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21화(219/300)
221화 네피림 신전 (4)
기적의 가호 M의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돌던 떡밥이 무엇일까. 단언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스토리의 최종 보스, 마왕이다.
이는 게임 커뮤니티상에서 소문만 무성한 존재였다.
흔한 양산형 모바일 게임- 과금만 하면 손쉽게 캐릭터 육성이 가능하며, 장비 강화가 쉬웠음에도 최종 보스까지 도달했다는 유저가 전무했다.
아, 있긴 있었다. 인증 없는 낚시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다. 사진이 떴다고 해도 전부 조작으로 밝혀졌다.
이쯤 돼서 유저들 입에선 이런 말들이 나왔다. 이 게임의 최종 보스가 과연 마왕이 맞는 거야? 그리고 자동 사냥 모바일 게임이 왜 후반으로 갈수록 빌어먹게 어려워지는 거지? 아니면 게임 자체가 미완성인 거 아닐까? 괴담과 추문이 커뮤니티에 계속해서 퍼져 나갔다.
행동력 좋은 유저들은 게임사에 직접 문의했었다. 답신은.
『최종 보스는 존재하고, 그는 마왕입니다.』
유저들은 분노했다. 그걸 누가 몰라서 묻나? 으레 이런 게임들의 끝은 마왕일 게 당연하잖아.
문제는 스토리 후반부까지 가서도 그 최종 보스의 머리털도 언급되지 않은 거였다. 그나마 단서라면 최종 보스를 ‘그’라고 지칭했다는 것. 어림 대중으로 성별이 남자일 거라 추측했다. 이마저도 입증할 수단은 없었다.
뭐, 나야 그렇게 코어 게이머가 아니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적당히 시간 때울 용도로 시작했던 모바일 게임이었으니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으니.
그렇지만 한편으론 궁금증이 일었다. ‘기적의 가호 M’은 양산형 게임치곤 몹시 어려운 난이도다.
후반부에 들어서 등장하는 적들인 마족과 군단장. 이 새끼들을 과연 깨라고 만든 건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괴랄한 녀석들인 탓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물들의 수장은 얼마나 강할까? 지극히 원론적인 호기심이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나무 위키나 커뮤질을 열심히 했었다. 궁금은 한데 자력으로 거기까지 가기엔 품이 많이 드니까.
‘물론 수확은 전혀 없이 포기했지.’
라이트 유저인 나도 이 정도인데, 코어 유저들은 어땠을까? 그들은 게임을 해부하다시피 분석하며 마왕의 정체를 파헤쳤다. 커뮤니티에선 그에 관해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었다. 의지의 한국인을 보여 주겠다며 몇 주 날밤을 까던 유저도 심심찮게 있었다.
악마의 게임이라 불리던 게임마저 K-게이머에겐 반나절의 유흥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예고편 보며 팝콘을 뜯을 때, 한국인은 이미 최종 보스의 머리채를 뜯었다, 단 6시간 만에.
한국인은 게임의 민족!
그 불굴의 의지를 유저들은 여과 없이 때려 부었다. 무려 1년을 말이다. 어지간한 게임은 한국인한테 인수 분해 당해 너덜너덜해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결과는……. 위에서 말했듯 유저의 참패였다. 마왕은 고사하고, 2군단장 쿠아른이나 1군단장 라이칸의 떡밥마저 풀지 못했다. 박차를 가해도 진전은 없었다. 깊이 파고들수록 그들은 미궁에 갇힌 듯 헤맸다. 결국엔 모든 게 원점이었다. 이 또한 마왕의 수렁이리라.
게이머들은 지쳐 갔다. 시장통 같던 커뮤니티는 어느 순간에서 조용해졌고, 네임드 유저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쯤 되면 유저들 배려 차원에서 최종 보스 떡밥을 풀어 줘도 괜찮지 않나. 남은 유저들은 그렇게 입 모아 말했다.
게임사는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그저 마왕은 존재한다는 건조한 대답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기적의 가호 M’의 가장 거대한 떡밥은, 게임을 향한 관심도와 함께 뒤안길로 사라져 갔다.
어느 하나 밝혀지지 않은 해묵은 떡밥.
