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1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17화(216/300)
217화 식사는 잡쉈어?
오늘 밤은 게이트 인근에서 머무르고 갈 예정이다.
장로 엘프한테서 갈취한 정보 중 ‘편린’이 있을 법한 장소. 게헤나 게이트와 가까이 있다기에 예기치 않게 내일 가게 됐다.
한국과 하와이를 왕복하는 것도 피곤하고, 머지않아 게이트에서 사변이 일어날 거라 했으니.
‘머지않아서 게이트에서 퍼머쉬가 나타날 거라고도 했으니까.’
4군단장 퍼머쉬가 인계를 침범한단다. 그것도 게헤나 게이트를 뚫고 말이다.
어떻게 오는지 추궁했으나 장로 엘프는 모르쇠로 나왔다. 사시미를 들이밀어 봤다. 장로 엘프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모른다, 진짜 모른다!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심란함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얼굴을 쓸어내리는 와중, 탄성이 흘러들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
이곳은 영웅 협회가 마련해 준 임시 초소. 3인용 크기의 텐트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간이 냉장고, 간이 테이블, 간이 의자. 죄다 ‘간이’이긴 해도 설비로는 만족했다.
그리고 간이 냉장고 앞에 혼이 토템처럼 쭈그려 앉아 있다. 냉장고 특유의 나직한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렇다. 나는 혼과 같은 텐트를 쓰게 됐다. 인간의 탈을 썼다곤 하나 드래곤은 마족이다. 내가 사람들을 안심시켜 봤자 선입견이 한순간에 뒤집히진 않을 테니까. 그들로선 불안할 만도 하다.
해서 보호자(?)인 내가 혼을 맡기로 했다. 그제야 성 부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천검님이 붙어 있으면 안심이라나.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은 애써 무시했다.
‘혼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일이 너무 복잡해져.’
시선을 돌려 혼을 힐끗 바라봤다. 사실 그녀를 한국으로 혼자 보낼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나 강검마, 더는 비행기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칠성에게 지급되는 전용기도 이젠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어차피 혼의 존재를 들킨 거… 그냥 전용기 대신 혼을 타고 다니면 안 되나?’
그때 혼이 냉장고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검마 님! 이거 보세요! 여기 막, 고기랑 고기랑 고기가 있어요!”
역시나. 입가가 침 범벅이다. 쟤는 몸의 수분을 끌어다 전부 타액으로 분비하는 것 같다.
그녀가 냉장육을 하나 고른 후, 도도도 달려온다. 실하게 살이 붙은 소 등갈비.
혼은 간절한 표정을 짓고서 나를 올려다본다.
“저… 검마 님, 혹시…….”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빛. 순간 장화 신은 고양이 짤과 혼이 겹친다.
“이거 구워 주실 수 있나요……?”
간이 스토브가 버젓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인간과 섞여 산 지 한 달 된 혼이 저게 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까 내게 부탁한다는 건, 내가 구운 고기를 먹고 싶다는 거다. 나도 안다, 내가 한 요리가 맛있는 거.
‘조금 피곤하긴 한데……. 그래도 오늘 혼이 많이 수고해 줬으니까.’
전투에서 혼은 영웅들의 구조에 전념했다. 배리어 계열 마법을 시전해 인간 측 사상 피해를 크게 줄였다. 혼 덕분에 여러 목숨이 살았다. 동시에 검제의 서포팅까지 해내 보였다.
그녀는 맡은 바를 완벽 이상으로 완수했다.
마음 같아선, 정말 트리쁠(A+++) 한우를 사 주고 싶다. 트리쁠이 없어서 문제지.
‘미안하다, 혼. 있지도 않은 환상의 고기로 너를 속여서.’
하지만 트리쁠 한우는 못 줘도 원쁠을 포쁠로 바꿀 자신이 내겐 있다.
“오늘 수고했으니까, 그냥 고기구이보다 더 맛있는 걸 해 줄게.”
손을 활짝 펴 보이자 혼은 두 손에 꼭 쥔 등갈비를 건넨다. 전우의 유품을 전하듯 결연한 눈빛이다.
냉장고로 열어 식재료를 살펴보았다. 대파, 마늘, 양파, 간장, 기타 등등. 없는 거 빼곤 다 있네. 메뉴가 번뜩 떠오른다.
“그거면 되겠다.”
프라이팬을 꺼내 스토브 위에서 달궜다. 손목을 돌려 팬 바닥 전체를 식용유로 코팅한다.
치지직.
바로 등갈비 투하. 자글자글. 프라이팬 안에서 빗소리가 났다.
고기의 겉면만 튀기듯이 굽고서 꺼낸다. 소나기가 잠시 그쳤다.
노릇하게 구워진 갈빗대는 켜켜이 쌓았다. 이로써 본연의 육즙을 고기 안에 가뒀다.
“아직 먹으면 안 돼.”
고기를 향해 접근하는 혼을 곁눈질로 저지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그녀가 발끈한다.
“식은 고기는 맛없어요!”
“그거 잠깐 식히는 거야. 그리고 겉만 구운 거라서 안은 핏물이 뚝뚝 흐를걸.”
