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23화(221/300)
223화 구상 (2)
날이 밝자마자 나는 혼의 등에 올라탔다.
“어제 말한 거,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검제와 성 부장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걱정하지 말게나. 그건 내 무슨 일이 있어도 할 테니.”
“저도 근시일 내로 천검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안전 운전……? 아무튼, 안전 비행하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의 배웅 속에서 혼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펄럭.
한창 비행하던 중, 문득 혼이 입을 열어 물었다.
“저 검마 님, 그때 한 약속, 혹시 잊지는 않으셨죠?”
약속? 무슨 약속? 혼과 따로 했던 약속이 있던가?
대답이 없자 혼은 고개를 슬쩍 뒤로 돌렸다. 그녀가 눈매를 가늘게 좁히면서 웅얼거렸다.
“트리쁠 한우…….”
아, 그거. 혼을 꼬드기겠다고 한 새빨간 거짓말.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문제는 트리쁠 한우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의 고기란 거다. 한우는 투쁠이 마지노선이다.
그렇다고 입을 싹 닫기엔 너무 몰염치였다. 값을 매기기 어려울 만큼 혼은 물심양면으로 도와줬으니까.
나는 대책을 궁리하다가 이내 입을 떼었다.
“혼, 혹시 와규라고 들어 본 적 있어?”
“와규용……? 그게 뭔가용?”
얘는 드래곤 상태면 말끝마다 용용 거리네. 콘셉인가? 위압감이 팍 반감되게시리.
“트리쁠 한우랑 엇비슷한 고기인데, 엄청 비싸다? 1인분에 30만 원 돈 하는 고기야.”
“사, 삼십만 원이용!?”
혼의 등이 들썩였다.
‘얼마 전까지는 신사임당을 코 푸는 휴지쯤으로 여겼던 애였는데…….’
이젠 돈의 가치가 뇌리에 각인된 듯하다. 소고기로 깨우친 경제관념이라.
‘좋게 좋게 생각하자.’
혼이 통속에 빨리 물드는 게 낫다. 얕게나마 인간 상식을 메꿔 둬야 그녀의 아카데미 생활이 수월할 테니.
…다만 그와 별개로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갓난아기가 커 가는 과정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느낌이 영. 이러다 나중에 가선 스마트폰 사 달라고 할 것 같다.
나는 쓰게 미소하고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고생했으니까 너 먹고 싶은 만큼 사 줄게.”
물론 최설아 돈으로.
내가 후원금을 받고 있고, 칠성으로도 수입이 있긴 하지만 혼의 어마어마한 식사량은 감당 불가다.
못해도 와규 20인분이 혼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갈 텐데.
‘거기다 한 번 와규를 사 주면 계속 사 줘야 할 거 아니야.’
통장에 찍힌 0들이 단수 0으로 증발할 거다. 세상에, 눈앞이 아찔하다.
펄럭!
한층 더 힘차진 날갯짓이 구름을 토막 냈다. 그 사이로 육지가 보인다. 귀국이 곧이었다.
* * *
그 시각, 웨폰이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예상은 했는데, 클래스 신설하는 준비가 생각보다 더 만만찮네.”
부장이 자리를 사이 웨폰은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수업 중간중간 자투리 시간과 자는 시간까지 쪼개 가며.
웨폰은 며칠간 일생일대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 열정에 사키는 혀를 내둘렀다.
“웨폰, 너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부장이 친히 내린 임무이기 때문이다.
강검마는 칠성 영웅이다. 누구에게든 하명할 권한이 있는 거물이었다.
한데도 부장은 자신한테 부탁했다. 이는 그간의 신뢰에 기인한 것.
‘이 스피드 웨폰, 천검님께 간택받았다!’
결코 부장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자신은 기대에 부응해야 할 소임이 있는 남자였다.
더해서 ‘특별 클래스 창설!’이 주는 묘한 설렘도 있었다. 이 역시 강검마가 칠성이 된 거와 마찬가지였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학풍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하다. 좋게 말해 기반이 단단한 거고, 달리 말해선 변화에 미온적이었다.
