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4화(240/300)
244화 협회장 빅터 포이즌 (1)
천 클래스의 수업 루틴은 단순하다. 아공간에서 죽고, 죽고, 또 죽으면 됐다.
“어우, 진짜.”
웨폰은 명치께를 어루만지며 쓰린 속을 달랬다.
“…그래도 한 달 지났다고 살자 수업해도 토가 좀 덜 쏠리네.”
살자 수업은 ‘죽음에 익숙해지기 수업’의 줄임말이자 은어였다.
웨폰은 쓰게 웃으며 좀 전을 상기했다.
…
수업 종이 땡- 울림과 동시에 메아인 교수님을 향해 달려든다.
생도들은 나름 필사적으로 무장을 휘둘렀다.
정직하게 검을 내지르기도, 때론 비겁하게 측면을 노리기도, 시야의 사각지대에서 무장을 투척하기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해 본다.
그 결과는…….
퍽!
뼈가 깨지는 소음을 자장가 삼아 눈을 감는다.
“꿱.”
시야가 흐릿해진다. 창틀에 스미는 따사로운 햇살이 점차 뿌예진다. 눈앞에 암막이 드리운다. 한 점의 빛마저 사라진다.
다음 순간, 눈을 번쩍 뜬다. 캄캄하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먹물이 피부와 정신을 침식한다.
꼬르르륵.
사위는 칠흑의 바다다. 콧구멍 눈구멍에서 뽑혀 나오는 검은 거품. 전신을 사방에서 꾹 짜부라뜨리는 압박감. 발버둥 쳐 보지만 소용없다.
죽음까지 다다르는 과정은 정적, 그 끝은 심연이다.
자, 이제 죽음에서 눈을 떠 보자.
간신히 눈동자만 굴려 본다. 함께 피 주검이 됐던 동료가 좀비처럼 꿈틀거린다. 흐리멍덩한 눈빛에 이채가 스친다. 거칠게 호흡해 본다. 뇌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 생사를 확인한다. 그리고 안심한다.
‘사, 살았다……!’
기쁨에 겨운 눈물도 잠시다. 삶의 소중함을 느낄 새도 없이 만력님이 정권을 짜낸다. 주먹은 허공을 가른다. 울퉁불퉁한 관절 마디마디가 투명한 망막 위로 어린다.
퍽!
턱뼈가 자리를 이탈하고, 코와 광대가 폭삭 주저앉는다. 피격 범위가 좁을수록 압력은 증폭된다. 내부에서의 압력이 시신경과 안구를 밀어내 달팽이처럼 눈알을 뱉어 낸다.
“살려 주……!”
정정한다.
퍽!
죽음까지 다다르는 과정은 끔찍하고.
“꿱.”
그 끝은 비참한 것이다.
…
자신은 등불에 뛰어드는 나방이었다. 죽을 걸 알면서도 앞만 보고 무작정 뛰어들어야 했다.
매일매일 스무 번씩. 주 5일, 주말 제외.
웨폰은 웅크렸다. 무릎을 꼭 끌어안은 손가락이 후들후들 떨렸다.
“으으…….”
그때 웨폰 옆으로 누군가 앉았다.
“여기 자리 비지?”
아벨은 앉고 나서 양해를 구했다. 이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반문하려는 찰나, 아벨이 입을 감싼다.
“토할 것 같아.”
“…….”
웨폰은 입술을 쓱 빨아들이며 주둥이를 봉쇄했다. 구토는 전염병이다. 옆 사람이 아침 식사를 뽐내면 질세라 이쪽도 그러고 싶어진다.
‘오늘은 안돼.’
웨폰은 궁둥이를 달싹여 거리를 벌렸다. 아벨이 찌릿- 따끔한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피자 공장이었던 녀석이 저러니 괘씸했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았다. 웨폰에게 접근한 데엔 의도가 있었다.
“저기, 그… 있잖아.”
말문은 헛기침으로 열었다.
“오늘 강검마가 결석한 이유 알아?”
“부장의 결석 사유?”
웨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알고는 있어. 아침에 잠깐 전화할 일 있어서 그때 들었거든. 학원장님이랑 급히 출장 갈 일 있다던데. 근데 정확하게는 몰라. 안 물어봐서.”
“일부러? 왜?”
“부장은 우리랑 노는 물이 좀 다르잖아. 기밀일 수도 있을 텐데, 묻는 건 좀 그렇지.”
“아, 하긴…….”
