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8화(244/300)
248화 혈전 (2)
나는 간만에 최설아네 집에 들렀다. 저녁을 하면서 혼테일과 대화도 할 겸해서 방문한 것이었다.
“아카데미 생활은 어때. 할 만해?”
“네!”
한우를 입 안 한가득 우물거리던 혼이 크게 끄덕였다. 입술 주변이 소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내가 티슈를 건네자 슥슥 닦고는 말문을 열었다.
“다들 생각보다 엄청 착하시더라구요! 처음엔 데면데면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챙겨 주셨어요. 특히 스피드 왜건?”
친구의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웨폰.”
“아, 맞다. 여튼 그 웨폰 님이 적응에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걔가 착하긴 해. 진국이니까 친하게 지내.”
“말이 아주 많으시고, 묻지 않은 것까지 설명해 주시는 거 빼고는 엄청 좋은 분이세요!”
어우야, 그새 한국어가 또 늘었네, 말로 사람을 다 패고. 이만한 성장세면 한국어의 마지막 경지 ‘K-풍자’도 조만간이었다.
그때, 부지런히 고기를 구워 대령하던 최설아가 끼어들었다.
“내가 손으로 먹지 말고 포크랑 나이프로 먹으라고 했지?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너 아카데미에서도 그딴 식으로 해, 어?”
최설아는 앞치마를 두른 채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혼은 지겹다는 듯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아카데미 식당에선 제대로 식기 사용해서 먹거든요?”
“근데 왜 집에선 손으로 처먹으실까요, 미스 용가리.”
“집이잖아요. 그리고 당신 앞이고. 굳이 제가 품위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만? 더구나 계약에 따라 저는 갑, 당신은 을이에요. 유념해 두시길.”
두 사람의 설전은 치열하지 않았다. 혼이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고, 최설아는 두드려 맞았다. 승자와 패자가 명백한 싸움이었다.
“이……!”
최설아는 결국 제 머리를 쥐어짜듯 움켜잡았다. 한국말을 배운 지 이제 반년 된 혼에게 말싸움을 져서 분통이 터진 걸까, 아니면 계약의 을이란 걸 새삼 절감한 걸까.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나는 묵묵히 한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고기 맛이 달았다. 육질도 연하다. 종지에 담긴 히말라야 핑크 솔트에 한 점 찍어 먹어 보았다. 옅은 짠맛이 설기처럼 혀에 내려앉고, 우아한 육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나는 최설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리 소고기만 구워서 그런지 굽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한편 최설아는 무릎은 꿇은 채로 주먹으로 땅을 쳤다. 진동이 내 발바닥에까지 전달됐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는데!”
검은 머리 짐승? 저거 대놓고 나 저격하는 거 아냐?
내가 인상을 쓰자, 혼이 대신해서 한 소리 했다.
“아랫집에서 쫓아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층간 소음이 얼마나 민폐인데!”
“용가리, 네가 나한테 끼치는 민폐는 생각 안 하냐, 어?! 주군! 저 진짜 이 귀쟁이랑 같이 못 살겠어요. 이제 마경으로 쫓아내면 안 될까요? 네? 제발요.”
최설아가 분통을 터뜨리는 가운데, 식탁에 올려 뒀던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빅스빅이었다.
[검마 님.]불빛이 들어온 액정 안에서 빅스빅이 말했다. 어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하와이섬에서 검제 님께 온 연락입니다. 원하신다면 내용을 구두로 읽어 드리겠습니다.]순간 방 안에 침묵이 일었다. 최설아는 말을 뚝 그쳤다. 혼도 들고 있던 고기를 도로 접시에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하와이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내가 대충 말해 줬기 때문이다. 최설아는 빌런이었고, 혼은 마족이니 알고 있는 게 좋겠다는 이유였다.
해서 두 가지 키워드-‘하와이섬’과 ‘검제님’ 덕에 단박에 눈치챘을 터다. 이제 시작이라는 걸 말이다.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아니. 밖에서 나가서 말해 줘. 그리고 학원장님이랑 만력님한테 연락 넣어 놔. 나 바로, 하와이섬으로 간다고.”
의자 등받이 걸어 뒀던 겉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혼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검마 님.”
혼이 말했다. 최설아도 거들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주군.”
