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2화(22/300)
22화 중간고사 (3)
옛날부터 나는 멀미가 없는 편이었다.
우연찮은 기회로 낚싯배를 탔을 때도 소금기 그득한 바닷바람을 쪼이며 선선히 수상 나들이했을 정도니까. 그 모습에 뱃사람들조차 혀를 내둘렀었다.
그 때문인지 게이트를 통해 스코풀리 섬으로 워프하고 나서,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클로이와 스피드 웨폰은 각자 나무 하나씩을 도맡아 속을 게워 내고 있었고, 그 레이첼마저도 새파란 안색으로 이마를 감싸며 비틀거렸다.
나는 옆에 선 레온을 힐끗 바라봤다. 낯빛을 보니 살짝 파리한 게 그래도 조장이라고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다.
“…검마, 너는 괜찮나 보네.”
“원래 멀미를 잘 안 해.”
“…하하, 이건 멀미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조원들이 쓰린 속을 달랠 동안 시선을 옮겨 주변을 훑어봤다.
시원하리만치 탁 트인 새파란 수평선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고, 바다의 짠 내가 바람을 타고 짭짤하게 코끝을 스쳤다.
시야의 외곽에 보이는 듬성듬성 자라 있는 열대 나무, 모아이 석상같이 생긴 돌조각상들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 분 정도 주변을 구경하고 있자, 조원들이 속이 어느 정도 정리됐는지 조장인 레온 쪽으로 모였다. 레온은 금빛 머리칼을 한 차례 뒤로 쓸어 넘긴 후, 담담하게 계획을 브리핑했다.
“전에 회의에서 정한 대로 클로이가 1시 방향으로 먼저 가서 수색해 줘. 머맨 무리가 있으면 위치 파악해서 나한테 보고해 주고.”
클로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은 시선을 레이첼 쪽으로 돌려 설명을 이어 갔다.
“레이첼, 너는 진형의 선두에 서, 알지? 무장이 창인 네가 가장 리치가 기니까. 너무 무리하진 말고. 상황에 따라서 내가 서포트할게.”
지팡이처럼 짚고 있던 방천화극을 어깨에 들쳐 메고서 손가락을 모아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레이첼. 컨디션이 어느 정도 돌아온 듯 보인다.
“스피드 웨폰, 너는 되도록이면 레이첼을 우선으로 버프 계열 가호를 걸어 줘. 그리고 검마 너는 후방에서 혹시 모를 적에 대비해 주고.”
스피드 웨폰은 아직 멀미가 안 가셨는지, 입을 틀어막고 말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안색이었다.
내 시선이 힐끔 레온을 향했다.
동 나이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게 사령탑 역할을 해낸다. 그 모습에 드는 기시감, 내가 플레이했던 주인공 레온 그 자체였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
레온의 말을 들은 조원들이 무장을 챙겨 들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발대인 클로이가 쾌속으로 쌩하고 앞으로 내달렸다. 어찌나 빠른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진다.
‘어째 더 빨라진 거 같네.’
우리도 그녀를 뒤따라서 쭉 길을 걸었다. 열대 지역인지 습하고 더웠다. 흐르는 땀 때문에 금방 옷이 젖는다. 나는 목을 갑갑하게 조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더운 게 나만은 아닌지 스피드 웨폰도 더위 먹은 개처럼 혀를 내밀면서 몸을 축 늘어트렸고, 레이첼은 짜증스럽게 격한 손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나마 레온이 한 손을 검 자루에 올려 둔 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걷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안 덥냐?”
“당연히 덥지.”
싱긋 웃으며 답하는 레온.
“그래도 만약에 상황을 대비하는 게 내 역할이니까. 적어도 조장은 방심하면 안 되잖아.”
“…그래.”
주인공 포지션에 너무 충실한 언행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없이 든든하긴 했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뱉으며 다시 전방을 바라봤다.
듬성듬성 자라 있던 열대우림이 어느새 시야 양옆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게 버티고 서 있다.
지면도 점점 질척해지는 게 가까운 곳에 습지가 있는 것 같았다. 걸쭉한 길바닥에 우리 조 다섯의 발자국이 도장처럼 찍혀 갔다.
묘한 분위기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나는 슬쩍 허리춤을 더듬었다. 검집에 싸인 사시미의 서늘한 감촉이 느껴지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 * *
한참을 걷자, 저 멀리서 클로이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오는 모습이 흡사 만화에서나 보던 닌자 같았다.