말을 잇기 전 아벨은 뜸을 들였다. 시시콜콜한 대화로 물꼬를 텄기에 지금부턴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뒷골목에서 접선하는 스파이처럼 은밀히 말했다.
“혹시 검마, 12월 18일에는 뭐한대?”
웨폰이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부장한테 따로 들은 건 없는데. 애초에 부장은 그런 이벤트에 무관심한 성격이라서. 자기 팬 사이트의 존재도 내가 말해 줘서 알 정도니까. 그날이 ‘칠걸 축일’이란 것도 아마 까먹었을걸.”
칠걸 축일. 발로르 호아킨의 제자들, 칠 걸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는 날이다.
축일은 초창기엔 엄숙한 분위기였다. 예배당에 모여 눈물을 흘리며 금식 기도를 했단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던데.’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는 법.
축일의 거룩함은 상품화가 되었다. 이에 불만을 제기하는 몇몇 어른들도 있었지만, 민심은 이미 상술에 혹해버렸다. 밥 굶고 기도하는 것보다야 이편이 나았으니까.
그리하여 칠걸 축일은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벤트로 변했다. 미사용 촛불은 알록달록한 장식과 조명으로, 금식 기도는 선물 교환식으로 바뀌었다.
호아킨 아카데미에서도 축일 행사가 개최된다. 더욱이 칠걸 영웅에 근간을 두고 있기에 스케일이 성대했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아벨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순간 웨폰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벨 얘, 내가 모를 거로 생각하나?
“축일에 있는 무도회 때 부장 상대가 누구인지, 결국 그거 물어보려는 거잖아.”
아벨은 얼굴이 이상하게 변하더니 곧장 화악 붉어졌다.
* * *
한편.
남극기지, 엔젤 팩토리아는 대혼란에 빠져 있었다. 빅터 포이즌만이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있었다.
‘맙소사.’
수행원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커졌다. 쩍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수행원으로 지내면서 별의별 상황을 보고 겪었다. 덕분에 수십 년 만에 나타난 협회장님과 마주하고서도 나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나 현재, 수행원은 느끼는 감정을 여실히 얼굴에 드러냈다. 감정을 숨기기 어려웠다. 수천의 모니터가 송출하는 영상은 그만큼 거대한 충격이었다.
회백색의 공동에 빼곡히 도열해 있는 신형들. 덕지덕지 쇠붙이를 붙이고 있었으나 저 상아색 날개로 하여금 알 수 있었다.
신의 대리인. 천사였다.
“저, 저자들이 정녕 천사입니까?”
수행원의 물음에 협회장은 입꼬리를 늘였다.
“아무렴. 내 체면이 있지, 설마 짝퉁을 진짜라고 우기겠나. 정품 보증서는 없지만 천사 맞네. 그리고.”
의자에 앉은 협회장이 쿵쿵 발을 굴렀다.
“남극 지하에 있지.”
수행원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발밑 어귀와 모니터를 말없이 번갈아 볼 뿐이었다.
빅터가 껄껄 실소를 터뜨렸다.
“많이들 놀란 모양이군. 하긴, 공룡의 화석도 아니고 온전한 모습으로 있었다면 나였어도 같은 반응일 것 같군.”
잠자코 있던 비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 하지만 협회장님 만약 저게 진짜 천사라면…….”
“왜. 신성 모독이란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그런데 어쩌나. 신성 모독이 맞는데 말이지. 그리고 자네들, 둘째의 비서와 수행원이면 알지 않나.”
빅터의 안광이 가라앉았다. 비서와 수행원은 숨을 죽였다.
“우리 포이즌 가문의 비사를.”
고대인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참살한 게 천사였다. 구전 상으론 고대인들이 불경한 죄를 저질러서 그리됐다고.
어긋난 비사였지만, 현대인인 비서와 수행원은 그렇게 배웠다. 고대인인 메디아도 그 부분에 대해선 알려 준 바가 없었다. 그녀도 진실을 몰라서였다. 그만큼 고대인들의 내막은 정보가 적었다. 인류가 ‘세기’라는 단위를 쓰기 이전의 사건이므로.
현대인은 당장 700년 전 칠걸 축일의 기원도 모른다. 수천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리가 만무했다.
다만 인간이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짓된 신들이 인간의 역사에 간섭한 탓이었다. 그들이 왜곡된 정보를 설파했다.
“오해가 생긴 듯하여 말하네만, 내가 천사들을 발견한 건 순전한 우연이었네. 남극에 살게 된 이유 또한 우리 포이즌 가문의 먼 옛날 비극이랑 무관하단 소릴세.”
