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5화(25/300)
25화 중간고사 (6)
놀란 기색으로 웅덩이 쪽으로 도착한 아벨과 그녀의 조원들.
앞을 바라보는 눈동자들이 크게 떨렸다. 선뜻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숲이었던 장소는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쓸려 나가 삭막한 벌판이 되어 있었고, 레온과 그의 조원들은 진이 다 빠진 기색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니, 애초에 무슨 일이 있었어야 이렇게 될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먼젓번에 랑(狼) 클래스에 들렸을 때, 슬쩍 얼굴만 텄던 자그마한 여학생이 구조 요청해 달려왔건만, 이미 상황은 종료됐는지 마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와주러 왔으면 빨리 와서 좀 도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참상을 바라보고만 있자, 스피드 웨폰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순간 아벨은 정신을 깨우고 웅덩이 쪽을 향했다.
그녀의 조원들도 별말 없이 뒤를 쫓았다. 진흙에 등을 묻고 누워 있는 스피드 웨폰에게 다가간 아벨이 입을 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스피드 웨폰은 대답 대신 눈짓으로 웅덩이 쪽을 가리켰다. 그 말에 나란히 서 있던 그녀 조원들의 시선이 돌아가더니 전원이 일제히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원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떨었다.
“저, 저거 뭐야?”
머리가 잘려 나간 비늘 덮인 시체. 어깨 아래만 웅덩이 위에 둥둥 떠다녔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인(魔人)의 싸늘한 주검.
시체 앞에는 핏물을 울컥거리며 간신히 숨을 고르는 강검마를 어깨동무하고 부축하는 레이첼이 보였다. 순간 아벨의 머리가 띵- 했다.
처음 보았을 때, 강검마에게는 눈에 띄는 외상은 없으나 호흡을 가다듬지 못하고, 숨을 내쉴 때마다 피 섞인 가래를 토하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듯 눈동자가 탁하게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벨이 같은 조의 여학생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그녀도 매한가지지만, 일단 사람 목숨이 우선이었다.
“지금 당장 치유 계열 가호를 발현시켜!”
평상시와 다른 격앙된 어조에 연두색 머리칼의 조원이 화들짝 놀라더니 스태프를 뻗어 가호를 발현했다.
솜사탕처럼 생긴 형광의 무언가가 강검마를 담요처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초점을 잃어 가던 검은 눈동자에 서서히 이채가 감돌았다.
레이첼이 눈물, 콧물을 찔찔 흘리며 강검마를 껴안은 채로 그의 얼굴을 풍만한 가슴에 비벼 댔다. 뒤이어 레온과 스피드 웨폰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벨이 미간을 좁힌 채 강검마와 레이첼을 번갈아 봤다. 유치하게 이런 걸 따질 상황은 아니었지만,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낯선 감정이 속을 간지럽힌다.
‘굳이 저렇게 딱 달라붙어 있을 필요가 있나?’
한숨을 푹 흘린 아벨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갑작스레 닥친 일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찰나의 잡념을 털고 아벨의 시선이 레온을 향했다. 지금 보니 레온도 강검마만큼은 아니어도 상태가 영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어찌쩌찌 빠르게 조치했는지, 찢어진 옷 소매 사이로 파인 피부가 아물며 새살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아벨이 차가운 어조로 레온에게 말했다.
“저건 뭐지?”
“보면 몰라? 마인이잖아, 마인.”
그 와중에 순식간에 질문을 낚아채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스피드 웨폰. 삽시간에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하고 싶었던 말이 꽤 많아 보였다.
“마인의 시체인 거 누가 몰라서 물어?”
“뭐, 말해 줘도 못 믿을 텐데.”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입술의 달싹임이 뱁새의 부리처럼 빨랐다.
그 뒤에 서 있는 레온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으며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흘리고 있다.
그의 조원인 강검마는 사경 길을 헤매고 있는 판국에 조장인 레온은 여전히 격조와 교양을 차리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레온을 바라보고 있자니, 아벨은 속이 탔다.
분명, 레온의 옆구리에 아로새겨진 자상을 봤을 때, 그 또한 짧은 시간 동안 황천길을 여러 번 헤맸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타오른 분노가 쉬이 사위진 않았다.