도착한 그녀는 한차례 심호흡해 잠깐 숨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500M 앞 즈음에 큰 물웅덩이를 주변으로 어림잡아 오십 마리 정도의 머맨 무리가 있어요.”
“오십 마리라… 생각보다 많네.”
레온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약체에 속하는 D급의 머맨이라도 오십 마리라는 수는 부담스러울 만도 했다.
물론 이 구성원이라면 머맨 정도야 오십 마리든 백 마리든 토벌이 힘들진 않겠으나 위험은 존재했다.
보편적으로 마수 무리를 토벌할 때엔 치고 빠지기 전략을 주로 사용한다. 혹여 숨어 있는 무리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한 번에 저만한 수를 토벌한다면 1위는 따 놓은 당상일 터. 레온은 지금 속으로 두 선택지를 두고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위험을 짊어질 것이냐, 안전하게 우회해서 갈 것이냐. 결단은 조장인 그의 몫이었다.
고민을 마쳤는지 레온이 표정을 굳히며 시선을 레이첼에게 돌렸다.
“레이첼, 할 수 있겠어?”
“당연하지-! 저딴 생선 대가리들쯤이야 백 마리가 와도 끄떡없다구!”
그녀는 어깨를 쫙 펴고 주먹 쥔 손으로 자신만 믿으라는 듯이 가슴을 두드린다. 클로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레이첼을 흘긋했다.
시원시원한 대답에 레온은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걸고 스피드 웨폰에게 말했다.
“버프나 치유는 되도록이면 레이첼이나 클로이에게 전부 걸어 줘. 나는 괜찮으니까.”
곧바로 레온은 내게 덧붙여 말했다.
“검마, 너는 계획대로 후방에서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해 주고.”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꿀도 이런 꿀이 없었다. 레온과 엮인 게 후회스러운 순간도 있었지만, 단단한 버팀목 역할을 해 주는 그를 보자 문득 이 조에 합류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아까부터 전신을 훑는 미미한 떨림. 바늘처럼 피부를 찌르는 듯한 사나운 감각이 계속 신경 쓰인다.
나만 느끼는 건지, 다른 조원들의 얼굴에서는 긴장이나 불안한 기색이 비치지 않았다. 심지어 레온마저 느끼는 바가 없는지 딱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침을 삼키며 나는 조원들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고 20M 앞에서 커다란 웅덩이를 둘러싸고 있는 머맨들이 시야에 잡혔다.
‘으, 씨발.’
그것들을 보자 워프해도 괜찮았던 위장이 울렁거렸다. 안 그래도 두 발 달린 생선이라는 것도 불쾌한데,
하필 대가리들이 내가 아침으로 먹은 연어와 흡사한 생김새였다. 보기만 해도 내상을 입는 것 같다. 메스꺼움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레온이 레이첼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게 돌려 눈웃음을 한번 흘린 후, 양 갈래로 묶은 금발을 휘날리며 서른 남짓한 머맨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쩍―!
힘캐다운 다릿심. 레이첼의 발 구름에 질퍽한 지면이 움푹 꺼졌다. 그녀가 기세 좋은 함성과 함께 힘차게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우두둑 창날이 뼈에 걸리는 살벌한 소음이 나며 머맨 세 마리가 한 합에 횡으로 갈라졌다.
그제야 우리를 눈치챈 머맨들이 우리를 향해 아가미를 뻐끔거리며 일제히 돌진했다.
처음 느껴 보는 생경한 감각. 그러나 나를 제외한 조원들은 익숙한 듯 레이첼의 뒤를 쫓았다.
스피드 웨폰이 목에 건 리코더를 입술에 가져다 대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색은 글쎄… 음악엔 일자무식이지만, 그다지 좋은 선율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 어쩌다 들어 본 찌그러진 선율의 타이타닉 주제곡이 생각났다.
그의 연주에 레이첼의 입꼬리가 길게 늘어지더니 먼젓번보다 거세게 창을 휘둘러 머맨을 휩쓸었다.
까드득.
창날이 뼈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부웅 하는, 공기가 갈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쪼개진 생선 대가리들이 공중에 날아오른다.
‘미친.’
휘두름과 동시에 촥 하고 창날에 묻은 피가 흩뿌려졌다.
레이첼의 무용을 보고 있자니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의 움직임의 끝에 반으로 갈라진 머맨들이 길을 터 주었다.
그런 레이첼과 나란히 선 클로이, 그녀의 일본도가 머맨 세 마리의 아가미에 정확히 파고들었다.
