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5화(241/300)
245화 협회장 빅터 포이즌 (2)
고대 인류의 가장 큰 난제는 생존이었다.
오늘을, 내일을, 내년을, 그 이후로는 어떻게 살아남을지 늘 걱정했다.
맨몸의 인간은 나약하다.
날카로운 엄니와 손톱을 가진 맹수 앞에선 맛 좋은 먹잇감이었다.
몇 단계 아래 체급의 침팬지에게도 상대도 안 된다.
선조들은 인간이란 종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했다.
단일 개체 인간의 전투력은 토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겨울의 추위를 막아 줄 털도 적다.
손톱과 발톱은 자갈에 치여도 깨진다.
피부는 나뭇가지에서 쓸려 상처가 난다. 질병에도 취약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곤 아랫도리를 가려 주는 풀 한 포기가 전부였다.
인류는 머리를 맞댔다.
우리가 번영하려면…….
‘사람들을 더 모아!’
뭉친 인류는 이성과 합리로 고민했고, 집단과 지성으로 해답을 제시했다.
정답이 아니더라도 더 나은 방향이라 믿으며 행했다.
그 덕에 인류는 문명을 일궈 낼 수 있었다.
스스로를 무장해 맹수를 사냥했으며 천재지변에 대처했다.
생존이란 족쇄에서 해방된 인류는 무럭무럭 세를 불려 나갔다.
생활 반경을 육지와 바닥, 나아가 하늘로까지 넓혔다.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라도 기어이 발을 들이고야 말았다.
맹수의 이빨과 손톱은 사치품으로 전락했고, 천재지변도 더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인간은 오만하네.’
맹수를 겨누었던 창칼이 서로를 향했다.
우주적 시선에 이 먼지만 한 푸른 별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고자 남의 것을 빼앗았다.
눈먼 날붙이는 거리낌 없이 타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인류는 타락했다.
욕심과 이기만이 범람하는 어두운 시대였다.
인간성에 대한 호소는 웃기지도 않은 저속한 농담으로 추락했다.
그렇게.
인류사가 검붉은 피 얼룩덜룩해질 무렵에 뜻하지 않은 적이 침략했다.
마왕군, 1차 인마대전이었다.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인류는 절벽으로 내몰렸다.
인류는 전선마다 무력하게 참패했다.
당연했다. 타성에 젖어 인류가 해이해져 있을 때 마족은 하나의 목적을 갖고 군집했으므로.
인류의 말살.
「저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은 인간에게 너무도 아깝도다. 모두 수몰시켜 버리거라!」
3군단장 베스나가 해일을 일으키며 외쳤다.
…
「인간을 몰아내라. 그들의 흔적을 전부 불태워라. 진정한 악의는 화염과 같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거라.」
5군단장 아고르의 화염에 삼라만상이 작열했다.
…
「대지를 인간의 핏물로 적셔 비옥하게 만들라.」
4군단장 퍼머쉬가 인간의 살과 뼈를 조립하며 거들었다.
…
「푸른 별의 공기가 완연한 붉음으로 탁해졌을 때.」
2군단장 쿠아른은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
「약속의 땅에서 그분의 강림을 준비할 것이니.」
1군단장 라이칸이 천명했다.
…
말살 선언에 그제야 인류는 서로를 겨누었든 창칼을 내려놓고 뜻을 합쳤다.
인류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구걸해 봤자 저 마족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란 걸 말이다.
먼 옛날 잊어 뒀던 ‘생존’이란 명분 아래 인류는 다시금 뭉쳤다.
하지만 전황은 턱없이 불리했다.
당장에 악귀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데, 병사들은 허둥지둥하기 바빴다.
전투조차 성사되지 못하는 상황이 허다했다.
일방적인 학살이 비일비재했다.
인간 사회가 뿌리 깊이 썩어 문드러진 탓이었다.
그랬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단합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건 기적이 아니라 요행이었다.
인간의 깃발이 부러지고, 군사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왕군에선 전장의 나팔 소리가 나날이 커져만 갔다.
인류는 촛불처럼 빛나던 마지막 희망마저 꺼지는 듯했다.
‘인류의 명운이 다했구나.’
모두가 체념했다.
그러나 영웅은 모두가 절망할 때 비로소 등장하는 법.
「인류는 승리한다.」
「가능하다.」
「인간의 불씨는 여기서 꺼지지 않는다.」
난세의 영웅은 희망이란 화톳불을 지폈고 승리를 쟁취했다.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
여기서, 빅터 포이즌은 생각했다.