‘재수 없어.’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아벨은 눈살을 찌푸리며 곧장 질문의 주체를 스피드 웨폰에게 돌려 버렸다.
“아카데미 측에는 내가 연락해 놨으니까, 빠르면 한 시간 내에 교관님들이 오실 거야.”
“…교관, 그 빌어먹을 놈들……. 이 개같은 섬은 사전 답사 했다면서, 왜 머메이드가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스피드 웨폰은 날카로운 눈매를 구기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아벨이 팔짱을 낀 채 덤덤히 되물었다.
“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설명해 봐.”
“지금 명령하는 거냐?”
“넌 왜 그리 성격이 배배 꼬였냐? 부탁하는 거잖아, 부탁.”
코웃음을 한번 치고서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스피드 웨폰. 기다렸다는 듯이 입술이 벌어졌다.
“설명해 보지.”
* * *
“그러니까 네 말은 갑자기 머메이드가 나타났고, 강검마 쟤 혼자 상대해서 이겼단 말이야?”
“뭐, 그렇게 된 거지.”
스피드 웨폰은 자신의 설명이 만족스러웠다는 듯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던 아벨과 조원들은 말없이 강검마와 머메이드의 시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윤기가 흐르는 감청색 머리칼이 기분 좋게 어깻죽지에서 흘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정황상 스피드 웨폰이 말한 내용이 사실로 보인다. 구태여 이들이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으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눈앞에 놓인 모든 정황은 스피드 웨폰의 설명이 진실이라는 쪽에 무게를 실어 줬다.
하나 쉽사리 인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용담 같은 이야기였다.
전조 없이 나타난 마인을 단신으로 아카데미 1학년생이 해치웠다? 어렸을 적 할아버지한테 자기 전 들었던 민담이나 설화들이 더 현실성 있을 법한 이야기다.
다만, 울창했던 수목림이 완전히 박살 난 것으로 그 둘의 격전이 보이는 것 같아 괜히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듣기만 했다면 거짓말이라 코웃음 치며 넘겼겠지. 하지만 지금 그 현장을 눈에 담고 있었기에.
아벨은 태어나서부터 천재라는 부류에 속해 자라 왔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의 수제자인 아론 니벨룽의 후손이라는 찬란한 밑바탕이 깔려 있었고, 때문에 아벨은 그에 그치지 않고 말 그대로 뼈를 깎는 일신의 노력을 통해 스스로 재능을 개화시켜 이 자리까지 도달했다.
생각에 잠긴 아벨이 쓰게 읊조렸다.
‘쟤라면…….’
다른 누구도 아니고 강검마라면.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깊은 곳이 쓰라린 기분이다. 그와 자신의 실력 차이가 이토록 클 줄이야.
이제는 어쩌면 자신은 범인(凡人)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강검마는 약관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홀로 마인을 상대해 이겼다.
물론 그 역시 반동 때문인지 다 죽어 가는 몰골에 몸이 넝마가 되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죽은 건 마인, 살아 있는 건 강검마였다.
지독한 위화감에 절로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내심 감탄하게 된다. 참 복잡미묘한 기분이었다.
아벨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공포의 떨림이 아닌 전율과 경외가 혼재된 무언가였다. 아벨은 좀 더 푹 한숨을 흘린 후, 얼굴을 감쌌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왠지 침울함이 감도는 아벨의 표정을 살핀 스피드 웨폰이 무심하게 말을 뗐다.
“너, 아까 아카데미 측에 연락했다고 했지?”
“…어, 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벨. 스피드 웨폰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더니 표정을 굳히고 말을 잇는다.
“일단 현장에서 있었던 일은 교관들에게 너무 세세하게는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
“왜?”
“분명 교관들이 이 섬을 사전답사했다고 하지 않았어?”
“어, 그치.”
“좀 이상하지 않아? 아무리 스코풀리 섬이 넓다고는 해도, 이 웅덩이는 생도들이 찾기에 그렇게까지 어려운 구역도 아닌데 마인이 튀어나왔다. 이야기가 좀 앞뒤가 안 맞잖아.”
아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스피드 웨폰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건 내 짐작이지만…….”
“스피드 웨폰, 네 말은 아카데미 내에 마인 측의 첩자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거지?”