푹― 푹― 푹―
탁하게 일변하는 생선 눈깔들. 그 와중에 클로이도 일전보다 검극이 날래고 정확했다.
클로이는 재빠르게 꽂힌 칼을 뽑고서 높게 튀어 올라 허공에서 속공을 퍼붓는다. 머맨 무리를 향해 내다 꽂히는 검의 그림자. 끈적한 피 분수가 솟구치며 사방에 튀어댔다.
서로 질세라 머맨들을 학살하는 두 미소녀. 둘이 눈이라도 마주치면 눈동자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켜보던 레온은 검을 절반 정도 뽑아 들더니 도로 날을 집어넣고 머쓱잖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나설 타이밍이 없었다.
“…대단하네.”
“그러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봐.”
내가 중얼거리자, 레온은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와 레온은 팔짱을 낀 채 여학생 둘이 벌이는 연어 해체 쇼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녀 둘 사이에서 심취해 두 눈을 감고 리코더를 삑, 삑 불어 대는 스피드 웨폰을 보자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냥 웃겼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그 많던 머맨 무리는 죽은 생선이 되어 비린내를 풍겨 댔다.
싸늘해진 시체들 사이로 배어 나오는 핏물이 작은 개천을 이루며 웅덩이 쪽으로 쪼르르 흘렀다. 그 장면이 조금 오싹하게 느껴져 어깨를 살짝 떨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시체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상쾌한 얼굴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내는 레이첼과 조용히 머맨들의 뒷지느러미를 갈무리 중인 클로이. 스피드 웨폰도 스스로의 연주에 만족했는지 얼굴에 개운함이 번졌다.
악취미적이게도 시험의 채점은 뒷지느러미 개수로 이루어졌기에, 레온은 클로이가 하는 갈무리를 거들었다.
솔직히 나는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순식간에 갈무리를 끝내고 모이는 조원들. 해치운 머맨의 수는 48마리. 이 정도면 못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무조건 들 만한 성과였다. 꼼꼼히 지느러미를 세어 본 레온이 말했다.
“돌아가면서 마주치는 머맨 몇 마리만 더 토벌하면 될 것 같아.”
그렇게 우리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한 순간이었다.
뒤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내 고개가 돌아감과 동시에 픽, 하고 무언가 썰리는 소리가 났다.
눈앞에서 선혈이 튀었다. 레온의 옆구리가 파이듯 베이고, 입에서 피를 뿜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느닷없이 일어난 상황에 조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귓가에 울려온 희미한 울림. 시선이 본능적으로 소리의 출처를 쫓았다.
“저, 저건!”
스피드 웨폰이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방금까지 우리가 있던 웅덩이 위에 무언가의 형상이 떠올랐다.
골조는 인간의 그것과 비슷하나 전신에 돋아 있는 비늘, 뱀처럼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과 손 발가락 사이를 메꾼 물갈퀴.
마인 머메이드가 붉게 물든 웅덩이 위에 서 있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던 불안감의 원인이 설마 마인일 줄이야. 당연하지만, 플레이 당시에는 이런 사건 따위는 없었다. 하기야, 원래라면 내가 레온의 조에 속할 일도 없었다.
두두두두두―!
충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지면을 흔드는 얼얼한 굉음이 수목을 헤치며 울린다.
갑작스레 출몰한 머메이드만으로도 절망적인 상황 속, 곧바로 어림잡아도 백 마리 남짓은 되어 보이는 머맨 무리가 우리의 퇴로를 막아섰다.
스피드 웨폰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고, 레이첼과 클로이도 인지부조화 상태로 입술만 끔뻑거렸다. 레온은 피를 울컥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나마 맨정신인 게 나밖에 없다.
‘이런, 씹.’
나는 넋이 나간 클로이의 어깨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클로이, 일단 너는 어떻게든 근처에 있을 다른 조한테 가서 구조 요청해, 얼른.”
클로이는 흠칫 몸을 떨며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곧바로 나는 시선을 돌려 레이첼과 스피드 웨폰에게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스피드 웨폰, 너는 레온한테 치유 계열 가호를 쏟아 부어. 그리고 레이첼, 너는 저 생선 새끼들이 레온한테 접근 못 하게 막아, 무조건.”
그리 말한 후, 나는 등을 돌려 웅덩이 쪽으로 향했다.
“피라미들은 맡길게.”
“거, 검마, 너 설마?”
“야, 너 이 새끼 미쳤어!?”
레이첼과 스피드 웨폰이 목소리를 떨었다.
“대어가 내 전문이거든.”
스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