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5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55화(251/300)
255화 싸움의 기술 (4)
“…천사?”
짧게 중얼거린 퍼머쉬는 목을 뒤로 꺾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멍하니 있는 동안에도 구름 속에서 용오름 치는 그림자의 수는 계속해서 늘어 갔다.
몇십, 몇백, 몇천. 급기야 눈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새하얀 신형들이 노면 가까이 착지했다.
천사들의 발은 바닥에서 한 뼘 정도 붕 떠 있었다. 그들은 중력에 구애받지 않았다.
펄럭.
천사들이 상아색 날개를 웅크리듯 접더니, 곧 촥- 펼쳤다. 깃털이 날렸다. 함박눈처럼 팔랑팔랑 너울거리는 새하얀 깃털들. 개중 하나가 퍼머쉬의 콧등 위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녀는 그 순간까지도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가만있었다. 웃음소리는 멎은 지 오래, 퍼머쉬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자기 콧등에 내려앉은 깃털처럼 새하얗게.
그러는 와중 발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한 걸음 내디뎌질 때마다, 뒤죽박죽이던 세상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듯 원 상태로 복원되어 갔다. 땅과 하늘, 태양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저벅.
구멍이 숭숭 난 먹구름은 흩어져 수줍게 속살을 드러냈다. 본연의 색, 보랏빛 노을, 자하(紫霞)의 시간대.
저벅.
사시미를 쌍수로 잡은 천사들이 좌우로 길을 열었다. 언뜻 하얗게 표백된 가로수길처럼 보이는 그 사이를, 강검마가 뚜벅뚜벅 걸었다.
흑과 백. 상극의 색상이 현실감을 먼 곳으로 날려버린다. 온통 희멀건 뒷배경은 그 검은 존재감을 선명하게 만드는 착시를 일으켰다.
얼굴이 창백해졌던 퍼머쉬는 머리를 흔들어 깃털을 치우다가, 이내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네놈이구나. 아고르와 베스나를 벤 인간. 발로르 호아킨, 그 시건방진 새끼의 정신적 후계라고 불리는 놈이 너구나. 그뿐만 아니라-”
퍼머쉬는 냉정을 잃은 눈으로 말했다.
“쿠아른 님의 관심을 독식하는 벌레 새끼가!”
“…….”
강검마는 그 검은 눈으로 퍼머쉬가 빚은 지옥도를 둘러보았다. 영웅들이 죽었다. 그것도 아주 참혹하게 죽었다. 터지고, 뭉개지고, 밟혀서. 온전한 주검이 드물었다.
까드득.
어금니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준비가 조금만 더 빨리 됐더라면… 덜 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잠깐, 그는 검은 머리를 툴툴 흔들었다.
이게 최선이었다. 자기 합리화 따위가 아니다. 회의와 채증을 거쳐서 끝내 도출한, 가장 많은 인원이 생존할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성과 합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건 사실이니.
“퍼머쉬.”
나는 칼잡이다.
“베어 주마.”
그러니 칼로서 그들의 넋을 기리리라.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모조리.”
* * *
삐빗-
[‘인간의 격’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이 완벽히 작동되기에는 아직 사용자의 격이 조금 낮습니다.] [프로그램이 완벽히 작동되기에는 아직 세계선의 격이 조금 낮습니다.] [하나, ‘인간의 격’을 촉매로 ‘신격’의 일부를 일시적 사용이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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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된 전능이시여.》
《당신을 자유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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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간신히 땅을 밟게 된 검제는 발바닥과 바닥이 맞닿자마자, 얼른 고개를 들었다. 길쭉한 지평선 위로 천사 무리에게 둘러싸인 강검마가 보였다. 검제는 눈을 비비고서 그 방향을 다시 바라봤다.
“그때와… 아고르 때와 같구나.”
아니, 그때와는 조금은 다를지도 모른다. 검제는 현재 가호를 각성한 상태.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눈높이가 덩달아 올라갔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가늠이 전혀 안 됐을 적보다 작은 편린이나마 이해한 지금이, 강검마가 얼마나 현실과 유리된 존재인지 잘 깨달을 수 있었으므로.
‘강검마에게 깃든 무언가는 신이 아니다.’
검제는 확신했다.
‘신격을 뛰어넘은 무언가.’
대체할 용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신 이상의 존재. 감히 고민하기조차 무엄한 난제. 하나 분명히 존재한다. 각성자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현실이 뭣보다 명백한 증거다.
