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6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63화(258/300)
263화 더 테러 라이브 (2)
테러범 중 한 명은 반사적으로 눈이 내려갔다. 앞서 달려 나간 동료의 머리통이 데구루루 굴러 그들의 구두코에 부딪혔다.
생기가 빠져나간 눈동자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료를 올려다본다. 회백색 막이 덮인 안구는 이리 말하는 것 같았다.
‘저승에서 보자, 친구.’
테러범은 질겁하며 발로 그 시선을 걷어찼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아수라장을 휘둘러보았다.
그나마 방금 놈은 멀쩡하게 죽은 편이었다. 골통이 완전히 깍두기처럼 조각난 다른 놈들에 비해선 말이다. 눈구멍을 이탈한 안구가 발에 치였으며, 손가락은 소시지처럼 마디마디 썰려 나갔다.
꿀꺽- 마른침을 꼴깍인 웨이터는 도로 눈을 들었다. 방금의 일격으로 저 집사 행색을 한 중년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얼굴만 봐선 긴가민가했지만, 저 와이어를 본 이상 모르기가 힘들다.
‘나찰 카론.’
나찰은 뒷세계에선 전설로 통한다. 영웅을 죽이는 짐승. 일단 수주받으면 위계를 가리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는 히트맨. 손가락 끝에서 거미줄처럼 뽑혀 나온 와이어로 적을 도살하는 악귀였다.
그런 밤의 악귀가. 어째서 아카데미에 모습을 드러냈단 말인가? 니벨룽가에 귀의한 후로 단 한 번도 일선에 나선 적 없을 텐데.
카론이 뒷덜미를 잡고 목을 좌우로 주억였다.
“흠. 현장에서 너무 벗어나 있었구먼. 한 번에 열을 죽이려 했건만, 다섯밖에 못 치웠군.”
“그러니까 저랑 같이 성 밖에도 나가고 하셔야죠.”
샤일이 대꾸했다. 그녀는 도약을 위해 자세를 낮췄다.
“…샤일, 자네가 운전하는 차를 탈 바엔 녹슨 상태로 있는 게 나을 것 같네. 여튼 수다는 이 쓰레기들부터 소각한 다음에-”
카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샤일이 발을 굴렀다. 눈 깜짝할 새 지척에서 그녀가 불쑥 나타났다. 폭발적인 스피드에 놀라 커진 눈을 송곳이 뾰족하게 찔렀다.
푸슉, 핏방울이 샤일의 뺨에 튀었다. 그녀는 체조 선수처럼 빙글- 유연하게 몸을 회전했다. 각종 날붙이가 아슬아슬하게 잘록한 허리를 스쳤다.
순간의 빈틈. 와이어 다발이 채찍처럼 적을 후려쳤다. 네모·세모꼴로 잘게 해체되는 팔다리. 샤일의 송곳이 확실하게 적을 마무리했다.
“어, 어차피 두 명이다! 한꺼번에 덮쳐… 커헉!”
고함 치는 사내의 목젖에 화살이 박혔다. 그는 굳은 목을 뒤로 비틀었다. 웬 하늘색 머리가 화살을 재고 있다.
“두 명?”
료조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깨 위에서 흘러내리는 옆머리. 그녀가 세게 당긴 활시위를 놓았다.
푹.
미간에 화살을 선물받은 사내가 고꾸라졌다. 그에게 한 눈이 팔린 찰나, 앞에선 검날이 번뜩였다. 부드러운 호가 적의 간담을 훑었다.
스겅.
아벨의 검이 목뼈를 쪼개고 나왔다. 이어 등을 붙인 아벨은 샤일이 눈빛을 교환했다. 서로에게 작게 턱짓하곤 일시에 발을 굴렀다.
웨이터들의 눈이 앞뒤로 어지럽게 움직였다. 뒤통수에선 화살이 날아오고 앞에선 시체 위에 시체가 쌓여 간다. 수적으로만 우세하지, 궁지에 몰린 건 이쪽이었다.
수면제로 잠에 취하게 만들어 인질로 삼으려던 계획이 수포가 되었다.
본래 무도회가 개막한 후에 행동하려 했지만, 양아치처럼 생긴 애새끼가 낌새를 눈치채 버렸다. 조용히 처리했으면 또 모를까. 양아치는 손바닥이 꿰인 상태에서 조원 하나를 실신시켰다.
잠입조가 다소 섣부르게 실행에 옮긴 이유였다. 거기서부터 계획이 엉키고 말았다.
테러범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뭔 연놈들이 이토록 침착할 수 있지? 이거 애새끼들 맞아? 암만 호아킨 아카데미 생도라지만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암흑가에서 갖은 고역을 겪은 자들보다 심계가 고절했다.
테러 계획 단계에서 여러 변수를 고려했지만, 이건 예상 범위를 벗어났다. 교통사고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이래선 그가, 천검이 들이닥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없다. 강검마가 등장하면 전멸은 한순간이다. 저항조차 못 하고 목을 헌납해야 한다.
