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6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66화(261/300)
266화 콩가루
사키 히나는 빠르게 호아킨 아카데미 방문 일정을 잡았다. 료조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벼운 부상이라 이미 전해 들었다. 또한 병문안을 갈 만큼 두 사람이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키 히나는 꼭두새벽에 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버지, 사키 코지마 몰래 가는 암행이었기에 전용기로 오갈 순 없었다.
“흐음.”
비행기 안에서 히나는 쏟아지는 기사들을 소상히 읽어 내렸다. 눈도 끔벅이지 않고 집중했다. 기내가 추워 속눈썹에 이슬방울이 맺힐 듯했다.
[호아킨 아카데미에서 테러… 배후는?] [무도회장을 급습한 테러범들… 규탄.] [호아킨: 잇따른 테러 공포에 떨고 있는 아이들.] [호아킨 아카데미 테러 최소 20명 부상자…….]대부분이 어제 있었던 ‘호아킨 테러’에 관한 기사들이었다. 개중에서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마지막 한 줄이었다.
[…테러 최소 20명 부상… 하나, 천검(天劍)의 활약 덕택에 사망자는 “0명”.]사키 히나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배어들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끄고서 타원형의 창문을 바라보았다. 고도를 낮춘 비행기가 구름을 뚫으면서 하강하고 있다.
“또 뵙겠군요, 천검님.”
고도가 낮아질수록 히나의 미소도 덩달아 진해졌다. 쿵쿵, 가슴을 두드리는 심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탁.
히나는 곧 뵙게 될 얼굴을 상기하며 창문 커버를 내려 닫았다.
* * *
처녀 귀신처럼 허여멀건 놈을 죽인 즉시 예배당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어느새 포이즌 쌍둥이가 합류해 상황을 종결시켰다.
기존 멤버-카론, 샤일, 아벨, 료조에서 두 사람이 더해지니 적은 속수무책이었다.
눈 깜짝할 새에 진압을 마치고서 포이즌 쌍둥이는 바로 수습에 나섰다.
다행히도 테러는 무도회장을 중심으로 자행된 것이었고, 회장은 기존 멤버들이 성공적으로 수성했다. 덕분에 무도회장 외부로 피해가 확산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부상자가 더러 발생했지만 속출하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있다고 해도 경미한 수준. 무엇보다 사망자가 0명이었다. 수십 명이 습격한 대규모 테러임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가 거의 없단 소리였다.
발빠른 테러 진압보다 더 압도적인 쾌거였다. 그 때문에 메디아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어린아이처럼 울었지만… 어쨌건.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이라는 게 의미가 크다.
한참 대성통곡한 메디아는 곧장 배후 세력 추적에 나섰다. 메아인도 열이 뻗친 모양인지 동생과 함께했다. 어차피 모레면 겨울방학이었기에 그녀들로선 시기적절했다.
행선지를 알려 주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걱정되진 않았다. 그 누가 포이즌 쌍둥이의 앞길을 막을쏘냐. 지금 두 사람을 건들면 아주 묵사발이 날 텐데.
눈빛이 얼마나 살기등등하던지. 지금은 나조차 그녀들이 두렵다.
그때. 날카로운 고성이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엄마! 만지지 말라고! 아프다고, 아파!”
“가만히 좀 있어 봐, 얘. 어우, 뭔 놈의 계집애가 팔이 이렇게 억세다냐.”
떼를 쓰는 료조와 붕대를 감아 주는 그녀의 어머니 신시아.
나는 두 모녀의 화목한 옥신각신을 멀찍이서 구경했다. 그러다가 병실 벽에 어깨를 기댄 채로 작게 탄식을 뱉었다.
‘어머니가 바로 올라오실 줄이야.’
아카데미 차원에서 공표하기도 전에 신시아는 이곳에 도착했다. 누가 알려 줬는지 정보의 출처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사키 히나.’
료죠에게 신시아의 소재지를 건넨 것도 히나였었지. 그러니 반대 상황이 안 될 건 없다.
정보의 특혜다 뭐다 언론사의 지방 방송이 있을 수 있지만, 내 눈빛 한 번이면 입을 다물 것이고.
‘료죠는 특혜를 받을 만하니까.’
료죠는 생도 신분으로는 활약이 두드러졌던 두 명 중 하나다. 다른 한 명은 아벨.