어쩌면 나는 유저 중 유일하게 그 떡밥을 알게 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아니, 알다뿐인가.
‘불과 얼마 전 인류의 대표자로 임명된 내가…….’
알고 보니 인류의 거악이었다는 사실. 진위를 떠나서 그 자체만으로 경악스러운 이야기다.
정말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었다.
* * *
시전에 도래한 어둠은 시각을 빼앗았고, 적막은 숨통을 조였다.
환시인가, 실제인가.
현실인가, 허상인가.
사방에 암흑이 만연한 가운데, 탁.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지워졌던 불빛들이 타닥타닥 타오르기 시작한다.
잠깐 잃었던 평정심을 되찾으며 나는 정면을 응시했다. 탁, 탁, 탁. 검지와 엄지가 맞물리는 마찰음. 쿠아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장내가 환해지고 있었다.
확보된 시야. 조금 전의 광기는 지워 낸 채 쿠아른이 자약한 얼굴로 말했다.
“잠깐 바람이 불어서 전체 소등이 됐던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지금 다시 불을 지피겠습니다.”
쿠아른은 따뜻하게 웃었다. 그리고 꺼졌던 신전의 불씨를 마저 되살려 냈다.
신관 콘셉에 잡아 먹힌 건가? 멍하니 보고 있자니 놈이 정말 신관인 것 같았다.
“제 이야기는 이걸로 끝났습니다. 지금부턴 궁금한 걸 여쭈시면 그에 맞춰서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신관이란 그런 거일 테니까요.”
쿠아른은 입술에 엷은 미소를 달았다. 미소와 눈동자는 여전히 하얬다. 나는 놈의 눈을 지긋이 쳐다보며 물었다.
“거짓 된 신들을 전부 참살한 건, 인류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룬어로 ‘헤레브’, 신살신 등으로 불리더군요. 그나마 근접한 답으로는 검의 신이란 명칭이 있겠군요.”
“너는 어째서 마왕이라 부르는 거지?”
쿠아른이 후후 달게 웃었다. 순간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만큼 고혹적인 음성이었다.
“마왕이란 멸칭은 붙인 건, 그분께 당한 거짓된 신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절대 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면 선을 전부 베고 자른 건 ‘절대 악’이잖습니까. 따라서 그분께선 마왕이 되는 것이죠.”
“너무 이분법적인데.”
“아까 말씀드렸듯 거짓된 신들은 무언가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어떠한 것이든, 편을 가르고 다투기를 원하죠. 그것이 그들의 본질입니다.”
“…왜지?”
“그래야 자신들을 찾을 것 아닙니까. 다툼이 없는 평안한 세상에서 필멸자는 신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을 찾게 하려면 편 가르기만 한 게 없죠.”
“신이란 새끼들이 존나 속이 좁네.”
나는 혀를 찼다. 쿠아른이 어깨를 으쓱하며 덧붙였다.
“그들이 반쪽짜리 신격 체라서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저희는 그런 속 좁은 신들에 의해 탄생한 존재지만요. 그래서 저희 역시 불안정한 것이지요. 만약 마왕께서 저희를 창조하셨다면 완전무결의 생명체였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현타가 왔다.
뭐지. 이 새끼 이거 2군단장이잖아. 이런 놈이랑 화목하게 질의응답 시간이라, 그것도 칠성 영웅이. 보는 눈이 없어서 망정이지.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것보다, 마왕군의 필두랑 이렇게 말이 잘… 아, 맞다. 공교롭게도 내 안에 깃든 게 검의 신, 그러니까 마왕이었지. 바로 앞에 있는 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악마는 내 추종자고. 짝짜꿍이 잘 맞을 만도 했다.
이 묘한 관계를 쿠아른은 아는지 모르겠다. 내심 끝까지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새끼가 술술 뱉어 내던 말 전부가 일방적인 주장 혹은 거짓말일 수도 있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이기에 마족을 의심부터 하는 건 일종의 본능이었다. 놈들은 간악하다. 설탕 발린 말로 인간을 현혹한 후 유린하는 족속이 마족이다.
‘마족의 말이라…….’
