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7화(27/300)
27화 준비 (2)
지크프리트와 메디아가 병실을 나왔다.
또각, 또각
두 사람의 발소리가 복도 바닥을 타고 번졌다.
두 사람의 얼굴에 주황빛 노을이 드리웠다. 앞서 걷던 메디아가 갑자기 멈추어 섰다. 뒤따르던 검제도 그녀와 발을 맞추어 멈췄다.
메디아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 너머에는 호아킨 아카데미의 본관이 구름을 찌르며 우뚝 솟아 아카데미를 굽어살피듯 굳건히 버티고 있다. 메디아는 검지를 곧게 뻗어 창 너머를 가리켰다.
“…지크, 기억나? 우리가 이 아카데미 입학했을 때, 저 나무 벤치에 네가 벌러덩 드러누워 있었잖아. 내가 비키라고 했더니 무턱대고 검부터 뽑아 들었었고. 뭐랬더라, 자신한테 명령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때 너 중2병 너무 심했어. 솔직히 당사자인 네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 않았냐?”
“기억에 없다.”
검제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자 메디아가 옅게 웃었다. 그녀의 민트빛 눈동자가 아련하게 반짝였다.
“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년이나 이곳에 몸을 담고 있네.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다시는 발도 붙이기 싫었는데. 산다는 게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그치?”
검제는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련함이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도 깃들었다. 본디 추억이라 함은 전염되듯 공유되는 것이다.
작금의 호아킨 아카데미는 귀족 자제들을 위한 적폐 세력 간 교류의 장으로 변질되었지만, 아카데미를 통해 수많은 역경을 누벼 온 동료들을 만났기에.
마냥 좋아할 수도, 그렇다고 싫어할 수도 없는 애증 섞인 장소였다.
“근데 웃긴 건 내가 이곳에 있은 지 60년이 넘었는데도 호아킨 아카데미 역사의 10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는 거야. 우리가 입학했을 때도 이곳은 까마득한 옛날에 세워진 곳이었으니까. 이 얼마나 유구한 역사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긴 했어도 아카데미는 700년간 생도들을 육성하고 지켜 왔잖아. 근데…….”
메디아는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으며 말꼬리를 삼켰다. 이어서 그녀의 옆얼굴에 아련함이 지워지고 노색이 짙어졌다.
빛무리 진 자하의 녹발이 허공에 두둥실 너울거렸다. 메디아의 정수리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메디아의 희고 고운 관자놀이에 혈관이 맺히자 옆 창문에 사슬처럼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는 공기는 분위기를 차갑게 가라앉힌다.
중간고사 전, 분명 교관들로부터 사전 답사를 끝마쳤다는 보고를 받았다. 드물지만, 스코풀리 섬은 마인 머메이드의 출몰 구역이었기에, 몇 번의 답사가 꼼꼼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답사의 노고가 무색하게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것도 마인에게. 아카데미 창립 이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학원장인 메디아로서는 책임을 통감할 수밖에. 그녀는 말없이 어금니를 아드득 갈았다.
“…….”
검제는 메디아가 어떤 심정인지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학원장이라는 직책을 떠나서 생도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인 여자였다. 분위기가 치녀스럽긴 했지만,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함께 누벼온 세월만 벌써 반세기가 넘었다. 둘의 대화는 침묵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병원의 모든 창문이 깨부숴질 터다.
검제는 메디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공중에서 부유령처럼 너울거리던 그녀의 머리칼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어깻죽지에 자리한 녹발은 신록처럼 싱그러웠다.
“미안, 미안. 잠시 흥분했네.”
뻘쭘했는지 메디아는 볼을 긁적이더니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걸었다. 그러더니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강검마에 대한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우리 검마 너무 대단하지 않아? 혼자서 머메이드를 해치웠다잖아. 지크 네가 보기엔 어때?”
