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3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34화(230/300)
234화 천 클래스 (3)
클래스가 아공간에 완전히 삼켜질 적에 아벨이 급히 말했다.
“자, 잠깐만요, 교수님. 대뜸 아공간에서 스무 번씩 죽으라니, 정말 말 그대로 죽으라는 소리인가요?”
만력이 등장할 때 아벨은 너무 놀라서 입만 뻥긋거렸다. 클래스원들도 아벨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반응이었다.
담당 교수가 만력 메아인 포이즌?! 조금의 귀띔조차 듣지 못했다.
만력이 누구인가, 아벨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행적을 감췄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칠성 영웅의 스승.’
메디아와 쌍둥이인 만큼 메아인은 칠성과 같은 나이대였다. 그럼에도 불구 칠성 영웅 모두는 그녀의 지도를 군말 없이 따랐다고 한다.
그저 강하기만 한 것과 잘 가르치는 건 별개의 재능이다. 그리고 두 재능 중 메아인의 특화는 후자였다.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있어 탁월했다. 더군다나 무력마저 대단했다. 따라서 칠성은 동갑내기인 만력을 스승으로서 떠받든 것이다.
일곱 별(七星)의 스승. 그런 대영웅이 천 클래스의 담당 교수라니!
성 클래스 생도들이 들었으면 까무러쳤을 거다. 너도나도 천 클래스에 들어오고 싶다며 대판 난리가 날 게 뻔했다.
듣기론 강검마가 그녀를 초빙했다던데.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만력님을 섭외해 온 거야?’
여기까지만 해도 어마어마한 파격이었다. 한데 더한 충격이 앞선 파급을 덮어 버렸다.
‘정신력을 키우기 위해서 아공간에서 스무 번씩 죽으라고?’
아벨의 질문에 메아인이 따뜻한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원래는 서른 번씩으로 상정하려다가 그건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 열 번 줄여서 딱 스무 번! 참고로 아벨, 네 할아버지 세대엔 서른다섯 번씩 죽었다?”
“서른… 다섯 번…….”
“근데 지금 너희 보니까, 그렇게까지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지크나 리차 같은 칠성 애들은 재능이 너희보다 낮았거든. 그래서 더 빡빡하게 굴린 감이 있지.”
메아인의 말에 아벨은 문득 떠올렸다. 할아버지 시대 땐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 물었을 당시, 그는 오한이 든다고 자리를 피했었더랬다.
“이의 있습니다!”
그때 레이첼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아벨보다 상태가 나았다. 낯빛에 아직 활기가 머물러 있었다.
“그냥 무턱대고 죽기나 하라는 건 너무 약자의 마인드 아닌가요? 죽음이야 호아킨 아카데미 입학 시점부터 각오한 바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곱게 죽는 건… 죽기보다 싫어요!”
“마, 맞습니다!”
웨폰이 냉큼 거들었다.
“이…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에 있습니다. 그, 근데 그걸 하루에 저항조차 못 하고 스무 번씩 겪으면……. 정신이 단련되기는커녕, 완전히 망가질 겁니다……!”
“좋은 지적이야, 레이첼 그리고 웨폰 생도.”
또 한 번의 칭찬에 웨폰은 순간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근데 난 죽음에 익숙해지라고 했지, 받아들이라고는 하지 않았어.”
메아인은 엷게 웃었다. 스승이 애제자에게 보일 법한 미소였다.
“너희 말대로 그냥 얻어맞기만 하면 무슨 발전이 있겠니? 익숙해지는 것과 넋 놓고 포기하는 건 달라.”
메아인이 또각또각 걸어 클래스의 중심에 섰다.
“내가 너희에게 바라는 건, 죽음을 불사하는 각오. 그리고 어떤 강자를 만나도 주눅들지 않는 심지야. 왜 한국의 성웅(聖雄)이 했던 말이 있잖아.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메아인은 ‘죽음’을 연거푸 입에 담았다. 하나, 눈은 진중하다. 가벼이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저항한 다음 죽어야 해.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꽉 깨물고, 팔다리가 넝마가 될 때까지 몸부림친 다음에 죽는 거야.”
“…….”
“너희의 목숨, 아니 아카데미 생도들의 목숨은 하나하나가 값을 매길 수 없어. 너희는 무려 인류를 위해 기꺼이 마족과 싸우려는 차기 영웅들이야. 자부심을 가져. 뭐, 가문의 휘광을 등에 업고 입학하는 생도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천 클래스에는 그런 애들은 없잖아?”
메아인은 생도 스스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되새겨 주었다.
