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3화(239/300)
243화 나비 효과 (3)
남극은 냉랭했다.
찹, 찹, 찹, 찹.
“…….”
우리 호아킨 아카데미 일동은 조용했다. 누가 먼저 그러자고 말을 꺼낸 건 아니었다. 그냥 다들 약속했다는 듯 침묵하였다.
왜냐하면…….
“하아-.”
메디아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얼음 바닥이 꺼져라 한숨 쉬었다. 그녀의 잇새로 입김이 서럽게 새어 나온다.
그렇다. 비서와 수행원, 그리고 내가 가만히 있는 이유. 우리의 침묵은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오른 메디아를 위한 배려였다.
나는 힐끗 옆을 쳐다보았다. 메디아가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삼키고 있었다.
‘나 같아도 몇십 년 만에 본 부모가 펭귄 슈트를 입고 등장하면…….’
비록 천애 고아인 나지만 그녀를 이해한다.
나는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씰룩거리는 펭귄 뒤태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저 괴짜가 영웅 협회의 장이라…….’
빅터 포이즌.
그에 대해선 료조에게 몇 번인가 들어 알고 있었다.
-협회장은 신화적인 인물이야.
짤막하지만 임팩트 있는 한 줄 평. 료조로선 드물게 존경심을 내비쳤더랬지. 덕분에 또렷이 기억한다.
-협회장이 작정하고 나서면 국제 정세가 들썩일걸.
료조는 이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호아킨 아카데미, 국제 연합, 영웅 협회. 이 세계는 사실상 이 세 세력이 삼분하고 있다.
삼권분립. 권력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니까.
이 중에서 두 세력, 호아킨 아카데미는 영웅을 배출하는 교육기관이고 국제 연합은 외교나 대국적인 문제를 조율하는 협력 기구다.
하여 호아킨 아카데미와 국제 연합은 따로 통수권자가 없다. 학원장과 사무총장도 임시적인 대표이지, 총책임자라기엔 어폐가 있다.
하나.
-영웅 협회는 달라.
어째서냐? 그야 협회를 한 사람이 혼자서 일구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얼개로 호아킨 아카데미도 발로르 호아킨이 세웠지만, 그는 700년 전 사람. 역사 속 위인이다.
또한, 국제 연합은 이권으로 뭉친 단어 그대로 ‘연합’이다. 설립자의 존재 자체가 연합이란 취지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연유로 삼권분립 세력 중 유일하게 협회만이 총책임자가 분명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 생각한다. 맞다, 저 펭귄이다.
빅터 포이즌은 H.P.(히어로 포인트)를 도식화할 수 있게끔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그 방대한 정보를 저장할 데이터 센터도 그가 구축했다.
무려 70년 전에.
이 외에도 협회 전산 시스템, 협회 지부별 관리 분할 등등. 협회장의 손에서 탄생한 것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지금은 손 대신 펭귄 날개지만.’
찹, 찹.
앙증맞은 발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존경하는 인물이 펭귄 옷을 입고 있다면 료조의 반응은 어떨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몹시 궁금하다.
그렇게 십 분을 더 이동했을 무렵, 협회장이 오뚜기처럼 우뚝 섰다.
“어디 보자, 이쯤 어디일 텐데.”
그는 펭귄 머리를 살포시 옆에 내려놓았다. 무릎을 꿇더니 날개로 설면을 슥슥 닦았다. 주섬주섬 모이를 줍는 펭귄처럼 보였다.
“몇 주를 펭귄들이랑 섞여 지냈더니 위치가 가물가물하군. 아! 여기군, 찾았어!”
날개가 얼음 바닥의 어느 지점에서 쑥 들어갔다. 협회장은 눈투성이 무릎을 털면서 서너 걸음 물러났다.
그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궁……!
남극 대륙이 요동친다. 뒷배경으로 있던 설산에선 눈사태가 일었다. 수행원과 비서가 벌러덩 넘어졌다.
난데없는 지진. 수행원이 위를 쳐다봤다.
“뭐, 뭡니까! 이건!”
협회장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솟구치고 있었다. 자욱한 눈안개 탓에 시야 확보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후우우웅.
바람이 남에서 북으로 불었다. 남풍이 낮게 가라앉은 눈안개를 북 방향으로 몰아냈다.
여비서가 반쯤 넋이 나간 눈동자로 중얼거렸다. 얼음 성채가 모습을 완연히 드러낸 것이다.
“이런 불모지에… 어떻게…….”
얼음 성채는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높이와 위세가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과 견줄 만했다. 기하학적인 눈꽃 문양과 얼음 조각이 벽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단순 기지라기엔 미적으로도 가치가 높았다.
