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2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31화(227/300)
231화 절궁의 딸
코지마는 사시미를 마주했다. 이런 겁박, 적개심 가득한 눈빛. 이 상황은 절궁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다.
절궁은 푸른 눈으로 사시미 너머, 그것을 쥔 소년을 쏘아보았다. 강검마의 표정은 정적이었지만 안광은 사나웠다.
‘이건 회칼이 아닌 메스.’
절궁은 속으로 조소했다.
‘그래, 패기 하나만큼은 인정해 주지.’
다이쏘 회칼을 들고 자신의 병실을 습격했다. 방금 경호대의 기척이 한순간에 허물어졌으나 생명 반응은 그대로인 것이 느껴진바, ‘심상의 영역’으로 경호대 전원을 처리했을 터. 이 나이에 그토록 자유자재로 영역을 다룬다.
‘천검은 확실히 난놈이다.’
천재에게 나이란 숫자놀음에 불과했다. 나이를 특권처럼 여기는 이는 모름지기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치들이었다. 어린 천재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건 바로 절궁 자신이었다. 그 역시 스물이 조금 넘어 칠성이 되었기에.
‘그러나 천검과 나는 극명하게 다르다.’
이는 무력의 차이. 대외적으로나 같은 칠성 영웅이지, 자신은 무릎에도 못 미친다. 이 점은 절궁도 인지하고 있었다. 코지마는 생각했다. 과연 천검이 ‘각성’을 한다면, 만력에게 그 요체를 하사받는다면. 이자는 어디까지 강해질 것인가?
‘각성자가 된 천검이라.’
겸상은 고사하고 눈도 마주칠 수 없는 초월자가 되어 있으리라. 발로르 호아킨을 넘어서고 그다음 영역에 발을 디딜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그조차도, 용사가 아니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가벽과 맞닥뜨린다.
“강검마.”
절궁은 이명 대신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지엄함과 냉정함에 사이한 목소리였다.
“원한다면 나를 그 칼로 난자해도 좋다. 아니, 죽여도 좋네.”
절궁은 충고하듯 말했다. 상술했듯이 절궁은 노련한 정치인이다. 상대의 심리를 읽고 제어한다. 이는 재능의 사각지대, 경험의 영역이다. 무력과는 별개로 정신적으론 아직은 미성년. 살살 감기엔 세 치 혀면 충분할 것이다.
“난 누구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 고리타분한 소리는 하지 않아. 하지만 그 책임은 오롯이 자네의 몫일세. 즉, 감정에 휘둘려서 훗날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소리지. 이 상황을 나는 필경 대국적으로 문제 삼을 걸…….”
절궁이 말을 채 맺기도 전 강검마의 손이 움직였다. 역수로 잡은 사시미가 허벅지 살을 뚫었다. 쾌검이었다.
푹.
파육음이 들리고 나서야 절궁은 눈을 내렸다. 무늬 없이 단조로운 이불보가 스멀스멀 핏빛으로 염색되어 간다. 근엄했던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으아아… 업…!”
강검마의 왼손이 비명을 틀어막았다.
“병원 전세 냈나. 조용.”
감정이 죽은 공허한 동공. 조용한 응시 끝에 강검마가 칼자루를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아린 격통이 코지마의 사타구니를 휘감았다.
코지마는 재차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하지만 손의 짠맛만 입안에 맴돌았다. 손을 뻗어 반격하려 했지만, 어느새 손바닥에도 말뚝처럼 사시미가 박혀 있었다. 궁사의 눈으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금 치미는 고통에 절궁은 두뇌가 엉켰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뇌 내에서 비벼졌다.
“절궁, 당신 말이야.”
강검마가 입을 열었다. 광채 깃든 눈빛은 낮고 깊었다. 그러면서 야수처럼 거칠고 드셌다.
“혀 놀려서 발목이 박살 났으면서 또 혀를 놀려? 지성으로는 메디아 님 바로 아래라며. 근데 학습 능력이 왜 이렇게 별로지?”
“…읍 …읍!”
몸부림치는 절궁을 보며 강검마는 고개를 삐뚜름이 기울였다. 절궁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노련한 정치인? 전생에 그런 인간들의 술동무를 했던 게 강검마다. 온갖 정치 노괴들을 상대해 온지라 강검마는 이런 부류에 빠삭했다. 그런 그들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훗날의 일’이었다.
