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73)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73화(268/300)
273화 겨울 (3)
보고 담당이던 카론이 떠난 후, 외신교 기사단장 아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아서는 기사의 모범과 같은 사내였는데, 그래서인지 실내에서도 중장갑을 고수했다. 며칠 같이 지내면서 강검마는 그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
그는 좋게 말해 우직, 달리 말해 융통성이 부족한 기사였다. 그래도 그 꽉 막힌 융통성 덕분에 정보 전달은 빠르고 확실했다.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생략해 버린다.
“학원장님과 만력님도 함께 계셨군요. 천검님께 보고를 우선하고, 두 분께 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 성격은 지금 같은 유사시에 빛을 발한다. 강검마는 아서의 그 점을 높게 샀다. 답답하단 결함을 상쇄하는 대단한 장점이었다.
“전보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읽어 드리자면-”
아서는 강검마를 향해 도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마치 황제를 알현하듯 그는 되도록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마경의 한복판에서 용사 레온 반 라인하르트를 목격했다.’ 이것이 아디토레로부터 온 마지막 전보입니다.”
아서는 복잡한 감정을 삼키며 어쨌든 보고를 마무리했다.
“그 후로도 연락을 계속 시도해 봤으나, 닿지 않습니다. 게헤나와 인계의 환경이 완전히 다른 걸 감안하면, 단순 통신 문제일 수도 있으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무슨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강검마는 생각보다 표정 변화가 적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호아킨 테러, 그날에 레온이 악마 년이랑 노닥거리고 있었지.’
강검마는 이마를 살살 문지르며 그날을 떠올렸다.
레온과 대화를 나누던 마인. 그 마인은 2군단장 쿠아른과 분명 닮아 있었다. 쿠아른의 분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상기할수록 놈과 쿠아른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암만 분신이라도 쿠아른이 뿜어내던 기백만큼은 못했어.’
무엇보다 놈이었으면 한 방에 갈 리가 없지.
‘지금 중요한 건, 그놈이 쿠아른이고 아니고가 아니야.’
나는 머리를 훌훌 흔들었다. 상념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레온이 ‘누구’와 만났느냐가 아닌 ‘왜’ 만났느냐였다. 레온은 입원 중엔 누구와의 만남도 일절 거부했다. 해서 퇴원 날에 맞춰 재차 찾아가자, 담당 간호사로부터 이틀 전에 진즉 퇴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도망치듯 아카데미를 떠났다.
행방을 쫓아 봐도 묘연했다. 인적 사항에 적힌 번호에 전화를 걸어도 묵묵부답. 독일에 거주 중이라는 그의 가족들은 애당초 생판 남이었다. 즉, 레온과 연계된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그에 난 진득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렇게 가정 환경이 없다시피 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유일하다.
그건 바로 나, 강검마다.
그리고 강검마는…….
‘이 세계에 와서 네가 취한 육신의 주인은 라이칸, 진정한 의미에서의 검마다.’
강검마의 정체는 마왕군 1군단장 라이칸. 따라서 가정 환경과 본래의 거주지 등이 깔끔히 말소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레온도 당연히 강검마에게 대입해 볼 수밖에 없다. 인계에서의 그의 모든 출처가 거짓부렁이라면, 여러 정황상 떠오르는 가능성은 하나뿐이다.
‘레온도 강검마와 마찬가지로 마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만, 녀석이 나처럼 육신이 악마일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별다른 이유가 있다기보단 순전 감이었지만, 나는 스스로의 감을 믿는다. 적어도 레온은 나처럼 마족은 아닐 것이다.
“천검님, 부디 하명을.”
성전 기사단장 아서가 무릎 굽힌 채로 턱만 들었다. 상념은 나중에. 나는 일단 상황을 정리했다.
“이 일은 기밀로 부쳐야 합니다. 최대한 새어 나가는 이야기 없게끔 하세요.”
“예, 천검님.”
“그리고 집무실에서 나가시면, 하와이에 주둔 중인 부대에게 연락하세요. 절대 게이트 주변으로 얼씬도 하지 말고, 들어가는 건 더더욱 안 된다고요.”
아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았다. 마경으로 아디토레를 구하러 가지 않는 겁니까? 그의 눈빛은 이리 말하는 듯했다.
이해한다. 지금 내 모습이 냉혈한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
하나 내 경고는 근거가 분명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융통성 부족한 사람은 오해를 그때그때 풀어 줘야 한다.
“게헤나의 환경은 인간에게 한없이 유해합니다. 따로 훈련받지 않은 인간이 가면 불치병을 달고 올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그 부분은 저보다 기사단장이 더 알 테고요.”
“아, 아. 예.”
“그래서 아디토레 일원들이 몇 달간 마경 적응 훈련을 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하겠다시고 영웅들을 그대로 파견하면. 그건 그냥 자살 돌격 부대나 다름없습니다.”
