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27화(225/300)
227화 선생님 (3)
하늘색 양안이 눈에 들어온 건 문이 열림과 동시였다.
“…료조, 이 시간에 왜?”
아니, 그보다도 얼굴이 왜 저런 거지? 감정이 일절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다.
‘클로이의 ‘그것’과는 다르다.’
클로이는 무표정이라면 료조는 뭐랄까, ‘공백’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기색이었다.
쿵쿵 발을 구르며 료조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야각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료조는 한치의 미동 없는 동공을 하나 선배에게 고정한 채였다.
나도 선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눈물을 전부 훔친 선배는 달뜬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다.
“안녕, 사키?”
선배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인사를 무시한 료조는 선배의 발치 앞에 우뚝 섰다.
료조는 선배를 빠아안히 응시했다. 선배는 팔짱을 끼고서 그 응시를 받아 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상황을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한 순간, 료조가 먼저 선배에게 고개를 숙였다. 예법을 갖춰서 공손히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만력 메아인 포이즌 님.”
“오~! 역시 사키야, 바로 알아보고. 내가 학원장일 때 너 같은 애가 있었더라면 좀 더 오래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사키, 너는 얼추 알고 있을 줄 알았어. 그간의 정황이나 복도 밖까지 퍼진 대화 내용으로 의혹은 확신으로 바뀌었겠지. 그래도 문을 좀 요란스레 연 건, 아직 감정 조절이 완전히 되지 않는 십 대답다고나 할까?”
“…….”
료조는 대꾸하지 않았다. 뒤이어서 웨폰이 헐레벌떡 서고 안으로 들어왔다.
“사키, 사키! 갑자기 뭔……! 어? 이건 뭔?”
웨폰이 나와 사키를 번갈아 보았다. 갈 곳 잃은 눈동자가 선배 쪽에서 정지했다. 멍했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선… 배……? 님이세요?”
말투가 퍽 웃겼다. 선배도 그랬는지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안경 안 쓴 것이 이렇게까지 반전인 줄 몰랐네~ 이런 재밌는 반응 나올 줄 알았으면 좀 더 꼭꼭 숨기는 거였는데, 아쉽다!”
웨폰이 횡설수설 말을 더듬거렸다. 나도 저 녀석의 반응을 이해한다. 봤을 때부터 미인이었으면 예쁘다 하고 말겠지만,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알고 보니’ 미인. 이 반전적 요소는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장치였다. 이른바, 클리셰.
고루한 공식. 그런데 진부함의 대명사 반전의 클리셰가 어째서 쓰이는가? 그건 그만큼 효력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에 있어서 일종의 치트키 같은 거였다.
“아, 아, 아니. 어떻게…….”
웨폰에겐 그 효과가 더 컸던 모양이다. 그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풀썩 주저앉았다.
료조는 그런 그를 한심스레 쳐다보다가 다시 선배를 보았다. 그녀가 경어로 말했다.
“저 팔푼이는 보통 저렇다는 거, 만력님께서도 잘 아시니 너른 이해 부탁드립니다.”
“사키! 갑자기 너 무슨 존댓말이니! 그냥 맨날 그랬던 것처럼 반말해 줘! 이거 너무 불편하다!”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 없습니다.”
료조는 표정 하나 안 바꾸며 이유를 설명했다. 무서우리만치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만력 메아인 포이즌 전대 학원장님. 무력으론 검제님과 대등 이상이시라는 만력님께 그런 결례를 범할 순 없는 법입니다.”
선배가 장난스레 료조를 타박했다.
“말투만 공손하지, 이거 왠지 비아냥거리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이것도 그래!”
“죄송합니다만, 메아인 님과 저희의 나이 차이는 거의 반세기이십니다. 그러니 말을 놓을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내가 괜찮대도? 그리고 사키, 너는 얼추 알 거 아니야, 포이즌 가문의 특질을.”
료조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알기 때문에 더더욱 공대가 옳습니다. 메아인 님만이 아니라, 메디아 님도 현 학원장님이시며 빅터 포이즌 님께선 영웅 협회의 초석을 다지신 분이잖아요. 포이즌가(家)의 위신에 흠을 새길 순 없습니다.”
