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1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12화(211/300)
212화 위기의 전조 (1)
“성 과장님! 아니, 성 부장님……!”
영웅 협회 남 직원이 헐레벌떡 313호 병실로 들어왔다. -부장으로 승진한-성 과장이 병상 이부자리를 정리 중이었다. 정리가 능숙했다. 협회에서 제공한 고성능의 의수와 의족 덕분이었다. 성 부장이 부하 직원을 반겼다.
“어, 박 대리. 무슨 일이야.”
“그게. 아, 일단 승진 그리고 퇴원을 동시에 축하드립니다, 부장님.”
“축하는 무슨, 마침 자리가 비어서 인원 메꾸기용 승진일 텐데.”
“호아킨 참사에서 보였던 몸소 희생하시는 모습 그리고 새로운 칠성 영웅의 작명까지 성황리에 완수하여 부협회장님께서 차장을 건너뛰고 부장으로! 두 단계 승진시켜 주셨잖아요. 그 연배에 부장 다신 건 이례적인 겁니다.”
“내가 한 게 뭐 있어. 전부 강검마 님의 활약 덕분인데. 솔직히 그때 나 한 게 뭐 없어. 오히려 방해가 됐으면 됐지.”
성 과장은 쓰게 웃었다. 이불과 베개를 마저 쌓아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너도 팔다리랑 부하 직원 잃어 봐. 승진이나 이런 게 눈에 들어오나. 사실 부협회장님의 설득이 없었으면 그냥 명예퇴직하려고 했어. 좀 부질없게 느껴지더라고, 모든 게.”
“하 주임 일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부하 관리 못 한 내 잘못이지. 아무튼 무슨 일이길래 불침 맞은 것처럼 뛰어와? 퇴원이랑 승진 축하해 주러 온 거 같지만은 않은데.”
부하 직원, 박 대리가 숨을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게헤나 게이트에 발생한 유격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성 부장은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던 인공 팔다리도 같이 뻣뻣하게 굳었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확히는 그러려다 말았다.
“2cm 정도 벌어진 게 저번 주 아니었어?”
“예. 바로 전에 보고받은 바로는 거기서 0.5cm 더 유격이 커졌답니다.”
성 부장의 의수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박 대리는 그런 성 부장을 보며 내심 놀랐다. 다른 직원들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난리가 났었다.
0.5cm. 손톱보다도 작지만, 그 틈이 시사하는 바는 무서우리만치 크다.
수 세기 동안 이상 없던 게이트에 징후가 나타난 상황. 이게 재난이 아니면 뭐겠나. 쓰나미가 몰려와도 이보단 불안이 덜할 터다.
그런데 성 부장님은? 겉보기에 그는 덤덤한 기색을 보였다. 눈에 근심이 비치긴 해도 공포에 떨거나 하진 않는다. 호아킨 참사로 인해 담이 세진 덕인가?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성 부장의 이 단단한 반응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강검마가 주는 듬직함이 그의 불안을 지워 낸 것이었다.
“부협회장님이랑 검제님께는 당연히 보고했지?”
“보고드린 다음 바로 병실로 달려왔습니다.”
본래면 성 부장은 현장에 나갈 일 없는 사무직이다. 그러나 그는 부장으로 승진했다. 과장과 달리 현장에도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게헤나 게이트에 이상이 생긴 거면 군단장과 관련된 일일 가능성이 농후해.’
전 같았으면 ‘군단장’이란 말에 바르르 어깨를 움츠렸겠지. 하지만 지금의 성현성은 다르다. 부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무게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 해.’
하 주임 일도 있지 않았던가. 협회 안에 또 다른 내부의 적이 있을지, 흉수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에.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검마님께 알려야 한다.
생각 정리를 마친 성 부장은 박 대리를 봤다.
“박 대리.”
“아, 예, 네.”
서늘하게 가라앉은 성 부장의 눈빛. 박 대리가 헛숨을 집어삼켰다. 성 부장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외근 가자, 게헤나 게이트로.”
“부장님, 오늘 퇴원하셨잖습니까!?”
“그거 알아? 천검님은 닥친 일을 뒤로 미루지 않으셔.”
