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1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14화(213/300)
214화 위기의 전조 (3)
후우우웅―
높은 고도의 바람이 뺨에 스며든다. 귀가 먹먹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춥다. 뼛골이 시릴 정도로 춥다. 하지만 입가의 미소는 떠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비늘 돋친 피부 사이로 보이는 아래의 풍경. 창공을 부유하는 구름, 그 밑 너머에 있는 레고처럼 올망졸망한 인공적인 건축물.
태어나 느껴 본 적 없는 압도적인 웅장함이 와닿았다. 일전에 비행기를 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런 원시적인 형태의 비행이 주는 울림은 밑바닥을 흔드는 것이었다.
더구나 비행기는 지구에서도 탈 수 있다. 하지만 드래곤은? 용의 등에 타 본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세계에서도 드래곤에 타 본 사람은 없다시피 할 것이다. 그야, 드래곤은 마족이니까.
적대 관계인 마족이 인간을 등에 태운다? 쥐가 고양이를 타고 이동하는 꼴이었다.
나는 시선을 도로 올려 전방을 바라봤다. 저 앞쪽의 거대한 뿔을 시작점으로 내 앉은 곳까지 쭉 이어지는 길쭉한 등판. 한우만 보면 침을 즙처럼 짜던 그 혼이 맞나 싶을 만큼 듬직한 뒤태였다.
잠시 속으로 탄성을 흘리고 있자 혼이 머리를 뒤로 꺾었다.
-저기, 검마 님.
혼이 마어(魔語)로 말했다. 드래곤으로 변신하면 구강 구조가 변해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는 탓이었다.
하나 마족과 언어의 장벽은 ‘소통의 가호’가 있는 내겐 애로 사항이 아니었다. 마어로 그녀의 말을 받았다.
“왜? 도착했어?”
-아직이요. 근데 지금 같은 속도로 비행하면 한 시간 내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와… 빠르네. 한국에서 하와이까지 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 거잖아. 비행기로도 8시간 반 걸리는 거리인데.”
혼의 날갯죽지 근육이 꿈틀거렸다. 제 딴에는 어깨를 으쓱하는 것이리라.
-으흠. 저희 드래곤들이랑 그런 고철 덩어리랑 비교하면 섭섭하죠! 드래곤의 비행은 대기질의 마력을 동력원 삼아 비행하는 거고, 그 고철 덩어리는…….
혼은 주절주절 드래곤식 비행의 대단함을 강론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말투나… 뉘앙스나… 묘하게 최설아와 닮아 있었다.
‘…이거, 둘이 붙여 놨더니 안 좋은 물이 들었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뽀얀 입김이 잇새로 피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을 느끼며 혼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까, 혼 너 한국어가 엄청나게 능숙해졌던데. 마인들은 원래 인간의 언어를 빨리 익혀?”
-그건 아니에요. 마인 중에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종족은 그리 많지 않아요. 일단 크게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마인이 인간의 언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려면 인간과 비슷한 구강 구조가 있어야 하고, 높은 지능까지 수반되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조건 전부에 해당하는 마인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두 가지 조건에 전부 부합하는 마족이면 꽤 상위급 마인이란 소리인데…….’
한데 그 정도 되는 마인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생태계를 벗어나는 걸 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선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드래곤인 혼한테 물어봐도 자신도 모른단다. 그냥 습성인 것 같다고.
그래도 그런 폐쇄적인 성향 덕에 인류는 거대한 위협 하나가 줄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반대로 그들이 나타났다는 건 사태가 중대하다는 방증이리라. 그것도 떼거리로 출현한다? 거기서부턴 문제가 많이 심각해진다.
순간 엄습하는 불안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꼭 내가 어딜 가면 무슨 일이 터지곤 하는데.’
그렇게 반 시간을 더 이동했을 즈음에 혼이 낮게 말했다.
-…검마 님, 좀 전부터 느껴지던 건데, 게헤나 게이트 인근에서 마족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근데 원래 하와이 섬에는 마족들이 많이 서식하잖아, 게이트가 있는 곳이라서.”
-네……. 근데 이게 심상치 않은 게, 감지되는 기척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또… 그냥 어중이떠중이 마족도 아닌 것 같고요. 어느 종족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수가 많은 건 확실합니다.
나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되물었다.
“수가 많다면… 어느 정도인데?”
-잠시만요.
혼이 곧바로 마법을 넓게 방출했다. 일제히 바짝 곤두서는 용린(龍鱗). 그녀는 벼려진 감각으로 수급한 정보를 내뱉었다.
-대략 백 남짓입니다.
“씨발.”
