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5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53화(249/300)
253화 싸움의 기술 (2)
검제와 창성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쿠르르릉…….
격동하는 대지, 요동치는 잿빛 하늘. 두 사람은 들썩이는 노면을 붙들고 간신히 버텨 냈다. 그들은 운이 좋은 것이었다.
몇몇 영웅은 쩌적- 악어 아가리처럼 갈라진 대지의 틈으로 삼켜졌다. 비명이 땅속 깊은 곳에서 메아리가 치다가 이내 멀어졌다.
지진.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다. 전력 상태. 거기에 만반의 준비를 한 4군단장이다. 걸어 다니는 재해와 같은 녀석이란 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설마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시전할 거란 건 예상 범위 밖이었지만.’
해서 검제와 창성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퍼머쉬의 외견이 그 이유였다.
“어린…아이?”
창백한 피부. 보브컷의 잿빛 머리칼. 자주빛 눈동자. 창성 자신의 허리에도 안 올 것 같은 아담한 체구. 많이 쳐줘 봐야 열두 살 할 것 같은 여아가 방긋 웃으며 서 있다.
하지만 수어 초 흐른 시점.
창성은 표정을 갈무리하곤 뿌득 어금니를 갈았다. 단언할 수 있다, 저 한없이 무해해 보이는 생물이 이 자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호오.”
퍼머쉬는 뺨 한쪽을 어루만지며 흥미롭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보아하니, 네 두 녀석은 바스몬을 없앤 녀석들이로구나.”
이질적인 말투였다.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군주처럼 사람을 낮잡아 보는 말투였다.
“인간에게 삶은 참으로 무심하기도 하지. 우리 마족에겐 찰나와 같은 시간이었건만, 너희는 쇠할 대로 쇠했구나.”
“…….”
“내 묻겠다.”
놈의 비아냥이 이어졌다. 땅이 울리는 가운데도 그녀의 음성은 두 사람에게 선명히 전달됐다.
“어째서 너희는 저항하는 것이냐? 무의미하단 걸 잘 알지 않느냐. 왜, 내 형제들을 셋이나 죽여서 눈에 뵈는 게 없더냐?”
퍼머쉬는 뒷짐 진 채로 사뿐사뿐 발걸음을 뗐다. 골렘들이 좌우로 길을 열었다. 개중 우락부락한 불상처럼 생긴 골렘 둘은 양옆에서 그녀를 호위하듯 따라붙었다.
“바스몬은 어중이떠중이였다. 쿠아른 님의 어명만 아니었어도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던 팔푼이였지만, 아고르와 베스나는 진실로 내 형제이자 자매였다.”
그녀는 걸어오는 도중에 자갈 몇 개를 주워 공깃돌처럼 손바닥에서 굴려 댔다.
“설혹 걔네가 전력 상태였다면 현 인류의 반은 사라졌을 터다. 하지만 그 자매는 성미가 급했어. 그래서 방심했고, 인간이란 천것의 손에 목이 떨어졌지.”
퍼머쉬는 자갈 하나를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었다. 딱밤을 날리듯이 손짓을 취하면서 이죽거렸다.
“나는 그 한심한 녀석들과 다르다.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처음부터 전력으로 상대해 주마.”
콰앙!
쥐방울만 한 돌멩이가 내는 거라곤 생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폭음. 놈의 손을 떠난 자갈은 포탄이 되어 두 사람을 노렸다.
가격당하면 단련한 육체라도 물풍선 터지듯 산산조각이 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피하기엔 속도가 문제였다. 결국 맞대응을 강제했다.
검제의 검과 창성의 창이 일시에 움직였다. 서로 말도, 눈빛 교환도 이뤄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동작은 합을 맞춘 것처럼 아귀가 들어맞았다.
폭발적으로 쇄도하는 자갈을 검제의 검이 반토막 냈다. 탁, 탁, 탁. 퍼머쉬는 연달아 내쏘았다. 인간의 동작엔 빈틈이 생긴다. 더군다나 외팔이인 검제에겐 그 빈틈이 더 컸다. 움직임 한 번에 많은 것을 내줘야만 한다.
혼자였다면 말이다.
창날이 두 번째로 날아오는 자갈을 쳐 냈다. 창성은 침음을 냈다. 비껴 쳤을 뿐인데 손이 아리다 못해 마비될 것만 같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창성은 창대를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회전력을 이용해 세 번째, 네 번째 공격을 정면에서 맞받아치기 위함. 창이기에 가능하다. 창의 요결은 공격이 아닌 방어에 있기 때문이다.
“니벨룽!”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검제가 뛰쳐나갔다. 골렘들이 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놈들의 경도는 딱딱하기 그지없다. 검성의 오러를 실어도 두부처럼 베어 넘기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쨌든 골렘은 흙으로 만든 인형이다. 어깨, 몸통, 무릎, 다리에 이음매가 있기 마련. 그 지점들이 놈들의 급소일 터.