나는 잠시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기꺼이 전장으로 함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 생존 욕구 그득했던 최설아마저도. 코끝이 찡하다.
“둘 다 마음은 고맙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손목을 잡은 혼의 손도 살포시 물렸다.
“근데 이번엔 나 혼자 가야 해.”
나는 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혼, 네가 등장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어. 드래곤은 중립적 성향의 마족이잖아. 근데 인류와 군단장의 대립에 드래곤이 나타나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혼이 작게 대꾸했다.
“드래곤은 인류의 편에 붙었다…….”
“전에야 다크 엘프 무리를 깡그리 잡아들여서 말이 안 새어 나갔지만, 그때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거고.”
이번엔 최설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아카데미 측 인사들은 아카데미에 잔류하기로 협회랑 이미 이야기됐어. 그래서 이번 일에 학원장님이랑 만력님도 참전 안 하셔.”
“어째서죠?”
“모든 인원이 하와이섬으로 쏠리면, 그만큼 아카데미 보안이 취약해지잖아. 행여라도 마족 놈들이 그새 아카데미를 치면?”
우리는 이미 배웠다. 쓰디쓴 수업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호아킨 참사의 재림…….”
“맞아. 그러니까 상비 병력은 항시 아카데미에 주둔시키는 게 맞지. 그러니까 너희는 혹시라도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벌어지면 움직여, 자발적으로. 그것까지는 안 막을 테니까.”
“예.”
최설아와 혼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방금까진 투덕투덕해 놓고서는 이럴 땐 합이 참 잘 맞는다. 뭐, 그래서 둘이 아웅다웅 잘 사는 거겠지.
“주군.”
내가 막 나가려 할 때. 앞치마를 허리에 두른 최설아가 나를 불러 세웠다.
“가장 비싼 한우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젠 소고기 물린다. 생선으로 하자.”
밖으로 나온 나는 곧바로 아공간 워프로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인천 공항. 공항에 도착한 다음에 전용기를 타고서 경유지를 한 번 거쳐, 하와이섬으로 이동하는 여정이다.
절차가 상당히 번거롭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왜냐하면, 하와이섬은 마경의 영향권이라 아공간 워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두르면 얼마나 걸리려나.”
[대략 10시간 정도 걸립니다만.]혼잣말을 빅스빅이 받았다.
[제가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 7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습니다.]“더 노력하면?”
“오케이. 다섯 시간.”
[…….]빅스빅의 나지막한 한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서둘러 움직였다. 갈 길이 바빴다.
* * *
게이트 인근은 부산스러웠다. 바리케이드와 철조망을 설치하는 인부들, 그 사이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협회 직원들, 무장과 병기 상태를 확인하는 영웅들. 다들 무겁거나 지친 기색으로 말없이 제 할 일을 했다.
그 현장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임시 막사가 있었다. 막사로는 소수의 인원만이 출입했다. 현장의 통솔 인력 및 책임자들인 검제와 협회 간부진, 일본군의 장성들이었다.
“@#*%^$&!”
그들은 몇 시간이고 전략 회의를 진행했는데, 간간이 고성과 윽박 소리가 막사 바깥으로 새어 나갔다.
인부들은 오다가다 막사 커튼을 힐끔거리곤 자기 일 아니라는 듯 제 갈 길을 갔다. 그에 반해서 협회 직원 진과 일본 영웅 일동은 막사 쪽을 초조하게 쳐다보았다. 가만 숨을 죽였다.
“…….”
양측 모두가 바랐다, 자신의 지휘관이 크게 목소리 내 주기를. 그래야 자신이 목숨을 부지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4군단장 토벌이란 명문하에 사람들이 뭉쳤다. 그러나 목숨 앞에서 한없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 또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제 부하들의 민심을 반영하듯 책임자들은 막사가 떠나가라 소리쳤다.
“장난합니까, 지금? 인제 와서 일본군이 후방을 맡겠다니요? 전력 보전하겠다는 속내가 너무 뻔뻔한 거 아닙니까!”
성 부장이 맞은편의 여성에게 이를 드러내며 씩씩거렸다. 여인의 이름은 레미. 계급은 육장(陸将. 3스타)으로 일본 육군의 수장이었다.
“저희 일본은 어디까지나 ‘보조’ 차원에서 현장에 온 겁니다.”