그 물음에 검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나직한 한숨을 흘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천부적인 재능.’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불세출의 천재, 시대의 총아라 불리던 숱한 이름들이 잠시 반짝이다 수명이 다한 유성처럼 빛을 잃었다.
영욕에 목마른 영웅 가문에서는 자식이 어린 나이에 두각만 살짝 나타내도 그자를 천재라 칭해 버린다. 기준 없이 남발되는 천재라는 단어.
검제는 그 말을 쉽게 입에 담지 않았다. 하물며 그의 손녀인 아벨에게조차 그 단어만큼은 엄금해 왔다지만.
아득한 재능. 천재란 필시 저 소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검제는 소리 없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경험이 축적된다면 강검마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검제 자신은 일흔이 넘은 노구였지만, 강검마는 파릇파릇한 나이의 소년기였다.
혹시 저 소년이라면 자신이 일평생 꿈꿔 왔던 ‘그 영역’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 상념이 지크프리트의 뇌리에 떠다녔다. 잠시 생각을 마친 검제는 침음을 흘리다가 말을 뗐다.
“당분간 아카데미에 신세 좀 지지, 메디아.”
그렇게 말하자 메디아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검제를 쳐다봤다. 대부분을 니벨룽가에서 칩거 생활을 고집하던 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니 놀랄 수밖에.
하지만 지크프리트의 금안은 정오의 태양처럼 이글거렸다.
활활 타오르는 이채는 호승심에 불타는 검사의 눈이었다. 그 모습에 메디아의 눈매가 미려한 반월을 그리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메디아는 뒷짐을 지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창문에 나 있던 실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 * *
퇴원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교내 대장간을 들른 것이었다. 중간고사 보상으로 받은 무장 ‘무라사메’를 재련, 강화하기 위해서.
규격이 검신의 가호에서 벗어나 재련은 불가피하다. 정직하게 말해서 지금의 무라사메는 내게 쇠로 만든 작대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대장장이가 기름칠을 한번 해준다면 성능 강화도 노려볼 수 있을 터다.
대장간의 열기에 벌겋게 익은 대장장이는 내 당돌한 주문을 선선히 수락했다. 대신 남은 쇳조각을 보수비로 받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어차피 60센티 남짓하던 검이었던지라 두 자루로 쪼개는 건 불가능했다. 근데 값비싼 보수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니, 운이 좋았다. 그렇게 대장장이는 일주일 후에 받으러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랑(狼) 클래스의 교실 문 앞.
나는 잠시 멍하니 한자가 적힌 문패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살살 문을 열어 안쪽으로 들어갔다.
정답게 수다를 나누는 생도들. 나를 한번 흘깃하고서 계속해서 떠들어 댔다.
스코풀리 섬에서 내가 마인의 목을 베었다는 사실은 학원장의 말대로 비밀에 부쳐진 모양이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어쩌면 내가 머메이드를 저지했기에 동기들이 저리 희희낙락하게 웃고 있는 거겠지.
나는 교단을 지나 항상 내가 앉는 3번째 열 끝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이 기분 좋게 얼굴을 데웠다.
“검마 군!”
교실 뒤편에서 나를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나는 고개를 돌렸다.
“클로이, 어떻게 된 거야?.”
철컥, 철컥
클로이는 목발을 짚으며 힘겨운 걸음으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겨드랑이에 낀 목발은 클로이의 키에 비해 큰 편인지라 작은 그녀의 어깨가 한껏 치솟아 있었다.
“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래도 같은 조원이었던 스피드 뭐시기 님이 긴급 처치를 해 주셔서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정도 후에는 목발 빼고 걸어도 된다고 했어요!”
클로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주먹 쥔 손으로 가슴을 두드렸다. 쫙 펴진 어깨와 봉긋 솟은 가슴에 그녀 또한 한층 성장했음이 느껴졌다.
나 혼자만의 노고가 아니었다. 내가 마인 머메이드를 해치운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그 저변에는 조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클로이의 구조 요청, 레이첼의 일당백, 스피드 웨폰의 치유 버프까지.