“잘 왔네.”
협회장이 뒤돌아서 우리에게 미소 지었다. 그는 자랑스레 날개를 하늘 높이 들어 보였다.
“이곳, 엔젤 팩토리아(Angel Factoria)는 자네들을 환영하네!”
펭귄 몸이 Y자를 그렸다. 태양을 경배하는 듯한 거룩한 자세였다.
* * *
협회장은 일행을 안내했다.
“야- 이거 내 집에 누구를 들여 보긴 이백 년 살면서 처음이군그래.”
수행원은 탄식을 터뜨렸다.
“세상에.”
외관도 으리으리했는데, 들어오니 혀가 절로 내둘러졌다.
“여기 있는 기계 하나하나만 해도 삼십 년은 앞서 있잖아?”
수행원이 말총말총 눈을 반짝였다.
“이런 것들에 조예가 있나 보군.”
협회장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 수행원은 퍼뜩 끄덕였다.
“이과 출신입니다.”
“취업은 잘되겠구먼. 근데 심심풀이로 만든 것들이라 그다지 눈여겨볼 것들은 아니야.”
“가당치도 않습니다, 협회장님! 이게 심심풀이라뇨! 이 중 몇 개만 발표돼도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세상이 뒤집히든 엎어지든 관심 없네. 그래도 그리 좋아하니 갈 때 하나 챙겨 가게나. 남극에 온 기념품으로.”
“저, 저저정말입니……?! 읍읍-!”
수행원이 호들갑을 떨자 비서가 그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조용히 한쪽을 향해 눈짓했다.
“눈치 좀 챙기자, 응?”
비서가 속삭였다. 수행원의 목젖이 위아래로 꿀렁였다.
또각, 또각.
구둣발이 노면을 거칠게 때린다. 폭군 메디아는 현재 인내심을 시험받고 있었다.
‘이십 년 넘게 어디 숨어있나 했더니.’
설마 이런 극지방에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나. 전국 팔도를 다 뒤져 봐도 코빼기도 안 보인 이유가 있었다.
‘마음 같아선 한 소리 쏘아붙이고 싶지만.’
메디아는 협회장의 뒤통수를 노려보는 것에서 그쳤다.
빅터 포이즌은 괴짜다. 나사가 풀려도 단단히 풀린 기인이었다.
그렇지만 빅터 포이즌이 아득한 천재임은, 메디아도 못내 인정했다.
‘아빠의 업적은 인류 문명을 백 년을 진보시켰다 평가받고 있어.’
빅터의 발자취는 굵직했다. 인류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우주를 엿볼 수 있게끔 한 실마리도 그가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일선에 나서는 법이 없이 칩거 생활을 고집했다. 세간이 그의 무책임함을 헐뜯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빅터는 세속에 연연하지 않는 이였다.
‘아빠가 자기들한테 해 준 게 얼만데.’
빅터를 보는 메디아의 눈동자에 애증이 어렸다. 밉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 안 그래도 명석한 머리로 그는 이백 년을 넘게 살았다. 그쯤 되면 정신이 말라비틀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포이즌가에는 대대로 자살자가 많았다. 선조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며 주어진 수명을 포기했다. 때문에 지금에 와선 그 수가 셋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민폐쟁이 언니에게도, 펭귄 슈트를 입고 뒤뚱거리는 아빠에게도. 메디아는 매몰차게 쓴소리 할 수 없었다. 미쳤어도 두 사람은 유이한 그녀의 가족이었으므로.
‘나라도 정신 줄을 붙잡고 있어야 해.’
메디아는 침음을 내며 광인이 되어 버린 빅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녀 상봉의 기쁨과 안타까움. 민트색 동공에서 희비가 교차했다.
곧 한 공간으로 들어섰다. 빅터의 개인 연구실이었다.
“오……!”
천장은 둥그런 돔형이었는데, 수천 개의 모니터들로 빽빽했다. 화면 틈새로 삐져나온 전선이 탁탁, 스파크를 튀겼다. 연구실 정중앙의 원탁 위로는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들 편한 자리에 앉게나.”
상석에 앉은 협회장은 뱃가죽의 지퍼를 마저 내렸다. 갈라진 배 사이로 검정 다리가 불쑥 뻗어 나왔다. 그는 이너로 까만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빅터가 대뜸 강검마에게 물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
강검마는 반문했다. 갑자기 뭔 소리인가 싶었다.
“어떤 게 말입니까?”