사건의 시작과 끝을 함께 했던 두 사람이다. 이 정도는 특혜 축에도 못 낀다.
참고로, 아벨은 잔 부상 없이 말끔했다. 입원한 건 료죠뿐. 그마저도 뼈에 금이 간 정도였다.
하여튼.
‘협회랑 이야기해서 따로 보상을 하든가 해야겠네.’
료죠와 아벨은 한사코 거절하겠지만 억지로라도 떠넘길 생각이다.
물질적이지 않더라도 보상은 있어야 한다. 무상은 안 된다.
내가 한국인 게이머여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말이다.
“후우. 끝났다.”
신시아가 손등으로 이마를 닦았다. 병상엔 웬 미라가 누워 있었다. 얼굴만 달걀귀신처럼 남아 있고 전신은 붕대로 감긴 료죠였다.
“이게 뭐야!”
“엄마가 왕년에 이름난 명의였던 거 알지?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언니들이 날 믿고 널 맡긴 거야.”
믿고 맡겼다 뿐인가. 의료진이 신시아를 보자마자 꾸벅 절하듯 인사했었다.
신의(神醫). 의료진은 분명 신시아를 그렇게 불렀다.
그녀가 평범한 가정주부일 거라곤 생각도 안 했다. 암만 대여섯 번째 부인이라도 사키가의 며느리잖아.
신분 사회 2년 차. 이 세계의 생태를 조금씩 체득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신시아가 이토록 예상 범위 밖의 거물일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런 거물이…….
“와- 이렇게 보니까 우리 딸 완전 파라오가 따로 없네! 이참에 졸업하고 이집트로 취직하는 건 어때?”
“엄-마!”
제 딸 약 올리는 데에 이만큼 진심이라는 것 역시 놀랍다. 애어른 딸과 철부지 어머니. 환상의 콜라보다.
‘엄청 젊게 사시네.’
료죠는 내 존재마저 잊었는지 천진하게 생떼를 썼다. 뭔가 적응 안 되네. 항상 애어른 같던 애가 아이로 퇴행한 거 같아서.
‘그래도 저게 나이대에 맞는 행동이니까.’
나는 옅게 미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 정신 좀 봐. 놀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그만.”
내 시선을 느꼈는지, 신시아는 서둘러 구급품 상자를 챙기곤 일어났다.
“천천히들 이야기해.”
병실을 나가기 전 그녀는 내게 빙긋 웃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털어 주었다.
“우리 딸이 항상 신세만 지네.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우리 딸 잘 부탁할게.”
신시아가 나를 들여다보았다.
“강·서·방.”
그녀의 눈길이 곱게 휘었다.
* * *
‘강서방’이란 단어의 둔중함이 명치를 두드렸다. 그렇게 살짝 얼이 나가 있는데 뒤편의 목소리에 흠칫 정신을 차렸다.
“야.”
강검마는 멈칫하더니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미라(료죠)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나 이거…….”
료죠는 ‘좀 풀어 줘’란 뒷말을 삼켰다. 생각해 보니 붕대 안은 맨살이었다. 느슨하게 했다간 민망한 상황이 터질 수 있다.
그 상황이 싫다거나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좋을 수도?
다만 아직은 너무 이르다. 성인이 되고서도 늦지 않다. 료죠는 강검마와 머나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있었다.
“여기 앉아.”
료죠는 입술을 삐죽여 간이식 의자를 가리켰다. 턱과 목이 단단히 고정된 탓에 이게 움직일 수 있는 한계였다.
강검마는 엄지로 눈썹께를 긁적이곤 의자에 앉았다. 원래는 몸 상태만 확인하고 떠나려 했다. 입원을 줄기차게 해 본지라 안정의 중요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상으로 환자의 의사가 중요하다. 적어도 병실 안에선 료죠가 갑이었다. 그녀가 앉으라면 곱게 그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
병실의 분위기가 확 어색해졌다.
뭐랄까. 기류가 이상했다. 약 냄새도 오늘따라 오묘하게 맡을 만했고, 환자 감시 장치가 내는 삐↗―삐↘, 소리는 심장이 약동하는 것처럼 들렸다.
열심히 눈알만 돌리던 료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붕대의 압박감보다 이 분위기가 더 갑갑했다. 어떻게든 환기가 필요해 보였다.
“그때 예배당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료죠가 물었다. 강검마는 잠깐 고민에 잠겼다.