무정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레온이 그의 말을 끊었다. 일부러 에둘러 말했건만, 정확히 말의 취지를 파악하고야 만다.
그가 정확하게 짚어 낸 것에 스피드 웨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번졌지만, 차분히 표정을 굳히며 대꾸했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까.”
아벨의 머릿속은 이미 여러 가지 의념들로 포화 상태였다. 확실히 이 일대는 그렇게 밀폐되지도, 그렇다고 히든 던전 같은 곳도 아니다. 충분히 시험을 치르는 생도들이 찾아 낼 수 있는 곳일 터.
생각해 보면 스피드 웨폰의 말마따나 강검마가 아니었다면 레온의 조원들은 첫 중간고사에서 마인의 손에 전부 비명 횡사를 당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라는 의념이 떨쳐지지 않는다. 마족과 인간의 700년이라는 휴전 기간 속, 분명 크고 작은 마찰은 있었다.
그럼에도 마족이 호아킨 아카데미의 생도에게 직접 손을 댈 정도로 막 나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하물며 불가침 조약 중에는 아카데미 생도를 건드릴 시, 전쟁 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항이 기재되어 있다.
‘설마…….’
입가를 가린 아벨의 고운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이유를 가지치기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의 수.
분명, 이 머메이드 한 개체만의 돌발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어째서인지 최악의 경우의 수만이 희미하게 뇌리에 감돌았다.
스피드 웨폰이 슬쩍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창백하게 질려 있는 게 여러 가지 감정을 어렵사리 숨기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벨, 네가 어떤 생각 하고 있는지는 알겠는데,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너무 간 거고. 내 말은 아카데미 내부 인사 중에 마족 측 간첩이 있다는 가능성을 의심해 봐도 나쁘지 않다는 거지. 이번 일만 가지고 속단하기는 너무 일러.”
그리 말한 스피드 웨폰은 듣고 있던 레온의 의중을 떠보았다. 레온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그럼, 말을 맞출 필요가 있겠는데. 아카데미에 첩자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검마 혼자 마인을 처리한 게 그들 귀에 들어가면 표적이 될 수도 있잖아.”
“뭐, 그렇긴 하지. 그렇다고 저 자식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 입을 싹 닫는 건 경우가 아니긴 한데…….”
스피드 웨폰이 찝찝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아벨이 말을 보탰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상담해 보는 게 어때?”
“뭐, 검제님!?”
“어떻게 보면 그게 최선인 거 같아서. 할아버지는 메디아 학원장님이랑 개인적으로 친분도 있고, 강검마에 대해서도 일전의 배정 시험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거든.”
확실히, 검제 지크프리트는 학원의 내부 인사도 아니었으며 그 특유의 고립적인 성향 때문에 학원장 메디아를 빼고는 이렇다 할 인간관계도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는 반세기 전, 6군단장 바스몬을 토벌한 칠성 영웅 중 한 명이자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마족과는 척지고 있는 양반인 검제보다 믿을 만한 인물은 같은 칠성 영웅인 학원장 메디아 정도였다. 아벨이 검제에게 말한다면 필연적으로 학원장님 귀에도 들어갈 터다.
아카데미 생도들이 직접 학원장을 대면하려면 꽤 복잡한 절차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검제를 통하면 그런 절차를 패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강검마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을 마친 스피드 웨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지금은 그게 최선일 거 같다. 레온, 네 생각은 어때?”
“음, 여태까지 일어난 상황들을 고려해 봤을 때 나도 그게 최선이라 생각해. 다만…….”
“다만?”
“그건 차차 생각하는 걸로 하고.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느닷없는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벨과 스피드 웨폰. 그러자 레온이 싱긋, 웃으며 턱짓으로 아기 새처럼 새근새근 자고 있는 클로이를 가리켰다.
“힐러 한 명으로는 부족해 보이는데.”
“아.”
한 박자 늦게 느낌표가 떠오른 스피드 웨폰. 옷에 묻은 흙을 털고 리코더를 꺼내 들었다. 그제야 핼쑥했던 얼굴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그럼 이 스피드 웨폰이 나서야지.”
꼭 해 보고 싶었던 대사를 내뱉으며.
“치료가 내 전문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