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61)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62화(257/300)
262화 더 테러 라이브 (1)
설명하기 좋아하는 스피드 웨폰.
“…….”
그는 현재 죽을 맛이다.
‘싸늘하다.’
비수가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웨폰은 지금, 샴페인 잔(오렌지 주스)을 입술에 붙인 채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다.
‘미치겠네.’
축일의 대미인 무도회장까지 와서 눈치만 슬슬 보는, 정직하게는 아가리 묵념하고 있는 제 처지가 처량했다.
‘떠들고 싶은데…….’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기침 소리라도 내었다간.
누구인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말이야!
라는 윽박과 함께 날붙이를 들이 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가? 저기서 안광에서 불티를 튀기는 저 두 사람, 아벨과 료죠가.
아벨은 오늘 화사한 드레스를 갖춰 입고 옅은 화장으로 자신을 가꿨다.
건너 듣기로는 무도회를 위해서 본가의 메이드를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불러냈다고.
‘아벨 옆에 붙어 있는 저분이 니벨룽가의 메이드, 샤일 씨군.’
샤일은 유명 영웅이다. 특진생 출신임에도 최연소 시니어 영웅으로 등극. 5년 안으로 워리어급으로 승급할 거라 점쳐지는 영웅계의 총아다.
특진생 출신이어서 물려받은 고유 가호가 없다는 걸 참작하면 짐짓 어마어마한 재능이다. 순수 재능의 측면에선 어쩌면 올 뮤트 이상일지도.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집사는…….’
나찰(羅刹) 카론.
사람 좋은 눈웃음을 치고 있는 저 중년인은 한때 전설적인 살인 청부업자였다.
표적은 영웅으로 한정. 한마디로 영웅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던 영웅이란 소리지.
근데 어느 부로 종적을 감추더니 대뜸 니벨룽가에서 집사로 나타난 것이다.
그에 영웅계는 카론을 구류해야 한다며 강론했는데, 검제님께서 그 책무를 분담하겠다고 선언!
-했다는 남자라면 필히 심장을 뛰게 하는 의협심 넘치는 에피소드가 유명하다.
‘그런 샤일을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카론을 주스 따르는 시종으로 부리다니.’
웨폰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곤 시큼한 주스를 홀짝이면서 아벨을 힐끔 했다.
아벨은 그렇지 않아도 주목받는 외모다.
그런데 오늘은 장정들에게 상사병을 역병처럼 퍼뜨리기로 작정한 듯했다.
실제로 무도회장 내에서 과반의 남생도들은 아벨을 대놓고 쳐다보고 있었다.
‘저저, 입에서 폭포처럼 주스 흘리는 것 봐.’
하지만 그들은 중간에 나찰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화들짝 시선을 피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웨폰은 끌끌 혀를 찼다. 그러곤 아벨에게서 거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단아한 전통 일본 복색. 정갈하게 정돈된 공주 머리. 다소 날카로웠던 눈매만 화장으로 살짝 내리니 규수처럼 고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키 료조.’
저쪽도 만만치 않다. 원래라면 아벨에게만 집중됐을 시선을 반반 분할할 정도니.
‘아니,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지만 저렇게까지 사람이 변한다고?’
근데 또 일견 이해가 되었다. 웨폰은 그녀들이 저렇게 있는 힘껏 힘을 준 까닭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장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웨폰이 두 소녀의 마음을 눈치챈 지 오래였다. 천 클래스 내부에선 아마 자신이 유일하지 싶다.
그가 특출나게 예리해서라기보단 다른 애들이 유독 둔했다.
클로이는 암살자 태생이라 별수 없고, 레이첼은 근육 뇌라서 그런 방면으로 무지하다.
‘나머지 혼테일과 레온은 애당초 남에게 관심이 덜한 애들이고.’
그나마 평범한 자신이 료죠와 아벨에게 공감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료죠와 아벨이 속내를 숨기려 꾸준히 해 온 눈물겨운 노력 탓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자신 같은 정상인의 눈을 속이기 힘들다.
솔직히 말해서 티가 무지 났다.
‘지금에 와선 굳이 숨기려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웨폰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목이 타서 오렌지 주스를 쭉 목 아래로 넘겼다.
“어쩌겠냐, 얘들아. 너희가 눈치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걸. 업보라고 생각하려무나.”