당시 상황을 오해가 생기지 않게끔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마인과 밀담을 갖던 용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이해 안 된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게 퍽 조심스러웠다. 사실 확인이 덜 된 만큼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으니까.
세인의 입원실은 외신 교단이 진을 치고 지키는 중이었고, 레온은 면담을 극구 거부하고 있었다. 이렇듯 사실 확인까지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예정이었다.
‘여기서 하는 말에 따라서 료죠가 갖는 레온의 이미지가 변하겠지.’
최근 용사의 자질에 대한 의심도 간간이 나오거니와, 료죠는 레온을 긍정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이간질하는 건 아닐까 싶어 기분이 꺼림직했다.
‘근데 그 이상으로 료죠한테 숨긴다는 게 꺼림직해.’
그녀 자신이 왜 목숨 걸고 싸웠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거짓을 말할 순 없는 노릇. 양심의 문제였다. 당장을 모면할 순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간의 신뢰를 나 스스로 허무는 격이었다.
강검마는 마음을 굳혔다. 들을 자격이 충분한 료죠이기에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강검마는 간추린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딱 본 그대로를.
“…음.”
이야기를 모두 들은 료죠는 미간을 좁혔다. 영민한 두뇌는 정황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데 열중했다.
‘안 그래도 국제 정세가 불안으로 뒤숭숭해. 이 이야기가 새어 나갔다간 엄청난 파란이 일 거야.’
개인적인 언짢음과는 별개로 료죠는 용사의 존재 자체는 긍정했다.
레온은 인력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가 있기에 아카데미 내 자잘한 분란과 갈등은 빠르게 진화된다.
‘뭔진 몰라도 그게 용사의 고유 가호겠지.’
레온이 아카데미를 졸업한 다음 영웅계에 투신한다면 인류는 확실한 구심점을 얻는 셈이다. 그건 최연소로 칠성에 등극한 강검마도 해 줄 수 없는 그만의 역할이었다.
그런 그가 마인과 대화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위신에 흠이 생긴다. 많은 이들이 레온을 의심할 것이며, ‘용사’란 구심점을 잃은 인류는 단합에 어려움을 겪을 터다.
강검마의 짧은 이야기에서, 료죠는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느꼈다. 더불어 당분간은 절대 함구해야 한다는 것도 굳이 말 안 해도 알았다.
료죠가 계속 낯빛이 어둡자, 강검마는 멋쩍게 볼을 긁었다.
‘어째 말을 할수록 분위기가 무거워지네.’
그는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전에 너랑 아벨이 나한테 했던 말 있잖아. 둘 중 누구냐고.”
료죠는 붕대 속 귀가 쫑긋 서는 걸 느꼈다. 몸은 선인장처럼 뻣뻣했으나 귀는 열려 있다.
“그때부터 혼자서 쭉 생각해 봤거든.”
강검마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근데 굳이 둘 중 한 명을 택할 필요 있을까? 친구 사이에-”
이때, 문이 벌컥 열렸다. 신시아가 성큼 걸음으로 강검마와 료죠에게 접근했다.
게다가 웬걸. 신시아 뒤로 익숙한 얼굴이 쭐레쭐레 따라 들어왔다. 사키 히나였다.
때아닌 상황에 강검마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엿듣고 있었던 거야? 아니, 그리고 사키 히나 쟤는 왜 온 거지?
“강 서방.”
두 번째라고, 이제는 자연스러운 호칭으로 신시아가 불렀다. 강검마는 마른침을 꼴깍 넘겼다.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뜨끔했다.
“우리 딸은… 우리 딸은…….”
신시아의 입술이 파슬파슬 경련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셨지?
강검마는 급히 눈길을 돌렸다. 사키 히나가 애매한 표정으로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부인을 몇 명을 들이든지 상관없어.”
신시아가 강검마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대, 대신 우리 딸만큼은 꼭 첫째 부인이어야 해! 알겠지, 강서방? 그거 하나는 약속해 줘.”
“……?”
강검마는 동공이 멍하니 풀렸다. 머릿속은 혼돈이었다.
“저는 몇 번째더라도 상관없사옵니다.”
넋이 나가 버린 그에게 사키 히나가 말했다. 옷소매로 홍조가 번진 뺨을 수줍게 가리며.
“…개판이군.”
료죠가 중얼거렸다. 가족을 향한 냉정한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