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29화(226/300)
229화 이슈 (2)
[치지직- 검… 치지직- 마… 야…….]노이즈가 뒤섞인 음성. 부서진 핸드폰 너머에서 메디아가 나를 애타게 찾는다.
충격으로 마비된 정신을 차렸다. 얼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폰을 주워 통화를 이으려 했으나.
[치지직——]핸드폰이 완전히 먹통이 되어 버렸다. 하긴, 액정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됐는데 멀쩡할 리가.
나는 곧장 학원장실로 향했다. 어차피 이만한 일을 전화로 노닥거리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직접 이마를 맞대고 짱구를 굴려야 했다. 집단(?) 지성이 필요한 상황.
“학원장님, 저 강검마입니다.”
학원장실에 도착한 난 노크와 함께 메디아를 불렀다. 끼이익- 문이 힘없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틈으로 눈그늘이 턱 밑까지 내려온 메디아가 보였다.
“거, 검마야. 갑자기 전화가 끊겨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져서 폰을 떨궜습니다.”
“아니야… 이해해……. 난 이 소식 처음 들었을 때 전화기를 박살 내 버렸거든. 나와 비교하면 핸드폰 놓친 것 정도야 양반이지.”
“그렇군요…….”
우리는 한 차례 근심을 주고받았다. 그래도 상황은 파악해야 했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되도록 세세하게요.”
“내 정신 좀 봐. 정보 전달만 틱 하고 아무 말도 안 해 줬네, 하하…….”
메디아가 혼이 반쯤 빠진 목소리로 웃었다.
어째서 천 클래스를 담당하기로 한 선배가, 일본 총리대신 절궁을 반신불수로 만들었는지. 이 일의 직접적인 연관자는 아니어도, 어쨌든 알아 두어야 하는 사람이 나니까. 천 클래스 개장이 내일이었다. 부원들과 날밤을 까며 겨우 일정을 맞췄건만.
대뜸 담당 교수한테 수배령이 떨어졌다. 까딱하면 천 클래스의 무산… 까지는 아니어도 상황이 귀찮아지리라. 수면 시간을 줄이는 건 당연하거니와 기일이 차일피일 밀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 계획이 수틀리게 돼.’
고작 개장일이 늦춰지는 거에 왜 이렇게 신경 쓰냐고? 왜냐하면 머지않아 4군단장 퍼머쉬가 인계를 습격할 테니까. 더욱이 빙의 강림이 아닌 게이트를 뚫고 오는 거다. 대비가 불가결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몸을 혹사해 가며 일정을 촉박하게 잡은 것이었다. 이번 건에 많은 시간을 소모할 수 없기 때문에. 더불어 메아인의 역할은 단순한 담당 교수가 아니다. 내가 퍼머쉬와 격돌하거나 이외 기타 사건들에 휘말리면 막아 달라고 그녀를 채용한 것이니.
‘메아인만 한 위인이 또 있으면 모를까… 그렇다고 학원장님한테 맡기기엔 그녀 나름대로 할 일이 더 있으니까.’
수습할 수 있으면 반드시 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그게 인류를 위한 일이다. 그녀한테 책임은 꼭 물을 생각이나 일단 사태 파악이 우선이었다.
이내 한숨만 폭폭 내쉬던 메디아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서 이마를 싸맨 자세였다.
“코지마가 어제 오후에 은밀히 한국에 입국한 모양이야. 걔가 들어오는지 아무도 몰랐으니까. 아, 생각해 보니까 빡치네. 하필 그 새끼가 옆 동네 살아서 툭 하고 날아오기 쉬운 게.”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는 것이 짐짓 느껴졌다. 관자놀이에 솟은 십자 모양 혈관, 뿌득 이 갈리는 소리도 감정 반영에 한몫했고.
“아무튼, 코지마가 어젯밤 아카데미 외곽의 야산에서 언니를 기다렸다가 대화를… 아니, 말이 좋아 대화지 기실 도발을 했다나 봐.”
“뭐라고 도발했답니까?”
“나도 정확히는 몰라. 근데 그 새끼 그거, 사람 속 긁는 데는 도사에다 주둥이가 자유분방하거든. 뭐가 됐든 코지마가 혀를 잘못 털었을 거야. 그래서 이 사달이 난 거일 테고.”
곱고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민트색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습니다. 만력님이랑 절궁이 붙었다면 분명 이변이 느껴졌어야 하는데, 어젯밤 저 밤새웠는데도 별다른 이상은 없었는데요?”
“언니가 아공간 장막을 전개했어.”
“장막은 특정 장소 외에선 전개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근데 ‘하필’ 언니가 전대 학원장이어서 어느 장소에서나 전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문제지, 하-.”
“아니, 근데 그럼 아공간 장막을 전개했는데 절궁은 왜 그렇게 된 겁니까?”
“그건…….”
메디아가 입술을 달싹였다.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길 30초. 그녀가 순순히 사정을 털어놨다.