당장을 모면코자, 골칫거리를 회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거짓말을 일삼고 감언이설을 내뱉는다.
미래를 도모하라고?
‘지랄하네.’
지구에선 눈먼 미래만 꿈꾸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안락한 노후, 더 나은 보금자리, 비루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이 세계에서의 강검마는 아니다. 얼마 뒤면 전쟁이 발발하는 마당이다. 먼 훗날을 기약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지금만 해도 곧 퍼머쉬가 쳐들어오는데.
어두운 시대에 미래란 촛불과도 같다. 언제 풍파가 들이닥쳐 명멸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니 멀리 보지 않는다. 당장만을 생각하며, 현재의 내가 내린 판단을 전적으로 믿는 것.
이 세계의 강검마가 지금까지 버텨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스스로에 대한 믿음. 그 덕에 순간순간마다 유연하게 대처했다.
‘나는 칼잡이지, 정치인이 아니야.’
강검마가 왼손을 절궁의 입에서 떼어 냈다. 그러곤 손목을 털며 말했다.
“당신 같은 작자들이 이 타이밍에 하는 말이 뭔 줄 아나? 이래서 감당할 수 있겠나! 감히, 나를 능멸해! 따위의 말들이지. 뭐, 얼굴 보니 딱 그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강검마는 세 자루의 사시미를 차례차례 회수했다. 이어서 손을 갖다 대 ‘재생의 가호’를 흘려 넣었다. 상처에서 새살이 꾸물꾸물 엉겨 붙었다.
절궁은 손바닥을 들어보았다. 통증은 여전했으나 검상은 완전히 아물었다. 검을 귀신처럼 다루는 건 알고 있었지만 회복 가호까지 병용한다고? 그리고 왜 굳이 치료해 준 거지? 의념에 빠진 절궁은 문득 스산함을 느꼈다.
“설마 나를 치료해 준 건…….”
이제야 절궁은 눈앞에 있는 괴물을 바라봤다.
“눈치는 빠르네.”
강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궁은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짐작했다. 동시에 어째서 회칼을 메스라고 했는지도 깨달았다.
‘이놈은 나를 죽일 생각이 없다.’
사시미로 절개, 기괴한 능력으로 봉합- 이 잔혹한 수술을 집도할 것임을.
도덕과는 거리가 먼 절궁이었다. 하지만 이 악마적인 발상엔 그마저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딴 건 영웅이 아니다.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검제는 이런 악귀 놈의 진상을 알고 칠성을 승계한 건가?’
알고 그랬을 것이다. 검제의 통찰력은 본질을 가볍게 꿰뚫어 본다. 그는 강검마가 이런 놈인 줄 알고 자신의 자리를 물려줬다.
기가 질린 절궁을 지켜보며 강검마가 말했다.
“절궁, 악마라도 보고 있는 얼굴인데, 내 눈엔 당신이 더 사악한 새끼로 보여. 적어도 제 딸을 물건 취급하는 놈이 나한테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지.”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가!? 료조가 자네의 친구라서? 고작 그깟 이유로, 일본을 적으로 돌릴 생각이란 건가?”
“아니.”
“그럼 뭘 위해서!?”
강검마는 겉옷 주머니에서 사시미 한 묶음을 쏟아 냈다. 적당한 칼을 고르며 대답했다.
“내가 부정한 건 ‘일본의 적으로 돌릴 생각이냐?’란 질문이다.”
사시미를 하나 집었다. 날이 잘 갈려 빛이 흘렀다.
“고작 일본? 아니, 미국도 적으로 돌릴 수 있어.”
허세였다. 1분짜리인 그가 국가 전체를 상대하기란 불가능하다. 기나 꺾을 겸 뱉었을 뿐.
하나, 절궁은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강검마는 군단장을 둘이나 토벌한 하늘이 내린 영웅 아닌가. 이 백정은 세계 지리를 바꿀 만한 힘을 지녔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절궁에겐 이 한마디가 이토록 무거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이는 전부 그만의 착각이었다.
코지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걸 느꼈다. 늘 유지하던 부동심이 꺾였다. 병상에 누워 있는 건 나약한 인간이다.
“…미쳤군, 아주 단단히 미쳤어. 자네의 그 발상은 마족이나 다름없는 것이야.”
마족식 발상이라. 내게 깃들었다 추정되는 존재가 뭔지 알면 자지러지겠군. 강검마가 피식 이죽였다.