“…고기를 일부러 식혀요? 왜요?”
레스팅에 대해 잠깐 설명해 줄까 하다 말았다. 맛으로 설명해 주겠다. 기다려라, 혼. 이제 최설아가 해 준 고기구이는 골판지로 보일 거다.
‘내가 비행기를 한낱 고철로 취급하게 된 것처럼.’
재빨리 채소를 고기 기름에 달달 볶았다. 파, 마늘, 양파. 한국의 얼이 담긴 향채도 전부 넣었다.
“와…….”
곁에서 야채 손질하던 혼이 코끝을 씰룩인다. 냄새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고기를 못 먹게 해서 뾰로통했던 표정은 어느새 느슨해졌다.
간장 한 통을 몽땅 부었다. 덩이 진 설탕, 물엿도 과감하게 때려 박았다.
계량은 필요 없다. 내 손은 전자저울보다 섬세하다.
“혼, 드래곤들은 브레스를 쏘지?”
“아, 네네. 당연하죠!”
쇼맨십을 발휘할 순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신이 났다.
“인간도 브레스를 뿜을 수 있어.”
“에?!”
맛술 뚜껑을 앞니로 따고서 머리 높이에서 흩뿌렸다. 술 줄기가 소용돌이를 그리며 팬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알코올은 자신을 불살라 감칠맛으로 재탄생한다. 그 촉매는 불. 팬 위로 홍염의 불꽃이 솟구쳤다.
“플람베(Flambé).”
혼의 투명한 눈동자는 그 화려한 불쇼를 담았다. 난생처음 마법이라도 본 어린아이처럼 감탄했다. 나는 옅게 웃고서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텐트 안은 달콤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가득했다.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기어코 혼의 입에서 홍수가 터졌다. 더 나올 침이 있었구나. 대단하군.
‘저럴 만도 하지.’
단짠단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맛의 폭력은 한국 요리 과학의 정수. 이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혼은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이제, 이제는 먹어도 되지 않아요? 다 된 거 같은데. 밥도 다 됐는데. 네? 네?”
혼이 발을 동동 굴린다.
“다 되려면 5분 남았으니까 그동안 바닥에 흘린 침 좀 닦고 있어.”
“네에…….”
마무리 단계. 양념이 골고루 배게끔 나무 주걱으로 뒤적인다. 막하면 고기나 채소가 뭉개지니 요령껏.
“와아아. 이거 요리 이름이 뭔가요?”
청소를 마친 혼이 물었다. 바닥을 닦으면서 정신이 들었는지 이제야 궁금한 것이다.
“LA 갈비. 음… 아니, 이름 좀 바꿔서 하와이 갈비라고 하자.”
혼이 멍하게 중얼거린다.
“하와이 갈비… 하와이 갈비… 하와이 갈비… 하와이 갈비…….”
그녀는 하와이 갈비의 포로가 되었다.
* * *
“할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잠깐 시간 좀 되나? 으응?”
검제는 강검마의 막사로 도착했다. 그때 달콤한 냄새 솔솔 풍겼다. 그것도 아주 먹음직스러운 냄새.
검제는 홀리듯이 막사 커튼을 젖혔다.
“……?”
이름이 혼이라고 했던가? 그 드래곤이 식탁 앞에서 뒤로 나자빠져 있었다. 맞은편엔 강검마가 황당하단 눈으로 기절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제가 황급히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무슨 일인가? 서, 설마 드래곤이 본성을 못 이기고 날뛰어서 해치운 건가?!”
해치웠나? 한마디에 감겼던 드래곤의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어 벌떡 일어나 전투적인 식사를 시작했다.
혼은 경탄과 비탄을 마구 쏟아 냈다.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맛있다고요! 아아……! 제 한평생은 헛살았습니다! 저, 혼테일- 검마 님께 평생 헌신하기를-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우물우물 씹는 중인지라 혼은 토막 난 문장을 내뱉었다.
강검마는 조금 질렸다는 눈으로 제 고기를 덜어주었다.
“다 먹고 말해. 밥알 다 튀니까.”
“예!”
강검마의 시선이 검제를 향했다.
“아. 검제님도 오셨군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검자루를 잡았던 검제의 손아귀에 힘이 빠졌다.
“아직 안 먹었네만……. 방금은 무슨 상황이었나?”
“제가 해 준 고기 요리 먹고 혼이 꺅! 비명 지르고 자지러지더라고요. 그다음은 검제님이 보신 대로의 상황입니다.”
“뭐……?”
정신 줄이 끊길 정도의 맛이라고? 그런 건 미디어에서나 나오는 과장된 리액션이 아닌가.
한데… 저리 허겁지겁 먹는 걸 보아하니 마냥 허언은 아니렷다.
일단 검제는 식사 권유를 받아들였다. 검자루는 계속 붙잡은 채 밥상 한쪽을 차지했다.
검제가 앉건 말건, 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정확히는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와이 갈비를 퍼다 나르느라 정신이 없는 혼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고요.”
강검마 새로운 접시를 내놓았다. 검제는 조금 얼빠진 기색으로 대답했다.