“천검님의 깊은 뜻을 이 아둔한 놈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말 끊어서 죄송합니다. 계속 고견을 내려 주시지요.”
“고견까지는 아닙니다.”
아서의 말본새는 그가 걸친 갑옷만큼 번지르르했다. 기사 티를 너무 낸달까.
“아무튼, 아디토레의 일원들은 영웅 중에서도 기동력이 발군입니다. 그런 그들을 구하러 간다는 건 상당히 성급한 판단입니다.”
이어지는 ‘하지만’이란 내 말에 아서는 침을 꿀떡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렇다고 아디토레를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그들은 제 명을 받고 떠났습니다. 책임을 지는 것 역시 제 몫.”
“안 됩니다!”
아서가 벌떡 일어났다. 절그럭-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천검님이 직접 가신다니, 안 될 일입니다. 그럴 바엔 저희 성전 기사단이 대신 가겠습니다. 기사단원 중에 마경 적응 훈련을 받은 기사들이 몇 안 되지만 있습니다. 차라리 그들을 보내어 상황을 살핀 다음에 떠나시는 것이-”
“저, 제가 간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요?”
“…예?”
아서가 황당하단 얼굴을 했다.
“마경의 지리를 잘 아는 게 누구겠습니까?”
“어… 아무래도 마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잘 아시네요. 그러면 마족으로 하여금 아디토레의 지금 상황이 어떤지 보면 되겠네요.”
당혹감이 짙었던 아서의 표정이 이내 어벙하게 변했다. 그의 상관인 교황이 봤다면, 멍청해 보인다고 한 소리 했을 것이다.
“아, 아!”
한참을 그러고 있던 아서는 정수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전에 천검님께서 다크 엘프들을 일망타진하여 협회 감옥으로 구류하셨었죠! 그러니까 천검님 말씀은, 그들을 수색조로 보내자 이 말씀이시군요!”
성 과장에게 간간이 다크 엘프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협회 본부 지하 감옥에 구금된 그들은 퍽 잘살고 있단다. 특히나 콩고기가 입에 맞는지 살이 포동포동 올랐다고 한다. 거기에 거무죽죽했던 혈색도 뽀얘져 [다크 엘프 ▷ 그냥 엘프]로 탈바꿈했다고.
“다크 엘프도 안 됩니다.”
난 고개를 내저었다.
“다크 엘프들은 태생적으로 음습한 놈들이에요. 마경에 풀어 두면 그대로 도망을 갈 것이고, 감시 인원을 같이 보내면 그들에게 해코지한 후에 도망을 칠 것입니다.”
얼굴색이 밝아졌다고 본성이 선해지진 않는다. 나는 놈들의 개체 수를 반토막 냈다. 필시 역심을 품고 있을 터다. 칙칙한 동굴에 갇힌 채 쑥과 마늘을 뜯으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 단군 신화의 웅녀처럼.
‘그리고 다크 엘프는 훗날 따로 시킬 일이 있지.’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 새끼들 입으로 들어가는 풀 한 포기 한 포기가 전부 국민의 혈세다. 나야 줘도 안 먹겠지만, 어쨌건.
“아니면 내가 대신 가 줄까?”
그때, 조용히 차만 홀짝이던 메아인이 말했다.
“난 마경에서도 수십 년 지냈어서 체내에 마력 내성이 생겼거든. 게다가 통신 장비가 먹통이어도 간단한 연락은 가능해.”
그녀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저 손짓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력을 매질 삼아 인계까지 ‘전음’을 넣을 수 있거든. 게헤나는 마력이 풍부하니까 할 수 있을거야.”
나는 메아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꾸했다.
“마음은 고마운데 선배도 안 돼. 방금 돌아온 사람을 다시 마경으로 보내는 게 못내 찝찝할뿐더러, 하와이까지 암만 빨리 가도 8시간이야.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디토레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는데, 더 시간을 지체해서 좋을 게 없어.”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서가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성전 기사단도 안 되고, 다크 엘프도 안 된다면 보낼 수 있는 자들이 없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서를 뒤로, 나는 메아인에게 물었다.
“마경에서 인계로 마력을 매질로 연락이 된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단 거지?”
“응. 다른 곳이면 몰라도 호아킨 아카데미는 가능해. 아카데미는 특별관뿐만 아니라, 마력의 수맥이 곳곳에서 흐르는 유명무실한 장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곧장 겉옷부터 챙겼다. 아서가 내 등에 대고 외쳤다.
“어디 가십니까!?”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최설아네를 향해서였다.
