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64)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64화(259/300)
264화 더 테러 라이브 (3)
나는 평화적인 사람이다.
사회의 암덩이들이 같이 뒤 세계를 암약하자며 구슬렸을 적에도, 진상 손놈이 내가 보는 앞에서 요리에 걸쭉한 가래침을 뱉었을 적에도.
좋게 좋게 타일러서 보냈다.
“…….”
-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를 벗어난 행패나 혐성스러운 인간은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다.
사장님의 유지를 본받아 웬만하면 대화로 해결을 보고 싶지만, 언어가 통한다고 말이 통하는 게 아니었다.
효시를 거부하는 놈들이 있다. 범죄와 밀접한 놈들이 대개 그렇다.
조금 전에도.
무도회장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길막하길래 비키라고 말했다. 하지만 놈들은 무기를 빼 드는 것으로 명백한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몇 놈은 살려 뭣 좀 물어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살리는 게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 무도회장에서 뭔 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전부 죽였다.
얼마나 죽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베어 낸 수가 서른이 넘어갔을 시점에서 세는 걸 관뒀으니까.
인중이 씰룩거렸다. 비릿한 혈향이 참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야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박자박한 핏물, 뇌수와 지방이 혼합되어 바닥이 지저분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그 어떠한 감상도 들지 않는다. 되려 그게 두려웠다.
암만 적이라지만 이렇게 죽이고 또 죽이는 게 옳았던 것일까? 성미가 불같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 단순 변명이 아니었을까? 내면의 어둠을, 악한 충동에서 자유롭다고 믿고 싶은 자기 합리화이지 않을까?
그런 상념을 하면서 도로 고개를 돌렸다. 큼지막한 무도회장의 대문이 망막에 드리웠다. 기함과 비명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카론 님이랑 샤일 씨가 아벨의 호위로 왔다고 했지.’
두 사람의 실력을 신뢰한다. 동급의 영웅들에 비해서도 그들의 무력은 월등하다. 최악의 사태는 그들이 어떻게든 면해 줬을 터다.
“…오늘은 그만 죽였으면.”
진심이었다. 손을 피로 적시는 건 이만하면 되었다. 본심은 이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끼이이…….
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테러범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복면 위로 핏기가 가신 낯들이 보였다.
순간 시커먼 심마가 내 영혼을 헤집었다. 서슬이 일은 뇌리에는 살인 충동만이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족쇄가 느슨해진 투견처럼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그러나 치밀던 구정물은 목구멍 위로 솟아오르지 못했다. 내 목을 꽉 조인 나비넥타이 덕분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까 이 넥타이를 풀지 않았기에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놈은 살려 줄게.”
내친김에 자비란 걸 베풀어 보기로 했다.
“한 놈만.”
호구 잡히지 않을 정도로.
* * *
테러리스트 중 생존자는 두 명으로 좁혀졌다. 두 사람은 조직 내에서 원래부터 실력이 비등했다.
“그만.”
이를 드러내며 서로에게 버르적거리는 두 사람을 강검마가 제지했다.
“여기서 더 했다간, 둘 다 죽을 것 같다. 그만 무기 내려놔라.”
테러범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다소곳이 무기를 내려놓았다. 다음 순간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강검마는 널브러진 의자 하나를 일으켜 세웠다. 의자를 질질 끌고 와서 그들 앞에 앉았다.
강검마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혹여 두 사람 대답이 다르면 한 명은 죽는 거야. 내 말 이해하지?”
요컨대, 교차 검증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테러범 둘은 침을 꼴깍 삼켰다.
“예.”
“알겠습니다.”
둘은 휙 시선을 틀어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첫 대답부터 아다리가 맞지 않았다.
강검마는 피곤함에 찌든 한숨을 흘렸다. 그가 앉은 의자 뒤로 카론과 샤일, 아벨, 그리고 료조가 붙었다.
강검마는 어깨너머를 흘긋했다. 다들 잔 부상은 조금씩 있었지만 경미한 수준이었다. 다행히 치명상은 없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칠성에 등극하시고는 처음 뵙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카론, 샤일. 스위스에 한번 들른다는 게 번번이 늦어지네요.”
“기억해 주시는 거 하나만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괘념치 마소서.”
강검마는 카론과 샤일에게 옅게 미소 지어 보였다.
“감사는 제가 해야죠. 카론이랑 샤론이 아니었으면 피해가 컸을 겁니다.”