…근데 곰곰이 되짚어 보니 주인공인 레온은 한 게 없었다.
생각보다 무능한 주인공의 모습에 어째 믿음이 싹 가신다. 과연 진짜 걔가 마왕을 무찔러 줄 수는 있는 건가?
지금까지의 행적만 봤을 때에는 마왕은커녕 군단장 똘마니들 선에서 입구 컷 당할 것 같은데.
‘그냥 선빵 맞아서 그런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자 클로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마치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그녀는 보이지 않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 모습이 퍽 귀엽게 느껴져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손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교실 한복판에서 그랬다가는 남 생도들이 휙휙, 휘파람을 불어 댈 것이다. 나는 뻗으려던 팔을 고이 내버려 두고선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클로이, 고마워. 네가 구조 요청을 한 덕분에 살았네.”
“대단한 건 검마 군이죠. 무려 마인을 혼자 해치웠잖요!”
“뭐, 운이 좋았지. 사실 나도 거의 죽다 살아났어.”
“…헤, 멋있어.”
머리를 긁적이는 클로이의 볼에 선홍빛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생각이라도 난 듯 내가 입원해 있던 동안의 일들을 이것저것 설명해 줬다.
VIP 병실의 비용은 조원들이 십시일반 해 부담했다는 사적인 내용부터, 아카데미 경계 태세 보완 건을 두고 학원장 메디아와 아카데미 원로단이 대립 구도를 세우고 있다는 무성한 소문까지.
입원해 있던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꽤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클로이가 설명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 호응하던 중. 세차게 교실 문이 열렸다.
“모두 조용하고 착석!”
이원빈 교관이 우렁차게 소리치며 생도들을 조용히 시켰다. 평시와는 달리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허한 정수리에서 쏟아지는 땀줄기들이 그의 옷깃을 적셨다.
교실의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원빈 교관은 주먹을 입에 갖다 대고 헛기침을 뱉었다.
그리고 슬쩍 곁눈질로 교실 밖을 살피더니 손수건을 꺼내 정수리를 닦았다. 만질만질한 빡빡머리에 조명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조례 훈련에 앞서, 먼저 전할 말이 있다.”
그리 말하는 교관의 눈동자에 미약한 불편함이 피어올랐다. 딱딱해진 말투에 생도들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듯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다. 당분간 우리 클래스에 나와 공동으로 교관…을 맡아 주실 분을 먼저 소개하도록 하겠다.”
말을 마치고 이원빈 교관은 헐레벌떡 교실 문 쪽으로 뛰어가더니 정중한 태도로 마중했다. 이질감마저 느껴지는 생경한 모습.
곧이어 한 사내가 교실에 들어왔다. 생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입이 쩍 벌어졌다. 중간중간 탄성도 터져 나왔다.
사내는 이원빈 교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이지적인 발걸음으로 교단에 섰다. 이원빈도 쭈뼛쭈뼛 그의 옆에 나란히 하려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동안 옆의 이원빈 교관과 함께 랑 클래스의 임시 교관직을 맡게 된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이라고 하네.”
“거, 검제님 그냥 이원빈이라 편하게 불러 주십쇼.”
“같은 직렬인데 그럴 수야 없지 않나.”
“아… 네, 알겠습니다.”
이원빈 교관이 얼굴을 붉히며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생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크게 번졌다.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나만이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 얼어붙었다.
…저 양반이 왜?
* * *
호아킨 아카데미의 밤이 깊었다.
달이 묵색 구름에 몸을 숨긴 삭월의 밤. 부지 내 가로등만이 띄엄띄엄 빛을 밝혔다. 그마저도 밤안개가 껴 분위기에 수상함을 더했다.
암전막 속에서 두 남녀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다만, 치켜 올려지는 귀싸대기에 비추어 봤을 때 밀애의 현장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짝―!
새치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사내는 화끈거리는 오른뺨을 매만지지 않고 애써 고개를 푹 숙였다.
