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5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56화(252/300)
256화 검마, 광마, 천검……
시신경을 녹이는 듯한 작열통과 뇌를 쥐어짜는 듯한 격통. 아마 내게 [무통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터다.
[검신의 가호]가 초월적인 힘이라는 건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나, 어째서 고통을 수반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짐짓 추측해 보자면 ‘한순간에 밀려드는 무지막지한 정보량’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쉽게 비유해서 용량이 정해진 하드웨어에 무한한 데이터를 욱여넣는 식이란 거다.
심증이긴 하나 가장 가능성 높은 가설이다. 적어도 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설 중에선 그렇다.
여하간 요점은 이거다. [검신의 가호]의 격통은 미쳤다는 것. 그리고 어지간한 하드웨어(신체)가 아니라면 감당할 수 없다는 것.
심지어 그 발로르 호아킨마저도 버거워했던 힘 아닌가.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 와도 버티기 힘들다는 예증이다.
그래서 든 의문이 있다.
이 힘은, 그러니까 딸려 오는 고통은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것일까? 더 높은 하드웨어 즉, 마인 같은 놈들. 개중에서 최상급 마인들에게도 과연 적용될까? 같은 의문들.
다만 이를 해소할 기회는 적었고, 있었다고 한들 두 번 모두 목숨이 간당간당했었다. 한마디로 실험 따위를 할 여유가 없었다는 거다. 당장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마당에 장난칠 정도로 맛이 가진 않았다.
한데 인생사 새옹지마라. 기회란 건 늘 그렇듯이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딱 지금처럼.
내 손에 붙들려서 눈을 발라당 깐 이 개새끼가, 내 오래된 의문을 해소해 줄 실험체다. 물론 나도 [검신의 가호]의 고통에서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 미칠 듯한 통증도 일 년 내내 시달리다 보니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눈물 콧물 다 뽑아내던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
“아, 씨발.”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는 건 조건반사다. 강조하지만 단지 익숙해졌을 뿐이다. 칼을 많이 맞아 봤다고 안 아픈 건 또 아니니.
진짜 금방이라도 뒈질 것 같다. 아랫입술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살집이 너덜너덜했다.
상념의 나열도 뒤죽박죽이다. 사고 회로는 가위로 오려진 듯 뜨문뜨문하다.
“하하하…….”
그래도 퍼머쉬의 얼굴이 알루미늄 포일처럼 구겨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실실 웃음이 나온다.
짝!
퍼머쉬가 왈칵 파란 핏물을 게워 내길래 뺨을 후려쳤다. 어디서 기절하려고.
“개새끼야, 너만 아프냐?”
퍼머쉬가 겁을 집어먹은 기색으로 버둥거렸다. 그럼 뭐 하나. 의미 없는 저항이다.
“약자의 입장에 서 본 느낌이 어때. 네가 아까 턱짓 한 번으로 죽였던 인간들은 너처럼 버둥거려 보지도 못하고 명을 달리했다. 왜. 지진을 일으키고, 거신과 골렘을 생성하고, 하늘을 뒤집어 보니까 네가 신이라도 된 것 같아? 지랄하지 마. 너야말로 벌레, 아니 그 이하다.”
“읍…….”
“가만히 있어, 새끼야. 손에 침 떨어지잖아.”
반대 뺨도 후려치려다가, 그냥 목을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가느다래서 또각 부러질 것 같았는데 굉장히 튼튼하다.
역시 4군단장. 마음에 든다. 내 입가에 미소는 점점 더 진해진다.
“내가 살던 세계엔 이런 말이 있다.”
피가 발려서 시뻘게진 입술로 놈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정신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고통이 치밀다 보니, 아무 말이라도 주절거려야 했다.
“힘들 때 우는 건 삼류, 힘들 때 참는 건 이류다. 그리고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지.”
퍼머쉬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와, 눈빛 험한 것 봐라. 저러다 한 대 치겠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생각나는 대로 떠들어 댔다.
“근데 생각해 볼수록 어이가 없는 말이야. 울고, 참고, 웃는 거로 사람의 급을 나눈다는 거. 퍼머쉬, 너는 동의해, 안 해?”
