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52)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52화(248/300)
252화 싸움의 기술 (1)
사장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두 가지다.’
어쩌다 대화 주제가 이렇게 됐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일식집 사장이란 사람이 제자한테 싸움에서 이기는 법이나 가르치고 있고, 참.
‘네 새끼 성질이 보통이냐? 어디 음습한 뒷골목에서 칼 맞아 죽기 딱 좋은 상이야. 그래서 노파심에 조금 일러두마.’
전직 조폭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시조의 영웅이셨던 양반의 싸움학개론의 골자는 두 가지.
‘첫째, 선제공격. 선빵을 갈기면 그 싸움에서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거다. 상대가 다수여도 먹히는 방법이야. 싸움은 무조건 기선 제압. 체급이 상대보다 떨어져도 먼저 치는 거다.’
맙소사, 선빵필승이라니.
거창한 걸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참으로 교과서적인 지론에 당시 난 뺨이 씰룩거렸었다. 어처구니가 너무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오겠더라고.
그래도 참고 계속 들어 줬었다. 절대 그 양반 근처에 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그리고 어쩌면 핵심은 이거다…….’
엄격, 근엄, 진지를 고루 갖춘 눈빛으로 말씀하시던 사장님.
이쯤 하면 알아챌 수밖에 없다.
사장님은 내게 이 세계로 건너오리란 걸 알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오늘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지리란 것 역시나.
왠지 그 양반한테 속은 느낌이라 화가 나지만 서도…….
감사함과 존경심은 늘 품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양반이 툭툭 던졌던 조언을 난 알차게 써먹고 있으니.
밉지만, 정상 참작은 가능하다.
사장님과 나는 이런 관계다.
인생의 스승임과 동시에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나를 구해 준 유일했던 어른.
그리고 나의 양아버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그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다.
“이기어검.”
선빵필승. 일단 이것부터 시작이다.
* * *
흙먼지는 아직 가시지 않았다. 전황도, 적의 수도 어느 정도인지 아직 모른다. 하지만 게이트가 폭발함과 함께 밀려 나오는 마력은…….
‘방대하다.’
지독하리만치 방대하다. 여태껏 상대해 왔던 마수나 마인과는 단어 그대로 격이 달랐다.
전원 오싹한 기운에 몸이 경직됐다. 4군단장 퍼머쉬의 마력. 그중 극히 일부에 노출됐을 뿐인데 벌써 정신이 혼미해진다.
‘과연, 이길 수나 있는 것인가?’
상상 이상으로 압도적인 적의 존재감에 모두가 떨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장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들은 영웅이기 이전에 인간이었다.
키리링.
쇳소리가 들린다. 모두의 시선은 저절로 소리의 근원을 쫓았다. 처음엔 고개를 내렸다. 달싹거리는 노면을 내려다보려는 차에 도로 머리를 젖혔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쥐색 하늘이다. 이어서 그들은 눈을 끔벅거린다. 속눈썹에 사이한 눈동자가 점차 열린다.
수천 개의 사시미들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다. 구름의 틈새로 쪼개져 나온 햇살, 한 인간의 의지가 칼날에 내려앉는다. 잿빛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처럼 보였다.
모두 다시 앞을 바라본다. 이목이 모이는 소실점에선 두 글자가 새겨진 백의가 나부끼고 있다.
하늘을 베는 칼, 천검.
그때, 공중에서 깔짝거리던 칼날이 푸르스름하게 염색되기 시작한다. 하나만 색이 입혀지는 게 아니다. 하늘에 걸린 수천 개의 사시미가 짙푸른 빛무리에 휘감긴다.
“오러…….”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며 탄식이 나온 찰나, 하늘을 수놓은 칼날들이 일거에 사출됐다.
쐐애애애애액!
짙푸른 빛 꼬리를 내빼며 먼지구름을 향해 쇄도한다. 아음속에 비견되는 경이로운 속도. 신비로운 장면이다. 그것은 흡사 유성(流星)비가 내리는 듯했다.
콰과과과광……!
칼날이 벼락처럼 적진을 내리쳤다. 검로는 직선과 곡선을 자유로이 오갔다. 먼지구름이 치즈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거나, 잘게 토막 났다. 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게이트의 잔재들은 이내 와르르 무너졌다.