감사를 전한 강검마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안부를 묻기는 뒤로 미뤄져도 괜찮다. 일단은 저 운명 공동체 한 쌍이 우선이다.
“복면부터 벗어라. 보기만 해도 답답하니까.”
“예.”
운명 공동체는 곧바로 뒤통수에 묶은 복면 매듭을 풀었다. 몹시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 드러났다. 테러범이라고 인상이 흉악하거나 그러진 않다. 평범할수록 잠입에 유리하다.
“이름.”
““아, 저는-””
“생각해 보니까 됐다. 내가 범죄자들 이름 알아서 뭐 하겠냐. 왼쪽에 넌 포로 1, 오른쪽은 포로 2다. 숫자 헷갈리지 말고 부르면 퍼뜩퍼뜩 대답해.”
““…….””
“대답.”
““예.””
강검마는 편하게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맞은편의 포로 1, 2는 가시방석이었다. 숨통이 조였다.
“너희가 아카데미에 잠입한 목적.”
“상부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포로 1이 얼른 말을 받았다.
“무도회 시작을 틈타서 회장을 점거하라고 했습니다.”
“상부가 어딘데. 빌런 연합? 걔네는 아디토레한테 괴멸했잖아.”
“맞습니다. 근데 연합이 사라진 후부터 마경에서 직통으로 연락이 옵니다.”
“누구한테서.”
“그거까진 잘…….”
“모르면 됐다. 지시한 게 누군지 모르면 아카데미에 잠입한 본래 목적은 너희 같은 잔바리는 모른다, 그치?”
““…예.””
“그래, 그럼. 하긴 테러리스트들이 잔챙이들한테까지 계획을 떠벌리진 않겠지.”
“구체적인 계획까진 모릅니다. 하, 하지만 대계의 코드 네임이 ‘사자’로 통했습니다.”
포로 1이 더듬더듬 부연했다.
“사자라.”
강검마는 턱을 매만지며 잠깐 골몰하다가 재차 물었다.
“무도회장은 왜 점거하려고 했는데.”
“그게…….”
“인질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포로 1이 머뭇거렸다. 질세라 포로 2가 번쩍 손을 들었다.
“상부도 무력 부분에선 천검님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생도들을 인질로 잡아라. 그게 저희 무도회장 잠입조의 임무였습니다.”
포로 2가 비실비실 쪼개며 손을 비볐다. 강검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질 잡겠다는 소리를 포로 2, 너는 신이 나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고.”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냐. 실망 안 했다. 애초에 기대란 게 있어야 실망도 하지. 옛날부터 난 범죄자란 족속한테 조금도 기대하지 않아.”
“…….”
“갱생? 죄를 뉘우쳐? 지랄하지 마라. 사회에 나와서 갱생했다는 자들은 예외여서 뉴스에 나오는 거야. 범죄자의 태반은 정신 못 차리고 3년 안에 재수감되는 게 현실이다.”
포로 2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검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면 너희 같은 새끼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출소한 후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사회가 나를 안 받아 줘서’, ‘소생의 기회를 박탈당해서’. 아니지, 아니야. 그런 건 전부 핑계고. 너희는 원래 그런 새끼들인 거다. 사회가 관용을 베풀어 줘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새끼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봐 봐, 지금도. 죽을죄를 지었다는 놈이 제 살길 찾으려고 ‘인질을 잡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딴 개소리를 다 하고. 아직 약관도 안 지난 어린애들 목숨을 저당 잡고 사는 게 부끄럽지도 않냐, 이 개새끼들아.”
강검마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는 상반신을 숙이곤 포로 1, 2의 왼·오른 어깨를 덥석 잡았다.
“너희들, 내 성격 들어서 알지?”
“엄격하시다고 들었습니다.”
포로 2가 신중하게 고른 단어를 내뱉었다. 말실수를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엄격은 염병. 미쳤다고 소문났을 거 아니야.”
사실이었다. 이번에도 포로 2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열 살은 어린 소년의 장광설을 그저 경청했다.
“친구들.”
포로 1, 2는 숨이 멎을 것 같단 표정이 되었다. 강검마는 손을 양어깨에서 떼어 냈다. 그 손으로 그들의 목덜미를 툭툭 쳤다.