“자네들이 남극에 오겠다고 한 정당 20억씩 하는 신약을 먹고 온 걸 알고 있네. 하지만 보게. 펭귄들은 맨몸으로 극한의 추위를 버티지.”
“…….”
“우리 인간은 참 나약하면서도 오만한 생물이야. 자연에 적응하기보다는 극복할 방법을 찾고자 하지. 그런데 그렇기에 우리가 여태껏 생존할 수 있었던 게야. 어느 하나에 지려고 하질 않거든. 자연에게도, 마족에게도. 여튼, 읏차- 드디어 다 벗었군!”
탈의를 마친 빅터는 스트레칭을 했다. 이백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동작이 유연했다.
그는 잠시 숨을 돌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천검, 자네에게 준다는 선물을 바로 보여 주도록 하지. 젊은이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진 않거든.”
강검마는 떨떠름한 기색으로 주억였다. 증여 시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주는 게 어디야.
“피드백이 빨라서 좋군.”
빅터가 손가락을 튕겼다. 벽과 천장을 꽉 채운 화면에 일제히 불빛이 들어왔다. 지지직-, 노이즈가 화면 안에서 자글거렸다.
“협회 직원을 통해 연락받았네. 얼마 전에 ‘네피림 신전’을 방문했다더군.”
강검마의 얼굴이 굳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나. 차피 숨길 일은 아니었지만.
강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신관은 만나 봤나?”
“만나긴… 했습니다.”
“4군단장 퍼머쉬가 머지않아 게이트를 뚫고 인세를 침범한다. 해서 이유를 묻고자 자네가 신전을 방문했다. 내가 보고받기론 이런데, 맞나?”
강검마는 동요 없이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퍼머쉬에 대해서 얼추 들었겠군.”
“인간의 뼈와 살을 모으는 독특한 취미가 있다고까지는.”
“이유는 못 들은 모양이군.”
“그야 뭐, 그냥 미친놈이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하하, 이 친구도. 내 살다 살다 군단장을 미친놈이라 부르는 인간은 처음 보는군. 공포의 대상을!”
“협회장님이 금방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극복하기에 인간이 대단한 거라고. 제게 있어 군단장은 공포의 대상이 아닙니다. 극복했으니까요.”
“불세출의 영웅이라길래 기대했더니, 기대 이상이로군. 실력도 당연히 출중하고, 일단 패기가 대단해. 정말 뭐든지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눈빛이야.”
빅터가 서글서글 웃으며 다리를 꼬았다. 화면을 등져서 그에게 역광이 드리웠다.
“하지만 퍼머쉬만큼은 패기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군단장이 아니야. 게이트를 몸소 뚫고 나온 퍼머쉬라면 더더욱.”
“…그만큼 강합니까?”
“놈은 땅 속성 마법으로 ‘골렘’을 만드네. 인간의 육골은 그 뼈대를 만드는 것에 쓰이지. 군단장이란 직급에 걸맞게 군대를 거느린다고 볼 수 있네.”
그 말을 들은 강검마는 혀를 찼다. 물량전은 가장 꺼리는 싸움 방식이었다. 이쪽에서도 영웅을 군집하면 되겠지만.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거야.’
쿠아른, 그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득의양양했더라니. 강검마는 까득 어금니를 갈았다.
“말했듯 인간은 나약하네.”
빅터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퍼머쉬의 골렘 군대는 아무리 강인한 영웅이라도 풍비박산을 내 버릴 거야. 그도 그럴 게, 골렘은 돌로 만들었고 인간은 상대적으로 물렁물렁하니까 당연하지.”
빅터는 지휘자처럼 허공에 손짓했다. 촘촘한 화면들은 하나의 스크린이 되어 영상을 송출했다.
“……!”
너 나 할 것 없이 눈 밑과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남극의 좋은 점이 뭔지 아나?”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협회장 빅터는 다리를 꼬았다. 그가 팔걸이에 위엄 있게 두 손을 얹으며 말한다.
“자연 냉동고란 걸세. 자연 방치 해도 절대 상하지 않는 데다 너무 추워서 자동 살균도 되지.”
빅터는 엄지를 추켜세워 어깨 뒤를 가리켰다.
“그 덕분에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 저것들이 섞지 않고 저러고 있는 것이지.”
모니터에 담긴 수백의 신형들.
“인간은 오만해. 저것들을 사이보그로 개량하여 부려 먹을 정도로.”
그것은 고대인의 철천지원수요, 강검마가 참살했던 존재.
“내 자네를 위해 준비한 선물일세.”
천사들이었다.
우발적이었던 날갯짓이 태풍이 되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