‘면이 아닌 선을, 더 나아가 점을 노린다.’
마수가 뻗어 오는 가운데 검제가 눈을 감았다. 시간이 일순 느릿하게 흐른다. 노인은 찰나의 명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고통과 상처로 점철된 일생이었다. 검사로서 큰 재산인 팔을 잃었으며, 삶의 반이라 할 수 있는 자식 내외를 잃었으므로.
그럼에도 사내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했다. 범인이라면 감당 못 했을 시련을 검으로 휘저어 떨쳐 냈다.
이 순간만 해도 그렇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이다. 검상 하나라도 입힐 수 있을까? 그마저도 의문이다.
비죽거리며 자신을 조롱하지만, 퍼머쉬는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코끼리한테 달려드는 병정개미. 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비유다. 격차는 명명백백하다. 공방은 어림도 없다. 반드시 죽는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의 진정한 스승.’
여기 검에 평생을 바친 사내가 있다.
‘내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던 빛이여.’
사내는 재지 않는다. 검을 잡고 내달린다. 늘 그리하였듯.
‘그 끝으로.’
검제가 눈을 얇게 떴다. 금빛 귀화가 피었다. 새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칼은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허공에 넘실거렸다.
‘나를 인도하소서.’
그가 가늘었던 눈을 치켜떴다. 골렘들이 포위망을 좁히며 벌 떼처럼 달려들고 있다. 천지는 격랑 중이고, 군단장은 굳건히 서 있다. 여전하다. 그러나 검제의 시야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보이는구나.”
불그스름한 실선. 개체별로 하나씩 새겨져 있는 선이 그의 동공에 맺힌다. 강검마에 비하면 한없이 희미하나 저것은 참선(斬線). 개세의 재능과 한 인간의 일생이 짜낸 한 방울의 결실이, 바로 지금.
검제의 신형이 무언가가 떠밀리듯이 움직였다. 그의 팔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린다. 검이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검날에서 불빛이 명멸했다. 검극은 골렘의 까끌까끌한 표피를 가볍게 긁었다. 하나로 이어진 듯 깔끔한 반월.
스겅.
수십에 달하는 골렘이 어슷하게 썰린 대나무처럼 허물어졌다.
“니벨룽, 자네 설마…….”
창성은 눈을 깜빡였다. 와중에도 그는 창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다.
검제는 습관적으로 검을 털었다. 속눈썹에 반쯤 잠긴 금안이 퍼머쉬를 응시했다. 거세게 타오르는 안광에선 현기마저 느껴졌다.
“각성.”
창성이 중얼거렸다. 입술에서 튀어나온 말 그대로다. 가호의 각성. 검제는 현재 그의 선조 초대 검성, 아론 니벨룽과 대등한 존재다.
“하하하!”
창성이 소리 내어 웃었다. 흙먼지 사이로 그의 치아가 희게 반짝였다.
“먼저 가게나, 니벨룽.”
창성은 검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동기. 같은 출발선. 그러나 지금은 반쯤 초월자가 된 친우에게 그 나름대로 경의를 표했다.
“나도 뒤따라감세.”
그때, 탑과 미드들이 창성 바로 뒤까지 어떻게든 도착했다. 그들이 나서려는 걸 창성이 팔을 뒤로 뻗어 제지했다.
“지금 너희들의 역할은 최대한 골렘 수를 줄이면서, 천검이 ‘나서기로 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검제님은 어쩌시고요!?”
“니벨룽은 걱정 안 해도 되네.”
창성은 부하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검제를 향해 눈짓했다. 그 시선을 쫓아간 부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저거… 제가 생각하는 그겁니까?”
“맞네. 그러니까 다른 영웅들에게도 전하게.”
창성이 웃음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검날에 목이 떨어지기 싫으면 접근하지 말라고.”
* * *
퍼머쉬는 입술을 비틀었다.
“하여간에 인간이란 것들은.”
그녀는 말없이 뿌득 입술을 씹었다. 천검 강검마 외에 눈에 밟히는 존재가 하나 더 늘었다.
“너희 둘이 저 칼잡이를 상대해라.”
퍼머쉬는 양옆에 선 불상 골렘들에게 턱짓했다. 고개를 끄덕인 두 불상은 발을 굴리며 나아갔다. 인간 영웅 백 명분의 생명을 갈아서 만든 특제 골렘들이었다. 말인즉, 각각 영웅 백 명의 전투력에 필적한다.
쿵, 쿵.
불상의 발 구름에 지반이 다시금 격동했다. 검제는 검끝으로 톡톡 노면을 두드려 보고서는 곧장 발을 뗐다. 섬전처럼 치고 나간 그의 신형이 불상들 사이에서 불쑥 나타났다.