‘인간은 나약하면서도 오만하지. 버팀목이 없으면 쉽사리 부서지고 썩어 버려.’
백 년만을 살아가는 인간에게서 한 발치 떨어진 곳에서.
‘작금에 와서도 마찬가지. 현 사회는 부패가 만연하고, 조만간 마족이 침공하겠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인간의 역사와 악의를 바라봤다.
고찰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그는 수명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고대인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구제주가 있어야 해. 인류가 악의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할 구세주가! 인류뿐만 아니라, 나 역시 구원받겠어!’
거기에 빅터는 개인의 작은 염원도 곁들였다.
‘그러니 이 지긋지긋한 삶을 끝낼 수 있다면…….’
비틀린 염원이었지만 말이다.
‘그자에게 죽고 싶다!’
과연 광인다운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 * *
나는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 꼬여 나올 말이 이뿐이었다.
“…뭐라는 겁니까?”
“부디 그 손으로 나를 베어 달라고 말했네, 천검!”
협회장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다만 나를 빤히 쳐다보는 맑은 눈빛은 광기가 가득했다.
이게 그 요새 말 많은 ‘맑은 눈의 광인’ 그건가.
이백 살도 넘게 먹었다는 양반이 참 젊게 사는구나 싶었다.
“아빠!”
결국 참지 못한 메디아가 나섰다.
그녀는 빅터의 손목을 비틀 듯 움켜잡았다. 거진 팔을 꺾는 모양새였다.
“뇌가 맛이 가도 그렇지, 뭐? 검마한테 죽여 달라고?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메디아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목소리는 날카로운데 표정은 창백했다.
“둘째야.”
그런 딸아이의 심란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빅터는 멀뚱멀뚱 메디아를 마주 본다.
“너도 알지 않느냐. 우리 포이즌 가문 일가 중에 제 수명을 산 사람은 없다는 걸. 그러니……!”
장광설을 쏟아 내는 입 우측으로 메디아의 손찌검이 날아간다.
철썩.
메디아는 내가 당황할 순간도 주지 않았다.
올라갔던 그녀의 팔이 재차 호를 그린다.
철썩.
이번엔 왼쪽.
‘어우.’
폭군의 손맛은 매웠던 걸까.
빅터의 양 볼이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우리 사회는 웃어른에 대한 공경이 기저에 깔려 있다.
부모한테 말대답만 해도 호통이 날아온다.
한데 자식이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을 우리는 패륜이라 부른다.
다른 말로는 후레자식.
지금 메디아는 제 아빠를 때림으로써 후레자식이 되었다.
보는 눈이 세 쌍인데도 불구하고 제 아빠의 뺨을 시원하게 갈겨 버린 것이다.
생도들에게 항상 모범을 보이던 학원장님께서.
‘…근데 저럴 만도 해.’
자식 앞에서 자신을 죽여 달라고 떠드는 부모를 보는 심정이란.
메디아의 왼편 가슴에 박힌 굵직한 대못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녀의 아버지란 사람이 무심결에 박아 넣은 대못이었다.
고대인의 애환은 비단 빅터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딸, 메디아 포이즌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럼에도 메디아는 미치지 않았다.
‘…….’
나는 짐짓 슬픈 눈으로 메디아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학원장의 자리에서 새 시대의 등불이 되어 생도들을 굽어본다.
늙지 않기에, 늘 같은 곳에서 차기 영웅들의 등대를 자처하고 있다.
메디아는 그 삶에 만족하며 감사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생도를 위해 기꺼이 인생을 바쳤다.
아카데미 생도를 향한 애정은 기적의 가호 M의 정사만 봐도 알 수 있다.
[시인의 가호]로 전쟁의 전조를 알아챈 즉시 움직였다.우선, 영웅 협회와 국제 연합에 보고했으나 그들은 외면했다.
‘이 평화의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
‘정치적 간섭 말고 학원장은 학원장의 일이나 똑바로 하라.’
현장 증거가 있다면 그 아둔한 놈들도 납득할 수밖에 없으리라.
소귀에 경 읽기라 판단한 메디아는 곧장 마경으로 시찰을 떠났다.
그리고 척박한 마경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2군단장 쿠아른의 손에 의해서 아주 천천히, 고통스럽게.
싸늘한 주검이 돌아오고 나서야 인류는 메디아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메디아의 죽음은 느슨했던 인세에 경각심을 불어넣었다.