그때 창성이 거신의 팔을 훌쩍훌쩍 원숭이처럼 타고 올라왔다. 강검마가 저 기상천외한 힘을 발현함과 함께 거신은 동작을 멈췄다. 마치 전원이 꺼진 기계 장치처럼 작동을 정지했다. 그 원인이 퍼머쉬의 당황 탓인지, 강검마 탓인지는 모를 일이다. 어쨌든 덕분에 영웅들은 한숨 돌리게 되었고, 창성은 현장에 때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니벨룽!”
창성이 다급히 외치며 쿵쿵 달려왔다.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있던 검제는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이어 그 손짓은 조용히 한 곳을 가리켰다.
창성의 시선이 손가락 끝을 쫓아 미끄러졌다. 그리고 눈꺼풀을 두어 차례 끔뻑였다. 검제가 그랬던 것처럼 눈가를 비비곤 크게 떴다. 마찰열에 눈 주변이 붉어졌다.
“…저건 뭔가?”
“흰 건 천사요, 꼬마애는 퍼머쉬네.”
“그걸 물어본 게 아니질 않나!”
천사는 어제 천검에게 귀띔을 들었기에 알고 있다. 퍼머쉬의 모습이 애새끼란 건 또 의외였으나, 시선을 잡아끄는 건 놈이 아니었다.
일대의 모든 것을 지워 낼 듯한 막대한 존재감. 강검마가 중력의 중심지처럼 배경과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공간은 존재의 압력에 못 이기겠다는 듯 굴절되었으며, 그가 밟고 있는 노면은 부드럽게 출렁였다.
심지어 강검마의 본체는 눈에 담기지도 않았다. 광휘를 백의처럼 걸친, 외곽선만 있는 인간 형상만이 얼핏 보일 뿐.
“뮈라, 자네 눈에는 안 보이나 보군.”
“안 보여. 그러니까 말 좀 해 보게. 저건 뭐란 말인가.”
창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검제와 달리 그는 아직 각성자가 아니었다.
“뭐긴 뭐겠나. 천검일세.”
검제는 비척비척 일어나면서 대꾸했다. 각성의 반동 때문에 몸이 엉망진창이다. 다만 거동이 불편해도 일단 자리를 옮겨야 했다.
“일단 자리부터 피하세, 최대한 멀리. 가까이 있으면 우리 목이 떨어질 걸세.”
“…어째 그 말, 내가 부하한테 아까 했던 말 같군.”
“뭔…….”
검제가 되물으려 할 때였다. 천사들이 진열을 해치며 일제히 높게 솟아올랐다. 그들은 하늘로 두둥실 부양하더니 인간의 땅을 어지럽히던 골렘들에게 쇄도했다. 작동이 꺼진 거신도 천사들의 사시미에 팔이 잘려 나갔다.
“설마 이기이검이 선제공격이 아니라 사시미를 우주까지 날려서 저들에게 쥐여 주려던 의도였을 줄이야.”
창성은 그 광경을 구경하며 말했다.
“지금 당장만 본 게 아니라, 그 너머를 본 걸세. 물론…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비장의 수를 최후의 최후까지 아낌으로써 더 큰 피해를 줄인 것이지. 아마 지금 가장 심적 고통이 큰 건 천검일 거네. 그러니 저런 표정을 짓고 있겠지.”
검제를 부축하던 창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각성자인 자네 눈엔 천검의 표정이 보이나?”
“정확히는 아니고 어렴풋이. 하지만 그가 분노하고 있다는 건 표정이 아니라도 느껴져. 몸이 저릿저릿하거든.”
“그건 나도 그렇군……. 하여튼 그래도 작전은 성공한 것 같네. 강검마가 말했던 ‘땅 속성이니 공중에서 요격할 부대가 필요하다.’란 말이 딱 들어맞아.”
“맞네. 게다가 협회장님이 발견하시고 개조했다는 저 천사들 위력과 속도가 어마어마하군.”
창성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천사들은 깃털을 흩날리며 경이로운 속도로 비행했다. 날갯짓 한 번에 충격파가 일 정도였다.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속도의 한계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검마가 발을 뗌과 동시에 그 한계치는 바로 갱신됐다.
다음 순간 그들은 보았다, 경이롭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한 속력을. 정직하게 말하면 등판으로 느꼈다.
후우웅.
풍압이 자리를 피하고 있던 검제와 창성을 등 떠밀었다. 넘어질 뻔한 걸 창성이 중심을 잡아 가까스로 기립했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불빛이 번쩍 점멸했다. 공간에 벌겋게 녹은 칼자국이 새겨지더니 꾸물꾸물 봉합되었다.
검제와 창성은 입술이 바싹 말랐다.