달달한 음료를 마신 웨폰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뭐가 됐건 두 사람은 그의 친구다.
서로 연적이 되어 버린 그녀들의 분투를 속으로나마 응원해 주는 것. 그게 웨폰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레온이 안 보이네.”
레온이 있었으면 무도회의 화려함이 한층 돋보였을 텐데.
“뭐, 따로 볼일이 있나 보네.”
무도회의 참여 여부는 자율이었다. 부장처럼 요직이 아닌 이상에야 권고지 강제가 아니다.
하여 생도 중에선 무도회 불참 인원이 적지 않았다. 이런 행사가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고, 경제적인 사유도 있었다.
‘복장부터 꾸밈 비용까지 돈이 꽤 들긴 하니까.’
레온이 주목도가 높은 만큼 당연히 참여할 줄 알았는데, 안 보이니. 그 점이 조금 의아할 따름.
주스를 다 마신 웨폰은 잔을 교체하러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수상쩍게 행동하는 웨이터를 발견한 것이다.
주류 가판대에서 등 돌리고 서서 음료에 분홍색 분말을 섞고 있는 모습. 가판대 자체가 구석에 비치된 터라 보는 이가 없었다.
덥석.
소리 나지 않게 접근한 웨폰이 웨이터의 어깨를 붙들었다. 그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지금?”
웨이터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버버 거리는 그를 웨폰이 고압적인 말투로 채근했다.
“말씀하세요. 거기 음료에 타고 있는 그 가루가 뭐냔 말입니까.”
이어지는 추궁에 웨이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더니 안주머니에서 뽑은 단도로 웨폰을 기습했다.
“…뭐, 뭔!”
당황한 건 찌른 웨이터였다. 웨폰이 손바닥으로 날카로운 칼날을 받아 냈기 때문이다.
으레 느와르 영화에선 수십 자루의 칼을 맞고 잘도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은 픽션에 불과하다. 현실에서는 칼에 조금 쓸리는 것만으로 사람은 마비된다. 정신이 굳어 버리기에 육체도 졸아붙는 것이다. 행여 움직인다 해도 주눅은 든다. 제압이 편해진다.
그래서 노련한(자칭) 잠입조인 웨이터는 가타부타 변명 대신 칼부터 내질렀다. 은밀하게 처리하면 뒷수습은 어떻게든 된다.
그것이 오늘의 대계를 차질 없이 진행하기 위한 웨이터의 소계였다.
분명 그럴진대.
웨폰은 인상만 조금 구길 뿐이었다. 칼침을 맞았음에도 고통에 신음하거나 몸이 경직되거나 하지 않았다. 천 클래스 수업에서 지리멸렬하게 죽어 봤기에 고통과 공포에 내성이 생겼다.
“아공간이랑 다르게 따끔하긴 하네.”
웨폰은 단도에 꿰인 손바닥을 웨이터의 손을 움켜잡듯 감싸 쥐었다. 단숨에 출수한 멀쩡한 오른손이 웨이터의 턱뼈를 때렸다.
뻑-!
카운터를 허용한 웨이터는 그 자리에서 축 허물어졌다. 단도를 내지른 오른손은 웨폰에게 잡힌 채로 위로 포물선을 그렸다.
웨폰은 손바닥을 관통한 단도를 뽑기도 앞서 좌중에 소리치려 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이목이 몰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어, 어.”
다음 순간, 웨폰의 몸이 휘청였다. 의지와는 무관했다. 초점이 흐트러진 시야를 어둠이 야금야금 좀 먹었다. 동공에 이채가 사라졌다. 매가리 없이 이마를 바닥에 부딪친 건 그다음이었다. 뒤로 빠각,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어디서나 구석은 인지의 사각이다. 그 탓에 이쪽으로 신경이 덜 쏠렸다. 몇 사람이 시선을 던졌지만, 취객이겠거니 하며 웃어넘겼다. 웨폰 말고도 벽에 등을 뉜 사람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도… 마앙.”
웨폰은 없는 힘을 짜내 내뱉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무도회장으로 닿지 못했다. 이내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웨폰의 눈꺼풀이 감겼다.
* * *
“아가씨.”