성 부장이 겉옷을 걸쳤다.
“우리도 그분을 본받자.”
* * *
문득 뒤통수가 따가웠다. 훽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건 평안한 아카데미의 뒤뜰. 아무도 없었다. 있으면 내 앞에 있지.
‘기분 탓인가.’
괜히 가려운 목덜미를 긁적이며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옮겼다. 동아리 부원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 입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특히나 웨폰의 안색이 굳어 있다. 왜일까 자문해 봤다. 그리고 자답을 바로 제시했다. 같은 생도 신분이라고는 하나 얘들과 나 사이엔 엄연한 간극이 생겨 버린 것.
암만 편했던 친구라도 하루아침에 거물이 되어 나타난다면, 전처럼 하하호호 막역하게 지내긴 힘들겠지.
‘긴장한 얼굴들도 이해는 좀 가.’
그리고 갑자기 ‘여행 동아리 해체 선언!’이 나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거일 수도 있다.
칠성 영웅, 아카데미 생활, 동아리. 나는 쓰리잡을 뛰게 되었으니까. 그중에서 동아리가 가장 만만하니 포기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부원들의 걱정은 기우다. 나는 저 셋 중 어느 하나 포기할 생각이 없다.
세 개 전부 충실하긴 힘들 테지만, 나는 발을 전부 걸쳐 놓을 거다. 칠성 영웅은 이른바 직업 같은 거고, 아카데미 생활은 내 일상이다. 마지막으로, 여행 동아리는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준다.
‘얘네들이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칼만 휘두르는 광인이 되어 있었겠지.’
해서 조금 빠듯할지라도 동아리 활동까지 알뜰히 할 생각이다. 일단 그 전에 얘네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해소해 준 후에 이야기를 시작하자.
느닷없이 ‘특별 클래스 개설, 너희 전부 다 들어와야 한다.’ 이런 말을 하기엔 공기가 좀 얼어 있었다. 그렇다고 농담 식으로 말문을 트기엔 내가 또 말재주가 없다.
나는 웨폰, 료조, 클로이… 는 넘기고 차례차례 눈을 맞췄다. 무력을 아무리 갖춰도 저 밀랍 인형처럼 무기질적인 눈은 참.
‘하나 선배는 오늘 안 왔네.’
동아리 단체 톡방에서 불참할 수도 있다고 말했었는데. 약속 시간부터 십여 분이 지나도 안 보이는 걸 보면 오늘은 못 오는 듯하다.
‘그런데 오늘 사안은 하나 선배가 없어도 되긴 하지.’
어쨌든 내 눈짓 덕에 부원들의 굳었던 안색이 한결 풀어졌다. 나는 헛기침을 뱉었다. 여럿, 앞에서 말문을 여는 게 여간 어색 서러운 게 아니다. 이런 건 보통 입 잘 터는 웨폰의 역할이기도 했고.
‘아. 그리고 나, 생각해 보니 누구를 설득해 본 적이 없었구나.’
입보다 칼이 먼저 나갔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말보다 빠른 사시미’라 부르는 당위성을 나 스스로가 인정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잠깐 말을 고르다 그냥 되는 대로 뱉기로 했다. 조금 전의 고민이 무색해지긴 하지만 어쨌건.
“오늘 부른 건 학원장님이랑 나랑 기존 클래스 말고 새로운 반을 만들기로 했는데, 거기에 우리 여행 동아리 전원이 전반했으면 좋겠다. 이 말 하려고 불렀어.”
“……?”
미안하다, 애들아. 내가 말재간이 더럽게 없긴 하구나. 그때 웨폰이 무릎을 탁 쳤다.
“새로운 클래스 개설……. 아! 부장, 네가 칠성 영웅이 된 다음부터 사람들에 너무 쫓겨서?!”
웨폰 이 자식, 설명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먹어 주는구나. 덕분에 설명할 거리가 줄어든 난 편하게 말했다.
“맨날 사람들 우르르 몰려오고 이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나만 피해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생도들한테도 민폐일 거 아니야. 2학기 기말시험도 곧이고. 그래서 따로 별관에다가 따로 특별 클래스를 만들 거야.”