“…윽.”
“닥쳐. 대답하지 마. 넌 사람 새끼가 아니니까 네가 말해 봤자야.”
“…….”
“와, 근데 이 새끼 진짜 대답 안 해? 사람 말하는데 무안하게 시리. 예의범절을 모르는 새끼네, 이거.”
말하고 나서 낄낄대자, 내게 붙들린 퍼머쉬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난생 공포를 느껴 본 적 없는 이가 어떻게든 그 감정을 표현해 보려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실로 해괴망측한 낯짝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즐겁게 구경할 수 있으리라.
솔직히 나도 지금 내가 뭐를 말하고 싶고, 뭐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입을 움직여 말하는 건지. 아니면 속으로 상념으로 씨불이는 건지.
중요한 건, 퍼머쉬가 내게 두려움을 느끼면서 죽는다는 것이다. 이게 핵심이다. 그에 비하면 [검신의 가호]의 고통은 단순 곁가지다.
“아고르, 베스나에 이어서 퍼머쉬 너한테도 공포를 심어 줬다. 저희는 내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해. 왜냐하면 메마른 감성을 내가 풍부하게 만들어 줬잖아. 먼저 지옥 불구덩이에서 헤엄치고 있을 군단장들이랑 놀고 있어라.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쿠아른도 같은 곳에 떨어뜨려 줄 테니까.”
툭.
“…….”
내 웃음소리를 자장가로 이내 퍼머쉬가 고개를 떨궜다. 놈의 코피가 인중을 타고서 내 손아귀에 똑똑 떨어졌다. 뺨을 좌우로 찰찰찰 만져 줘도 미동이 없다.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죽을 만큼 아프다고 진짜 죽네.”
놈에게서 두 손을 떼어 냈다. 가느다란 목에 시퍼렇게 손자국이 남아 있다. 잠시 후 바닥에 나동그라진 퍼머쉬는 신체 끝동부터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참을성 없는 마인 새끼.”
퍼머쉬와 더불어 나를 실험체로 얻게 된 깨달음. [검신의 가호]의 고통은 인간을 미치게 만들지만, 마인은 죽인다.
수업료로 정신과 몸은 완전히 난자당했지만… 이 기분은 뭐랄까. 몸에 안 맞는 기성복만 입던 사람이 맞춤복을 처음 입어 본 느낌이다.
하여간에 내 아주 살짝 뇌가 맛이 가 버렸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다.
지금만큼은 난 검마가 아닌 광마다.
사실 아무래도 좋다. 검마든, 광마든, 천검이든. 셋 다 전부 다 나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니까.
그렇게 개소리를 한참 지껄이다 보니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한 번 보려 해도 턱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왔구나, 그 시간이.’
눈을 다시 떴을 때는 아마 병원 천장이 보이겠다고 생각하며.
새카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암전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 * *
[【???】의 여섯 번째 편린, ‘인人과 마魔의 장벽’을 획득했습니다. 획득 총수(6/7).]-파앗!
== ==
『인과 마의 단절을 꾀하여 거대한 장벽을 축조했다.
그러나 끝내 깨달았다, 이 또한 천상의 농간이라는 것을.
언제까지 우리는 그들에게 놀아나야 하는가.
비통하다. 한스럽다. 분하다.
신이라는 자들이 정녕 이렇게까지 하는 연유는 뭐란 말인가?
그들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천상을 일개 시정잡배로 전락시켜 버린 그 존재란 무어란 말인가?
비나이다.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하다못해 당신의 고명만이라도.
이 아둔한 치를 불쌍하게 여기시어.
부디 응답하여 주소서.
이렇게 빌고, 또 비나이다.』
== ==
[NEW! 메인 퀘스트 ‘인마일통人魔一通’을 달성하여, 보상이 증여됩니다.]♪♫♬♩♫
[▷ ‘무통의 가호 〈진眞〉’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소통의 가호 〈진眞〉’을 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차력의 가호 〈숙련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 [▷ ‘검신의 가호 〈각성〉’까지 머지않았습니다.] […….] […….] [수고하셨습니다.]* * *
좌중에 고요가 가라앉았다.
