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2화(238/300)
242화 나비 효과 (2)
나는 서둘러 채비해 바로 아카데미 내 워프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는 여비서와 남수행원이 메디아 뒤로 나란히 서 있었다. 비서는 오다가다 몇 번 본 얼굴이고, 남자는 초면이었다.
““천검님을 뵙습니다.””
두 사람이 내게 절도 있게 경례하길래, 나도 고개를 까딱였다. 이젠 이런 의전들에 익숙해졌다.
“아침부터 미안해, 검마야…….”
메디아는 한숨을 연신 푹푹 내쉬었다.
“남극까지 가는 목적은 뭔가요?”
나는 고개를 젓고는 물었다. 워낙 목적지가 충격이었던 탓에 정작 목적을 묻지 않은 채였다.
“아, 그게.”
메디아는 우물쭈물하며 침음했다.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기색. 그때, 메디아의 좌측에 서 있던 여비서가 대신 대답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왼쪽 눈썹이 굽게 휘었다.
“그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같은 말은 빼고 말해도 괜찮은데요. 의전도 너무 과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 부담입니다.”
“아니 될 일입니다.”
여비서가 완고한 눈으로 휘휘 머리를 흔들었다. 곁에 있는 남자가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으나 미동 없이 말을 쏟아 냈다.
“호아킨 참사의 영웅, 최연소 칠성 영웅, 인류의 희망, 천검님을 뵈었습니다. 이 정도 예마저 천검님 앞에선 최소한일 뿐입니다. 언제든 무례를 물으신다면 자결을……!”
“본론.”
“예.”
여비서는 척 뒷짐 지더니 전방 45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자세 그대로 상관에게 보고하는 군인처럼 입을 뗐다.
“학원장님께 들으셨겠지만, 저희가 향하는 곳은 지구의 최남단인 ‘남극’입니다. 더불어 급작스러운 이번 여정의 목적은 영웅 협회의 장이시자 학원장님의 친부이신 빅터 포이…….”
“그다음은 내가 설명할게. 부른 것도 나고, 오늘 하루 민폐를 끼칠 게 분명한 인물이 내 아빠잖아.”
메디아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여비서를 물렸다.
“아, 아, 아닙니다, 학원장님. 제가 천검님께…….”
“나 안 그래도 피곤해. 그러니까 두 번 말 하게 하지 말아 줘, 응? 부탁할게.”
메디아가 상냥함 반, 경고 반을 섞어서 말했다. 여비서는 마지못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받들겠습니다.”
여비서의 윗니 사이로 옅게 피가 배어 나왔다. 메디아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남자 수행원만 조마조마한 얼굴로 눈동자를 도로록 굴렸다. 보아하니 남자보다 비서가 직렬이 높은 듯했다.
‘그건 그렇고, 이 세계 참 편하네. 남극을 동네 마실 가듯 가고.’
아공간 워프가 없는 지구에선 남극 여행이 돈이 꽤 든다고 하던데. 첫 스승님의 바람 중 하나가 ‘남극에서 바다낚시’라고 들은 적 있었다. 최소 경비가 3천에서 4천만 원 언저리라던가. 근데 우리는 땡전 한 푼 안 내고 이동한다.
‘돈 굳었군.’
이걸 알면 그 양반, 배 아파서 뒤집어질 거다.
“비서 말대로, 내 아빠 빅터 포이즌이 지금 남극에 거주 중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 인간을 보러 가는 거고. 내가 사정사정해서 아카데미로 오라 했더니, 노인은 집 떠나는 순간 향수병 도진다고 싫다네? 그러면서 검마, 너를 한번 보고 싶다고 바락바락 어찌나 성을 내던지.”
나는 잠깐 멍해졌다. 이 몇 문장 안에서 놀랄 거리가 벌써 두 개나 나왔다.
협회장이 남극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과 그가 나를 보고자 한다는 것.
뭣부터 놀라 줘야 할까.
그런 와중, 메디아는 볼멘 투로 궁시렁거렸다.
“진짜 치매인가 싶더라고. 어휴, 근데 어쩌겠어. 그 빅터 포이즌이 모습을 드러낸 건 수십 년 만이거든. 그것도 누구를 보겠다고 드러낸 건 더더욱 이례적인 일이고. 짐짓 평범한 일은 아니란 거지.”
“그렇군요.”
포이즌 가문은 구성원이 나타날 때마다 무슨 일이 나는구나. 어떻게 돼먹은 가족이지? 메디아의 피로에 찌든 목소리가 괜히 측은하게 들린다.
“근데 주말에 부르는 건 너무 몰염치인 것 같아서 월요일 아침에 전화한 거야. 아, 맞다. 까먹을 뻔했네. 워프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것 먼저 먹을래?”
메디아가 알약 두 정을 내밀었다. 오른손엔 빨간약, 왼손엔 파란약. 고전 SF 영화 매X릭스의 한 장면이 불현듯 스친다.
“우리 행선지가 남극이잖아. 그렇게 패딩 하나 걸치고 가면 바로 동사할걸?”