탁.
강검마는 왼손으로 손가락을 튕기면서 오른팔은 허공을 휘저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기품마저 느껴지는 몸짓. 그 결과물은 파괴와 살상이었다.
“세상에.”
검제와 창성의 눈길이 강검마에게 미끄러졌다. 두 사람의 반응도 여타 영웅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선제공격해야 합니다.’
어젯밤 강검마는 이리 강조했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저희 측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질 겁니다. 그러니 본막이 시작되기 전, 제가 솔선하여 선수를 치겠습니다.’
선제공격. 이는 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동의한 바다.
그렇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검제는 때아닌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예상치 못한 걸 떠나서, 현재 강검마가 선보이는 기술은 검제로서도 그 경지를 가늠키 힘들었다.
“천검… 자네는 정말.”
입맛이 쓰면서 달다. 일흔이 넘게까지 발도 들여보지 못한 경지를, 저 소년은 가볍게. 힘들이지 않고 이룩했다. 부러운 마음은 검사로서의 본능이었다.
이렇듯 삶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부조리가 적이 아닌 아군이라면.
“누구보다 의지가 되는 법.”
검제가 발을 굴렀다. 새하얀 빛을 끌며 신형이 뻗어 나갔다.
그에 잠깐 얼을 타던 창성은 급히 ‘탑’ 진영에게 소리쳤다.
“탑은 천검을 호위하고 있어라!”
“부협회장님은요!?”
창성은 두령처럼 파안대소했다.
“나는 니벨룽을 따라 전진하겠네.”
“부협회장님!”
“미드와 정글은 나와 니벨룽을 뒤따라 적진으로 넘어오게! 길은 열어 둘 터이니, 그대로 따라오면 돼!”
말릴 틈도 없이 창성도 진각을 밟았다. 폭음과 함께 땅바닥이 터져 나갔다.
콰앙!
한 번의 도약.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사내의 눈엔 창성이 쭉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사내는 황당함도 잠시 얼굴에 곧 화색이 피어올랐다. 그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칠성께서! 대영웅들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한편, 후방에 있던 레미 장군도.
“원딜 전원 발사 준비. 서폿은 각 양옆의 원딜들의 방향 전환을 보조해라. 전방에서 분투하는 동료들이 맞지 않게끔.”
레미 장군이 앞장서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뒤로는 부대가 그녀를 부채꼴 모양으로 둘러쌌다. 학이 날개를 펴는 것 같다고 하여, 학익진(鶴翼陣). 어떤 성웅께서 착안하신 위대한 진법이다.
“발사!”
레미의 호령에 맞춰 수천 발의 화살이 원딜들의 손을 떠났다. 화살 비는 포물선을 그리며 소나기처럼 빗발쳤다. 그러면서도 아군이 있는 위치는 절묘하게 비껴간다. 서폿들의 보조 가호 덕분이었다.
원딜과 서폿. 이 조합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 신뢰로 맺어진 둘은 하나다.
“…….”
그 모든 광경을 한 발치 떨어져서 성 부장이 관망했다. 그는 쿵쿵거리는 가슴에 의수를 가져다 댔다. 맥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인류가 마족을 상대로 먼저 공세를 퍼부었던 적이 있던가.”
언제나 겁에 질려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적들이 흙먼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마왕군은 제동되었고 우리 인류가 전진한다.
‘선제공격한다고 무조건 승기를 잡는 건 아닙니다. 애초에 이기길 바라고 초반에 몰아치는 것도 아니고요.’
새벽, 회의의 막바지 무렵에 천검이 했던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선을 잡는 겁니다. 그로서 우리가 저들과 대등하다는 희망을 보이는 것. 그게 초장부터 전력을 퍼붓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성 부장은 저 멀리 앞으로 시선을 던졌다.
‘희망.’
최전방에서 군대를 진두지휘하고 있을 그분을 떠올리며.
‘오늘 지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새겨 줍시다.’
찌르르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성 부장은 중얼거렸다.
“당신은 실로 하늘이 내리신 영웅입니다.”
* * *
적진 한복판에 착지한 창성은 곧장 자세를 낮게 취했다. 먼지구름은 여상해 시야 전체가 흑갈색이었다. 다만, 군데군데 보이는 그림자들.