메아인, 당신과 나의 계급 차는 아득하다. 고로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 없다. 명목상은 이렇지만 기실은 편하게 대하기 싫다는 것.
“어우, 진짜. 삐졌으면 삐졌다고 말을 해. 애가 좀 애다워야지! 어쩜 이렇게 말을 에둘러서 하니.”
“조금 전엔 ‘십 대여서 감정 조절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한마디를 안 져!”
선배는 답답한 듯 콩콩 제 가슴을 두드렸다.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입술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렸다.
료조는 선배에게서 내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냉정한 눈으로 물었다.
“상황 설명 좀 해 줄 수 있을까?”
차가운 분노, 순간 피부에 어스름이 일었다. 이와 비슷한 기분을 누군가에게 느껴 본 적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낼 순 없었다. 왜냐하면 그자는 그녀가 가장 혐오하는 자인 아버지 절궁 사키 코지마였으니까. 특히나 강한 열망이 일렁이는 눈동자가 쏙 빼닮았다.
‘…….’
잠깐 상념에 잠긴 난 이내 한숨을 쉬었다.
“선배가 아니… 전대 학원장이신 메아인 포이즌 님이 천 클래스의 담당 교수를 맡아 주기로 했어.”
료조의 미간이 좁아졌다. 명백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차분함을 애써 붙들며 되물었다.
“왜?”
“아, 그건.”
“내가 하고 싶다고 했어.”
대화에 끼어든 선배가 나 대신 말을 이었다.
“사키, 너도 알다시피 검마가 이런저런 공무에 치이고 살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줄 겸 담당 교수를 맡고 싶다고 했어. 그럼, 검마의 일이 조금은 줄어들 테니까.”
“일이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진 않을 것 같습니다.”
료조는 주장했다. 그녀는 똑바로 메아인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력님께서 천 클래스의 담당 교수를 맡아 주시는 건 영광입니다만, 생각해 보세요. 언론에선 이에 관해서 보도를 며칠 내내 보도를 하겠죠. 그뿐만 아니라 아카데미, 협회, 귀족 사회 할 것 없이 온 관심이 천 클래스로 쏠리겠죠.”
선배는 가만 귀담아들었다. 료조는 나를 힐끔 보다가 도로 선배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 파급이 오롯이 메아인 님의 몫이라면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그 관심은 분명 검마한테도 영향을 미치겠죠.”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검마의 어깨를 덜어 줘도, 기회 비용이 더 클 거란 말이지?”
“네.”
단호한 대답. 선배는 입꼬리를 부드럽게 당겼다. 학생이 올바른 질문을 했을 때의 선생님 같은 반응이었다.
“이래서 내가 사키 너를 가장 응원한다니까.”
“……!”
료조가 흠칫했다. 선배는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그러곤 사뿐사뿐 걸어 료조 바로 옆에 섰다.
“일 년 가까이 지켜봤는데 사키, 네 염려는 늘 검마를 배려하는 방향이야.”
“…….”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잘 알아. 그래도 나, 학원장이었잖아. 현임만큼 좋은 학원장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학생한테 폐 끼칠 일은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메아인은 사키의 어깨를 토닥여 주곤 그대로 지나쳐 문 쪽으로 걸음 했다.
웨폰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궁둥이로 바닥을 닦으며 길을 터 주었다.
이내 문 앞에 다다른 선배는 슬쩍 반만 뒤돌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클래스 개장이 사흘 후였지? 그때 보자!”
그 말만 남긴 채 선배는 서고를 빠져나갔다. 잠시간 복작거리던 서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이 깔렸다.
잠시 뒤, 료조와 웨폰이 홱 나를 쳐다보았다. 묻고 싶은 게 많아 보이는 눈빛. 아무래도 오늘 밤도 잠자긴 그른 듯싶다.
* * *
강검마의 서고를 나선 메아인은 아카데미 부지를 산책했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밤은 싸늘했다. 그래서인지 인기척 하나 없이 한적했다.