비단 호아킨 아카데미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변화를 거부하는 건 무릇 역사 깊은 기관들이 공유하는 기질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가 쉽게 썩는 거야.“
뒷돈 주고 부정 입학을 시도하는 귀족들도 속출하고 있다지. 웨폰이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이대론 안 된다.’
고일 대로 고인 이 아카데미에는 변혁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이 특별 클래스가 그 첫걸음이 될 거야.’
그리고 자신은 계몽의 역사에 발 도장을 찍고 있다. 웨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 수 있어.”
최근 깨달은 사실인데, 웨폰은 이런 실무적인 일에 탁월한 소질을 보였다. 사키 이상으로 훨씬.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피었다.
‘하긴 머리가 좋다고 이렇게 발로 뛰는 일 처리까지 잘하는 건 아니니까.’
웨폰은 손에 들린 서류철을 꼼꼼히 훑어보았다.
“이제 얼추 마무리되어 가네.”
특별 클래스 창설. 웨폰이 해야 할 건 크게 세 가지였다.
일단, 부장이 말했던 구성원들의 모집 및 편성이었다. 가장 중요한 첫 단추. 여기서 막히면 전부 허사였다.
웨폰은 심혈을 기울여 성 클래스 삼인방을 분석했다.
학생별로 성향표를 정리하고, 인터뷰 시뮬레이션을 돌렸으며, MBTI까지 추측해 보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한 채 웨폰은 성 클래스로 걸음 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서 한 명 한 명에게 접근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 대답은…….
“응, 좋아. 들어갈게. 제안해 줘서 고마워.”
차기 용사, 레온 반 라인하르트 ☑
“헐, 검마가 신설하는 클래스? 그곳에 나를 영입하고 싶다고?! 들어가지! 무조건 들어가지! 안 들여보내 주면 문짝을 부숴서라도 들어갈 거야!”
창성의 조카, 레이첼 드 뮈라 ☑
“걔가 나를 직접 호명했다고? 아, 싫다는 건 아니야! 그냥 좀 당황해서 그렇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단 들어갈게. 대, 대신 부탁 하나만 할게.”
“부탁?”
“별건 아니고, 그… 검마한텐 내가 한 번에 알겠다고 한 거 비밀로 해 줄 수 있어?”
“어, 뭐… 그 정도야……. 근데 왜?”
측은함이 어린 금색 눈빛.
“웨폰, 너도 눈치가… 아니야.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 줘.”
“……?”
검제의 손녀, 아벨 폰 니벨룽 ☑
성 클래스 삼인방은 순순히 승낙했다. 조금의 고민도 질문도 없었다.
그저 ‘강검마’란 마법의 단어를 꺼내자 냉큼 끄덕거렸다. 자신의 노력이 무색하리만치.
“이건 뭐.”
웨폰은 허무함을 느꼈다. 이럴 거면 날밤 깐 자신은 뭐가 되지? 부장의 인망이 두터운 건 알겠는데, 이건 너무 쉽잖아. 이건 하이패스를 넘어 슈퍼 패스다.
‘고생한 보람이 없어!’
웨폰은 쩝쩝 입맛을 다셨다. 어찌 되었건, 첫 단추는 성황리에 채워졌다.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갔다.
부장이 추가로 맡긴 사항. 바로 클래스 이름 작명!
원래는 부장이 해야 할 수속이었다. 하지만 부장이 급히 떠나는 바람에 웨폰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웨폰은 부담감에 휩싸였다. 또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새벽을 지새웠다.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쓰레기통엔 구겨진 종이들이 산처럼 쌓여 갔다. 여명과 함께한 오랜 고뇌 끝에.
“이… 이, 이거야……!”
웨폰은 마침내 적어 내렸다.
『천(天) 클래스.』
강검마의 이명인 ‘천검’을 연상케 만드는 클래스 이름. 거창한 감이 있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별을 뜻하는 성(星)보다는 위여야 않겠나. 태양이나 달은 부족하다. 그것들을 아우르는 하늘! 이게 확 와닿았다.
‘아무렴. 칠성 영웅 천검 님이 기거하실 클래스인데 이 정도는 돼야지.’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던 웨폰은 새벽에 덩실덩실 춤판을 벌였다.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 때 나오는 습관적인 기행이었다. 이를 두고 사촌 레이첼은 몽키 매직이라 불렀더랬다.