샤일이 아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료죠와 기 싸움을 하고 있던 아벨이 샤일에게 시선을 넘겼다.
“응? 무슨 일이야?”
샤일이 검지를 들어 인적이 드문 구석을 가리켰다.
“다름이 아니라, 저기에 아가씨의 친구분이 널브러져 있는 것 같은데요.”
아벨도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웨폰의 정수리가 보였다.
“…쟤 왜 저러고 있지?”
그때. 와인 잔을 들고 있던 중년인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머리를 휘휘 흔들거나 뻐근한 눈을 끔뻑였다.
“뭐지? 나 한 잔밖에 안 마신 것 같은데… 취기가 벌써…….”
눈빛이 몽롱해짐과 동시에 그들의 몸이 무너졌다. 힘이 빠진 무릎과 들고 있던 유리잔이 연이어 돌바닥에 깨졌다.
급작스러운 이변, 절반 이상이 허연 눈자위를 드러내며 혼절했다.
일순간에 일어난 소요사태였기에 다들 행동이 굼떴다.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웨이터들이 일제히 손수건으로 하관을 가렸다. 그리고 품안, 옷소매 등지에서 비수를 꺼내면서 다가왔다.
샤일은 눈을 찌푸렸다. 갈무리된 기척과 발걸음으로 보건대 저들은 여간내기가 아니다. 게다가 수도 많다.
‘어림잡아 마흔.’
공교롭게도 전투 가능한 인원들은 술을 마셨는지 간신히 몸만 비척였다. 당장 저들의 지원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즉시, 샤일은 카론과 눈을 마주치더니 곧바로 서로에게 질의했다.
“술 드셨나요, 카론 님?”
“한 모금. 싸움에는 지장 없으니 걱정 말게.”
“설마 카론님을 걱정할 리가요. 그나저나 그 독, 살상 독입니까.”
“그건 아닐 걸세. 내 경험상 몇 잔만으로 음독시킬 수 있는 독은 없어. 보통은 중독이지. 기껏해야 강한 수면제 정도일걸세.”
카론의 확인이 떨어진 즉시 샤일은 등지고 선 아벨부터 살폈다.
아벨은 창백하게 질리길 잠시, 손가락을 입안 깊숙이 넣어 혀뿌리를 눌렀다. 그렇게 왈칵 속을 게워 냈다.
“젠장.”
아벨은 손등으로 입과 턱 주변에 묻은 위산을 훔쳤다. 그리고 곧장 벽에 기대어 두었던 검을 집었다.
집사와 메이드가 그런 아가씨의 모습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봤다. 아가씨가 평정심을 되찾기까지 몇 초 남짓. 조치가 민첩했다.
“도망치라거나 그런 말 하지 마. 아마 문밖은 더 난리통일 테니까.”
아벨이 검집을 털며 두 사람에게 한 선언이었다. 잠깐 멍하니 있던 샤일과 카론은 싱긋 웃곤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가씨가 많이 성장하셨군요.”
“그러게나 말이야. 이거 자칫 실직하는 거 아니나 모르겠구먼.”
“카론 님은 슬슬 은퇴하셔야죠.”
샤일이 홀스터에서 기다란 송곳을 꺼내어 적들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저는 니벨룽가에 뼈를 묻을 생각입니다.”
“허허. 나는 천검님과 아가씨의 아기씨까지 이 아카데미를 졸업하실 때까지 모실 생각이네.”
“그럼, 전 아가씨의 손녀분까지 모실 겁니다.”
그러는 사이, 웨이터들이 비수를 내뻗으며 달려들었다.
카론이 득달처럼 몰려오는 이들을 느릿하게 훑었다.
“웨이터란 자들이 기본이 안 되어 있군.”
카론이 두 손에 장갑을 끼고서 손가락을 까딱했다.
“내 기본부터 다시 알려 주겠네.”
그 순간 도약했던 웨이터들이 뭔가에 걸린 듯 덜컥 정지했다.
프카아악!
확 터지듯 퍼지는 피보라. 살점과 선혈이 튀는 공중에서 물줄기처럼 부유하는 은빛 와이어.
“저승에 가서 요긴하게 써먹게나.”
성긴 은빛 그물 사이로 희번덕이는 외눈 안경. 그 아래에서 사납게 흐르는 미소에 웨이터들이 숨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