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4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49화(245/300)
249화 혈전 (3)
하이재킹. 네 글자지만 사자성어는 아니고 영어 낱말이다.
여하튼.
항공기 납치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난생 비행기를 몇 달 전 처음 타 본 촌놈인 나로선 몹시 생경한 단어였었다.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검마 님. 어떻게든 다섯 시간 안쪽으로 맞추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면 불가능하니까요.]한국에서 하와이섬까지 4시간 57분 커트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우리 똑똑하신 인공지능 빅스빅께서 무려 창성의 비행기를 탈취해 준 덕이었다.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엔 나도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 그냥 쉽게 탐 크루즈 형님이 출연하시는 유명 영화 한 편 찍었다고 상상하면 편하다.
그 형님은 그래도 스턴트맨을 쓰기라도 하지. 나는 맨몸으로 소화했다. 비싼 한우 처먹고서 체할 뻔했네.
오늘 참 여러모로 신기한 걸 자주 보고 하네. 공중 납치 테러범도 되어 보고, 비행기 바퀴가 어떻게 사라지는 맨눈으로 보고 말이야. 우리 빅스비 덕분이다.
[어때요? 제 유능함?]빅스빅이 으쓱으쓱하며 묻길래 료조에게 문자를 보내려 했다. 아무래도 빅스빅 시스템에 에러가 생긴 것 같다. 그냥 두면 인간에게 해악이 되는 인공 지능으로 성장할 것 같다 등등. 진솔한 마음을 담아 써 내려갔다.
그렇게 전송하기 직전에 빅스빅이 세상 억울하다는 듯 울먹였다.
[제가 왜욧!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그저 검마 님을 위해……!]인공 지능이 이래서 문제다. 이성과 합리로만 상황을 타파하려 한다. 벌써 많은 분야를 인공 지능이 침식하기 시작했다는데,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그래도 마음은 가상해서 봐준다.”
[감사! 압도적 감사! 엉엉엉.]비록 미친 인공 지능이긴 해도 덕을 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넓은 아량으로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정직하게는 이번 토벌전에서 빅스빅이 도움을 줘야 해서지만, 어쨌건.
‘나는 사람인데. 그럼, 인공 지능보다 더 계산적으로 보이잖아.’
난 그런 철면피한이 아니다. 아, 이건 사자성어다. 풀이하면 뻔뻔한 새끼란 뜻. 첫 스승님이 나를 평가하며 언급했던 두 사자성어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라는 뜻인데, 사장님은 의미를 살짝 비틀어서 풀이했다.
-여기서 뒤의 ‘미치다’란 건 ‘도달하다’란 뜻이지만, 너한텐 그냥 미쳤다란 뜻이다. 알아둬라. 넌 미쳤어. 정신머리가 나가 있지. 그냥 미친 게 아니라 미친놈들의 미친놈이다. 도덕과 상식만 겸비했다고 정상인이 아니야. 넌 나 아니었으면 사회 부적응자로 남았을 거다. 어휴, 생각해 보니 열이 뻗치네. 내가 짐승을 거둬 키워서 사람을 만들어 놨어, 무상으로!
암만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군대까지 3년 번듯이 다녀온 사람한테 사회 부적응자라니, 말이 좀 심하지 않나.
“진상 손놈 몇몇 따귀 좀 때린 것 가지고.”
전생이나 지금이나 내 행동 강령은 단순하다. 내게 공손하면 왕처럼 대하고, 개같이 굴면 복날 개 패듯 팬다.
참고 살면 병 생긴다. 그럴 바엔 병을 주는 게 낫다는 주의다.
인정한다, 내 성질이 불같다는 거. 그 성질머리 때문에 가게를 옮겨 다닌 건 말 못 할 비밀이니. 아마 깡패 새끼들이 나를 스카우트하려 했던 데는 내 성질 때문도 있을 터였다. 사시미까지 잘 쓰니, 그 쓰레기들 눈엔 내가 훌륭한 깡패 유망주였을 터다.
하지만 말이다.
그런 스승님도 이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본다면, 평가를 달리했을 거다.
1. 하이재킹하는 인공 지능 빅스빅.
2. 비행기가 탈취당했는데 젊은 나이엔 그러면서 노는 거라고 허허 웃어넘기는 부협회장 창성.
3. 그런 창성의 상관이자 펭귄 슈트 입는 협회장 빅터 포이즌.