“크윽…….”
턱수염 남자는 간신히 치뜬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오른팔이 있던 자리에 바람만이 맴돈다는 걸 알아차린 건 그와 동시였다.
남자는 헛웃음 지으며 전쟁터를 둘러보았다. 동작을 정지한 골렘들과 뭉개진 고깃덩이들. 순간 세상이 아니, 지옥의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남자가 허탈하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많이도 죽었구먼.”
턱수염에 파묻힌 그의 입매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은 그의 입꼬리를 올리기엔 턱도 없었다.
턱수염 남자는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서 비틀비틀 일어섰다. 잠깐 그대로 눈을 감았다. 새털구름 틈새로 드러나는 노을의 열감을 피부로 느꼈다.
“어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귓전에 흘러들었다. 남자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몇 시간 전 자신과 노닥거리던 궁사가 쩔뚝쩔뚝 다가오고 있었다. 궁사는 다리 하나가 사라진지라 느린 걸음이었다.
그제야 턱수염이 히죽 올라갔다. 남자는 얼른 다가가 궁사에게 바싹 붙었다.
“자네나 나나 목숨값 대신 다리와 팔 하나씩이면 운이 좋군.”
궁사가 말했다. 그를 부축하던 턱수염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운이 좋군!”
그 소리를 시작으로 잔해를 들추면서 생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이 가득했던 지옥도에서 생명이 들꽃처럼 피어오른다.
그에 턱수염 남자는 쓴맛이 가득했던 입안이 상쾌해지는 걸 느끼며, 더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엔 궁사도 함께였다. 뒤이어 하나둘 영웅들이 웃음을 보태기 시작했다.
그때 신형 두 개가 불상 거신의 팔이나 손 따위를 밟으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점차 가까워지는 소리에 모두 그곳으로 시선을 두었다. 창성과 검제였다.
턱수염 남자는 눈을 얇게 떴다. 창성의 품 안에서 눕듯이 안긴 소년이 보여서였다. 소년은 몰골이 그야말로 처참했는데, 붉으락푸르락한 핏물을 온몸으로 뒤집어쓴 채였다. 상태만 보면 팔다리가 없어진 자신과 궁사 이상으로 만신창이였다.
턱수염 남자는 아연한 눈으로 그 소년을 바라보았다. 궁사가 그런 그에게 가볍게 미소하더니 부탁했다.
“내가 다리가 한쪽이 없어서 그런데, 내 무릎을 꿇려 줄 수 있겠소? 혼자 하려니 영 힘들어서 말이오.”
턱수염 남자는 그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마침 나도 그러려 했소.”
덩달아 그 자신도 한쪽 무릎을 굽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궁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남자는 턱수염을 긁적였다.
“그 왜. 전투 전, 저분이 우리에게 연설했을 때 말이오. 저분은 구태여 우리와 눈높이를 맞춰 주셨소. 그때만 해도 그냥 보여 주기식이라고 생각했소만, 아니었소. 저분은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적과 맞섰지.”
“그러니까, 자네 뜻은 그런 분을 우리가 꼿꼿이 허리를 편 채로 내려다보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이 말이군.”
턱수염 남자가 멋쩍은 기색으로 끄덕거렸다.
“뭐, 그런 셈이지.”
궁사의 동공이 기분 좋게 휘더니 돌연 쩌렁쩌렁 외쳤다. 활을 하늘 높이 치켜올리며.
“천검님!”
누군가 우렁차게 호응했다.
“검마 님!”
소년을 연호하는 외침이 연이었다. 생존자들이 점점 가세해 환호성은 귀가 찢어질 듯했다. 다만 저마다 내뱉는 연호는 통일성 없이 중구난방이었다.
“천검!” “검마!” “천검!” “검마!”
칠성의 이명인 천검(天劍)과 본명인 검마(劍魔). 연호가 계속될수록 두 낱말은 찢어졌다가 바느질하듯이 이어 붙여졌다.
그러고는 급기야 하나로 수렴하더니 새로운 별호로 재탄생했다.
강맹한 전사들이 입을 모아 그 새로운 별호를 연호했다.
““天魔!””
승리의 함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