“난 무도회장에 오면서 방해되는 녀석들을 다 죽였다. 손속에 사정을 둘 수 있었음에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았어. 그러고 나서 녀석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나만 덩그러니 있더라. 후회하냐고? 아니. 그래서 더 문제야, 후회를 안 해서.”
강검마는 두 테러범에게 자조의 말을 읊조렸다.
“지금까지 난 내가 미쳤다는 걸 애써 부정해 왔다. 하지만 이젠 아니야. 인정하기로 했어, 범죄자라 해도 생명을 해하는 데 주저가 없어진 내가 맛이 갔다는 걸. 그렇다고 딱히 변하겠다는 소리는 아니야. 다만 문제를 인지했으니 조심할 순 있다. 그래서 너희 중에서 한 놈은 살려 주겠다고 선언한 거고. 아직도 이 선택이 맞는지 몰라. 어쩌면 사회에 독을 푸는 거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난 이게 글러 먹었을 선택이라도 변덕을 부려 보고 싶은데. 너희 의견은 어때.”
“살려 주시면 앞으론 절대 이런 패악질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천검님께 부끄럽게 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포로 2가 얼굴을 세상 침통하게 반죽하고서 말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강검마는 무뚝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포로 1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물었다.
“포로 2는 이렇다는데, 1은?”
“…….”
잠깐의 뜸.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1의 대답은 2와 달랐다.
“도둑질을 시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듭니다.”
포로 1의 양심 고백에 2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살 기회를 제 발로 차다니. 미련한 놈.
“같은 말을 들어도 느끼는 바가 다르구나.”
강검마는 짧게 웃음 지으며 손길을 거두었다. 단, 포로 1에게서만. 포로 2의 뒷덜미는 여전히 붙잡은 채였다.
“천검님……?”
강검마는 어리둥절한 포로 2의 눈길을 무시하고서 포로 1을 응시했다.
“1, 이름이 뭐냐.”
“이재연입니다.”
그 순간 포로 2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뒷덜미로 퍼져 나간 강검마의 살기가 심장을 멎게 했다. 즉사였다.
“재연아.”
강검마는 자리를 털며 포로 1의 이름을 불렀다.
“예, 천검님.”
“내가 살려 줬다고 사회가 너를 용서한 게 아니야. 지금껏 저질러 온 죄를 낙인처럼 달고 살아라. 네가 몸담았던 조직이 너를 찾아내서 죽인다 해도 업보라 생각해. 그렇게 죄인의 삶을 살다 보면 네가 왜 잘못 살았는지 알게 될 테니까. 그게 내가 내준 아니, 이 아카데미가 내준 숙제다.”
포로 1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쿵, 찧는 소리가 크게 났다.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 천검님.”
“안 돼, 인마. 범죄자는 원래 취업 힘들어. 그리고 내가 뭐 예쁘다고 시커먼 남자 새끼를 거두어. 싫다.”
“…여자면 되는 겁니까?”
“여자여도 안 돼, 새끼야. 이거 말귀가 어두운 거야,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거야. 됐으니까 얼른 꺼져. 이야기할수록 너를 살려 둔 걸 후회할 것 같으니까.”
“예.”
포로 1은 헐레벌떡 무도회장 밖으로 향했다. 빠져나가기 직전 그는 허리를 깊게 숙였다.
“상해를 입힌 점 사죄드립니다, 천검님의 동료분들.”
그게 이재연의 작별 인사였다. 그가 사라지자 그때야 강검마는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런 자신을 벙찐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얼굴들. 강검마가 멋쩍게 눈썹을 긁적였다.
“괜히 살려 뒀나요?”
침묵을 깬 건 카론이었다. 그는 급기야 털털 웃어 버렸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이 사람, 천검님께 탄복했습니다.”
“탄복까지야……. 그건 그렇고, 다들 움직일 체력은 있습니까?”
“천검님을 위해서라면 없는 체력도 짜내야죠.”
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진짜 없다는 건 아닙니다. 천검님의 말을 듣고 있으니 힘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힘이 넘치는 화답에 강검마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려 주었다. 그러곤 숨을 들이마셨다. 피 냄새를 섞어 호흡을 내뱉었다. 폐가 깨끗해지는 듯한 기분. 속이 후련했다.
내면의 성장은 스스로 그릇됨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다. 치부를 숨기기에만 급급하면 발전은 없다.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기에 법과 제도를 만들어 문명을 이룩했다.
그렇게 잠시 후 강검마가 입을 열었다.
“레온을 찾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