클로이가 내 말을 거들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랑 클래스 생도 중에서 학업에 진지한 생도들한테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응, 맞아. 그게 클래스를 신설하는 가장 큰 이유야. 근데 나 하나만을 위해서 클래스를 새로 만들면 좀 보기가 그렇잖아. 그래서 내 나름대로 열 명 정도 추려서 반을 꾸려도 된다고, 학원장님이 허락하셨어.”
“와… 아무리 명목이 그래도 스케일이 엄청난데? 호아킨 아카데미 역사 700년 동안, 네 클래스 외에 다른 클래스가 신설되는 건 유례가 없는 일이잖아. 현 학원장님이 ‘특진생’이란 파격적인 시스템도 만드셨는데, 거기다 부장 너만을 위한 클래스라…….”
돌연 웨폰의 눈시울에 습기가 찼다. 그는 생각했다. 특진생이라고 무시당하던 부장은 칠성이 되었고, 더 나아가 이 아카데미 역사에 한 획을 굵직하게 긋고 있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료조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우리 중에서 가장 차분한 눈을 하고 있었다.
“근데 우리 부원 말고 나머지는 인원 누구로 채울 거야? 검마, 네 말대로면 열 명은 추려야 한다며.”
“일단 생각 중인 건 레온. 그리고 아벨, 레이첼.”
이름이 거론될수록 료조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비틀린 입술과 점차 좁아지는 미간.
‘그러고 보니, 전에 료조는 아벨과 대판 다퉜던 적이 있었지.’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이 특별반의 주목적은 용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육성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녀들 사이의 잡음 때문에 물릴 순 없는 노릇이다. 혹시 모르지. 같이 있다 보면 서로 화해할지.
료조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팔자로 세워진 눈썹이 그녀의 심정을 반영했지만, 흥 콧소리로 불평을 대신했다.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아도 내 의사를 존중하겠단 거겠지. 난 그녀에게 은은하게 미소하고서 웨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 웨폰. 혹시 네가 걔네한테 대신 전달해 줄 수 있어?”
“어, 내가? 부장이 하는 게 낫지 않아?”
그야 그렇지. 다만 내가 걔네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 반면, 웨폰은 설명과 설득의 도사였다. 재능 있는 애가 있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수고할 이유가 없다.
나는 사실과 거짓을 적절히 담아서 대답했다.
“나도 직접 가서 말하고 싶은데, 칠성 업무랑 과제를 동시에 하니까 손발이 열 개라도 부족하더라고. 일단 웨폰, 네가 말해 보고. 만약 안 오겠다고 하면 내가 따로 찾아가서 말해 볼게.”
내 말에 웨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한 것이다.
“…하긴 오늘 이 자리도 부장, 너로선 진짜 어렵게 시간 낸 거겠네. 알았어! 내가 가서 애들한테 말해 볼게. 레온이랑 아벨은 모르겠는데, 레이첼은 아마 냉큼 알겠다고 할걸.”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내가 안도의 한숨을 흘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쭈뼛쭈뼛 다가오는 발소리가 났다. 나와 부원들은 반사적으로 그쪽을 힐끗 보았다.
단아하게 땋아 내린 머리와 투명한 피부. 외견은 완벽한 인간이나 분위기는 인외적인 신비한 소녀, 혼이었다. 그녀는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맵시가 아주 좋았다.
웨폰이 넋 나간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미쳤다……. 명찰 보니까 같은 학년 생도 같은데, 저렇게 예쁜 애가 있었나?”
웨폰은 ‘의외로’ 이성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런 그가 숫제 감탄했다는 건 엄청난 극찬이었다.
나야 혼이 드래곤이란 걸 아는지라 감흥이 적지만.
밖에서 보니 혼이 새삼 미인… 아니, 미용(龍)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근데 제가 최설아 없이 혼자서 왜 돌아다니는 거지?’
그 순간, 혼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 반가운 표정으로 도도도 뛰어왔다. 혼의 발길을 따라 흙먼지가 피었다.
“주군!”
부원들의 시선이 내게 모였다.
“…아.”
아무래도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묘령의 미소녀가 나를 주군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