이런 와중에도 열 명 가까이 명을 달리했다. 쪼개진 빗장뼈를 어떻게든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피 분수를 뿜었고, 촘촘히 엮인 은빛 그물이 남은 적을 엄습했다. 꼴사납게 도망가려는 테러범의 발을 화살과 송곳이 바닥과 묶었다.
사면초가. 말 그대로 사위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그들의 리더라 할 수 있는 사내는 이리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적시는 촉감을 느끼며.
“모, 목숨을 다해 싸워라……!”
기합인지 절규인지 모를 외침. 다만 확실한 것은, 테러리스트가 내뱉을 만한 문장은 아니었다.
* * *
의상실 문짝을 박살 내고 나온 우리를 반긴 건 복면인 무리였다.
“존나 많네.”
강검마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기름때가 잔뜩 낀 수도관처럼 복면인들이 옹기종기 복도를 채우고 있다.
복면 아래로는 웨이터 복장이었다. 놈들이 어떻게 삼엄한 아카데미의 방범을 통과했는지 알 만했다.
위장.
‘제길.’
등잔 밑이 어두웠다. 당연히 고용인 전부를 빅스빅을 통해 꼼꼼히 검수했다. 하나 허점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설마 고용업체가 위장 기업일 줄이야.’
우리 중에 가장 분노한 건 단연 학원장 메디아였다. 그녀는 오만상을 일그러뜨리며 욕설을 뇌까렸다.
“야, 이 개새끼들아. 너희가 지금 어디에 발을 디딘 줄이나 알아? 그리고 상대를 봐 가면서 얼굴을 들이밀어야지. 수만 많으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해?”
그때 멀찍이 복면 무리 너머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럴 리가요.”
복면인들이 절도 있게 길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뚜벅뚜벅 워킹을 선보였다.
“폭군, 만력, 거기다 천검. 무슨 재간으로 저희가 막겠습니까.”
남자가 간사한 조소를 입꼬리에 걸었다. 메아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흥분한 동생을 언니가 대신했다.
“그걸 아는 놈들이 무슨 배짱이지? 뭐, 목숨을 버리기라고 하려고?”
“예. 맞습니다. 비록 저희가 하잘것없는 놈들이긴 하나, 시간 벌이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그걸 위해서 저희가 여기 있는 겁니다.”
“너희들은 학습 능력이란 게 없나 봐? 그렇게 뒈져 놓고도 바퀴벌레처럼 기어 나오는 걸 보면.”
“어떻게 매도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죽음은 대의를 향한 일보. 목숨을 버리는 데 있어 조금의 후회도 없습니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죽거렸다.
“아, 그래도 혹시나 실망하실까 싶어 이쪽은 전부 마법을 다루는 이들로 구성했습니다. 불운하게도 선택받지 못한 녀석들은 무도회장 쪽으로 보내 놨죠. 그래도 그쪽도 나름 테러범 중에선 엘리트로 선별한 놈들입니다.”
“감히… 생도들을, 내 학생들을 건드려!?”
“허이구. 무섭습니다, 학원장님. 고정하세요. 터레리스트가 인질을 잡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끔찍이 아끼시는 생도들을 구하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저희를 전부 죽이십시오. 그러면 길을 열어 드리죠.”
남자는 자신만만한 낯으로 빈정거렸다. 어차피 죽음을 각오했다. 더는 포기할 게 없다. 과감한 언행은 이에 기인했다.
“자, 여러분. 이럴 시간에 어서 빨리 저희를-”
저벅.
발소리가 목소리를 단칼에 끊었다. 강검마가 발을 내디뎠다. 잠자코 있던 모두가 반사적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걸음만으로 복도에 긴장이 맴돌았다.
“물량빨로 밀어붙인다……. 너희 나름대로 나에 대해 대비를 한 것 같긴 해.”
빌런들도 바보 천치는 아니다. 강검마는 지긋지긋하리만치 놈들과 싸워 왔다. 그렇기에 적들도 그의 능력이 단발성 스프린터라는 것을 얼추 짐작했을 터다.
“근데 발전하면 뭐 하냐?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병신인데.”
검은 동공이 작아졌다. 그걸 보자마자 남자가 다급히 지시했다. 폭군과 만력 앞에서 보였던 기개는 이미 얼굴에서 가셨다.
“공격해!”
외침보다 움직임이 빨랐다.
강검마는 무라사메를 짧게 잡았다. 그리고 칼날을 복도 벽에 심었다. 검붉은 기운이 벽에 스미더니, 이윽고 복도 전체를 집어삼켰다.
[흉각의 권능이 발현됩니다.]복도를 꽉꽉 메우고 있던 대열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인의 장막이 태풍에 휘말린 벼이삭처럼 우르르 바닥에 누웠다.
“……!”
한 남자만이 두 다리로 서 있을 뿐. 그 많던 생명 반응이 끊겼다. 너무나도 쉬이 빌런 무리를 괴멸시켰다. 그들의 죽음은 잠시간의 시간 벌이도 되지 못했다.
메디아와 메아인도 놀랐는지 마찬가지로 멍했다.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듯했다. 질척한 난전을 예상했다. 시간 낭비가 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다.