그 말이 속에서 걸렸다. 나는 시선을 장로 엘프에게로 옮겼다. 이걸 까먹을 뻔했네.
마음이 찝찝하긴 해도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을 테니까. 나는 질문을 바꿔서 쿠아른에게 물었다.
“여기 장로 엘프가 나한테 ‘라이칸과 시조 영웅의 합작’이라고 말했는데, 이것 관련해서 아는 게 있나?”
쿠아른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놈은 라이칸이 아닌 ‘시조 영웅’이란 말에 반응했다.
“글쎄요, 그것까진 제가 모르겠군요.”
쿠아른은 어색하게 흰 눈썹을 긁적였다. 그리곤 혼을 보았다. 쿠아른 놈의 눈꼬리가 휘었다.
“다만, 그 해답은 이 드래곤 숙녀와 함께하시다 보면 머지않아 아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
“하나 힌트를 드리자면 드래곤은 필멸체 중에서 유일하게 영혼이 죽지 않습니다. 즉, 드래곤의 영체는 환생을 거듭할 수 있단 소리죠.”
그 말을 끝으로 쿠아른은 명치께에 손을 둥글게 모았다. 시침과 분침이 허공에 그려졌다. 놈은 공기로 만든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이.
“당신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제 신전이 닫을 시간입니다.”
그렇게 말한 쿠아른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 입구 쪽으로 걸었다. 나는 그런 놈을 불러세웠다.
“하나 더. 쿠아른, 너와 난 분명 적이다. 한데 왜 이렇게까지 전부 대답하는 거지?”
쿠아른이 서서 고민했다. 놈의 입술이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쿠아른이 말했다.
“당신이 제 적이기 때문에 친절한 겁니다. 현재의 당신은 시조의 영웅에게 못 미칩니다, 그 실력으론 결코 저를 베실 수 없으니. 그래서 뭐든 대답하는 겁니다. 저를 죽이러 오실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그 목소리가 왜인지 아련하다고 느꼈다. 잠시 침묵이 돌았다. 침묵이 공기를 대신했다.
“저와 당신이 다시 볼 땐, 목숨을 내놓고 싸우게 되겠군요.”
쿠아른이 적막을 깨웠다. 음울한 웃음기가 섞여 들었다.
“아니면 그 사투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 전에 당신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조만간에 인계를 찾아갈 제 형제, 4군단장 퍼머쉬에 의해서.”
“…….”
“퍼머쉬는 살육을 즐깁니다. 붉은 선혈로 몸을 적시는 걸 좋아하며, 인간의 뼛점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귀여운 동생이지요.”
나는 허, 하고 탄식을 뱉었다. 내게 친절을 베풀던 신관의 모습은 무색하게 흩어지고, 그 자리를 악마의 얼굴이 차지했다.
조울증인가? 군단장이 그런 정신적 질병을 겪을 리는 없으니. 이 또라이 기질은 그냥 쿠아른의 천성이었다.
이렇듯 마족의 목적과 도덕관은 인간과 한참 어긋나 있다.
나는 거창한 신념 따윈 없는 사람이다. 어쩌다 게임 속 세계에 스며들었고, 우연히 지독한 힘이 이 몸에 담겼을 뿐이다.
선과 악, 흑과 백. 그런 선문답은 관심 없다. 나한테 깃든 힘이 검의 신이건, 마왕이건 그 또한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이 힘을 적과 맞서는 데 쓴다는 것. 그게 무엇이건 내게 위해가 된다면 전부 베고 자른다. 이 이기적인 일념이 나를 움직이는 동력인 것이다.
쿠아른이 백의를 출렁이며 나아갔다. 그제야 마족들이 놈에게 절을 올렸다. 여기저기서 찬양과 경배가 터져 나왔다.
“쿠아른.”
쿠아른과 마족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본다. 야밤의 산짐승처럼 안광을 희번덕인다.
“퍼머쉬의 목을 베서 네 발치에 던져 주마.”
네피림 신전 내에 그림자가 짙어졌다. 선악이 공존해야 할 신전엔 마족만이 있었다. 인간은 나 하나.
쿠아른이 입매를 길게 끌어 올렸다.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