4. 냅다 절궁의 발목부터 분쇄한 만력 메아인 포이즌.
5. 나, 강검마.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라인업 앞에선 난 명함도 못 내민다.
적어도 난 웬만하면 대화로 해결하려 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만 하는 수 없이 사시미를 뽑았을 뿐이다.
어떤가. 4번과 비교하면 굉장히 상식적이지 않은가.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른들이나 애들이나 정상인이 드무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더니, 이만하면 기적의 가호 M에서 M은 ‘Mobile’이 아니라 ‘Mad’이지 싶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
어째 진짜인 것 같네.
* * *
“천검님과 창성님을 뵙습니다!”
검제를 제외한 전원이 일제히 차렷 자세로 경례한다.
나는 이마를 긁적였다. 왜 다들 서 있어. 의자도 많은데 앉아 있지들.
‘서로 싸웠나?’
얼핏 바깥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것 같긴 하더라니.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 늦게 들어올걸.
‘아쉽네.’
불구경 다음으로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 건데, 윗사람들끼리 하는 주먹다짐이 특히나 더 재밌다.
문득 9시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돔형 건물이 삽시간에 링으로 바뀌던 장면. 양복 입은 중장년들의 땀내 나던 박투 시간. 그때만큼 왼쪽 가슴의 배지는 빛을 잃는다.
배지의 주인들은 저마다의 무술을 시연한다. 주먹을 상대의 얼굴에 구겨 넣고, 정강이를 차는 발길질이 상대를 무릎 꿇린다. 그 장면만 떼어 놓고 보면 돔형 건물은 훌륭한 무림의 온상지였다.
강호인들은 동형 지붕 아래에서 협(俠)을 실천한다. 말에는 자신만이 옳다는 믿음이 있고, 과감한 행동엔 국민의 대행자라는 사명감이 어려 있다.
의와 협을 위해선 추태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옳게 된 강호의 도리다.
여기도 다를 바 없다.
당장 내일 아침에 군단장이 쳐들어올 형국임에도, 서로 팔자 좋게 쌈박질이나 하고 있었다.
대의를 포기하고 협을 추구하는 진정한 협객(俠客)의 모범이라 할 수 있겠다. 하도 기특해서 심장이 쿵쾅거릴 지경이다.
‘그 병신같은 장면을 직관할 뻔했는데.’
내가 무산시킨 모양이었다. 빌어먹을, 침음이 절로 나온다.
관무불가침.
졸지에 협객의 행사를 방해한 관군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불청객이 됐다는 거다.
“…….”
얼음장처럼 싸한 분위기. 군기 잡힌 침묵이 막사에 내려앉았다. 여전히 전원 손날을 눈썹 어림에 딱 붙이고 있네.
나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뒤에 서 있는 창성은 말없이 내게 눈웃음만 보낸다. 그래서 대신 입을 열었다.
“쉬어.”
“존명.”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내게 길을 열었다. 길의 끝자락은 상석, 분위기가 저곳이 내 자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터벅터벅 걸어가서 상석에 앉았다.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자들 우선으로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내가 팔걸이에 턱을 괴며 심드렁하게 물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그렇게 서로 화기애애했습니까? 같이 좀 즐깁시다.”
다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
“일본 영웅 대대가 이번 토벌전에서 후방을 맡고 싶다고 말해서, 작은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영웅 협회 측 간부 한 명이 내게 사실을 실토했다. 좋게 말해 실토, 다른 말로는 고자질.
당연히 공격받은 쪽도 가만있지 않았다. 제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반박했다.
“저건 순전히 모함입니다. 저희가 아무 근거 없이 후방을 맡겠다고 말한 게 아닙니다, 천검님.”
명찰을 보건대 이름은 요시나리 레미. 어깨의 완장엔 보기 좋게 별 세 개가 박여 있다.
레미는 허리를 바르게 펴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군인답게 또박또박 한 음절씩 뱉어 냈다.
“비록 윗선의 개입이 마냥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 육군 1대대는 절궁님의 직속 부대라 인원 대부분이 궁사들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원거리 무장 부대는 후방을 맡는 것은 전술의 기본입니다.”
레미 맞은편에 앉은 협회 간부가 인상을 험악하게 구겼다.
“그럼 우리 영웅 협회는 근거리 무장 부대니 앞에서 고기 방패나 해라, 이 말씀입니까? 지금.”