‘이 이상으로 검마한테 놀라기도 힘든데.’
강검마는 나날이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자매는 이내 꾹 다물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했다.
‘확인 사살.’
자매는 곧바로 움직였다. 쓰러진 적을 아주 피죽으로 만들었다, 마치 하이에나가 뒤처리하듯이. 핏물이 복도를 덕지덕지 칠했다.
남자는 뒷걸음질 치다 걸리적거리던 고깃덩이 하나에 걸려 나자빠졌다. 천검이 바닥에 쌓인 것들을 지르밟고 느릿하게 근접해 온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
이맛머리 사이로 차게 식은 검은 눈이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감각이 서늘하다.
“하지만 너희는 인간을 포기했기에, 실수만 반복하지.”
순간 남자는 포기했다 생각한 목숨을 다시 갈구했다. 죽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삶에 대한 갈망이 대의를 억눌렀다.
머릿속이 혼탁해 있자니 거리가 좁아진 건 금방이었다. 강검마가 남자의 목전에서 쭈그려 앉았다. 시체들이 터져 나가는 가운데 둘 사이의 기류는 적막했다.
남자는 항거를 고민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공포에 짓눌려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강검마가 산발이 된 머리를 위로 쓸어 넘겼다. 검지를 나비넥타이에 걸어 목을 느슨하게 하려 했다. 그러다가 말았다. 이 매듭은 스타일리스트가 남긴 유품이었으니.
“침입한 목적.”
강검마가 짧게 말했다. 남자가 얼을 타자 머리채를 붙잡았다. 잘 알아듣게끔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목적.”
“그, 그그, 그게.”
남자는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젠장, 뭐라도 실토해 내고 싶은데 혀가 헛돈다.
“빌런들의 태세 전환은 어째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냐. 조금 전까지 있던 가오는 어디다 팔아먹었지?”
쯧.
“죽어라, 그냥. 딴 놈한테 물으련다.”
무라사메가 흔들렸다. 칼날은 핏방울을 뿌리기 무섭게 피를 묻혔다.
퉁.
둥그런 덩어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강검마는 사시미에 묻은 피를 툭툭 털었다. 숫제 칼날이 덜컥거렸다. 벽에 박을 때 손상이 있었던 모양이다.
강검마는 눈을 찌푸리다가 곧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저쪽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그는 쌍둥이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동했다. 한바탕이 소란이 일었을 무도회장을 향해서였다.
* * *
무도회장의 대치는 팽팽했다.
“악에 받쳤군.”
카론이 짧게 혀를 찼다. 테러리스트들은 악바리 근성으로 끈질기게 맞서 싸웠다.
“완전 잔챙이들은 아니었군.”
거기다 놈들은 전의가 불탔다. 초장에 기가 좀 눌렸으나 정신을 바짝 차렸다. 코너에 몰린 생쥐는 고양이를 물곤 한다.
“수 앞에는 장사 없다! 몰아붙여!”
테러범이 외쳤다. 그는 날렵하게 공격을 회피하며 때를 기다렸다.
천검이 있을 의상실엔 마법을 다루는 자들이 대거 투입됐다. 전멸당할 테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적게 잡아도 이십 분. 그 안에 여기를 점거해야만 한다.
의상실 투입조와 달리 이들은 살기 위해 싸웠다. 일이 수틀릴 시 도주할 활로를 계속 염탐했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지원군이 올 거다.’
그때가 되면 반전을 꾀할 수 있다. 테러범은 술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히고 테러리스트를 진두지휘했다.
끼이익.
갑작스레 무도회장의 문이 열렸다.
테러범의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이 타이밍이면 지원군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를 포함한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문을 연 이가 결코 조우하고 싶지 않은 이였기 때문이다.
“아…….”
누군가 장탄식을 토해 냈다.
사고까진 어찌어찌할 수 있다. 하지만 재앙 앞에선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결국에는 재앙이 오고야 말았다.
입구로 들어선 강검마는 온몸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너머로 사시미에 갈려 나갔을 시체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테러범의 희망이 무색하게 흩어졌다.
“기분 같아선 전부 죽여 버릴 것 같다.”
벌어진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던 강검마가 말했다. 탁탁, 사시미를 더럽힌 찌꺼기를 털어 내며.
“물어볼 게 있으니 한 놈은 살려 줄게. 선택권을 주마. 내 손에 죽든, 너희끼리 협상을 하든지 해.”
그 선고에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무기와 동료를 번갈아 보았다.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말해 두는데 나 성격 급하다.”
강검마가 합의를 종용했다. 테러리스트들이 마음을 굳힌 건 동시였다.
우워어어어……!
다시금 전의가 불탔다. 이번엔 칼끝을 적이 아닌 동료를 겨누었다.
“난 전부터 네가 마음에 안 들었어!”
“내가 할 소리다, 씨발롬아. 이참에 죽어라!”
살고자 하는 춤사위가 무도회장을 시끌시끌하게 울렸다. 처절하고도 절박한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