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6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69화(264/300)
269화 성유물 (2)
근래에 생긴 습관 하나가 있다.
눈앞의 대상(피아 구분 없이)과의 승기를 어림해 보려는 버릇. 워낙 다사다난하고 거친 한 해였던지라, 감각을 항시 날카롭게 벼려 놔야 했다. 당장 지금도 그 습관은 무의식중에 발동되고 있다.
나는 눈을 끔뻑거리는 것도 잊은 채 ‘그’를 직시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곧게 훑으며 내려왔다.
‘안 보인다.’
승기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가상의 전투를 수백, 수천, 수억 번을 돌려보아도 지는 건 결국 나다. 손톱만 한 검흔을 입힐 수나 있을는지 그마저도 장담하기 힘들다.
근래 들어서 바스몬을 제외한 군단장 전원을 만나 봤다. 5군단장 아고르, 4군단장 퍼머쉬, 3군단장 베스나, 2군단장 쿠아른. 1군단장 라이칸도 꿈자리를 빌려 그 강함을 눈에 새긴 나다.
한데도 그는, 검의 신은 단어 그대로 격이 다르다. 군단장들의 마법을 순 애새끼의 재롱으로 전락시킬 법한 압도적인 존재감. 명순응이 끝났다 싶어도 배경이 계속 희뿌연 까닭은, 저자가 발산하는 기백 때문이리라.
두 번째 만남에서 새삼 탄성을 터뜨리는 것 또한, 내 수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방증이긴 한데.
딱 그 수준이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존잰지 어슴푸레 유추할 수 있는. 가감 없이 딱 그 정도.
‘저런 놈이 내게 힘을 빌려주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강해야 공간 전체를 뿌옇게 흩트려 버릴 수 있는가. 눈으로 똑똑이 보고 있지만 이건 추상의 영역이다. 상상의 범주를 벗어났다. 물리 법칙은 신의 제어구가 되지 못함을 확인하는 자리다.
-잘 지낸 모양이네. 신수가 훤한데.
헛웃음이 나오려던 즈음, 검의 신이 웃는 낯으로 말했다. 소리의 매질이 여러 개라는 것처럼 음성이 겹쳐서 들렸다.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도달할 줄은 몰랐어.
잇새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또박또박한 발음이 귓전을 건드렸다.
이제야 말문을 여는 건 내가 평정을 되찾길 기다려 준 듯하다.
그 배려에 응하듯,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그에게 물었다.
“신도 모르는 게 있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거야.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할 수 있을 줄 알지. 근데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 그저 알고,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를 뿐이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할까?
나는 작게 끄덕였다. 검의 신은 입매를 높이 끌어 올리곤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대화할 말미가 그리 많진 않은데, 자세라도 느긋했으면 해서.
검신은 왼쪽 무릎을 세워 거기에 왼팔을 올렸다. 노부들이 대청마루에 앉은 듯한 편안한 자세.
그가 자신의 코앞을 턱짓했다. 이왕이면 가까이 앉으라는 뜻이었다. 쭈뼛거리던 나는 이내 엉거주춤 서너 걸음 떨어져서 마주 앉았다.
검신이 웃으며 말했다.
-대충 세 개 정돈 답해 줄 수 있을 것 같군.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봐.
그렇지…. 이런 게 신과 같은 초월체가 인간에게 자동으로 내뱉는 필수 대사지.
-오래간만의 재회가 질의 응답이라 아쉽긴 해도 상황이 그러니까.
다만 친구 대하듯 사근사근한 말투다. 으레 그러하듯 고압적이지 않아 적개심이 누그러든다. 덕분에 난 짧은 시간 안에 질문을 고를 수 있었다.
“검의 신, 너는 마왕인가?”
-첫 질문부터 직구인데?
검신은 입가에 빙그레 호선을 띄웠다.
-전에 말했잖아. 내겐 명칭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상기했다. 확실히,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네가 나를 검의 신이라 부르면 검의 신이고, 마왕이라 부르면 마왕인 거지. 딴 길로 말이 샜는데, 결론은 맞아. 나는 마왕이라 불려도 되는 존재야. 내 행적이 그렇잖아. 신이라 불렸던 놈들을 도륙 냈는데 관점에 따라선 ‘절대 악’이라 볼 수도 있겠지.
“마왕이라 불려도 불쾌하지 않은 거냐? 마족들의 숭배의 대상인데.”
-불쾌할 게 뭐 있어.