이후 아카데미와 협회, 연합은 단숨에 결집했다. 대의명분의 중심엔 메디아의 희생이 있었다.
‘희생.’
누군가 목숨을 포기하려 할 때 메디아는 자신을 희생했다.
그 헌신은 씨앗이 되어 인류는 승리라는 열매로 맺어졌다.
훗날 현자 메디아는 발로르 호아킨과 더불어 단 둘뿐인 성웅(聖雄)으로 만신 전에 오른다.
“아빠…….”
그런 메디아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울먹이고 있었다.
“진짜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잖아. 대체 왜 이렇게까지 변한 거야?”
“…….”
빅터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이쯤 되니 메디아도 직감한 듯하다.
자신의 아빠가 맛이 가도 단단히 갔다는 것을.
“너희 두 사람, 일단 나가 있어…….”
그녀는 빅터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수행원과 비서에게 명령했다.
“예, 옙……!”
눈치 좋은 비서와 수행원은 부리나케 연구실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거수경례는 빼먹지 않는다.
직업의식이 투철하다기보단 후환을 대비하기 위함일 터다.
‘하긴 폭군의 곁을 지키는 이들인데 눈썰미가 보통내기는 아니겠지.’
내 시선은 두 사람이 떠나간 문 쪽에서 다른 두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그곳엔 포이즌 부녀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둘째야… 나라고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단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삶이 버겁구나.”
“버겁다고 삶을 포기하는 게 말이나 돼? 아빠가 세운 협회는? 당신을 믿고 수십 년을 따른 창성, 그 고릴라는 바보야?”
“협회는 증명했잖니. 나 같은 뒷방 늙은이 없어도 이십 년을 건재했어. 그리고 후임도 있지. 둘째, 네가 말한 뮈라 그 친구는 나 이상으로 잘해 줄 거야. 그도 그럴 게, 그들과 같은 일반인이니까.”
핑계를 들은 메디아는 콧방귀를 끼더니 일갈했다.
“얼씨구, 핑계를 열심히도 준비해 놨네. 근데 가장 중요한 건 빼먹고 말하네? 검마한테 자신을 베어 달라는 거, 그건 뭔데? 그것도 삶이 버겁다는 핑계야, 아니면 치매 증상 중 하나야?”
“선조들처럼 자살하는 건 악습이야. 이제는 끊어 내야지. 그럴 바엔 구세주의 손에……!”
“이, 이… 미친 노인네!”
치켜 올라가는 그녀의 손이 멈췄다. 내가 메디아를 막아선 것이다.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부모님이 미워도 자식이 때리는 건 아닙니다. 학원장님은 냉정을 잃으셨어요.”
메디아는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뒤늦게 죄책감이 밀려온 듯 안색이 굳어 버렸다.
나는 그런 그녀를 다독이듯 말했다.
“하지만 학원장님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협회장님은 제가 보기에도 맛이 단단히 가신 것 같거든요.”
나는 메디아를 가볍게 밀치고는 빅터 앞에 대신 섰다.
“협회장님이 어떤 마음으로 제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합니다. 삶이 지루하시고, 허무하고, 권태로우셨겠죠.”
“…….”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협회장님은 미치셨습니다.”
내 말에 협회장은 어벙한 얼굴이 되었다.
미친 사람한테 미쳤다는 게 그리 대단한 충격인가? 아니지.
진짜 광인은 스스로가 광인인 줄 모른다더니.
“제정신이 아니죠. 마족과 싸우다 죽는 선택지도 있는데도 제게 죽여 달라고 부탁한 걸 보면 말입니다.”
내 말투엔 날이 서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나는 협회장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나한테 뭔 말 같지도 않은 부탁을 해서도 있지만, 메디아를 슬프게 만들었다는 분노가 더 컸다.
이런 한심하기 짝에 없는 남자 때문에 상처 입는다는 게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제안입니다.”
나는 빅터가 그토록 바라던 사시미를 꺼내 쥐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는 메디아를 진정시킨 뒤에 말을 이었다.
“당신을 죽이진 못하겠지만, 광증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방식은 물리 치료. 사시미, 이건 주사나 메스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
나는 손가락으로 한 차례 칼날을 쓸었다.
“미친놈한텐 칼이 약이란 말이 있잖아요. 절궁한테 먼저 시술해 봤는데 효과가 기가 막혔습니다.”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는 협회장의 눈빛이 백미였다.
뭘 그런 표정을 짓고 그러시나.
“조금 따끔하세요.”
치료를 속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