비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협회장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만 세상은 믿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이 이걸 알면 협회장님, 아니 포이즌 가문 자체가 비난을 면치 못할 겁니다. 천사를 사이보그로 만든 당사자가 고대인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네.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들 하겠지. 아니면 고대인과 마족은 한통속이라 말하겠지.”
빅터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모니터로 손을 뻗었다.
타닥.
손가락과 화면의 틈에서 정전기가 일었다. 인간과 기계가 교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태어났을 적엔 이런 전자 기기란 것 자체가 없었지. 기계 장치는 있었지만, 석탄을 태워 증기를 뿜는, 스마트폰이 범람하는 지금에 비하면 아주 원시적인 물건들이었어.”
빅터가 모니터를 바라봤다. 예스러운 아날로그 티브이를 보는 그 시선이 그윽했다.
“근데 정말 우스운 일이 뭔지 아나?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시대가 빠르게 변했네. 길거리에선 말발굽 소리가 줄더니, 어느 날은 바퀴 달린 것들이 굴러다니더군. 얼마 지나지 않아선 철덩이가 하늘을 날아다녔지.”
그는 모니터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하나가 아닌 수백의 모니터를 넓게 휘둘러봤다.
“그런 시대의 급물살에서 나는 늘 같았네. 변하지 않았지.”
빅터에겐 한때 막역했던 친구가 있었다.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였다.
친구는 빅터가 고대임을 알았다. 그래도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어느 날, 친구는 말했다.
-빅터, 나는 네가 고대인이어도 상관없어. 인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면 다 존중받아야 마땅해!
그러고 세월이 흘렀다.
친구에게 있어선 긴, 그러나 빅터에겐 사뭇 짧은 세월이.
십 년. 친구는 어른이 되었고, 빅터는 소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제야 친구는 깨달았다.
고대인과 인간의 괴리를, 당연시되는 시간마저 공평하지 않음을, 그리고 이 초록 머리는 그것에 조금도 기뻐하지 않다는 것을.
훅.
친구는 빅터에게 돌을 던졌다.
-저주받은 고대인! 네놈이 그렇게까지 오래 사는 이유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의 수명까지 끌어다 써서야!
십 초.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인간이 하늘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즈음에, 영웅 협회도 같이 창립됐지. 그때쯤 돼서 그 친구는 뭐 하고 사나 하고 찾아봤네. 호기심이었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 그리고 그 친구를 찾았네. 뉴질랜드에 있었지.”
“…….”
“그래서 바로 가 봤지. 그러자 웬걸? 그 친구가 젊은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게 아니겠나!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보았지! 그러니까 뭐라 했던 줄 아나?!”
협회장이 휙 뒤돌아 우리에게 소리쳤다.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 성함을 어떻게 아세요?’라는 말이 돌아오더군!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어.”
“…아빠.”
메디아는 무의식적으로 뻗던 손을 거두었다. 빅터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네. 내가 칩거를 다짐한 게. 장소를 물색했지. 인간의 손때가 타지 않은 곳, 그러면서 시대의 흐름에서 유리된 장소.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곳이 자네들이 밟고 있는 이 남극 땅이네.”
빅터의 꿈은 소박했다. 친구와 맥주잔을 부딪치며 옛일이라며 회포를 풀고 싶었다.
그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이 얼음 밭 밑에 우리 고대인들의 원수가 잠들어 있더군. 얼마나 놀랍던지!”
세상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광인이 되길 택했다. 미치지 않고선 버티기 힘든 세상이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지. 저 저주스러운 날개쟁이들을 인류를 위한 군단으로 만들어 내리라! 그것을 내 남은 과업이라 생각하며 수십 년을 바쳤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마침표를 찍게 되겠군.”
빅터가 성큼성큼 걸어 내 코앞에서 멈췄다.
“4군단장 퍼머쉬를 상대할 때 저 천사 군단이 도움이 될 걸세. 비록 수천 년이 지나 내구성엔 문제가 있어도, 저들을 부리면 인류가 흘릴 피는 줄어들 테지. 추가로 원하는 세팅이 있으면 내 준비해 두겠네. 기술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음세. 대신…….”
나는 흠칫 뒷걸음질 쳤다. 빤히 쳐다보는 빅터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덥석.
돌연 빅터의 양손이 내 한 손을 감싸 쥐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이 손으로 나를 베어 줄 수 있겠나?”
맞잡은 손에서 광인의 회한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