“그것도 그렇겠네요.”
메디아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오므려 알약들을 집어 보였다.
“그래서 준비했지! 여기 빨간약은 방열 효능이 있는 약이야. 체온을 몸 안에 가두어 버리는 약인 거지. 쉽게 설명해서 어떠한 혹한 지대라도 이 약 하나만 있으면, 얼어 죽을 일은 없다는 말씀!”
그녀가 힘 있게 말했다.
“반대로 더운 지역에 가도 일정한 체온 유지가 가능해.”
장기는 신체 달리 단련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병마 앞에선 픽픽 쓰러진다. 마족과 싸워야 하는 초인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마경 게헤나의 환경은 거칠고, 메말랐다. 날씨도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거기다가 마력이라는 독성 인자까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닌다.
이렇듯, 마경의 모든 요소는 인간을 괴롭힌다.
환경 변화와 질병 대한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 방법은 적응뿐. 공교롭게도 이는 마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두 가지 전부 쌓기란 불가능했다. 마력과 인간의 생리가 정반대의 성질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을 인류가 아니었다. 적어도 지구에선 종의 정점,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한 만물의 영장이 인간이다.
빛나는 석학들은 방법을 궁구했다.
저 두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어떻게 할 수 있다면…….
양자택일의 순간, 연구진은 전자인-환경과 질병- 연구를 채택. 이후 머리를 맞대어 집단 지성을 짜냈다.
마족들과 분투하는 인류의 희망 영웅들을 위해서.
백탁의 전장, 연구실에서 다년간 그들만의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그 결실이 이 영롱하게 번들거리는 붉으락푸르락한 알갱이이다.
‘싸움은 영웅만 하는 게 아니야.’
각자의 위치가 저마다의 전장이다. 인마대전이란 과업을 모두가 고르게 짊어지고 있다.
‘근데도 귀족들은 스스로가 초인이란 이유만으로 억압하고, 짓누르지. 자신들이 거머쥔 특권을 굳건히 하고자.’
영웅과 일반인의 차이는 그저 가호가 있다 없다 뿐이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신분과 대접의 격차는 역력하다.
‘일반인들의 노고에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돼지 새끼들.’
이는 인간의 교만이란 생각이 들며, 이 때문에 최근 마족이 득세한 게 아닐까 싶다.
‘서로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나는 쓰게 미소하고서 다시 메디아를 바라보았다.
“이 파란약은 각종 질병을 막아 줘. 참고로 남극은 혹독한 추위 때문에 웬만한 바이러스가 살 수 없는 환경이거든? 근데도 간혹 살아남은 독종들이 있어. 그런 놈들에게 걸리면 어떻겠어, 몇 날 며칠을 앓겠지? 행여라도 독한 전염병이라도 옮아 와 봐. 전 세계가 완전히 팬데믹에 빠질걸.”
“그럼, 이 약은 모든 질병을 막아 주는 건가요?”
“맞아, 미리 복용만 한다면 99.99%의 질병을 사전에 차단해 줘.”
“만드신 분들 대단하네요. 완전 만병통치약이네.”
가호의 존재 덕택일까, 아님 2034년이라서일까. 이 세계의 과학력은 지구 이상으로 혁신적이었다.
“대단하지. 단가가 좀 높아서 보급은 아직이지만. 그래도 이런 약을 만들었다는 거 자체만으로 연구진은 존경받아야 마땅해. 어찌 보면 우리 영웅들보다 그들이 살릴 사람 수가 더 많아질 테니까.”
메디아는 기쁜 듯 환히 웃으며 이어 말한다.
“그리고 역시 우리 검마는 속이 깊다니까.”
“네?”
“보통 이 약들에 감탄하지, 만든 사람에 대해선 신경 쓰진 않거든. 근데 너는 바로 연구진부터 떠올렸잖아. 이러니까 내가 너만 보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지!”
뭐랄까.
‘민망하네.’
툭 던진 한마디에도 이만큼 부둥켜 주니 갓난아기가 된 기분이다.
나는 건네받은 두 알약을 한꺼번에 꿀떡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이물감 뒤로…….
‘오.’
나는 팔뚝을 더듬어 보았다. 눈에 보이는 징후가 있는 건 아니나 느낄 수 있었다. 첨단 약학(藥學)의 정수가 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음을.
이어서 비서와 수행원, 메디아가 차례로 복용했다. 남자는 손을 꽉 쥐었다 피길 반복했다.
그가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 오. 이게 말로만 듣던 신약(神藥) 모피어스……. 20억씩 하는 이유가 있군요!”
나는 눈을 끔뻑였다. 잘못 들었나 해서였다. 20억?
“저기요. 방금 우리가 삼킨 약이 20억이라고요?”
“정확히는 한 정당 20억입니다, 천검님. 저희는 동시 복용했으니 총 40억 원어치를 삼킨 게 되겠군요. 크으- 제가 천검님 덕분에 이런 호사를 다 누려 봅니다! 존명!”