레미는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성 부장의 의수가 책상을 탕탕 내리쳤다. 연필과 볼펜이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이보세요. 지금 저희 좋자고 이러는 겁니까? 당장 내일 군단장이 쳐들어올 판입니다. 근데 여기까지 와서 그딴 이유를 들먹인다니요. 부끄러운 줄 아셔야죠!”
“성 부장님.”
레미는 눈썹을 곱게 휘었다. 그녀가 팔짱을 풀면서 말했다.
“소속된 집단은 다르나 제가 성 부장님보다 계급은 위입니다. 흥분해서 말실수하는 일은 없도록 하세요.”
“위면 위답게 행동할 것이지. 슬쩍 발 빼는 건 무슨 거지발싸개 같은 태도입니까?”
“거지발싸개?”
레미가 고개를 기울였다. 측근이 와서 단어의 뜻을 통역해 주고 나서야 뒤늦게 반응하는 그녀였다.
“지금 제게 욕설을 내뱉은 겁니까!? 이는 일본을 향한 대국적인 모욕으로 간주합니다.”
“네네, 간주하든지 말든지요. 여기서 발 빼면 어차피 일본은 전 세계에서 손가락질받을 텐데, 제가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어우, 영광이네.”
대화가 이어질수록 몸짓과 언어가 격해져 갔다. 점점 수위와 강도가 세지려 할 즈음, 보다 못한 검제가 중재에 나섰다.
“내 칠성에서 은퇴한 몸이라 가만히 있었네만, 도저히 눈 뜨고 못 봐주겠군. ”
레미가 주춤 뒤로 물러섰다. 노장의 기백이 그녀의 어깨를 압박했다.
“싸우고 싶으면 정정당당히 검을 맞부딪치게. 주둥아리로는 뭔 말을 못 해.”
검제가 경고하듯 말했다. 그러곤 검 자루에 손을 얹었다.
“차라리 여기서 환부를 도려내는 게 이야기가 빠를 수도 있겠군.”
레미는 얼굴에 당혹감이 차오르더니, 그 감정은 곧 창피함으로 변했다. 그녀가 쓰게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현장 통솔 전권은 제게 있지 않습니다…….”
그녀도 워리어 계위의 영웅이자 군인이었다. 누구라고 이렇게 양심 없이 행동하고 싶겠나? 후방에서 깔짝거리는 건 군인의 수치다. 하나 동시에 상명하복이 군인의 원칙이다. 최전선에 나서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받았고, 복종한다. 군대의 부조리였다.
“레미, 자네 사정은 알고 있네.”
검제가 차분해진 기색으로 말했다.
“암만 그래도 지금은 원칙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야 할 때란 걸, 잘 알지 않나.”
“…….”
레미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 있게 ‘네, 맞습니다.’라고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비통했다.
이 답답한 상황을 엎으려면 못해도 칠성급이 입김을 불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 자리엔 칠성급은 없다. 검제님은 그의 말마따나 은퇴한 칠성이었다. 발언권이 옅었다.
그제야 사정을 이해한 성 부장도 더는 쏘아붙이지 않았다. 외려 그녀에게 동정심이 들었다.
‘필요 이상으로 날이 서 있던 것도 내적 갈등 때문이었구나.’
스륵.
돌연 입구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인기척. 모두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 그때였다.
“환기 좀 하면서 하게나. 숨이 턱턱 막혀.”
창성이 천막의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온다. 모두 넋이 나간 표정이 되었다. 창성이 출두할지는 성 부장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들어오기 전에 얼핏 들었네. 지휘관들끼리 문제가 있는 것 같더군. 그럴 땐 지휘관을 지휘하는 자가 있어야 않겠나.”
창성이 입꼬리를 올리며 막고 있던 길을 비켰다. 뒤이어서 천막 문이 한 차례 더 흔들린다.
“프랑스에서 날아오다가 연락이 닿아서 픽업했는데, 시기적절했군. 타이밍이 이토록 기가 막힐 줄이야.”
막사 안으로 검은 존재감이 들어섰다. 범람했던 불안과 갈등이 일순 소강했다.
“의자 많은데 왜들 서 있습니까.”
강검마가 뒷덜미를 긁으며 말했다. 전원 다리에 힘이 풀렸다는 듯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