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3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38화(234/300)
238화 첫눈 (2)
료조는 눈을 깜빡였다. 사고와 표정이 정지했다. 한 박자 늦게 당혹감이 차올랐다.
‘엄마를 보러 가는 길에 동행하겠다고?!’
급작스러운 제안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푸념 비슷하게 줄줄 토해 내서 쪽팔린대!’
반면 강검마의 눈빛은… 늘 그렇듯 진심이 서려 있었다. 그래. 얘는 이런 애였지.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 담백함. 때문에 그의 말엔 무게가 실려 호소력이 짙었다.
‘그냥 하는 말은 절대 아니야.’
잠시 잠깐의 위로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진정으로 료조와 함께하고자 했다.
‘이유야 내가 불안해한다는 걸 눈치채서일 거고.’
강검마는 상냥한 제안을 한 것이다. 정 그러면 같이 가자고. 료조는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창피했다.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기뻤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방방 뛸 듯이 기뻤다. 료조는 곁눈질로 옆을 힐끔했다.
“같이 가는 건 그렇다 쳐도…….”
그녀는 얼굴의 반절을 두르고 있는 머플러로 가리면서 웅얼거렸다. 니트의 꺼끌꺼끌한 감촉 탓에 입술이 가려웠다.
“…검마, 너 학원장실 가는 길이라며.”
“아, 그거.”
강검마가 이마를 긁적였다. 말을 고를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이 사소한 모습마저 그녀의 심장을 고장 내기엔 충분했다.
료조의 가슴이 쿵쾅거리는 가운데 강검마는 머쓱하게 웃었다.
“어차피 매주 가는 거라서 하루 빼먹어도 괜찮을 거야, 당연히 연락은 드려야겠지만. 그리고 료조, 너도 알잖아. 학원장님은 내가 친구랑 어디 간다는데 뭐라고 하실 분이 아니란 거. 오히려 좋아하실걸. 학원장님은 내가 너무 일찍 칠성에 올라서 그 나이에 즐길 걸 못 즐긴다고 안쓰러워하시거든.”
“아…….”
그제야 료조의 눈에 강검마의 얼굴이 보다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거뭇한 눈그늘, 수척해진 안색. 한 달 사이 그가 어떤 일상을 보냈을지 어렴풋이 그려졌다.
‘바빴구나, 많이.’
그럴 수밖에. 강검마는 24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 중이었다. 학업, 공무, 부차적인 업무. 속 편히 수업만 듣는 자신과는 달랐다. 이를 알기에 학원장님이 강검마를 안타까워하는 것이리라.
‘그런 애한테 나는…….’
세상 불행한 사람이 지을 법한 울상을 지어 보였다.
세간은 강검마의 휘광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최연소 칠성 영웅, 세계 최강의 전력, 천외천. 각기 표현은 다르나 하나같이 정점을 표현하는 수식어다.
정점.
누구든 꿈꿔 봤을 자리. 강검마는 그곳에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올라 버렸다. 즉, 너무나도 일찍이 혼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얘는 혼자인데도 어떤 투정도 안 부려.’
료조는 그의 가정사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얘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이지 복에 겨운 놈인데.’
눈 주변이 시큰거렸다. 찬바람 때문이라 이조차도 감정을 합리화했다.
‘나는 겁쟁이야.’
항상 강한 척하지만, 자신은 응석받이에 불과했다.
‘정작 가장 힘든 애는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줬어.’
되레 이 나약함을 두둔해 주었다.
료조가 머플러로 눈가를 몰래 훔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행선지가 부산이라서 하루 꼬박 시간 비워야 하는데 괜찮겠어?”
강검마는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일 뿐.
“토요일이잖아. 시간 널널해.”
* * *
잠시 뒤, 학원장실.
“당연하지! 응응. 알았어. 재밌게 놀고~!”
뚝.
강검마와 통화를 마친 메디아는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성에가 맺힌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깥 경치가 아련하다.
“웬일이래, 우리 검마. 친구랑 주말에 외출도 다 하고.”
메디아는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이어서 기지개를 켜며 상반신을 쭉쭉 늘렸다.
“안 그래도 좀 쉬는 게 어쩌겠냐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어. 검마가 요새 무리한 감이 없잖아 있으니까.”
조금 전 강검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회의를 다음번으로 미뤄 주시면 안 되겠냐고. 미안한 기색으로 거듭 사과했다.