“그러니 그 값진 목숨을, 비할 데 없을 가치를 지닌 생명을. 그런 어마어마한 가치를 소모하여 경험치를 쌓는다면, 유사 이래 가장 재능이 출중한 너희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칠성 영웅? 아니. 나는 그 위라고 생각해.”
그녀는 검지를 세워 천장을 가리켰다. 어쩌면 지붕 너머 하늘을.
“칠걸.”
“……!?”
“마침 너희도 딱 일곱 명이네. 그림 좋다!”
그 말에 클로이가 동그래진 눈으로 반문했다.
“…저희 여덟 명인데요?”
메아인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치. 근데 700년 전도 그렇고 늘 한 명은 논외가 있잖아.”
그러고는 한 곳을 향해 턱짓했다. 생도들도 그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칠걸을 이끌던 영웅.”
천 클래스에 있는 모두는.
“발로르 호아킨.”
용사 레온이 아닌 강검마를 바라봤다.
* * *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다들 왜 쳐다봐?’
선배가 시조의 영웅을 언급함과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쳐다봤기에.
“…….”
그렇게 조금 지나서야 선배가 손뼉 쳐 적막을 깼다. 내게 집중됐던 주목이 흩어지고 다시 선배를 향했다.
“자. 그럼, 취지는 확실히 말한 것 같으니까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
“네에…….”
목소리가 침통했다. 몇몇-레온, 레이첼, 클로이-을 제외하곤 다들 울상이었다. 목적을 새겨들었다 한들, 스무 번씩 죽는다는 것이 달가울 리는 없었다.
“음- 너무 의욕이 안 사는 거 같은데.”
선배는 턱을 어루만지며 골몰했다. 그러다 다음 순간, 연둣빛 눈망울에 느낌표 한 쌍이 떠올랐다.
“얘들아, 이거는 어때? 방금 말했듯 이 수업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강한 적 앞에서 담담해지기 위함’이거든. 그럼, 수업 방향을 트는 거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식으로. 그렇게 해서 내가 너희들의 정신적 내성을 가늠해 볼게.”
선배는 생도들을 설득했다. 바닥으로 떨어졌던 눈들이 하나둘 위로 올라왔다.
“혹시 모르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수준이라면 매일 죽는 횟수를 열 번, 아니 그 이하로 줄여 줄지? 솔직히 아공간이라곤 해도 나도 내 손으로 너희를 해하는 게 기분 좋지는 않거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웨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 ‘이길 수 없는 상대’라 하시면 아카데미에서 관리하는 학습용 마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B+급? 아니면 A급 마수인가요?”
녀석은 정리되지 않은, 토막 난 문장으로 얼른 물었다. 만력한테 곤죽이 되는 것보다야 마수가 나았다. 하지만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천 클래스는 주적을 ‘마수’가 아닌 ‘마인’으로 설정할 거야. 마인이 마수보다 몇 곱절은 위험하다는 사실은, 굳이 더 말 안 해도 알지?”
“아… 네.”
“‘이지가 있는’ 강력한 적과 싸워야 해. 찰나의 생사를 가르는 건, 튼튼한 육체가 아니라 순간의 기지거든.”
선배의 일목요연한 설명에 생도들은 짐짓 머리를 끄덕였다. 납득한 것이다.
“근데 다들 알다시피 아무리 호아킨 아카데미라도 마인을 교련할 순 없어.”
혼테일이 움찔했다. 그녀는 가늘게 떨며 살살 내 눈치를 봤다. 선배는 그런 혼에게 안심하라는 듯 차분히 다음 말을 이었다.
“가능하다 해도, 인마 협정에 위배되니까 안 돼. 여기서 퀴즈. 마수가 아니면서 인지가 있는, 동시에 마인을 대체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인간…….”
료조가 중얼거렸다. 그에 선배는 경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역시 똑똑하다니까! 선생 된 입장에서 료조 같은 생도는 참 기꺼워. 설명할 거리가 주니까. 맞아. 대척점에 있지만 마인과 한없이 닮은 게 우리 인간이거든.”
“…그 말인즉슨, 저희가 합심하여 만력님을 상대하면 된다, 이 소리인가요?”
료조의 되물음에 선배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나로선 불가능해. 그도 그럴 게, ‘누구’ 씨가 너무 밸런스 붕괴잖아? 따지고 보면 너희 쪽이 우위고 내가 열세인 거지.”
“…….”
당연하단 듯이 생도들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첫날부터 과하게 주목받네, 부담스럽게. 선배가 말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너희 모두와 천검이 싸우는 건 어때?”
…뭐?
