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3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30화(299/300)
230화 이슈 (3)
세련된 인테리어, 호텔처럼 보이는 공간. 그래도 병실답게 분위기가 뭉근했다.
절궁 사키 코지마는 침대에 기대듯 누워 있었다. 병상은 등받이 각도가 조절 가능했다.
옆에선 딸 사키 히나가 아버지를 간호했다. 아버지가 입원한 뒤로 그녀는 단 한 순간도 절궁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수발드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자식 된 도리가 아니었다. 주인과 아랫것의 관계나 다름없었다.
사각, 사각.
사키 히나는 사과를 깎고 있다. 그녀는 힐끔 절궁을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독서 중이었다. 책 표지를 보건대 과거 7 영걸에 대한 역사서였다.
“할 말 있나, 히나.”
절궁이 툭 던진 말에 히나의 어깨가 들썩였다. 엄지가 과도에 베여 피가 났다. 그녀는 급한 대로 티슈를 뽑아 붕대처럼 감으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그저 총리님의 용태를 확인할 겸 봤을 뿐입니다.”
“나는 괜찮다.”
“예…….”
히나는 사과를 마저 먹기 좋게 잘랐다.
‘괜찮을 리가.’
어젯밤 아버지 절궁은 두 발목이 작살난 채 부속 병원에 입원했다. 아닌 밤중에 이 소식을 들은 히나는 부리나케 일본에서 날아왔다.
절궁이 중상? 칠성 영웅이? 오기 전까지 히나는 그저 계단에서 넘어지셨으리라고 생각했다. 칠성도 사람이다, 부주의로 무릎도 깨지고 하는.
퍽 믿음이 안 갔으나 가장 납득되는 가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아니었다. 아버지는, 칠성의 절궁은 누군가에게 호되게 두들겨 맞은 것이었다.
당시 히나의 눈은 경악으로 동그래졌다.
‘아버지가 맞고 왔다고?’
정점은 아닐지언정 절궁은 인류 측 최강자 중 하나이다. 어째서 그가 일본의 만인지상인가. 멀리 갈 것 없이 절궁이 강하기 때문이다. 총리대신, 명문 코지마가의 당주는 바탕일 뿐. 그 근간을 이루는 건 그의 무력이었다.
궁사의 이상향이라 불리는 절궁이다. 문명 시대에 화기가 맥을 못 추는 것도 그의 영향이었다. 그가 내쏜 화살은 아음속에 비견되며, 살상력 또한 탄도 미사일 수준이었다. 총기류를 따발총 내지 BB탄 ‘따위’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런 절궁이 누군가에게 당했다고? 그게 가능해? 누구한테? 그나마 떠오르는 얼굴은 두 사람.
‘검제님과 창성님.’
그러나 검상이 아닌 걸로 보아 검제님은 아닌 것 같았다. 애초에 현재 게헤나 게이트 인근에서 생활하신다는 말을 들었고. 같은 맥락으로 창성님도 아니었다. 그분 역시 유럽에서 공무 수행 중이셨으니까.
‘일단 두 분은 현재 공사다망한 상태시고.’
결국 이것저것 경우의 수를 소거하고 따져 봤을 때, 후보는 둘로 좁혀진다.
‘폭군 메디아 포이즌… 혹은…….’
…천검 강검마.
히나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엄지를 지혈한 티슈가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 아니야.’
강검마가 발목 골절로 끝? 그럴 리가. 회칼로 아킬레스건 심줄을 끊으면 끊었지. 손속이 이렇게 상냥할 리가 없다. 머릿속에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이 영사됐다.
‘검은색, 사시미, 드럼통.’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히나가 부르르 경련했다. 등줄기가 쭈뼛, 낯이 푸르죽죽하게 질렸다.
검은색만 스쳐도 공포심이 솟았다. 캄캄한 게 무서워져 최근엔 잘 때도 불을 다 켜고 자는 그녀였다.
‘요새 걔 나오는 악몽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히나는 호흡을 골랐다. 침착하자, 침착해. 기도문처럼 속으로 몇 번이고 읊조렸다. 그녀는 숨을 씨근대며 다시금 상황을 가늠해 보았다.
‘강검마가 아니면 남은 사람은 학원장님뿐이란 건데.’
타박상처럼 아작 난 발목과 두 사람의 관계에 비추어 볼 때, 확률이 가장 높았다. 다만 동시에 의뭉스러웠다.
‘메디아 님이 강하기야 하다만…….’