혼이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듣기는 많이 들었는데 뭔지는 잘 몰라서요. 보라돌이 씨한테 물어봐도 나쁜 말이라면서 안 알려 주시더라고요.
얼씨구, 빌런이었던 애가 나쁜 말을 운운해? 본업은 그래도 교직자다 이건가? 최설아, 걔도 콘셉이 참 다양하다. 부캐가 여러 개라서 혼선이 온 것일 수도…….
한편, 혼은 학구열 넘치는 목소리로 ‘씨발’에 호기심을 품었다. 어린애한테 못된 거 알려 주는 거 같다. 슬쩍 넘어가려 해도 계속 보채겠지. 그리고 어차피 아카데미 생활하면서 숱하게 들을 말일 텐데.
내가 입을 열었다.
“한국의 고유 감탄사 같은 거야. 보통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쓰는 말인데, 기분이 아주 좋을 때도 쓰곤 해.”
-아하…….
시야에 맺힌 뿔 한 쌍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혼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고. 혼, 혹시 여기서 속도 좀 높일 수 있어?”
-높일 순 있는데 그러면 검마 님께 무리가 갈 수 있어요. 아마 칼바람에 살갗이 찢기실 텐데…….
혼은 우려를 담아서 말했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피부가 갈라지거나 상하고 그런 건 내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재생의 가호’를 발현하면 되니까.
나는 혼의 걱정을 덜어 줄 겸 호기롭게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네가 날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이동해 줘. 너도 그동안 날지 못해서 근질근질했을 거 아니야.”
-후회하셔도 전 몰라용.
“후회는 무슨. 그런 건 하남자나 하는 거-”
펄럭!
장엄한 날갯짓과 함께 주위에 돌풍이 일었다. 내 소리는 혼의 귀에 전달되지 못했다. 이동 속도가 소리를 능가했기 때문이다.
* * *
“허허. 칼 내려놓으시게나, 인간이여. 우리는 그저 이야기, 정확히는 협상하러 온 것이니.”
다크 엘프 무리, 그들 중 장로로 보이는 엘프가 나서서 한 말이었다. 이에 성 부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그는 기기괴괴한 공포를 느꼈다.
인간들을 전방위로 포위한 다크 엘프 집단도 그렇거니와 마인이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 두 가지 충격이 더해져 성 부장을 패닉 상태에 빠뜨렸다. 이는 다른 영웅들도 마찬가지로 다들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딱 한 사람, 검제를 제외하곤 말이다.
“호오, 역시 아론 니벨룽의 후예답군. 기세가 선조 못지않군그래.”
장로 엘프가 거무죽죽한 입술을 샐쭉거렸다. 감탄과 비아냥, 그 중간의 말투. 검제가 통렬히 일축했다.
“협상하러 왔다는 자가 이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나? 인간의 말을 반만 배워 왔군, 마인.”
“하하하. 미안하군.”
장로가 손짓하자 다크 엘프들이 조용히 무기를 내렸다. 놈들의 무기는 절반이 활, 나머지 반은 고목으로 만든 완드였다.
팽팽했던 공기가 사그라들었다. 장로는 숨을 한번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나? 이 애들을 물릴 수는 있네만, 피차 상관없는 일 아닌가.”
다크 엘프들은 활과 마법 같은 원거리 공세에 특화된 마족이었다. 놈들이 작정하고 노린다면 수 킬로 밖에 있는 대상도 정확히 꿰뚫는다.
장로의 말대로 엘프 무리를 물려 봤자였다. 시야에서 사라져도 놈들의 우세는 변함이 없으리라.
그 사실을 알기에 검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장로는 이죽거리는 얼굴로 다시 말했다. 어린아이를 토닥이듯이.
“내 자네의 마음을 잘 아네. 하지만 그리 나오기만 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아. 어때. 일단 앉아서 우리 이야기나 먼저 들어 보겠나?”
검제는 영 못마땅한 기색으로 일단 검날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성 부장에게 속삭였다.
“협회에 연락 넣어 놓게.”
“…아. 예, 알겠습니다.”
성 부장은 그나마 떨리지 않는 의수로 핸드폰을 꺼냈다. 장로는 그런 속셈을 뻔히 아는 듯했으나 그냥 내버려 두었다. 느긋한 표정으로 그들을 관망했다. 우위를 점한 자의 여유였다.
검제가 고개를 돌렸다. 장로는 나무둥치에 앉은 채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검제는 가타부타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협상이란 모름지기 동등한 위치일 때, 그리고 오고 가는 것이 동등할 때 비로소 성사되는 법이지.”
“아무렴. 우리도 맨입으로 오진 않았네. 협상에 앞서 선제 조건으로 마경의 정보 하나를 넘기겠네.”