“토무에 숨은 퍼머쉬의 장난감들이렷다!”
창성은 창대 밑부분을 잡고 길게 휘둘렀다. [파마(破魔)의 가호]가 실린 창날이 하단에서 만월의 궤적을 그렸다.
주변에 있던 그림자들이 균형을 잃고 스러지는 게 보였다. 검제의 검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검령의 가호]를 발현, 검날은 순백의 오러를 이끌며 흙먼지 채로 그림자를 잘게 쪼갰다.
다음 순간, 검제와 창성은 등을 붙이고 섰다. 그 상태로 두 사람은 접근하는 골렘들을 반파시키며 이동했다. 상황에 맞춰 전후방을 교체하긴 했지만 태세는 그대로 유지했다.
아직도 주변은 뽀얀 상태. 시야의 사각을 줄이려면 둘이 뭉쳐야 했다.
창성은 미간을 좁혔다. 골렘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그보다 훨씬 거슬리는 건 따로 있었다.
“먼지가 가시지를 않는군. 겨울에 황사라니, 원.”
창성은 코를 킁 먹더니 퉤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는 여러 번 그러다가 백의를 조금 찢어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생수로 천을 적셨다.
“한결 낫군.”
창성은 천 조각을 좀 더 잘라 검제에게도 건넸다. 검제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로 천을 받았다.
“어째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자네 의견은 어떤가, 니벨룽.”
“아마 퍼머쉬의 땅 속성 마법일걸세.”
검제는 천 조각을 귓바퀴에 걸며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천검과 후방의 지원 사격으로 골렘의 수는 크게 줄었어. 다만…….”
“적진의 수뇌가 아직 모습을 안 드러냈지.”
검제는 부던히 눈동자를 굴렸다. 먼지 때문에 눈이 뻑뻑해 얇게 떠야만 했지만 기감을 넓게 방사했다. 조금의 낌새라도 느껴지면 바로 행동하게끔 근육을 통제했다.
“더 깊숙이 전진할 건가?”
뒤에 선 창성이 물었다.
검제는 잠깐 숨을 가다듬고서, 검날을 응시했다. 깨끗한 날붙이에 담긴 나이 든 노인. 그 눈빛이 아연하다.
언제 이렇게 늙었던가. 반세기 전 이 자리에서 친우 셋을 잃은 게 엊그제 같거늘.
검제는 짧게 실소했다. 검날의 노인도 같이 웃었다.
“깊숙이 들어가면 죽을 확률이 높네. 알고 있겠지, 뮈라.”
“알고 있다마다.”
창성은 즉답했다.
“그래서 묻는 걸세. 니벨룽, 자네가 싫다면 나 혼자서라도 들어갈 생각이었거든.”
“여전히 무식하게 정공법만 선호하는군, 자네는.”
“사내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갈 땐 가더라도 내, 퍼머쉬의 면상에 생채기 하나는 남기고 갈 걸세. 그래야 퍼머쉬가 흥분을 잃을 테고, 하면 천검이 토벌할 때 도움이 되겠지.”
등을 돌리고 있어 창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한데도 그가 웃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새끼, 마지막까지 강검마한테 잘 보일 생각뿐이구나.”
검제는 고개를 젖혀 정수리로 창성의 등을 두들겼다. 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고얀 놈.”
갑자기 뮈라, 이놈이 예뻐 보이거나 하는 건 아니다. 다혈질에 사람을 가려 대하는 놈이 뭐가 예쁘겠나. 하지만 저승길 동무로선 썩 나쁘진 않다. 적어도 심심하진 않을 터이니.
그렇게 마음이 일치한 두 사람이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스으으으.
사방에 자욱했던 황사가 바닥에 낮게 깔리더니, 시야가 차츰 확보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눈알도 바싹 건조되어 뜨지를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 메마른 입술에서는 부스럼이 떨어졌다. 한순간에 전신에서 수분이 죄다 뽑혀 나간다.
“인계에 직접 온 보람이 있구나.”
마왕군 4군단장 퍼머쉬.
“이토록 훌륭한 재료들이 준비돼 있을 줄이야.”
놈이 사막처럼 삭막한 음성으로 영창한다.
「지변(地變)」
그와 동시에 검제와 창성은 흔들리는 세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