나는 반사적으로 면면을 훑어보았다. 비서랑 수행원, 학원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은…….
헛웃음이 나왔다.
돈이 굳었다고? 아니, 아니다.
우리는 여정 시작도 전에 얼추 160억을 꿀꺽했다.
첫 스승님이 봤다면 배 잡고 깔깔 웃었을 상황이다.
“빌어먹을.”
* * *
우리는 출발하기 무섭게 남극에 도착했다. 솔직히 출발이란 말이 무색했다. 워프에 발만 디디면 바로 목적지였으니.
“여기가 남극.”
새하얗다.
첫 감상은 이랬다. 백지장 도화지 윗부분은 푸르스름 칠해 놓은 듯하다. 순백색 지평선 위로 산등성이가 삐죽삐죽 간헐적으로 솟아 있었다.
꿈의 한 장면을 가위로 오려 놓은 것 같은 환상적인 풍경이다. 체온도 여상하니 현장감이 덜했다.
‘근데 진짜 하나도 안 춥네.’
숨 쉴 때마다 콧김, 입김이 뿜어지긴 해도 손발이 시리지 않았다. 당연히 손가락이 얼어붙거나 벌게지는 일도 없었다.
‘약빨 죽이네.’
그때 시선을 느낀 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검고, 흰 무리가 버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펭귄 떼였다. 놈들은 뱃가죽을 얼음장에 비비며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있었다.
“께겍-?”
몇 놈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우리를 쳐다보며 갸웃거렸다. 그 멍청한 표정이 퍽 귀엽다고 생각할 때였다.
펭귄 중 한 마리가 제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놈은 뒤뚱뒤뚱 이쪽으로 접근했다. 주황색 물갈퀴가 하얀 바닥에 번갈아 발자국을 찍었다.
찹, 찹, 찹, 찹.
펭귄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 들었다. 인간을 처음 봐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본다고.
…하지만 저 펭귄.
“저거 너무 큰 거 아닙니까?”
남 수행원이 말했다. 그 말대로 덩치가 남달랐다. 옆에 있던 비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황제… 펭귄……?”
아마 아닌 듯하다.
서열이 뭐든 간에 저놈이 펭귄일 리가 없다. 덩치가 사람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수라기엔 너무 펭귄스럽다. 더구나 그랬다면 펭귄 떼와 어울리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
이때까지 학원장님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침묵하면서도 다만 얼굴색이 썩어 들어갔다.
펭귄은 이내 지척에서 우뚝 섰다. 영하 76도의 극동 바람이 펭귄과 우리 사이를 휘저었다.
후우웅.
바람이 스산했다. 서부 영화에서 총을 겨누기 직전의 상황처럼 분위기가 치달았다. 흙바닥을 구르는 회전초 대신 눈보라가 일었다.
메디아는 이마를 찌푸리더니 뽀얀 입김을 흘렸다.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장난은 이쯤 하는 게 어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딸에게 얼마나 망신살 주려고.”
스윽.
다음 순간, 펭귄은 양 날개를 들어 올려 목덜미를 잡았다. 그리고 낑낑거리며 목을 양옆으로 비틀어 댔다.
몸통과 머리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광경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펭귄 머리가 쑥 뽑혔다. 뒤이어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그 안에서 새로운 머리가 돋아났다. 녹발을 한 미청년의 얼굴이었다.
“푸하!”
갑갑했는지 미청년은 상쾌한 얼굴로 숨결을 토했다. 초록 머리를 탈탈 털며 땀을 흩뿌렸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땀방울이 후두두 바닥에 떨어졌다.
그에 멀찍이서 지켜보던 펭귄 떼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껙-! 껙-! 껙-!”
날개를 파닥거리며 삿대질하는 모습. 이 인면 펭귄을 향한 배신감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개중 가장 인상적인 반응은 암컷으로 보이는 펭귄의 것이었다. 그녀는 똥그란 눈에 눈물까지 맺혔다. 실연이라도 당했다는 듯이.
그러거나 말거나. 인면조는 뱃가죽에 달린 지퍼를 내렸다. 조류가 영장류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빅터 포이즌이네. 본업은 해양생물학자, 겸업으로 영웅 협회에 숟가락을 얹고 있는 자올시다.”
인면조, 협회장은 오른쪽 겨드랑이에 펭귄 머리통을 끼고선 인사했다.
“천검, 자네를 목 빠지게 기다렸지 뭔가! 이런 기분은 한 세기만이었어, 하하!”
“…….”
목 빠지게 기다렸다는 말이 마냥 허언은 아니렷다.
“천검 자네를 위해서 선물을 준비했네. 이 먼 곳까지 걸음 해 주지 않았나! 보기 드문 귀물이니 아마 마음에 쏙 들 걸세.”
“아, 예…….”
협회장이 입가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걸었다.
“자! 일단 자리를 옮기지. 좀 시끄러우니 말일세.”
협회장이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뒤에서는 암컷 펭귄의 흐느낌이 남극 일대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