* * *
기괴하게 비틀린 고목과 허연 광야, 피처럼 붉은 하늘. 그러한 세상을 새카맣게 밝히는 검은 태양. 마경 게헤나는 환경 자체만으로 그 흉험함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하물며 호흡조차 힘겨웠다. 마력 그득한 공기가 폐 속에 끈적하게 들러붙기 때문이다.
그 불쾌감은 산전수전 다 겪은 알’타이르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가주는 이 순간만큼은 그 불쾌감을 잊었다. 정확히는 더 진한 불쾌감을 느꼈기에 먼젓번이 잊힌 것이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는 S급 무장 신디케이트를 치켜들어 전방을 겨누었다. 침착한 말투와 달리 가주의 안광은 살벌했다.
검극의 끝에는 소년이 서 있다. 마경과 완전히 유리된 듯한, 황금처럼 반짝이는 금발과 형형한 벽안의 소년이.
“레온 반 라인하르트.”
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가주를 포함한 아디토레 전원을 보았다. 단지 그것만으로 가주는 입술이 바싹 말랐다. 레온의 무표정은 수라장에 인생을 바친 가주를 긴장케 했다.
가주는 시선을 고정한 채 전음으로 녹스에게 물었다.
‘천검께 전보는 보냈느냐.’
‘예, 가주님. 근데 추가적인 연락은 안 됩니다. 아무래도 통신망이 먹통이 된 듯합니다.’
가주가 고개를 야트막이 주억였다.
‘괜찮다. 상정했던 바다. 그래도 소식을 전해야 한다. 아무래도 용사가 우리를 그냥 보내 줄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이곳은 마경. 불시에 적이 튀어나올 터이니, 나 외의 녀석들은 전원 복귀하라.’
‘가주님!’
아디토레 전원의 외침이 겹겹이 쌓였다. 가주가 엄한 눈으로 을렀다.
‘가주로서의 명이다. 명을 어길 시, 규율에 따라 엄중하게 다스릴 것이야.’
그에도 아디토레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각기의 비수를 뽑았다.
“천검님께서 명하시지 않았습니까.”
녹스가 가주 옆에 나란히 섰다.
“전부 살아서 생환하라.”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도 포함되십니다.”
그 순간, 모두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
허연 존재가 검은 태양을 등지고서 허공에 앉아 있다. 그 흑과 백의 대비는 보는 이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켰다. 고도로 훈련받은 암살자들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쥐새끼들이 흘러들었군요.”
그 존재가 천천히 눈을 떴다. 동공이 투명하리만치 하얘서 그 테두리만 보였다. 그 시선이 레온을 향했다.
“청소가 필요해 보입니다, 조카님.”
사형 선고가 떨어졌다.
레온의 낯빛이 썩어 들어갔다. 그는 찰나간 치열하게 갈등했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스르릉.
탁하게 울며 뽑혀 나온 발뭉은 자주색과 순백색으로 얼룩덜룩했다. 검날에 곰팡이가 슨 것처럼 보였다.
쿠아른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입가엔 조소가 맺혔다.
“당신들을 여기서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레온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씹어 뱉었다. 가주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용사, 자네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아나?”
“어차피 제가 아니더라도 당신들은 여기서 죽습니다. 저것, 쿠아른과 마주친 이상 그 결과는 변함없습니다. 자연재해에 원인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듯이요.”
용사가 발뭉을 짧게 잡았다.
“가주, 저자에게 붙잡혀 고문당하여 죽느니 제가 고통 없이 베어 드리겠습니다.”
“어이가 없군.”
가주가 코웃음 쳤다.
“우리를, 아디토레를 얼마나 업신여기면 감히 그따위 망발을 지껄인단 말이냐.”
가주의 왼쪽 눈에서 귀화가 길쭉하게 흘러나왔다. 아디토레는 전투를 준비했다.
“기어이…….”
쏘아붙이려던 레온이 순간 눈을 들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쿠아른도 표정이 이지러졌다. 그가 눈을 얇게 떴다.
검은 태양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활공하는 일련의 무리. 그들은 쿠아른의 머리 위에서 동그란 고리형 그늘을 만들며, 나선형으로 지상 낙하한다.
후우웅.
질척한 공기를 내쫓는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 돌풍은 차갑게 굳어 있던 인간들에게 한 줌의 상쾌함을 선사했다.
저벅.
곧 무리 중에서 하나가 착지했다. 그것은 지면에 발이 닿기 전까진 거대한 짐승의 형상이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인간 남성으로 변해 있었다.
가주가 가문을 대표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발레리온.”
짤막하게 소개한 남자는 시선을 쿠아른에게로 넘겼다.
“여기엔 왜 나타난 겁니까… 드래곤 로드.”
쿠아른이 목소리를 잘게 떨었다. 치미는 부아를 꾹꾹 주워 담으며.
“손녀의 부탁을 받았소.”
드래곤 로드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들을 살려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