그 부탁을 메디아는 기껍게 받아들였다. 외려 적극 추천했다. 어떤 일 때문인지 묻지조차 않았다. 강검마의 휴식을 그녀 또한 바라 마지않았기 때문이다.
약속의 파토? 사소했다.
메디아는 커피를 홀짝였다. 머그잔 위로 아지랑이처럼 올라온 김은 유리창과 맞닿아 성에로 변했다.
“이참에 협회한테 말해서 검마 일감 좀 줄여 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평화로이 운치를 즐기던 와중이었다.
-♬♭♩♫♪
책상에 올려놨던 스마트폰이 요란스레 울어 댔다. 메디아는 눈썹을 찡그렸다.
“어떤 놈이 주말에 전화질이야.”
학원장은 엄연한 사무직이다. 9시 출근 6시 퇴근. 모름지기 주 5일의 업무 시간을 준수한다.
‘그런데.’
금쪽같은 주말에 메디아가 이 지긋지긋한 일터로 출근한 까닭은, 강검마와의 약속도 있거니와 집에 있기 싫어서였다. 왜냐면 집이 개판 나 버려서. 그 ‘시발’점은 쌍둥이 언니, 메아인이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 것.
깔끔한 메디아와는 정반대로 메아인은 정리 정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언니는 삼시 세끼 전부 배달 음식인 데다, 먹고 치우지도 않았다.
잔소리도 해 보았다. 언니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미안하다며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기대를 안 했기에 실망도 적은 메디아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메디아는 최악으로 변해 버린 장소인 ‘집’에서 차악의 장소, ‘학원장실’로 도피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당하고만 살 순 없어.’
언젠가는 담판을 지어야지.
그전까진 하는 수 없이 주말을 반납해야겠지만. 당분간은 도 닦는 심정으로 버텨야 했다.
“에고, 내 팔자야. 진짜 힘들다, 힘들어.”
메디아는 폭 한숨 쉬는 가운데도 스마트폰은 노래를 멈출 기미가 없었다. 그녀는 쯧 혀를 차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상대는 묵묵부답. 그제야 메디아는 액정을 귀에서 떼고 번호를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메디아는 새하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주말 출근 탓일까. 갑자기 짜증이 정수리까지 확 북받쳤다.
그녀는 전화기에 대고 강하게 말했다.
“뭐야, 누구세요. 사람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
“아- 이거 뭐, 그 보이스 피싱인가 그거냐? 야, 너희 누구야. 지금 이거 누구 번호인 줄 알고나 하는 거야? 이 서민들 피 빨아 먹는 범죄자 새끼들. 너희 딱 기다려 내가 이거 번호 추적해서…….”
-둘째야.
고막을 긁는 듯한 쉴 대로 쉰 목소리. 그 순간 메디아의 표정과 태도가 경악으로 일변했다.
그녀를 이리 부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으니까.
-미안하다. 근데 스마트폰이란 걸 난생처음 써 봐서 어떻게 전화하는지 몰랐단다. 삐삐가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런 게 다 나올 줄이야.
두 세기를 넘게 산 노연의 고대인.
-둘째, 네 칠성 등위식 때 이야기 나눈 후 처음이니 무려 사십 년 만에 듣는 목소리야. 여전히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우렁찬 목소리구나. 시나브로 더 건강해진 것도 같아.
직분상 모든 영웅의 우두머리.
-여하튼, 별안간에 연락해서 대뜸 이런 부탁 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만.
협회장. 빅터 포이즌.
-새로 칠성에 등극한 천검, 그 소년과의 만남을 주선해 줄 수 있겠니?
그가 신성(新星)을 보고자 한다.
* * *
호아킨 아카데미를 다녀서 편리한 거 하나. 딱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이 아공간 워프라 말할 거다.
자색 빛무리에 한 번 감싸여 눈을 감는다. 찰나의 멀미를 느끼며 눈을 뜨면 원하던 장소가 짠하고 펼쳐진다. 지금처럼.
“강원도 원주에서 경상도 부산까지 30초라.”
짭조름한 냄새. 항만에 주르륵 정박한 선박들. 부둣가를 끼룩끼룩- 울며 비행하는 갈매기 무리.
“하하.”
뭔가 허탈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온다. 아공간 워프. 물리 법칙을 사뿐히 무시하는 이 이동 수단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몇 번을 경험했어도 매번 신기하다.
‘장막에, 워프에, 주머니까지.’
