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3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35화(231/300)
235화 천재 (1)
레이첼이 나가떨어진 건 한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클래스원들은 경악했다. 그중 웨폰은 낯이 완전히 새하얗게 표백됐다. 그만이 아니었다. 다들 기가 질려버렸다.
‘미… 미, 미친.’
웨폰은 욕을 뇌까렸다. 리코더를 문 그의 입술이 바싹 메말랐다.
생각해보니 부장, 강검마와 대적하는 건 처음이었다. 강검마는 늘 든든한 우군으로서 그들의 옆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대련 상대로 마주한 부장은 눈빛이 달랐다.
검을 든 악마 그 자체였다. 어째서 부장과 한 번이라도 충돌했던 자들이 오금을 발발 떠는지 단숨에 이해한 웨폰이었다.
묵빛으로 번뜩이는 안광이 좌중을 슥 훑었다. 감정들이 한계까지 치달아 그들의 눈동자는 외려 차분히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 기실 그 너머에선 태풍이 휘몰고 있었지만, 동공은 태풍의 눈이었다. 까맣고 정적이었다.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각자 무장을 치켜세웠다. 아득한 공포에 노출된 십 대들은 이성이 마비되고, 살고자 하는 본능만 남았다.
강검마와 나머지는 거리를 두고 클래스에 마주 섰다.
검날을 앞으로 기울이며, 자세를 최대한 가다듬고. 긴장이 역력함에도 생도들은 그럭저럭 태세를 갖췄다.
불편한 침묵 속에서 전투의 물꼬를 튼 건 클로이였다. 카타나를 뽑은 그녀의 잔상이 일렁였다. [까마귀의 가호]를 발현함과 동시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다음 순간 시뻘건 열선이 올곧은 일직선을 그리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붉은 인영은 눈 깜짝할 새에 강검마와 가까워졌다.
웨폰은 적잖이 당황했다. 클로이의 속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클로이가 저렇게 빨랐었나?’
여행 동아리 부원 가운데 전투 전력인 거야 알고 있었다만. 저 속도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저기서 조금만 더 높았다면 음속을 돌파했을 것이다. 실전으로 단련된 [까마귀의 가호]와 속도는 실로 암살자다웠다.
휘릭!
밀착한 클로이가 몸을 한 바퀴 휙 돌렸다. 그대로 카타나를 낮게 휘둘러왔다. 탄력과 회전력을 함께 담은 검격은 아음속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속도전에선 그 누구도 강검마에게서 우세를 점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는 단칼로 목을 치기보단 수를 몇 번 받아 줄 공산이었다. 바로 맞상대해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학습 대련이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무통의 가호] 1분 안쪽에서지만.
강검마는 대각 방향으로 한 보 물러났다. 카타나가 하단을 무색하게 쓸고 지나갔다.
강검마는 그대로 클로이를 어깨로 밀어붙였다. 한순간 균형이 무너진 그녀가 휘청였다. 그는 그대로 뒤쪽에서 발을 걸어 아슬한 중심마저 무너트리려 했다. 다만 클로이는 아랫배를 튕겨 낙법 쳤다.
탓-
강검마는 순발력이 남달라진 클로이를 보며 탄식을 뱉었다. 이걸 버텨? 놀람도 잠시. 그는 곧장 클로이의 턱을 올려 쳤다. 머리가 젖혀진 그녀의 발목을 다시 걸어 넘어뜨렸다. 이번엔 다리 사이 안쪽으로.
“윽……!”
이것마저 버틸 재간은 없었다. 이내 클로이는 발이 엉켰다. 엉덩방아를 찧고 뒤통수가 바닥을 두드렸다. 후두부의 충격에 그녀는 시야가 뿌예졌다.
그에 맞춰서 강검마는 그녀의 경동맥에 사시미를 찔러넣었다. 뿌득. 칼날이 목뼈에서 한 번 걸렸다.
푹!
클로이의 눈동자에서 생명의 불씨가 꺼졌다. 레이첼에 이은 두 번째 희생자였다.
그때, 측면에서 또 하나의 검날이 번뜩였다. 어느새 다가온 아벨이었다. 그녀는 노도와 같은 기세로 강검마의 옆구리를 노렸다. 정석에 가까운 자세였기에 클로이 이상으로 기세가 강렬했다. 다만 정석이기에 너무 정직하다. 이런 류의 공격은 변수에 취약했다.