앞선 세 사람-천검, 검제, 창성-은 절궁보다 확실히 셌다. 그에 반해 폭군은 지성이 두드러지는 칠성이었다. 아버지를 일방적으로 폭행할 정돈 아니었다.
히나는 슬그머니 옆으로 눈을 굴렸다. 중상을 입었다기엔 절궁은 몹시 태연한 기색이었다.
따로 지시한 사항은 입원 사실을 언론이 모르게 하라는 것뿐. 외엔 별말 없이 가만히 책만 읽는 아버지였다.
‘누가 그랬는지 물어보면 절대 답 안 해 주겠지.’
치부가 분명할 테니까. 물었다간 집구석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때 시선을 느꼈는지 절궁이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스레 가늘어졌다.
“할 말이 뭐지.”
히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그게…….”
행여 어물쩍 넘기기라도 하면 틀림없이 의심받는다. 궁사의 이상향인 아버지의 눈썰미는 귀신과도 같았다. 헛수작은 바로 들킨다. 무슨 말이든 일단 지껄여야 했다.
“…혹시 료조의 어머니, 그러니까 새어머니께선 어디 계신지 문득 궁금하여.”
기어코 짜낸 게 이거였다. 근데 어차피 언젠간 물어봐야 할 말이기도 했으니.
‘료조와 약속했었지.’
지킬 이유는 없지만, 그 정도로 히나의 양심은 마취되지 않았다.
“…….”
하지만 잘못된 선택인 모양이다. 아버지의 이맛살이 구겨진 걸 보면 말이다. 히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뒷머리가 앞으로 넘어와 커튼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총리님. 병상 중에 제가 엄한 말을 했습니다…….”
“됐다.”
턱.
절궁이 책을 덮었다. 히나는 머리와 매무새를 추슬렀다. 잠시간 침묵한 절궁이 입을 열었다.
“왜 궁금한진 모르겠지만, 료조의 모친은 한국에 있다.”
“에? 한국이요? 어째…….”
채 되묻기 전 히나는 헛숨을 집어삼켰다. 오소소 돋는 닭살, 둔중해진 공기의 무게감. 시선이 절로 문 쪽으로 옮겨졌다. 소리가 들렸다.
풀썩, 풀썩.
잇따라 무너지는, 그리고 무릎이 깨지는 소음이.
것보다 이거, 그거잖아.
‘이 거무스레한 기운… 이건……!’
전날의 기억들이 상기됐다.
드르륵.
병실 문이 열리고 신발이 문지방을 지르밟는다. 병실이 새카만 조류에 휩쓸렸다.
“다… 당… 당신은……!”
히나의 동공이 열렸다 줄어들길 반복했다. 검은 눈. 히나가 입을 뻐끔거렸다.
“천… 검.”
강검마가 말했다.
“상황이 시급해서 노크는 생략했습니다. 아, 맞다. 그리고.”
어깨를 벽에 기대며 문밖을 향해 턱짓한다.
“부하들 교육 좀 다시 해야 할 것 같네요.”
히나는 거품을 물고 뒤로 넘었다. 병원이라 그런지 불면증이 단박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졸도 직전 그녀는 눈꺼풀을 감으며 생각했다. 악몽은 늘 그렇듯 전조 없이 찾아온다고.
* * *
“…등장이 많이 요란하시군요, 천검.”
절궁이 미간을 찡그렸다. 나는 귀를 후비며 되받아쳤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병원은 공용 시설입니다. 근데 복도를 꽉 막힌 하수구처럼 덩어리들로 막아 놓으면 어떡합니까.”
“하- 알겠습니다. 마침 자리가 났으니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절궁의 시선이 사키 히나가 앉아 있던 의자였다. 정작 그녀는 내가 들어옴과 동시에 거품을 물고 실신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내렸다. 군청색 머리카락이 바닥에 넓게 퍼졌다. 그런 그녀를 내려보다가 다시 절궁을 응시했다.
‘딸이 널브러져도 표정 하나 안 바뀌는 아비라.’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인성의 방증. 메디아의 말대로 절궁이 하나 선배의 속을 살살 긁은 것. 정황을 어림잡았으니 이젠 태도를 달리해야 할 때였다.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서서 말하겠습니다. 차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지도 않을뿐더러, 전 옥신각신 대화하러 온 게 아니라 통보하러 왔습니다.”
절궁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노파심에 한 말씀 드립니다. 칠성에 올랐다고 이리 고압적으로 나오면 추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대하는 건.”
내 오른발이 의자를 밟았다. 그리고 상체를 앞으로 당겨 절궁을 굽어보았다.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당신뿐입니다, 절궁. 제가 아무에게나 예의를 차릴 정도로 속이 깊지 않아서요.”