“이것도 ‘하필’이란 단어가 맞을 것 같아. 둘 이서 박투했다던 그 산이 문제였거든. 정확히는 그 산 안에 있는 한 우물이 문제가 된 거지만.”
“우물이요?”
“응. 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우물인데 ‘타락의 우물’이라고 통해.”
나는 고개를 까딱 기울였다. 타락의 우물? 이름이 영……. 아카데미 뒷산에 있을 만하진 않다. 내 생각과 동의한다는 듯 메디아가 옅게 미소 지었다.
“이름만 들으면 마경에나 있을 것 같지? 근데 맞아. 창립자이신 시조의 영웅께서 마경의 협곡 물을 길어다가 만든 장소거든. 우물의 형태를 띠는 건 일종의 봉인이야. 공포 영화 같은 데서 보면 뚜껑 덮어서 저주나 귀신 같은 거 막고 그러잖아? 비슷해. 거기 우물물은 마색이 엄청 짙거든.”
“그런 우물이 왜 아카데미 내에 있는 겁니까? 1학기 기말고사를 치렀던 특별관이야 교육용이라 그렇다 쳐도, 뒷산에 있을 만한 건 아닌 거 같은데요.”
메디아가 순순히 긍정했다.
“그치. 선(善)을 추구해야 할 호아킨 아카데미에 그런 불경한 장소가 숨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근데 그 불경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만력님이란 소리군요.”
“오, 역시. 그냥 말해도 바로 알아먹는구나, 우리 검마는. 아주아주 영특해! 맞아. 내 언니야.”
그녀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서 돌연 내 옆에 앉았다.
“왜냐면 메아인 포이즌은 현시대에서 유일하게 가호를 각성했거든.”
“……?”
가호의 각성? 그게 뭐지? 중반부까지 게임을 했던 나조차 모르는 개념? 그렇다는 건…….
‘게임의 서사 후반부에나 등장하는 개념이라는 건데.’
아니면 순전히 개념은 존재하지만 별 중요치 않게 넘어가는 맥거핀이라든가. 어찌 되었건, 이 ‘각성’이란 낱말이 이 사건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메디아가 로브의 단추를 풀르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보드라운 맨살이 드러난다.
“하, 하, 학원장님. 갑자기 무슨.”
당황한 난 퍼뜩 메디아와 거리를 벌렸다. 그녀는 속눈썹을 깜빡이면서 뭐가 문제냐는 듯한 눈이었다.
“검마, 네가 ‘가호의 각성’에 대해서 모르는 거 같아서. 빠르고 간단히 설명해 주려고! 보는 것보다 확실한 건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지체할 시간이 없잖아?”
“빠른 설명이랑 옷을 벗으시는 거랑 상관이 있나요?”
내 되물음에 메디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날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
“우리 검마, 이성한텐 손톱만큼도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남자구나?”
메디아가 능글맞게 말했다. 갈라진 로브의 역세모꼴은 이미 그녀의 윗배까지 내려와 있었다.
“…….”
“검마, 네가 나를 보고 얼굴이 벌게진 건 여자로서 영광이지만.”
메디아의 하얀 아랫배가 시야에 맺혔다. 나는 급히 고개를 돌리려다가 도로 원위치했다. 순간 잘못 봤나 싶었다.
“학원장님, 그 상흔은…….”
맨살이 불에 지진 듯 에인 자국. 상처라기엔 다소 이질적인 감이 있는 흔적이었다.
“이거 보여 주려고 했어.”
메디아가 상처를 어루만졌다. 미소가 쓸쓸하다.
“내게 이걸 새겨준 게 우리 언니거든.”
“그걸… 만력님이?”
“오해는 마. 언니가 나를 해치려고 한 건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였어. 몇십 년 전, 나 ‘각성’ 상태 직전까지 갔거든. 그걸 막고자 언니가 내 아랫배를 파괴해준 거야.”
“…….”
내가 침음했다. 뭔 말인지 모른다. 다만 메디아가 제 쌍둥이 언니를 싸고도는 게 아니라는 것. 그 하나만은 분명해 보였다.
“가호는 이 아랫배, 그러니까 단전에서 순환해서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도는 거거든.”
“그 말은 단전이 파괴되면…….”
“응, 보통은 가호를 상실하지.”
“근데 학원장님께선 가호 사용하시잖습니까.”
“그래서 우리 언니가 대단한 거야. 가호가 순환해서 온몸에 퍼지는 걸 막으면서 가호를 운용케 해 줬으니까. 정확하게 혈만 뚫은 거지.”
메디아가 멀어졌던 내 곁으로 왔다. 그녀의 머리가 내 오른쪽 어깨를 빌렸다. 조금 지친 모양. 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솔직히 어감상 각성은 좋은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성해 버리면 수명과 인간성이 동시에 녹아내리거든. 신의 은총을 받는 대가라고 해야 할까. 우습지? 신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목숨을 거둬 간다는 게.”