그것은 인간의 시력으론 쫓을 만한 게 아니었다. 강검마의 움직임은 소실이었다. 머물던 자리에 움푹 주저앉은 반달 모양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하물며 퍼머쉬를 난자하는 칼질은 일대 공기마저 녹여 버린다.
――――!
역풍이 재차 몰아닥쳤다. 이번에는 백색 소음이 고막을 파열했다. 귓불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퍼머쉬의 열 손가락이 허공에 떠올랐다. 앙증맞은 절단면이 푸른 피를 바닥에 뿌렸다.
퍼머쉬는 손가락을 전부 잃고 덩그러니 남은 손바닥을 바라봤다.
언제 잘렸지? 의문이 들기 전, 두 손목에 혈선이 그였다. 이내 손이 있던 자리엔 핏줄기만이 솟아났다.
반응도 못 해 보고 두 번을 내리 당한 퍼머쉬는 그제야 초점이 풀렸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뇌가 인지한 것이다. 퍼머쉬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설마 이놈은.”
퍼머쉬는 상념과 뒷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발치에 나타난 강검마가 사시미를 횡으로 휘둘렀다. 칼날은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빛을 이끌며 퍼머쉬의 팔뚝을 스쳐 지나갔다.
타는 듯한 작열감이 느껴졌다. 비명을 내지를 말미는 없다. 퍼머쉬는 치미는 고통을 목 아래로 삼키며 어떻게든 마법을 영창했다. 일단 방어선을 구축하고 반격을…….
퍼머쉬는 캐스팅 대신 헛바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마력이…, 마력이 모이질 않는다.”
찰나의 공백을 쪼개고 쪼개 되짚어보고서야 이유를 알아차렸다.
「지변」 「천수사박」 「만트라」
일격 필상이라 할 수 있는 마법들을 모조리 쏟아 냈다. 즉, 마력을 너무 많이 끌어다 써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말이 안 돼.’
여기는 마경 근처인 게헤나 게이트 인근이다. 무한하진 않아도 그에 준할 터인데, 마력이 고갈되다니. 하필이면 체내의 마력을 전부 끌어다 쓴 탓에 수급해야만 할 상황인데 말이다.
‘설마?’
퍼머쉬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퍼뜩 눈동자를 굴려 사방을 훑어보았다. 공기와 같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마력. 무질서하게 퍼붓는다고 생각한 공세는 마력의 흐름을 끊어 내고 있었던 것. 더불어 자신에게 내재된 마력이 동이 나는 순간까지,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자리를 비웠던 건 저 천사 놈들을 끌어들이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시작도 전부터 이미 퍼머쉬가 진 싸움이었다.
-싸움에서 이기는 법. 그 두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은 기다림이다. 상대가 이겼다고 확신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처맞더라도 상대를 노려보고 맞으면서 때를 기다려.
두서가 길었던 사장님의 싸움학개론.
-그리고 적이 다 이겼다는 표정을 지을 때 칼빵을… 아니, 주먹을 뻗어라. 이름하여, 카운터.
씩 웃으시던 모습.
-네가 성격이 더럽긴 해도, 그만큼 독하다는 거니까. 당하고 살지 말고 만만하게 보이지 마. 강한 상대일수록 네 광기를 심어 줘라. 그래야 다시는 덤비지 않을 테니.
남은 손으로 내 머리를 흐트러뜨리시던 사장님의 얼굴이 스친다.
-깽값 정도는 내가 물어주마.
강검마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새겨졌다.
서걱!
사시미가 정강이를 쳤다. 안 그래도 짜리몽땅하던 퍼머쉬는 성장판이 닫혔다. 팔꿈치, 어깨, 다리, 골반. 급소를 제외한 전신을 두들기는 칼질이 이어졌다.
강검마는 뱉었던 말대로 살을 발라 내고 있었다. 그는 전국 제일의 칼잡이다. 생선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해부학에도 해박했다. 고통을 줄 수 있는 부위를 잘 알았다.
꾸드득.
강검마는 돌연 퍼머쉬의 목을 움켜잡고서 높게 들어 올렸다. 사지가 분리된 퍼머쉬는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였다. 반항의 몸짓을 조금도 내비치지 못한 채 악력에 이끌렸다.
강검마는 천천히 눈을 마주쳤다. 퍼머쉬가 눈꺼풀을 푸르르 떨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흰 여백 없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군단장을 들여다보며.
“퍼머쉬.”
[무통의 가호]를 해제한 뒤.“내가 느끼는 고통을.”
[전이의 가호]를 발현했다.“너도 느껴라.”
[검신의 가호]가 악마를 저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