“…….”
절궁의 눈 밑이 푸들푸들 떨렸다. 동공이 분노로 불탔다.
“역시 나신 분입니다. 배짱이 두둑하시군요. 좋습니다. 용건을 어디 한번 들어 보죠. 제 경호대를 뚫고, 제 병실에 침범한 용건을. 부디 적법한 이유였으면 좋겠…….”
“통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질문은 제가 합니다.”
“이, 뭔!”
급기야 절궁이 민낯을 조금이나마 드러냈다. 그의 손등에 혈관이 돋아난 것이다. 하지만 쏘아붙이려던 그의 말을, 내가 덮어 버렸다. 절궁 귀 가까이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만력님한테 뭐라고 씨불인 거야?”
“…….”
내 질문에 절궁이 택한 건 침묵이었다. 그는 입을 다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 기세가 살기등등했다. 나는 눈을 가라앉히는 걸로 응수했다.
방 안을 휩싼 정적. 돌연 절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그러지고 비틀린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내 딸, 사키 료조를 각성시켜 달라고 부탁했네.”
“…뭐?”
“원래는 나를 각성시켜 달라 했지만 다 늙어서 안 된다더군. 그러면 별수 있나? 코지마가에서 각성자는 반드시 배출해야 하고, 그나마 가망 있는 게 료조밖에 없으니.”
“…….”
“그리고,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메아인 포이즌, 그 위선자가 학생 신분으로 자네 동아리에서 놀음하고 있는 걸 말이야. 내 이미 승계식 때 알아차렸지. 아무렴. 그자가 내 스승인데 기백을 눈치 못 챌 리가 있나. 난 궁사야. 다른 이는 몰라도, 내 눈을 속일 순 없어!”
탁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럼에도 난 웃었네. 기회로 삼았지. 둘 사이 유대가 형성되어 있으면 료조는 거리낌 없이 만력의 요구를 받아들이겠지.”
절궁이 발악을 계속했다.
“내가 이 꼴이 난 걸 메디아한테 들었으면, 각성에 관해서도 들었겠지. 맞아, 난 내 딸을 수명과 인간성을 대가로 각성자로 만들 걸세.”
“미친 새끼.”
“아니, 난 지극히 정상이야. 훗날 딸도 날 이해할 거야. 도리어 고마워하겠지. 발목까지 부러져 가며 자신을 각성자로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
우르르 말을 쏟아 낸 절궁은 탈진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료조의 의사도 없이, 네 멋대로… 애초에 이렇게까지 개짓거리 하는 이유가 뭐지?”
“천검, 자네라면 잘 알 텐데.”
절궁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식은땀이 그의 볼을 타고 흘렀다.
“그대가 암만 지금 날고 기어 봐야 결국은 용사의 빛에 삼켜질 거야. 최연소 칠성이라도 그 아성을 넘을 순 없겠지. 세상은 자네를 잊고 용사만 바라볼 걸세. 그 굴욕감을, 치욕을 적어도 내 자식이 겪게 할 순 없어. 그건 내 아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절궁의 두 눈에 광기가 담겼다. 새파랗다.
“그러니 최소한 각성자가 되어서, 사키 료조만큼은 인류를 위해 희생해서라도 남아야 해.”
절궁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내 표정은 썩어 들어갔다.
“천검, 자네는 료조의 친우이지 않나. 부탁하지. 만약 내 딸을 설득해 주면 만력의 수배령은 없던 일로 함세. 거기다 천 클래스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약속하지, 일본 총리대신으로서.”
“…….”
그 말을 들은 난 멀뚱하게 절궁을 내려보다가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어깨를 툭툭 털었다. 더러운 게 잔뜩 들러붙은 기분이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추하게 자빠져 있는 사키 히나의 모습, 옅은 숨소리. 기절한 척 깨어있구나. 다만 다소 충격을 받았는지 호흡이 고르지 못했다. 발부리로 툭툭 건드려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곧 있을 상황은 그냥 안 보는 게 나으리라.
저벅.
나는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닫았다. 빛이 꺼지고 암흑이 내려앉았다. 절궁이 노성을 내질렀다.
“뭐 하자는 건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품 안에서 다이쏘 사시미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이런 새끼한테 무라사메나 만년서리는 아깝다.
스르릉.
절궁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여기 병원이야! 그리고 이런 위협 내 절대 좌시하지 않겠네, 천검!”
“네 말대로 여긴 병원이고.”
나는 칼끝을 그의 코앞으로 뻗었다.
“이건 회칼이 아닌 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