처음 들었으면 식겁했을 이야기. 그러나 내 낯빛에 동요는 없었다. 인간성을 거두어들인다는 건 내겐 익숙하지 않은가. ‘동화율’과 ‘각성’의 특징엔 교점이 있었다.
“그럼, 그 ‘타락의 우물’은 신과 멀어지는 수단. 그런 거겠군요.”
내 어깨에 기댄 그대로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호와 정반대의 성질을 지닌 오수를 마셔야 ‘각성’이 희석이 되거든. 그래서 언니가 주기적으로 우물을 찾는 거고, 아공간 장막이 제 기능을 완전히 하지 못했던 것도 그 영향이야.”
새근새근 숨소리가 가깝게 들린다.
“내막은 몰라도 아마 절궁이 각성이니 뭐니 언니한테 운운했을 거야. 걔 어려서부터 물불을 안 가리는 성향이었거든, 그 덕분에 지금은 병원 신세지만. 솔직히 꼴 좋다 싶어.”
“메아인 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언니는 내가 따로 은신처를 마련해 줬어. 아직 수배령이 떨어진 건 아닌데, 절궁이 문제 삼으면 일도 아닌 거라서. 일단 상황 지켜보는 게 나을 거 같아.”
“그게 최선이긴 하겠네요.”
“그렇지.”
다음 순간 침묵이 감돌았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오후 햇살. 빛을 받은 뽀얀 먼지가 허공을 부표한다.
목가적인 분위기 가운데 메디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검마야, 우리 그냥 다 때려치우고 사람 없는 섬 가서 둘이 로맨스 영화나 찍으면서 살까? 우리 처음 봤을 때도 내가 했던 말인데.”
“프러포즈처럼 들리네요.”
“세월이 흐를수록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지거든. 설명하긴 좀 그런데, 난 다른 사람들보다 좀 오래 사는 편이라, 되도록이면 오래 같이 있을 사람이랑 함께하고 싶네.”
메디아는 뺨을 내 어깨에서 떼었다. 그녀가 단추를 여미며 빙긋 웃었다.
“그래도 검마, 너랑 대화하다 보니까 좀 진정된다. 조금 전에 한 말은 농담이야. 이번 일은 내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할 테니까, 검마 너는 들어가서 쉬어. 잘생긴 얼굴 상하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로맨스 영화보단 지금은 느와르가 장르에 맞겠네요.”
“으응?”
“학원장님은 만력님을 찾아가서 왜 그러셨는지 동기를 알아내 주세요. 절궁 쪽은 제가 찾아가서 말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메디아가 무척 황당하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검마, 네가……?”
“최대한 빨리 수습하려면 역할 분담이 맞죠. 전 바로 부속 병원으로 가 보겠습니다.”
“아… 확실히 그렇긴 그렇지만.”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이라도 수배령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잖아요. 학원장님도 바로 메아인 님한테 가주세요.”
“알겠어.”
그녀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주억였다. 그러다 곧 흐릿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근데… 병원 가는데 사시미는 왜 그렇게 주렁주렁 달고 가?”
“아, 그건.”
느와르엔 사시미, 시사미가 곧 느와르니까. 하지만 이렇게 답할 순 없으니.
“이슈를 이슈로 덮으려고요.”
나는 다르게 대답했다.
* * *
호아킨 아카데미의 부속 병원.
복도 양옆으로 시커먼 사내들이 도열 중이었다. 정장을 단정히 갖춰 입고 있으나 얼굴은 흉터투성이였다. 거친 바닥에서 일하는 특유의 껄렁함이 눈빛에 비쳤다. 절궁을 호위하는 경호대였다.
저벅.
그때 발소리가 복도에 내리깔렸다. 사내들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 방향으로 일순 집중됐다. 낯이 익은 앳된 소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천검?’
이내 지척까지 다가온 강검마가 말했다.
“절궁 좀 보러 왔습니다.”
절궁? 님은 어디다 갔다 팔아넘기고? 흉터 난 눈썹 수십 쌍이 사납게 휘었다. 그중 풍채가 가장 좋은 사내가 강검마 앞에 섰다. 겁은 났지만, 사내는 맡은 바를 해야 했다.
“어떻게 알고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앞은 못 지나가십니다.”
강검마가 목을 옆으로 꺾더니 다시 짧게 뱉었다.
“비켜.”
“죄송합니다.”
완고한 대답에 강검마는 눈을 찌푸렸다. 그리곤 슬쩍 무리의 수를 확인했다.
오십 명 남짓이 복도를 꽉 막고 있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따로 없다.
“명령 불복종 및 병원 내 행패는 엄벌 사유지만 병원에서 피 보고 싶진 않으니까.”
강검마가 냉엄하게 말했다.
“잠들 좀 자라.”
그와 동시에 넓게 흩뿌려진 심상의 영역이 장정 무리를 뒤덮었다.
털썩.
전원 실 끊긴 목각인형처럼 행렬이 무너져내렸다. 한 마디 거역조차 못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