 들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라서요.”
“검마, 네가 그리 부탁하는 거라면!”
메디아의 눈매가 의미심장하게 휘었다. 재빠르게 책상으로 간 그녀는 종이 한 장을 휙 날렸다. 팔랑팔랑 허공에서 너울거린 종이가 허벅지 위로 안착했다. 보면서 들으라는 듯 메디아가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승계식 준비하면서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은 했었거든. 그래서 틀딱이랑 나랑 와중에 생각한 방법인데. 이름하여 새로운 클래스 개설!”
메디아가 빠밤! 소리를 내며 이어 말한다.
“좀 더 쉽게는 검마, 너를 그 수많은 팬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한 클래스야. 어쨌든 너나 그 친구들이나 수업은 들어야 하고, 네가 계속 랑 클래스에 있으면 오늘 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 안 그래?”
“그렇겠죠, 아무래도.”
“검마, 네가 다른 클래스로 전향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더라. 범, 랑, 용, 성. 네 클래스 전부 어디를 가도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메디아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참에 너만을 위한 클래스를 신설하는 거야! 아, 물론 아카데미니까 정말 검마, 한 사람만을 위한 클래스는 아니야. 구성원은 10명 안팎으로 네가 편성하는 거지. 그럼, 인파 문제는 좀 해결되지 않겠어?”
“제가 꾸리는 클래스… 다른 건 몰라도, 형평성 논란이 생길 거 같은데요. 생도들이나 학부모들 입장에선 대뜸 ‘특별반’이 생기는 식이니까요.”
내 의견에 메디아는 옅게 미소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검마, 아직 자신이 어떤 입지인지 자각이 덜된 것 같네. 여기서 한 번 더 머리에 새기고 넘어가야 할 건, 너는 이제 일반 생도가 아니라 칠성 영웅이라는 거야.”
“아.”
“칠성이자 학원장인 내가 작성한 제안서에 검마, 네가 긍정을 하는데 사람들이 우리의 뜻에 크게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
메디아는 지금 내가 거머쥐게 된 권력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칠성 영웅의 말에 토를 다는 게 상대방으로선 얼마나 부담스러운 행보인지. 그리고 그 심리적 압박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누가 들었다면 ‘저게 어떻게 교육자의 마음가짐이냐!’ 하고 한 소리 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야 그렇다. 메디아의 말을 정리하면 ‘칠성 영웅 두 명이 실행하는 건데, 토 다냐?’이니까.
민주주의 사회에 참 맞지 않는 봉건적인 발상이다. 다만 공교롭게도, 이 세계는 민주주의보단 후자 ‘봉건 사회’에 가깝다.
신분과 계급이 엄격하게 나뉜 사회. 그리고 칠성 영웅은 그 피라미드의 최정상에서 군림한다.
까라면 까라. 이것이 지구와는 다른 이 세계의 방식이었다. 공공의 적인 ‘마족’이 버티고 있기에, 단단한 위계는 필수다. 그래야 재난 발생 시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 테니.
“기억해, 검마야. 권력이 있으면 명분이 얕아도 어떤 일을 실행할 수 있어. 학부모 측의 반발? 장담하는데 한 사람도 제기할 수 없을 거야.”
교육자가 아닌 권력자로서의 면모. 다소 냉혈한, 이 모습이 그녀의 본성격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교육자로서 칠성 선배로서 내게 가르침을 주는 거일 수도 있다. 교육은 ‘학문’에 한정되지 않는 것이니. 권모술수를 가르친다면 그 또한 교육의 일환인 셈이다.
본의 아니게 마주한 메디아의 다른 모습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와닿았다.
메디아는 산전수전을 겪고서 이 자리에 오른 세계적인 거물이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원장이면서 칠성 영웅의 현자. 말랑말랑하기만 성격이었다면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거다.
메디아는 내 오른편 소파에 털썩 등을 뉘었다. 말을 많이 해 입안이 바싹 마른 것 같다. 녹차를 건네자 그녀가 맑게 웃고서 입술을 축였다.
키야-! 하는 아재 감성 물씬 감탄 성 한 번 연발. 후에 메디아가 녹차 페트병 뚜껑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생도들도 검마, 네 ‘인맥’으로 구성된 클래스라도 할 말은 없을걸? 막말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게네들 너 차별하기 일쑤였잖아. 너랑 유대를 쌓을 시간은 차고 넘쳤을 텐데, 복을 제 발로 찬 거지. 조금 매정하게 들릴 순 있는데 이것도 인생 공부라 생각하고 배워야 할 거야, 게네들도.”
시원한 녹차처럼 청량한 일침까지. 오늘 작정하고 나를 비행기 태워 주려는 듯하다.
“내가 학연, 지연, 혈연 중에서 뒤의 두 개는 싫어하거든? 근데 학연은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틀딱이나 고릴라 같은 애들 다 여기 호아킨 아카데미에서 만난 거잖아? 고로 인생 사는 데 있어서 학교에서 만든 인연이 매우 중요하다 이 말씀!”
“그렇군요…….”
“아무튼 우리 검마는 너무 대단하지. 엘리트 중에서 수석에다가 열일곱에 칠성까지. 오이오이, 천검. 여기서 어디까지 위로 올라갈 거냐구우~ 내 검은 하늘을 넘어 우주를 뚫는 사시미다! 이런 거야?!”
한참 동안, 메디아는 내게 무한한 편애를 담아서 재잘거렸다. 그녀가 평소 안 쓰는 십 대 어휘까지 열심히 곁들여 가면서.
‘학원장님 말투가 원래 이렇게 애 같았나?’