기습적인 접근에도 불상들은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골렘이다. 감정과 판단 능력이 결여되어 명령만을 수행하는 거인이었다.
후우웅!
두 불상의 정강이가 신형을 걷어찼다. 흙이 뒤엉킨 소용돌이가 일었다. 한 대 얻어맞으면 빌딩도 깡통처럼 찌그러질 것이다.
“…….” “…….”
두 불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는 맛이 없다. 두 다리는 허공에서 서로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대체 어디에?’
둘은 턱을 치켜들었다. 급격히 움직인 탓에 목에서 흙 조각이 투두둑 떨어져 나왔다.
하늘.
그곳에 검제가 있었다. 검날을 발로 지르밟은 채로 내려보고 있다. 이기어검술로 검을 타고서 공중을 부양하는 것이었다.
“미안하네들.”
검제는 슬픈 눈으로 말했다. 백 명의 생명을 마셔서 탄생한 골렘들. 비록 적이나 그 본질은 무고한 영웅들이다.
“편히 보내 주겠네.”
검을 탄 검제가 미끄러지듯 낙하했다. 지척까지 가까워진 순간, 두 불상은 팔을 교차해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검날은 그 한 틈의 간격을 비집고 불상 하나의 머리를 꿰뚫었다.
남은 불상이 방어를 풀고서 주먹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인간이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다. 관절을 자유자재로 뽑을 수 있는 골렘이기에 가능한 공격.
검제는 오른쪽 어깨를 반쯤 뺐다. 정권이 아슬아슬하게 명치를 비껴 갔다.
툭.
검제가 팔극권 고수처럼 손바닥을 뻗어 불상을 가볍게 밀었다. 중량은 묵직했으나 무게 중심을 강타당한 불상은 벌러덩 넘어졌다.
그 안면을 노린 검날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불상은 허리를 비틀어 노면을 굴렀다. 그리고 아랫배를 튕겨 벌떡 일어나려 한 순간. 검광이 다시 한번 번쩍이더니, 공중을 날던 쾌검이 목덜미를 훑었다.
콰직!
바닥에 떨어진 불상의 머리가 도자기처럼 깨졌다. 검제는 파편에서 조각조각 난 그 표정들을 보았다. 비로소 안식에 드는 평온한 얼굴을.
검제는 가슴 깊이 조의를 표하며 재차 노면을 박찼다. 그는 사정없이 골렘들을 베어 넘겼다. 영웅의 영혼이 깃든 존재들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팔을 휘둘렀다. 오히려 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가능하면 빨리 이 흙 인형에 갇힌 불쌍한 이들을 해방한다. 지금의 그에겐 충분한 힘이 있었다. 검제의 검은 지상과 하늘을 노닐며 적군을 밀어붙였다.
“흐음.”
그 광경을 퍼머쉬는 얌전히 구경만 했다. 얼굴에 내비쳤던 당황은 진작 가신 뒤였다.
“하.”
퍼머쉬가 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다 곧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그 소리는 골렘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던 영웅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재밌네, 재밌어.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퍼머쉬는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손가락에 스민 눈물은 한 방울도 없다.
“그때도 각성자들 상대로 끝내 방심했다가 목이 달아날 뻔했거든. 인계에 강림한 내 자매들도 방심하다 뒈진 건 마찬가지였지, 아마? 뭐, 아직 가호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7걸과 완전히 같다고는 못 하겠지만.”
퍼머쉬가 가슴 앞에 아담한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아까 말했지?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겠다고.”
후우웅.
퍼머쉬가 야트막한 숨결을 토해 냈다. 그러자 바람이 역류하고, 땅의 들썩임이 잠잠해졌다. 급작스러운 고요는 영웅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윽고 퍼머쉬의 자그마한 입술이 벌어졌다.
「지장역행보살(地藏逆行菩殺)」
조금 전과도 비교가 안 되는 굉음이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흙먼지는 조류에 휩쓸린 것처럼 충격파에 의해 완전히 사라졌다. 들썩거리는 걸 넘어서 밟고 있는 노면은 물결처럼 출렁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영웅들은 무장을 손에서 놓쳤다. 그들은 목을 뒤로 꺾어 멍하니 눈을 뻐끔거렸다. 아비규환의 한복판에서 웬 거신이 솟아났기 때문이다.
「천수사박(千手死撲)」
천 쌍의 팔을 등 뒤로 펼친 채 불상이 가부좌를 튼 채 굽어본다. 그 크기는 산맥만 하여 그림자가 암운처럼 일대를 뒤덮었다.
“해치워 버려.”
퍼머쉬는 도약해 거신의 머리 위로 살포시 안착했다.
“빠짐없이.”
그녀가 싱긋 웃으며 검지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