검의 신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내게 할당된 역할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지. 누가 나를 숭배하건 간에 아무래도 상관없어.
“…….”
-이 질문의 저의는 ‘내가 흑막인지’에 대해 궁금하다는 거 같은데, 이 역시도 아니야. 음, 이것도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나? 근데 네가 생각하는 흑막 이런 거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무튼, 두 번째 질문.
검신은 질문을 부추겼다. 그때 쩌적- 하는 소음에 고개를 젖히자 백탁의 하늘이 조금씩 쪼개지기 시작하며, 허연 부스럼을 흘렸다. 말마따나 허용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나는 퍼뜩 시선을 내려 신을 바라봤다.
“나를 이 세계로 끌어들인 것도 너인가.”
-아니.
그는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너를 이곳으로 불러낸 건, 내가 아냐. 엄밀히 말하자면 너는 네 발로 이 세계로 온 것이지. 물론 네 관점에선 타의에 가깝겠지마는.
이건 또 뭔 소리야. 신이라 그런지 꽤나 뜬구름을 잡는다.
칼밥 이십 년 넘게 먹으면서 말귀 어둡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없는 나인데…….
검신의 말은 단어 하나하나가 두루뭉술해 이해가 쉽지 않다.
-표현이 어렵나. 미안, 누구랑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게 오랜만이라.
그도 내 표정을 읽었는지 새하얀 이마를 긁적거렸다. 뭔가 허술한 언사와 행동. 내 안에서 신의 존엄성이 조금 깎이는 순간이다.
-아, 그럼 이렇게 말해 줄게. 이 세계로 오는 선택은 네가 했어. 그건 분명한 사실이야. 하지만 네가 이곳으로 오게끔 조력한 이들이 두엇 있다. 개중 한 명은 너도 눈치챘다시피,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 나머지 하나는… 당장은 말해 줄 수가 없네, 미안. 그래도 머지않아 알게 돼.
“…시조의 영웅은, 내 스승님은 왜 나를 이곳에 보내는 것에 협조한 거지?”
-음, 글쎄.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 모르겠는걸.
내 얼굴에 황당함이 차올랐다.
“신이 그것도 몰라?”
-몇 번을 말해. 신이라고 전지(全知)하진 않는다고. 인간의 의지에 신은 개입할 수 없어. 조정 정돈할 수 있어도. 그게 세계선의 불문율이야. 그리고.
검신의 입매가 일자로 늘어졌다. 처음으로 웃음기를 지운 것이다.
-내가 이 세계의 신 놈들을 멸살한 이유가, 놈들이 인간의 의지에 개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살짝 엄해졌을 뿐인데 일대가 파르라니 요동쳤다. 그 탓인지 하늘의 틈새가 눈에 띄게 벌어졌다. 잘게 토막 난 조각들이 구성하는 하늘은 척 보아도 위태위태했다.
나는 입안이 바싹 말랐다. 수분이 쫙 빨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침도 없다.
검신은 잠깐 내비쳤던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리곤 입가에 다시 서글서글 미소를 걸었다.
-기회가 있으면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이제는 사장님과 내가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 근데 어떻게 물어보라는 거지. 알고 보니 이 세계가 ‘아, 시발 꿈.’ 이런 거란 소리냐.”
-하하하, 꿈이라. 지구 출신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귀울림으로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 하면 금상첨화겠고.
검신이 배를 잡고 허벅지를 탁탁 치면서 낄낄거렸다. 만화로 그린 듯이 파안대소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뭐가 저리 웃긴 건지.
-꿈 아니야. 허상도 아니고. 검마, 네가 해 왔던 모든 것은 실재다.
검신은 엄지로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정확히는 눈구멍이 없어 그 어림을 쓱쓱 비볐다.
-그리고 시조의 영웅은 네가 진실하기를 원한다면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이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어, 신의 이름으로. 발로르 호아킨 또한 내 힘을 사용한 자이기에 하는 소리기도 하고.
심장이 여트막이 두근거렸다. 사장님과의 재회. 지난 생에 유일하게 남겨 두었던 미련을, 검의 신이 자신 있게 해후할 수 있을 거라 말해 주는 것이기에.
그러는 와중, 하늘의 틈새는 더더욱 커져 지상으로까지 영향을 미쳤다.
크르르릉…….
틈새 사이로 보이는 심연이 공간의 백탁을 야금야금 베어 먹었다. 거대한 짐승의 이빨처럼 갈라진 단면은 삐죽삐죽 날카로웠다.