무슨 추임새가 마땅한 맞장구일까 궁리하다가, 그냥 머쓱하게 가만히 있었다. 둘이 합쳐 100살이 훌쩍 넘는데 ‘오이오이’ 같은 말투로 대화하기가 영.
자기 전 몰려올 자괴감을 생각하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메디아가 건넨 종이로 내려갔다.
“저 학원장님, 여기 새로운 클래스 학생 명부에 이름이 하나 이미 적혀 있는데요?”
“아, 그거. 헤헤.”
내 물음에 메디아가 천진난만한 미소로 볼을 긁적였다. 이젠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거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1번: 강검마, 2번: 메디아 포이즌.』
왜 학생란에 학원장 이름이 적혀 있는 건데?
주임 교관, 담당 교수면 또 몰라도 내 이름과 나란히 있어서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저 반응을 보니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메디아의 이름이 학생으로 버젓이 적혀 있다.
‘십 대 말투로 과하게 비행기 태웠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내가 게슴츠레 눈을 좁히자 메디아는 괜히 옆머리를 빙글빙글 꼬았다. 계속 응시하자 그녀가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출력할 때 잉크가 그쪽으로 번졌나 봐. 아니면 잘못 기재됐든지. 아까 확인했을 땐 눈치 못 챘는데, 덕분에 알았다!”
“진짜입니까?”
메디아가 냉큼 끄덕끄덕했다.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학원장이 학생란에 적혀 있는 게 말이나 되겠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학원장님 성함은 지우고 시작할게요.”
“…….”
대답이 없다. 그래서 채근했다.
“학원장님?”
“우응…….”
볼펜으로 그녀의 이름을 쭉 그었다.
메디아, 컷.
* * *
메디아는 아쉬운 기색을 못다 숨겼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 학원장 실을 빠져나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기까지 10분. 랑 클래스엔 아직 사람이 바글바글할 테니 수업 시작에 맞춰 가는 것이 좋았다.
나는 사람 없는 본관 복도를 걸었다. 할 발짝 내디디면서 메디아의 제안을 머릿속으로 구체화했다.
“절차적인 부분은 조속히 진행할 수 있게 메디아가 물밑 작업을 해 놨다고 했으니까.”
내가 해야 할 건, 인원 모집이다. 정원은 최대 열 명. 클래스 불문하고 열 명 남짓을 채우면 되는 것이었다. 이건 어렵지 않았다.
나 포함 여행 동아리 부원이 다섯이다. 거기서 2학년인 하나 선배를 빼면 네 사람. 정원의 과반 가까이는 부원으로 충당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여섯은? 이에 대해선 듣자마자 떠오른 면면이 있었다.
나만의 특별 클래스. 나는 이걸 좀 더 쓸모 있게 다뤄 볼 생각이다. 정확히는 2차 인마대전의 대비를 위한 특수 본부를 구상 중이다.
세간의 이목이 내게로 치우쳤다. 그러나 본래 이 주목은 내가 아닌 레온 반 라인하르트에게로 쏠리는 게 맞다.
어찌어찌 내가 천검이란 퍽 부담스러운 이명을 받았어도, 결국 마왕을 죽이는 건 용사다.
전에 말했듯 그의 고유 가호이자 게임의 상징인 ‘기적의 가호’만이 마왕 토벌의 열쇠니까. 다른 영웅들이 발버둥 쳐도 저게 없으면 말짱 꽝이었다. 이 세계의 시스템이 그렇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검신의 가호로 마왕의 토벌 가능성? 염두에 두곤 있지만 확증이 없다.
만약 내가 마왕을 죽일 수 있다면, 굳이 레온이 등장할 이유가 있을까? 거기다 녀석은 ‘기적의 가호’와 더불어 ‘발뭉’에게도 선택받는 등 용사의 자격을 증명해 왔다.
이처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마왕의 토벌은 레온의 몫이다. 내가 정사를 헝클어뜨린 이 시점에서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만큼이나 혹은 이상으로 레온은 더욱더 성장해야만 한다.
해서 레온의 성장 상황이 어디까지 진척됐는지. 또 앞으로 그를 어떻게 도울지 곁에 두고 지켜볼 생각이다.
학생회장 선거 적에 보니 레온은 나를 딱히 적대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먼저 손을 내밀어 친근함을 드러냈었으니. 특별반을 제안해도 매몰차게 거절하진 않겠지.
“그럼, 레온이랑 동아리 부원까지 해서 다섯 명. 남은 정원은 아벨이랑 레이첼을 넣으면 되겠네.”
레온 못지않게 그녀들의 성장도 중요한 관건이다. 특히나 아벨과 레온의 시너지는 2차 인마대전에서 전세를 뒤집을 키워드라고. 커뮤니티상으로 본 기억이 있다.
한마디로 레온 혼자서 마족 상대로 무쌍을 찍을 순 없다는 말이다. 아벨이 그를 조력해야 인류는 승리한다. 레이첼도 마찬가지로. 료조는 공기 히로인이라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이렇게 내 나름대로 일곱을 추렸다. 최대 정원인 열 명은 아니지만 꼭 채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약간 2% 부족한 느낌. 그 순간, 뇌리에 전류 한 줄기가 번뜩였다.
“게네들이 있었지.”
가까이 서 주시해야 할 한 사람. 그리고 생도, 심지어 인간도 아니나 특별 클래스에 들이고 싶은 또 한 명.
댕-댕-댕-
그때 5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윤곽은 잡혔다. 그들을 끌어들일 일만 남았다. 설득은 불필요하다.
나 하나 좋다고 하는 짓도 아닐뿐더러, 나는 칠성이다.
까라면 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