“이제야 아까 내가 당신한테 느꼈던 감정이 이해가 가는 모양이군.”
“그만……!”
그때 불쑥 튀어나온 두 손이 사시미를 붙들었다. 기절한 ‘척’하고 있던 히나였다. 칼날을 꽉 움켜쥔 탓에 이불 위로 핏방울이 점을 찍었다.
“따, 딸인 제가 사죄드립니다. 천검님, 부디 제 아비에게 자비를 보이소서. 요구하시는 게 어떤 것이든 전부 받아들이겠나이다.”
“히나!”
버럭 터진 호통성. 히나는 촉촉한 눈초리로 팩 절궁을 노려보았다.
“총리님. 아니, 아버지! 인제 그만 좀 하세요! 평상시에 그렇게 이성을 유지하라고 하셨던 당신이 이 자리에서 가장 아둔하십니다.”
히나는 손 마디마디가 맵싸했다. 옆얼굴을 두드리는 강검마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곧 죽을 만큼 무서웠다. 그래도 그녀는 목청을 높였다.
“그리고 어떻게 료조한테 그렇게까지 하실 수 있나요!? 각성자가 되면 역사에 그 이름을 새긴다? 나중에 고마워할 거다? 그건 아버지의 이기심일 뿐입니다. 료조랑 대화다운 대화는 해 보시고 그런 말씀 하시는 건가요? 정상적인 가정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럴 필요까진 없잖아요!”
절궁의 딸은 아버지를 향해 분노와 슬픔, 실망을 토로했다.
“말해 보세요, 아버지. 당신의 자격지심을 자식들이 채워 줘야 하는 거죠? 왜 당신의 욕심 때문에 자식인 우리는 서로 싸워야 하는 거예요? 하물며 후계 예정인 료조마저 당신의 그릇된 욕심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시는 건데요!”
핏방울에 그녀의 눈물이 녹아들었다.
“…그게 …그게 지금 아버지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건가요? 만약 여기서 아버지가 더 중태에 빠지시면 남은 저희는, 아니 저는 어떡하라고요! 아무리 지리멸렬한 아버지더라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해도.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궂은일을 도맡으면서도.
끝내 그의 곁을 지켰던 건… 이렇게 빌어먹었어도 아버지니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아직도 존경하니까.
“자상하길 바라는 게 아녜요, 아빠……. 그냥 조금만 가족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 주셨으면… 딱 그 정도만 바라요.”
사키 히나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칼날을 맨손으로 붙든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강검마는 그런 히나를 힐긋 보다가, 이윽고 사시미를 물렸다. 그러고서 난자당한 히나의 두 손을 맞잡았다.
“…이, 이건.”
손목을 감싸는 빛무리를 히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포근했다. 치료를 마친 강검마는 도로 정궁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원래는 여기서 절궁, 당신을 완전히 정신적으로 도륙을 내려 했습니다만.”
절궁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안색은 핏기가 가신 지 오래였고 초점은 맞지 않았다. 히나의 언성에 짐짓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강검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딸 때문에 오늘은 이쯤 하겠습니다. 대신 제가 말했던 사항에 두 가지를 추가하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천 클래스를 위한 아낌없는 지원, 거기에 더해 게헤나 게이트에 일본 측 영웅들을 다수 배치해 주십쇼.”
절궁은 황량한 눈으로 강검마를 올려다보았다. 강검마는 마주 응시하며 종용했다.
“알았으면 끄덕이십쇼.”
“…….”
절궁은 반쯤 정신이 나간 기색으로 턱만 끄덕였다. 머리카락 몇 올이 이마 선에 삐져나왔다.
강검마는 머리를 긁으며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병실을 나서기 직전, 돌연 뒤돌았다.
“그, 뭐야. 사키 히나? 였나.”
히나가 새초롬히 눈을 들었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상한 유혹 같은 거 쓰지 말고, 차라리 지금처럼 진실한 모습을 보여 봐요.”
“…예, 예?”
“당신 미인이니까, 유혹의 가호 같은 거 따로 쓸 필요가 없다고. 오히려 그게 반감돼. 아무튼, 오늘은 당신 덕에 그냥 가는 거니까 저 아저씨한테 뭐라도 요구해 봐. 양심이 있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히나는 뒷말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얼굴이 다만 늦가을 홍시처럼 빨개졌다.
강검마는 왜 저런가 싶었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곧바로 갈 곳이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