“아닌 게 아니라, 이 자리에서 압도적인 존재가 천검 말고는 없잖아.”
이런 식으로 비틀 수가 있구나. 나는 내심 감탄했다. 짐작건대 이는 선배가 진작에 의도한 바일 터다.
“확실히 말할게. 너희들 전부가 힘을 합쳐서 천검한테 생채기 하나라도 낸다면, 죽는 횟수를 다섯 번까지 줄여 줄 수 있어.”
선배가 내게 얄밉게 찡긋했다. 계속해서 그녀는 생도들을 부추겼다.
“더불어서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은 천검과 개인 과외를 붙여 줄게. 같은 생도 신분이라곤 해도 천검은 칠성이니까, 숙련된 조교 역할도 겸할 수 있잖아?”
악마의 속삭임. 골 때리는건 애들이 진지하게 이에 대해 고민 중이란 거다.
죽음의 공포 앞에 타협이라도 한 걸까? 기색을 보아하니 아니었다.
이들은 엄연히 황금 세대다.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렇기에 저 눈에 담긴 건 죽음에서의 도피보단 호승심이었다. 나와 겨뤄 보고 싶다는,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못내 걸리는 건, 여자애들이 특히 눈을 차갑게 빛낸다는 건데……. 어째설까. 도무지 알 수 없다.
‘허.’
헛 웃길 잠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참에 애들 수준을 점검해 볼 좋은 기회일지도.’
슬슬 1학년도 막바지였다. 그동안 어느 수준에 이르렀을지 나 또한 호기심이 일었다.
‘그렇다고 그냥 받아들이기는 좀 그런데.’
선배의 뜻대로 곧이곧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는 싫었다. 그녀는 내게 부채가 있는 처지 아닌가. 난 소리 내어 뭔가를 요구할 자격이 충분하다.
“좋습니다.”
요구는 일단 받아들인다.
“대신 돕는 조건으로 만력님께 저도 한 가지 제안하겠습니다.”
“응? 어떤 제안?”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어딜 스리슬쩍 넘어가려고. 조교를 노예처럼 부려 먹는 교수처럼 앙큼하기 짝이 없다.
“그건 수업 끝나고 따로 말씀하시죠.”
사시미를 꺼내 쥐었다. 시간이 오래 지체됐으니 바로 수업을 시작한다.
* * *
생도들이 얼을 타는 순간은 짧았다. 그 시작은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레온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이들에게 지시했다.
“다들 무장 꺼내.”
레온의 눈빛은 무심하고 차가웠다. 이에 생도 중 과반은 마뜩찮은지 미간을 찡그렸지만, 순순히 그 말에 따랐다. 강검마가 사시미를 뽑아 든 시점에서 경종이 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대련의 포문을 연건 레이첼이었다.
“내가 먼저!”
기합과 함께 그녀가 맹렬히 질주했다. 전투 종족인 뮈라 가의 후계인 레이첼였다. 아드레날린에 지배당해 두뇌는 수축하는 한편 근육은 팽창했다.
콰앙!
한 번의 도약에 거리가 확 좁혀졌다. 순식간에 강검마의 지척에 이르러서, 끄트머리를 잡은 창대를 있는 힘껏 내질렀다. 흡사 당구채를 뻗어내듯이.
쐐애애액!
길게 늘어난 방천화극이 급소를 노린다. 검날과 달리 창날은 양옆으로 갈라진 탓에 피격 범위가 넓다. 리치 또한 길다.
강검마는 태연히 창살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아공간은 손상된 무장을 복구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방천화극을 썩둑 해 버리면 배상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니 무장의 주인인 레이첼만 건드려야 했다.
상념을 마친 강검마는 오른쪽 팔꿈치를 접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어깨를 한 뼘 뒤로 뺐다.
후욱!
창날이 그의 겨드랑이 아래 빈공간을 가볍게 관통하고서, 그 너머 허공을 쑤셨다. 강검마는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들었던 팔꿈치를 즉시 내려 창대를 낚아챘다. 안쪽 팔근육이 방천화극을 옭아 묶듯 단단히 휘감았다.
“어, 어……?”
레이첼은 다급히 창을 회수하려 했다.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젖어 들었다. 너무 섣불리 돌진했나 후회할 새도 없었다. 강검마의 왼 어깨가 흔들렸다.
섬광 한 줄기가 반월로 휘어졌다. 검로가 레이첼의 투명한 망막 위로 명멸했다. 칼날이 목울대를 두드리듯 짓쳐 들었다.
뎅겅!
높게 솟아오른 선혈이 천장에 들러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