“같은 말을 해도 어쩜 그렇게 삐뚤게 받아들이십니까. 합리성과 효율을 따져 봤을 때 그게 맞는다는 말입니다.”
“전쟁은 몸으로 하는 겁니다. 머리가 아니라.”
“머리를 안 쓰면 몸이 여럿 죽는 게 전쟁이지요.”
“말장난하자는 겝니까, 레미 장군?”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말장난하겠습니까. 다만 우리 군대를 욕보이려 하는 속내가 뻔해 보여 결례를 무릅쓰고 말했을 뿐입니다.”
기 싸움이 재점화됐다. 검제는 이제 포기했다는 듯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창성은 팔짱을 낀 채 내게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는 중이고, 성 부장은 조마조마한 기색으로 내 눈치를 살핀다.
결국 교통정리를 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등살에 떠밀려 하는 건 또 아니었다. 차피 내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고, 그러려면 한 번은 교통정리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쾅!
나는 사시미를 꺼내 둘 사이로 벼락처럼 내리꽂았다. 칼날이 테이블 정중앙에서 파르라니 몸을 떨었다.
“…….”
순식간에 합죽이가 된 두 사람은 나와 사시미를 번갈아 보았다. 뜨겁던 공기에 찬물을 끼얹은 상황. 내가 사시미를 까딱 턱짓하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의전상 가장 높은 게 누굽니까.”
레미 장군이 침을 꼴깍꼴깍 넘기면서 대답했다.
“칠성이신 천검님과 창성님이십니다.”
“전쟁 상황엔 상관의 말이 초군법적 권한을 갖는다는 것도 잘 알겠네요.”
레미 장군은 눈을 휘둥그레 커졌다. 열일곱인 당신이 군법을 어떻게 아냐는 것처럼. 알 수밖에. 전생에 짬밥 3년을 허투루 먹은 게 아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이 곧 법입니다. 불만 있으시면 입으로 말고 거기 꽂힌 사시미를 뽑으십쇼. 그걸로 저를 찌르든, 자결하시든 선택은 본인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
“하나 경고해 두는데, 선택에 대한 책임은 부하들도 같이 짊어질 겁니다. 자결하면 당신의 부대는 반대 측으로 자동 편입될 겁니다. 반대로 저를 찌르면 쿠데타로 여기고 일이 끝나고, 부대 전원을 영웅 재판에 회부시킬 겁니다.”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잠자코 이어지는 내 말을 경청했다.
“지휘자의 그릇된 판단에 부하들이 죽어 나가거나 고통받는 것. 전쟁은 그런 겁니다.”
분위기가 얼추 진정된 건 잠시 후였다. 나는 레미 장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장군의 의견 수용합니다. 부대 전체가 장거리 영웅으로 편성되어 있으면, 어차피 전방에 있어도 큰 도움이 안 됩니다.”
“……!”
뜻밖의 대답이 떨어지자, 레미 장군의 눈동자가 세 배쯤 커졌다.
“단, 전신 무장 같은 경우엔 탱커 및 근거리 영웅이 많은 협회 측에 치우쳐 할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토벌전 이후 성과 수당에서 일본에 가장 적게 배당합니다. 이의 있습니까?”
“없습니다.”
레미 장군은 고민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그녀 맞은편에 앉은 협회 간부에게로 시선이 넘어갔다.
“그럼, 자연히 영웅 협회가 배당 비율이 높아지겠군요.”
협회 간부가 얼떨떨한 기색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 예.”
“그리고 이번에 참전한 협회 측 영웅은 그만한 성과를 내부적으로 주는 게 좋다고 보는데.”
내가 창성을 돌아봤다. 팔짱을 끼고 있던 창성도 나를 쳐다봤다.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주억였다.
“부협회장의 직명으로, 이번 참전 영웅들은 전원 한 단계 승진을 약속하지. 더 좋은 성과를 내면 몇 단계 승진도.”
역시 창성. 시원시원하구먼.
“좋습니다.”
나는 도로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입을 쩍 벌린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러다 입안으로 파리 들어가겠네. 내가 탁자에 꽂힌 사시미를 회수하며 말했다.
“남은 건 일단 밥부터 먹고 합시다. 한참 싸워서 서로 배고플 거 아닙니까. 그리고 밤새야 할 거 같으니까 양치도 하고 오세요.”
전원이 벌떡 일어나 기립했다. 짤랑거리는 쇳소리. 그들이 가슴팍에 매단 배지며 휘장이며 요란하게 치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