그렇게 메아인은 한 야산 아래에 다다르게 됐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규모는 작은 도시 그 이상으로 거대하다. 고작 3년으로는 이 장소의 내막 전체를 결코 알 수 없었다. 이는 교수와 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아킨 아카데미에는 많은 비밀이 속속들이 숨어 있었다. 이 볼품없는 둔덕 또한 비밀이 감춰진 장소 중 하나. 메아인이 주기적으로 찾는 곳이었다.
이 뒷산의 깊은 자락에, 가호의 각성을 억누르게 하는 우물이 존재한다. 그 연유는 과거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발로르 호아킨의 일곱 제자, 7영걸은 시기는 저마다 다르나 전부 가호를 각성 당했다.
‘그래, 당했다라는 말이 맞지.’
각성은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거부해도 끝끝내 정신을 살라 먹으며 강제적으로 저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물론 각성자들인 7영걸 덕분에 인류는 승리했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신위를 본 자들은 이리 기록하였다.
『각성자는 신의 선택을 받은 축복받은 영웅들이다.』
그러나 이 기록엔 모순이 있었다.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7영걸은 어째서 생을 짧게 마쳤는가. 각성과 동시에 빠르게 건강이 쇠하고, 수명을 좀 먹는 이것이 과연 축복인 걸까?
아니, 아니었다. 축복은 각성자들이 아닌 그렇지 않은 자들이겠지. 자신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태워 주니까. 정작 각성자들은 그 위대한 신에게 생명을 헌납해야만 하는 운명인데.
7영걸의 스승 발로르 호아킨은 이 불합리를 깊이 통감한 바, 해결 방안을 궁구했다. 그는 생각했다.
각성자들이 신의 선택을 받아서 빨리 죽는다면…….
그에 반하는 짓을 해서 늦춘다. 발로르는 곧장 마경으로 향했다. 거기서 온갖 것들을 갖고 와 대놓고 만든 특별관 외에도 아카데미 곳곳에 은닉했다.
메아인이 향하는 ‘부패의 우물’도 그때 생겨난 것이었다.
“신에게 미움받기 위해서 발버둥 쳐아 하는 게 각성자라.”
메아인이 비탈에 발을 내디딜 무렵. 그녀가 피식거리더니 툭 내뱉었다.
“일국의 총리대신이 이렇게 자리를 자주 비워서야 되겠어?”
저벅, 저벅.
수풀이 일렁이며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단정한 정복 차림을 한 절궁 사키 코지마. 곧이어 그는 메아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뵙고 싶었습니다, 스승님.”
“표정은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입바른 소리는 잘하는구나.”
날카로운 시선이 절궁에게 내다 꽂혔다. 메아인이 말했다.
“나는 너 별로 안 보고 싶었으니까, 용건만 말해.”
“제가 이곳에 왔을 때부터 스승님께선 알고 계시진 않으셨습니까.”
“하아……. 수십 년 전에 내가 말했지. 각성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고. 사정을 다 아는 너는 알 거 아니야.”
“잘 압니다. 그러나 그만큼 강한 힘을 취할 수 있잖습니까. 그러면 인류에 이바지할 수 있지요.”
“넌 옛날부터 말은 참 잘했어. 뭐, 빨리 죽고 싶은 건 네 자유인데, 넌 이미 늦었어. 각성을 할 거였으면 젊은 나이여야지. 살 거 다 산 노인은 각성 못 해.”
“제가 아닌, 제 딸.”
그 말에 메아인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일대를 깔아뭉개는 듯한 지독한 압력. 그럼에도 절궁은 눈을 부릅뜬 채 시선을 들었다.
“제 딸은 아직 젊습니다.”
메아인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코지마.”
“예.”
“넌 좀 맞아야겠다.”
“인사불성도 각오했습니다.”
“응, 그래 보여. 근데 헛발 짚었어. 넌 인사불성이 아니라.”
쿠우우웅……!
거대한 진동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땅이 아닌 하늘이 요동치는 것 같은 착란이 일었다.
“아마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