여자 교관이 싱긋 웃으며 검지로 왼쪽 볼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남자는 군말 없이 왼뺨을 들이밀었다.
짝―!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남자의 고개가 크게 돌아갔다. 그는 치솟는 분노와 모멸감을 꾹꾹 누그러트렸다. 아니, 누그러트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남자는 시선만 살짝 올려 여교관을 쳐다보았다. 눅눅한 안개 사이에서 요사스럽게 번들거리는 자색 안광과 머리칼의 여인. 팔다리가 시원시원해서 옷맵시가 매우 좋았다.
여교관은 지렁이 모양 젤리 봉지를 팔에 끼고 하나씩 꺼내 질겅거렸다.
그러고선 손에 묻은 설탕을 혀로 핥고서 사내의 어깨 자락에 쓱쓱 닦았다.
‘제기랄!’
중년의 사내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티가 날까 차마 고개는 들지 못한 채로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의 신분을 생각했을 때, 이런 일은 결단코 겪어 본 적 없었고, 겪어 볼 일도 없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여교관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나른하게 말을 뗐다.
“할 때 좀 제대로 하지 그랬어요. 하, 참. 사람 귀찮게 하는 데 재주가 있네요. 안 그래요? 원·로·님?”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예요?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니에요, 책임을. 아, 진짜 귀찮게. 레온, 그 자식 한 명 반쯤 죽여서 데려오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예? 아무리 용사 후보라도 그렇지 머메이드까지 데려가 놓고 그걸 못해요? 원로님이 실수한 것 때문에 검제 그 양반이 아카데미에 둥지를 틀었잖아요.”
“죄송합니다, 김 교관님.”
“하, 지금부터 ‘죄송합니다.’란 말 한 번만 더 하면. 알죠?”
여교관이 검지를 뻗어 원로의 이마를 쿡쿡 찔러 댔다.
불혹을 훌쩍 넘긴 사내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여교관은 무정하게 지렁이 젤리를 하나 집어 먹었다.
“그건 그렇고, 시킨 건 알아 왔어요?”
“네, 알아 왔습니다.”
“참 나, 말하면서도 안 믿기네. 고작 1학년 중간고사에서 머메이드가 나가떨어지다니. 하긴, 올해 입학한 멤버들이 누구인데 힘 한번 합치면 뭔들 못 하겠어, 쯧.”
“저기, 그게…….”
중년 사내가 쭈뼛쭈뼛 말꼬리를 흐리자, 여자가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그를 쏘아봤다. 남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생도 한 명한테 당했답니다.”
“…한 명? 레온, 걔요?”
“아니랍니다.”
“그럼 누군데요. 나 뜸 들이는 거 딱 질색이니까.”
“올해 수석인 강검마, 그 녀석입니다.”
자색 눈동자가 한껏 동그래졌다. 남자는 입술만 달싹이며 그녀를 가만히 쳐다봤다.
곧이어 여교관은 표정을 갈무리하고선 고리눈을 하고 원로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이번 일로 5군단장님께서 화가 잔뜩 나셨어요. 다음은 없는 거 아시죠?”
“……!”
남자 교관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는 그녀. 남자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몸을 크게 떨었다.
“그럼 이제 가 봐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죄송합… 흠!”
남자는 튀어나오려던 말을 입을 틀어막아 겨우 삼켜 냈다. 이어서 그는 내시처럼 총총 뒷걸음치다가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화르르!
여교관의 손바닥 위에서 흉흉한 화염이 넘실거렸다. 망막에 반사되는 춤추듯 일렁이는 사나운 자색 불꽃.
“강검마…….”
잠시 멍하니 중얼거리던 그녀는 불길을 꺼뜨리더니 이내 입가에 비릿한 호선이 그려졌다.
“오랜만에 재미 좀 보겠네.”
숯덩이로 일변한 젤리 봉지는 매캐한 단내를 풍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