그냥 만능이었다. 이런 사기 기능이 왜 존재하는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공간은 이를테면 유저의 편의를 위한 장치겠지. 지루한 이동 과정 축약엔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이는 판타지 기반 세계관의 게임이라서 갖는 이점이었다.
‘그래도 너무 사기야.’
누구는 고속 도로 꽉꽉 막혀서 6시간 걸려 부산에 도착한다. 반면 다른 누구는 30초 만에 도착한다. 우리는 그 ‘다른 누구’를 기득권이라 부른다.
지구에 살 적 어른들이 으레 말했었다, 시간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그 말은 틀렸다. 이 세계에서 시간은 살 수 있다. 구매가 가능한 재화다.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따로 없다. 원래라면 ‘뭐, 이런 밸런스 망겜이 다 있어!’ 했겠지만.
“…….”
지금의 난 침묵하였다. 더 이상 내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칠성 영웅이다. 이젠 피지배층이 아닌 지배층에 속한다. 그것도 일국의 대통령에 비적할 만한 막강한 권력을 지녔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특권을 독식할 수 있다. 일반 생도에겐 엄금된 워프를 화장실 드나들 듯 이용하는 게 가능하다. 내가 그간 비판해 왔던 부조리에서, 난 비껴갈 수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문득, 측면으로 시선이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자 료조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날이 흐려서인가. 오늘따라 하늘색 홍채가 유난히 샛말갛다.
‘아공간 워프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서 사람이 달라 보이는 건가.’
그럴 수 있지. 당사자인 나도 떨떠름하니까.
나는 어색함을 느끼며 료조에게 물어봤다.
“어머니네까지는 얼마나 걸려?”
“아, 맞다.”
정신을 차렸는지 료조는 허둥지둥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검색한 주소를 띄운 지도 앱을 내보였다.
“버스 타면 금방 가겠네.”
우리는 바로 이동했다. 해안가를 걷고, 고즈넉한 항만을 산책하듯 거닐었다. 바닷바람은 싸늘했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만큼 차진 않았다.
그 뒤로 시내버스에 승차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만석이었다.
‘사람들이 나 알아보면 큰일인데.’
낭패감도 잠시, 다행히 겉옷에 후드가 딸려 있어 푹 뒤집어썼다. 덕분에 사람들은 내가 천검인지 몰라봤다. 연예인 간접 체험이었다.
버스가 출발했다. 첫 번째 정류장을 지나쳤다. 마침 두 자리가 나서 우리는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다.
이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정류장이 차창 너머로 스쳐 갔다. 항구 도시, 부산의 풍취는 유유자적했다.
나는 옆자리를 흘낏했다. 료조는 버스 창문에 이마를 기대고 있었는데, 마을버스가 멈춰 설수록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치마 위로 두 손이 가녀리게 떨고 있었다.
스윽.
그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서느렇다. 바닷바람을 몇십 분을 쐤으니 손이 식을 만도 하다.
“…….”
료조는 움찔했으나 달리 말은 없었다. 대신 손의 떨림이 줄었다.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조금이나마 개어 옅어졌다.
버스가 종착역에서 정거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린 그때부턴 오 분 정도 걸었다. 그렇게 어느 아파트 단지로 성큼 들어섰다.
“여기가.”
좋지도 허름하지도 않은 무난한 아파트였다. 다만 명색에 절궁의 전 부인이 사는 곳이라기엔 평범한 감은 있었다.
‘저택 같은 곳에서 살 줄 알았는데.’
료조는 찬찬히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다가 곧 앞장섰다. 세부 주소는 그녀만 알기에 나는 묵묵히 뒤따랐다.
저벅.
이윽고 료조의 걸음이 아파트 복도 중앙에서 멈췄다.
‘504호.’
그녀는 호수와 찍힌 주소가 일치하는지 재차 점검했다. 잘못될 리 없는 숫자였다. 몇 번이고 확인했으니까.
막상 닥치니 료조는 망설여졌다.
‘초인종을 누를까, 노크할까. 아니, 그냥 이대로 돌아갈까?’
복도에 서서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덥썩.
그때 큼지막한 손바닥이, 그녀의 주먹을 감싸 안았다. 두 손이 포개져 하나가 되었다.
“따라오길 잘했네.”
나는 꼭 잡은 료조의 주먹을 문 바로 앞까지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간신히 뻗어 철문을 두들겼다. 둘이 같이.
똑똑. 두어 번의 노크 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낮게 깔렸다. 다음 순간에.
끼이익.
경첩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문 틈새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