장로가 굳은 입술로 다음을 잇는다.
“얼마 후에 4군단장 퍼머쉬가 이 게이트를 뚫고 나타날 걸세.”
“““……!”””
협회 직원, 영웅. 그들의 얼굴이 너 나 할 것 없이 경악이 차올랐다. 장로가 만족스레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내 말에 거짓 한 점 없다는 건 검성의 후예 자네라면 필시 눈치챘을 테고, 사태의 긴박함은 더더욱 절감하겠지. 게이트를 제 발로 뚫고 나오는 군단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테니.”
모를 리가. 군단장들의 본래의 힘은 빙의로 강림한 것과 천지 차이였다. 말 그대로 정말 하늘과 땅 수준의 힘의 간극이 존재했다.
장로 엘프가 계속해서 말했다.
“에두르지 않고 말하겠네. 우리 다크 엘프는 곧 있을 분전에서 인류 편에 가담하고 싶네.”
“…그게 뭔 개소리지?”
검제가 드물게 뇌까렸다. 너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엘프는 겉보기에도 퍽 닮았네. 그뿐인가? 검제 자네와 내가 이렇게 원활히 소통하고 있지 않나. 우리는 충분히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두 종족이야.”
“…….”
“며칠 동안 우리 다크 엘프 몇 명이 인간 손에 어쩌다 죽었지만, 그건 눈감고 넘어가겠네. 어떤가?”
“참 좋은 제안이군, 수상하리만치 말이야. 그래서, 다크 엘프 측에서 원하는 조건은 뭐지? 마족을 배신하고 인류에 가담하면서까지 원하는 게 필경 있을 터.”
“우리가 원하는 건 별게 아니야. 그저 마경이 아닌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그마한 터전 그리고 식량 정도면 충분하겠군.”
장로 엘프의 말에 성 부장이 반색했다. 좀 전까지 느꼈던 비탄이 경탄으로 뒤바뀌었다. 식량과 터전. 이런 조건이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검제의 반응은 성 부장과 달랐다. 그는 만지작거리던 검을 길게 뽑아냈다.
스르릉.
“거, 거, 검제님! 왜 그러십니까!? 좋은 조건 아닙니까.”
“자네, 다크 엘프들의 주식이 뭔지 아나?”
검제는 장로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반문했다. 성 부장이 그 질문의 저의를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
성 부장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입술이 더듬더듬 열렸다.
“인… 간…….”
그의 시선이 팩 앞쪽으로 넘어갔다. 장로 엘프의 검은 입술이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뒤로 회백색의 어둠 속에서 백 쌍의 안광이 핏빛으로 번들거렸다. 먹잇감을 보는 짐승의 눈빛이었다.
“안타깝게도 협상은 결렬이군. 유감이야.”
장로가 끌끌 혀를 차며 자리를 털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쉽다는 기색이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우리 다크 엘프는 어쩔 수 없이 군단장 측에 붙어야겠군. 그리고 이야기가 새어 나갈 수 있으니 들은 귀는 전부 없애야겠군.”
“얍삽하군, 귀쟁이답게.”
검제가 오러를 생성했다. 장로가 코웃음 치더니 경고하듯 말했다.
“검제, 자네 귀는 잘라서 따로 보관해 주겠네.”
“나는 네놈의 목을 베어 주지.”
검제가 한 발 내딛던 그때였다.
고오오오…….
바람의 방향이 역전되었다. 회백색만 무성했던 숲에 그늘이 드리웠다. 사위를 뒤덮는 암흑. 모두가 약속했다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중천의 태양을 가리는 기이한 그림자.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그 위에 있던 신형이 지상으로 낙하한다.
쿠우우우웅!
이내 그 인영이 노면과 거세게 충돌했다. 고랑이 파였다. 마구잡이로 피어오른 잿빛 흙먼지가 게이트 주변을 가득 채웠다.
저벅.
움푹 꺼진 고랑에서 검은 그림자가 걸어 나온다. 그 광경에 뒤쪽에 서 있던 검제가 반쯤 정신 나가서 말을 뱉었다.
“자네가 어찌 여기를……!”
강검마가 비스듬히 뒤돌았다. 산발이 된 머리 아래에 작은 호선이 도드라졌다.
“방해됐습니까?”
검제는 여전히 얼떨떨했으나 곧 머리를 흔들었다. 백발에 먼지가 묻었다.
“아니. 때맞춰서 잘 왔네.”
검제는 그를 곧게 응시하며 답했다. 강검마의 입가 호선은 미소로 이어졌다.
“다행입니다.”
강검마가 손목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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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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