강검마는 허리를 비틀듯 접으면서, 회피와 반격을 동시에 가했다. 사시미는 가느다란 허리를 옅게 베어 낸 데 반해, 아벨의 직검은 아슬하게 강검마의 골반 옆으로 빗나갔다.
맥없이 공중에서 울리는 파공음. 강검마는 허릿심을 되살려 단숨에 몸을 뒤집었다.
휘리릭.
그에 강검마의 등만 보였던 아벨의 금색 홍채에 검은 눈이 맺혔다. 찰나의 흐름이 굼떠졌다. 세상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벨은 생각했다. 인간이 이렇게 탄력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고? 디딤돌 없이, 것도 불안정한 자세로 공중제비까지 돌아 버린다.
체조 선수처럼 탄력적인 움직임에 그녀는 순간 멍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질적이었다. 평소 강검마는 쾌검을 구사할 텐데, 지금은 손보다는 몸을 더 쓴다.
‘대체, 왜……?’
의문이 어리던 차, 그녀의 머리 위를 뭔가가 묵직하게 압박했다. 강검마가 아벨의 정수리를 한 손으로 짚어 물구나무를 선 것.
아벨이 그 기예에 놀랄 새도 없이 사시미가 열매 따듯 목덜미를 끊어 냈다. 금빛 홍채에서 빛이 가시고, 굴곡진 몸이 스러졌다.
풀썩.
이 모든 과정은 느릿해 보일 만큼 물 흐르듯 이어졌다. 느렸기에 지켜 본 이들은 더욱 섬뜩할 따름.
사뿐히 착지한 강검마는 작게 혀를 찼다. 맨날 일 합에 죽여 버릇하니, 살살하는 게 영 낯설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웬 서커스 같은 묘기를 선보이는 꼴이 되었다.
‘맞다.’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무통의 가호]가 끝나기까지는 30초 남짓. 강검마는 핏물을 털어 내고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남은 상대를 헤아렸다. 레온, 료조, 혼테일, 웨폰. 다들 넋을 놓고 있었다.
‘칼질하기 껄끄러운 애들만 남았네.’
그렇다고 앞선 셋을 달갑게 베어 버린 건 아니다만. 어쨌건, 레온을 제외한 셋은 강검마와 유대가 돈독한 이들이었다.
‘쟤네들도 레이첼, 클로이, 아벨처럼 상대해 줘야 하나?’
찰나의 고민. 이윽고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랬다간 도리어 이쪽이 당한다. 저곳엔 무려 용사와 드래곤이 함께였다.
오늘 맛보기는 선보일 만큼 보였으니 이쯤에서 적당히 끝을 내도 되겠지. 엄밀히는 그러고 싶었다. 메아인의 장단에 맞춰 주는 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짜증이 오를 대로 올랐다.
‘얘네들을 상대하라는 거, 교육 목적만이 아니야.’
그는 직감했다. 말했던 것 외에 저의가 숨어 있음을.
‘마음 같아선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지만.’
전투의 관성이 포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칼을 뽑은 이상 끝을 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요컨대 칼잡이들 사이의 페어플레이였다.
강검마는 사시미를 하나 더 꺼내 두 자루를 쥐었다. 눈을 감고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비릿한 혈향이 콧속에 스몄다.
레온을 제외하고서 모두가 주춤주춤 걸음을 물렸다. 어제까지 웃으며 떠들었던 친구 대신, 검은 야수가 다가온다. 이빨과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 그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차올랐다.
자신을 보며 친구들이 바들바들 떠는 모습. 눈을 감고 있음에도 강검마는 느꼈고, 매우 불쾌했다.
‘한 번에 끝내자, 한 번에.’
마음을 굳힌 강검마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마셨던 공기를 짧게 뱉어 내며 몸을 내쏘았다.
* * *
결과는 정해진 대련이었다. 황금 세대라 불리는 이들이라도 강검마와의 차이는 극명했으니.
그리고 반전은 없었다. 강검마의 압승.