“자네가 내일 들르기로 한 ‘네피림 신전’. 거기 관련해서 주의 사항이 좀 있어서 일러둘까 해서 찾아왔네.”
“그렇군요. 그럼 식사하시면서 이야기하시죠. 음식 식으면 맛없습니다.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혼 때문에 15인분을 만들었습니다.”
그 말에 검제는 혼을 힐끔 쳐다봤다. 여리여리하게 생겨서는 식사량은 코끼리가 따로 없구나.
검제는 곧 차려진 음식으로 시선을 옮겼다. 적갈색 소스로 졸인 소갈비. 좔좔 흐르는 기름기 하며, 냄새. 모든 요소가 침샘을 자극했다.
‘본 적 없는 요리군.’
최고 명문가, 니벨룽 가에서 태어나 미식가로 자란 검제였다. 세계 각지의 요리는 섭렵한 지 오래였고, 그 입맛 또한 까다로웠다. 작금에 와선 혀가 즐거웠던 적이 없었다.
‘그럴진대.’
검제의 목젖이 꿀렁였다. 몇십 년 만에 군침을 흘려 보는 건가.
검제는 포크로 한 점 콕 찍었다. 갈비를 유심히 보더니 조심스레 입에 집어넣었다.
“…어… 어.”
두 마디의 침음.
검제가 뒤로 넘어갔다.
* * *
어이가 없었다. 주의 사항을 알려 주겠다던 검제는 식사에만 열중했다. 귀족의 품위는 내려놓고 갈비를 잡고 뜯기 바빴다.
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밥까지 비벼서 싹싹 긁어먹었다.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경이로운 학습력이다, 먹는 거 한정으로.
정신없던 저녁이 끝났다. 그렇게 많던 하와이 갈비는 앙상한 뼈대만을 남겼다.
나는 막사를 빠져나와 밤바람을 쐤다. 옷에 밴 고기 냄새도 빼고, 환기도 할 겸. 그때 검제도 막사 밖으로 나왔다.
“험험.”
그가 멋쩍게 헛기침했다. 매우 민망한지 귀까지 빨갛다. 그래도 어찌어찌 말문을 연다.
“대단한 맛이더군……. 내 칠십 살면서 온갖 요리를 다 먹어 봤지만, 그런 맛은 처음이었어.”
“맛있게 드셨다니 기쁩니다.”
다시 적막이 일었다. 말없이 있길 몇 분, 검제가 대뜸 물었다.
“네피림의 뜻을 알고 있나?”
“수업 때 언뜻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라고.”
“오, 그래도 수업도 충실히 듣고 있군.”
“얼마 있으면 2학기 기말고사여서요.”
“하하하. 어쨌든 네피림을 알고 있다면 이해는 빠르겠군. 자네가 내일 방문하려는 ‘네피림 신전’은 인간과 마인이 공유하는 성역일세.”
검제는 간이 의자를 두 개 끌고 왔다. 우리는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거 아나? 우리 인간과 마인이 모시는 신은 같네. 갈래는 달라도 뿌리는 같다는 거지.”
“같은 신이요? 신은 신화시대에 전부 멸종한 거 아닙니까?”
“그런 어중이떠중이 신들을 말하는 게 아닐세.”
검제가 고개를 젓는다.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가 아주 잠깐, 위험하게 빛났다.
“진정한 신은 단 하나뿐이네. 뭐, 그건 수업을 들었으면 알고 있겠지.”
모를 수가 없지, 내게 힘을 준 존재인데.
“네피림 신전은 ‘그 신’을 기리기 위한 성소일세. 인간뿐만 아니라 마족도 방문하는 장소지. 인제 와서는 방문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마족만 있지만 말이야.”
검제가 나를 지그시 바라본다.
“내 주의 사항은 하나네. 거기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칼을 뽑지 말게. 그러면 정말 큰일로 번질 수 있어.”
“아… 예, 감사합니다.”
그의 눈빛에 걱정이 깃들었으나,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덧붙였다.
“아, 이건 그냥 묻는 거네만 저 드래곤이랑 자네,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지?”
나는 순간 벙쪘다. 저 드래곤? 설마 혼이랑? 맹렬하게 머리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아니,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르잖습니까.”
“…방금 말했잖나. 인간도 천사와 악마 사이에서 태어났네.”
“그거랑 이거는 다르잖습니까!”
“인간과 마인도 번식 활동이 가능해. 전례가 없을 뿐이지.”
미친.
“흠흠, 그런 사이가 아니라면 안심이야. 아무튼 저녁 잘 먹었네.”
검제는 그 말만 남기고서 급히 떠났다. 때마침 혼이 잠기운 가득한 눈을 비비며 나온다.
“검마님, 안 주무세요?”
“…나는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먼저 자.”
혼은 고개를 끄덕이곤 텐트로 들어간다.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인간과 마인이 모두 방문하는 신전이라…….’
원래는 혼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계획을 조금 정정해야 할 듯하다.
직감이 말한다. 혼과 함께 신전을 가라.
그리고 나는 내 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