지금까지는 순항이었다. 남은 절차는 마지막 하나. 당연하다면 당연한 학원장님의 승인이었다.
사실 클래스 신설 제안부터가 학원장님의 입에서 나왔다. 따라서 승인 요청은 의례적인 절차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학원장실 문 앞에 선 웨폰은 식은땀을 흘렸다. 윤택이 흐르는 명패를 멀뚱히 바라만 봤다. 노크하려고 올라갔던 손이 내려가길 반복했다.
웨폰은 긴장하고 있었다.
‘학원장님과 독대.’
졸업생을 포함해 현 학원장님과 대담을 나눈 이는 드물었다. 왜냐면 학원장님은 하도 일에 치여 사셔서 시간 내기가 어려우시니까. 어지간한 교수들도 반년 전에 미리 시간을 잡아야 했다.
‘부장이야 1학기 초부터 오락실 가듯이 학원장실을 방문하지만.’
그건 부장이 특이한 거지. 웨폰의 반응이 되레 정상이었다.
“긴장하지 말자, 웨폰. 이것만 하면 끝이야. 부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고.”
웨폰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던 찰나. 문득 문 너머에서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뭔 뜬금포로 전화야?! 어디 십 년 동안 처박혀 있다가!”
학원장님에 이어서 또 다른 목소리가 흘려들었다.
-잘 지냈어, 두리?
잡음이 약간 낀 음성.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인 듯싶다.
“내,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촌스럽게 무슨 두리야!”
-왜~ 둘째면 두리지~!
웨폰은 귀를 문에 딱 붙였다. 통화 상대의 말투,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누구지?
* * *
기숙사 방에 도착한 즉시 나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시체처럼 누워 있길 몇 분. 이불보에 얼굴을 문대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잘 땐 자더라도 씻고는 자야지.”
사흘간 제대로 씻질 못해 찝찝하기 그지없었다. 하와이섬에서 너무 많은 피를 봤다. 수십의 다크 엘프들의 피를 뒤집어썼다. 그러고서도 물수건으로 쓱쓱 닦는 것에 그쳤다.
막사에 샤워실이 갖춰져 있긴 했다. 혼과 같이 머무른 탓에 이용할 수가 없었지.
뭘 그리 예민하게 구냐 할 수 있겠냐마는 여자애랑 같은 샤워실을 쓴다? 모태 솔로인 입장에서 상식을 벗어난 거다.
침대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샤워하면서 노래도 들을 겸 스마트폰도 챙겼다.
그때였다. 부웅- 핸드폰이 여러 번 몸을 떨었다. 부재중 전화나 문자, 여타 알림들이 뒤늦게 들이찼다. 하와이섬은 통화권 밖이라서 이제야 밀려온 것이다.
나는 한 꺼풀씩 탈의하며 연락들을 확인했다. 웨폰에게서 온 현황 보고 일람. 웨폰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파일로 전송했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없는 새 잘해 주고 있었구나.
‘근데 이거 일일이 확인은 못 하겠는데.’
공과 사의 연락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이래서는 씻기는커녕 잠도 못 잘 터.
방법을 빠르게 강구해냈다. 나는 스마트폰에 대고 말했다.
“빅스빅, 사적인 연락만 분류해서 나 샤워할 동안 구두로 읊어 줘.”
[좀 여유롭다 싶더니…….]나직한 탄식이 화장실 타일에 튕겼다. 빅스빅은 틱틱거리면서도 연락을 분류했다.
[어?]빅스빅이 어울리지 않게 놀랐다.
[검마 님, 이거 발신자가 좀 이상한데요?]수온 조절에 집중하던 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스팸 같은 거면 차단해 버려.”
[스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뭐라 해야 할까요. 앞번호가 019, 정말 옛날 전화번호 서식이라서요. 그래서 역추적해 보니…….]침묵이 일었다. 빅스빅의 입이 다시 열렸다.
[전대 학원장님의 번호로 온 문자입니다.]쏴아아.
샤워기가 차디찬 냉수를 내뿜었다.
아, 빌어먹을. 온도 조절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