메아인이 ‘강검마 vs 전원’을 제안한 것은 나름대로 어림해 보기 위해서였다, 천 클래스의 생도들이 어디까지 칠성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지를. 그에 향응하여 커리큘럼을 짜고, 개인별로 맞춤 지도를 할 공산이었다.
하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메아인은 산하나일 적부터 강검마를 눈여겨보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고자 신분을 세탁하여 몰래 호아킨 아카데미로 몰래 잠입했다.
이렇게까지 한 까닭은 메아인이 마경에서 봤던 한 예언서 때문이었다.
워낙 옛날이기에 정확한 기억은 아니었지만, 내용은 대충 ‘흑안과 흑채의 인간’에 관해서였다. 그 검은 특징을 지닌 인간에겐 마족이 신으로 떠받드는 ‘존재’의 힘이 깃든다는 것. 대표적으로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이 그 예라고 적혀 있었다. 이에 대한 의구심은 금세 해소됐다.
가호의 각성을 억제하고자 마경을 수십 년 떠돈 메아인이었다. 그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은 정보들이 예언서가 진실임을 보증했다.
‘그러니 흑안과 흑채의 인간은 마족의 신, 즉 외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거기서 메아인은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어째서 마족의 신은 제 수족이 아닌 인간한테 힘을 내어 준 것인가. 또한, 그 힘을 사용한 인간은 종막에 이르러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 보유자가 감당해야 할 반작용은 무엇인가. 하다못해 그 거뭇한 힘이 인류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없는가. 어느 하나 밝혀진 것이 없는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다.
‘그 힘’의 선대라 추정되는 발로르 호아킨의 마지막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저 어디론가 홀연히 떠났다고만 역사서에 짤막하게 기록됐을 뿐.
메아인의 가슴 안에서 불안과 더불어 호기심이 증폭했다. 마경을 거닐면 거닐수록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해서, 호아킨 아카데미에 검은 머리의 생도가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간계로 복귀한 것이다.
‘두 눈으로 확인해 둬야 해.’
과연 그 예언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판단을 내려야 했으니까.
‘힘의 사용자가 인류에 해악이 된다 판별되면…….’
그리고 각오를 다져야 하니까.
‘40년 전엔 내가 참전을 못 하는 바람에 세 명의 제자를 잃었어.’
두 번이나 가만두고 볼 순 없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인류에 해악이 된다면 미연에 처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이 지극히 자기중심적 오만임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환연히 절감했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생도들이 헥헥- 숨을 더듬거나, 목이 잘 붙어 있는지 계속 만져 보거나, 낮게 신음한다. 혹은 주저앉은 채 황망히 천장만 쳐다보았다. 강검마는 그런 그들에게 일일이 다가가 괜찮은지 상태를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생도들은 겁에 질렸다. 충격이 가시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로 인해 그들과 강검마의 관계가 서먹해지지는 않겠지만, 전과 같진 못하리라.
‘난전이었으면 또 모를까.’
메아인은 눈을 살짝 내렸다. 손목시계의 시침이 마침 일주를 마쳤다. 이제야 1분이 지난 것이다. 달리 말해서 강검마는 60초도 안 돼서 전원의 목을 땄다. 노골적으로 봐주면서도, 심지어 차기 용사가 끼어 있어도 상대조차 안 됐다.
메아인은 다시 시선을 레온 쪽으로 옮겼다. 일그러진 얼굴, 짙푸르렀던 벽안은 막이 낀 것처럼 탁했다. 저것만 봐도 그가 어떤 기분일지 알 만했다. 그를 발견해서 호아킨 아카데미로 보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모멸, 좌절, 무력감. 용사는 거대한 벽 앞에서 마음이 꺾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선배.”
강검마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는 기분이 언짢은지 미간 폭이 좁았다.
“오늘은 애들이 충격을 받은 거 같으니까, 수업은 이쯤 하시는 게 어때.”
제의를 가장한 강요였다. 천검께서 말씀하시는데 어쩌겠나. 승복하는 수밖에. 메아인은 아주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더 수업을 진행할 그건 아닌 것 같고, 오늘은 이쯤에서 마치고, 내일 다시…….”
“선배.”
싸늘하기 그지없는 음성이 말을 끊었다. 강검마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해, 밖에서.”
형언키 어려운 둔중함이 메아인의 명치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