하얗게 텅 비었던 세계는 순식간에 새카맣게 공허해졌다. 기름색 바다에 희멀건 조각배가 떠 있는 듯한 상태. 광활한 허무 속에서 우리가 자리한 근방만이 비좁게 고립되었다.
-이래서 가까이 앉으라고 했던 거야. 아까 내 실수로 붕괴가 더 빨라진 모양인데, 어쩔 수 없지.
검신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자, 마지막 질문이다. 모든 걸 해소하고 떠나야지.
그러고는 가슴을 열 듯 양팔을 활짝 펼쳤다. 급작스러운 지형 변화에 놀랐던 가슴이 가라앉는 것은 동시였다.
다음 순간 나는 차분한 눈으로 반추했다.
‘마지막 질문.’
이윽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검의 신, 너는 네게 맡은 소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응. 그렇지.
“성공했나?”
-알면서 뭘 물어. 실패했다.
괘씸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 입가엔 웃음이 만연했다.
나는 입만 덩그러니 있는 민둥민둥한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다 픽 실소해 버렸다.
이쯤하면 알 수밖에, 검의 신이 내게 한없이 호의적이며 꾸준히 도움을 주려는 사정을.
“신이 실패한 소임을 인간인 내가 해낼 수 있을 거라 보나.”
-검마, 너이기에 해낼 수 있는 거다.
검신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그가 아직 앉아 있는 나를 굽어보았다.
-나는 실패했다. 인간이었던 네 스승도 실패했다. 하지만 너라면 성공할 거야. ‘신의 무기’가 깃들었고, ‘인간의 정신’을 가졌으며, ‘악마의 육신’을 갖춘 너라면.
끝말에 내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악마의 육신?”
검신은 상체를 수그리고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떨떠름하게 그 손을 맞잡자 그가 나를 일으켜 주었다.
-으잇챠.
같아진 눈높이.
-강검마.
발 디딜 틈만이 남았을 즈음에서 검신은 말을 이었다.
-네가 사용하는 내 힘은 ‘베고 자르는 것’뿐이야. 근데 이상하지 않아? 너는 기본적으로 번개처럼 빠른 속도에 기반해 쾌검을 구사하잖아. 그건 내 힘이 아니야.
“…그, 그게 무슨.”
-그건 네 본연의 육신의 힘이다. 내 힘을 빌렸던 발로르 호아킨을 고전하게 했던 맞수. 필멸자 중 검을 으뜸으로 다뤘던 필멸자. 비록 패했으나 잠시간이나마 내게 필적했음을 나 검의 신이 시인한다.
마무리에 앞서 검신은 숨을 낮게 토했다.
-이 세계에 와선 네가 취한 육신의 주인은 라이칸. 진정한 의미에서 검마(劍魔)다.
“……!”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몸이 기우뚱거렸다. 발밑이 파스스 가루가 되어 부스러져 뒷발이 쑥 빠진 것이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검신의 어깨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형체는 이미 반투명하게 흐릿해져 내 손만 헛돌았다.
끝내 앞발이 딛고 있던 노면도 사라졌다. 나는 시커먼 심연 아래로 추락하면서도 공고히 서 있는 검신을 향해 팔을 휘저었다.
물어볼 게 생긴 참인데, 젠장.
-네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너는 신이 아니기에 성장할 수 있고, 마족이 아니기에 선과 악을 구분 지을 수 있다. 더불어 인간이 아니기에 도덕에 구애받지 않고 옳음을 행사한다.
그런 절박한 내 모습을 내려보며 검신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겠으면 주변을 둘러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끔 너를 도울 친구들이 있다. 그를 위해 네 스승은 아카데미란 무대를 조성했으니.
칠흑이 나를 꿀떡 삼키는 가운데, 마지막 전음이 머리통 안에서 메아리쳤다.
-다시 만날 때, 너는 우리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거다.
* * *
[【???】의 ‘진명(眞名)’이 개방되었습니다.] [※ 봉인한 대상과 혼합된 결과물입니다. 즉슨, 오롯이 【???】만의 기억이 아님을 고지합니다.] [개방된 진명을 확인하시겠습니까? (Y/N)] [Y/N]▲
[‘동화율’을 촉매로 【???】의 진명을 개방합니다.] [Loading… ■■■□□□] […….] […….] [Comp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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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앗!
【마검魔劍 라이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