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7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78화(273/300)
278화 우당탕 비상 회의 (1)
이 세계에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어떤가?
크다고 할 수 없는 국토임에도 불구하고 대륙 하나를 차지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강대국으로서 필수 조건인 지리적으로도, 한국은 아시아의 허리였다.
이에는 지리적 요건과 호아킨 아카데미라는 영웅의 발상지인 점도 있겠지만, 순전히 그뿐만은 아니다.
호아킨 아카데미를 제하더라도 한국은 그 자체만으로도 막강한 국력을 과시했다. 더 나은 인프라 설비를 갖춘 국가 중에서도 한국에 뒤처지는 나라는 허다했으니.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신임을 받는 국가인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각지의 정상들이 ‘영웅 협회 서울 지부’로 모여든 것도, 비상 대책 회의를 그곳에서 개최한 것 역시나. 더없이 적합한 위치 선정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적합한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난데없이 마족이 침공하다니요!”
한 남자가 손바닥으로 원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깔끔한 양복 차림과 멀쑥한 얼굴에선 부티가 좔좔 흘렀다. 그의 이름은 로널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다.
“4군단장 퍼머쉬가 침공한 지 고작 석 달밖에 안 지났습니다. 근데 미쳤다고 전쟁을 일으킨답니까! 이거 협회 측이 구태여 경각심을 조장하려는 프로파간다 아닙니까!?”
로널드는 맞은편에 앉은 창성을 쏘아붙였다. 창성은 짧게 혀를 찼다.
‘미국 대통령만 아니었으면 찍소리도 못 할 놈이.’
미국 대통령은 창성에게조차도 퍽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원래라면 대놓고 면박을 줬을 텐데, 쯧.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앉아서.”
“지금 이거 명령조로 말하는 겁니까? 저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직분상으로나 뭐나 부협회장의 상관이라 이 말입니다.”
좆같지만 맞는 말이었다. 협회 내에서 저 양키 놈과 비적한 이는 협회장 빅터 포이즌뿐. 근데 빅터는 불참이었다. 검제도.
검제는 아직 입원 중이었고 빅터의 불참 사유는 모른다. 광인의 속은 광인만 안다. 비교적 상식인인 창성으로선 알 턱이 없었다.
‘빌어먹을.’
이로 말미암아, 참석한 이들 가운데 레널드에게 반박 의견을 낼 수 있는 이는 극소수였다.
‘기껏해야 사키 코지마 놈 정도인데.’
창성은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절궁이 팔짱을 낀 채 그냥 앉아만 있다.
하기사 저놈이 자신을 대신해서 목소리 내어 줄 리가 있겠나. 꼬투리 잡지 않는 것만으로 눈물 나게 고맙다.
나머지(떨거지들)는 크흠 헛기침하며 눈치만 살필 따름이었다. 늙은 너구리들. 눈알 한번 다이내믹하게 굴리네.
상황이 이러니 메디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걔만 있었어도 얹힌 속이 쑥 내려앉을 텐데. 아쉽게도 메디아는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 자리는 각지의 정상만이 참여하는 회의였다. 사실 그녀 또한 함께할 수 있었다. 근데 저 양키 놈이 사전에 차단해 버린 탓에 메디아는 회의장 바깥에서 대기 중이었다.
“부협회장! 리차 드 뮈라! 말을 해 보세요, 예!?”
와중에도 레널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목에 시퍼런 혈관이 일어서 있다. 경동맥이 잘 보였다.
창성은 순간 저 멱을 따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로널드 같은 작자는 창성이 제일 혐오하는 부류였다.
‘저놈만 없으면 회의가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은데.’
유사시엔 뭔 일이 일어나도 적당히 묻힌다. 어차피 대전쟁이 코앞. 전쟁에서 창성은 필수 인력이지만, 저 양키 놈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전쟁이 종식될 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처벌은 유보될 것이고. 그때 가선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컸다.
“허허. 이거 왜 이러실까요, 레널드 각하. 자자, 고정하세요.”
레널드와 창성 사이에서 스위스 대통령, 게인즈가 중재에 나섰다. 중립국의 수반이라 그런지 중재가 매끄러웠다.
“일단 창성 님의 말부터 들어 봅시다. 안 그래도 밖에 기자들이 많아요. 회의실에서 고성이 오가면 기자들이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누가 소리를 높였다고 그럽니까!? 허, 참. 알겠습니다. 내 게인즈의 얼굴을 봐서라도 일단 경청합지요.”
레널드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고급 생수를 ‘굳이’ 와인잔에 따라 마셨다. 굳이.
“휴.”
한시름 덜었구나. 진땀을 뺀 게인즈가 창성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딱딱했던 창성의 얼굴이 그제야 한풀 꺾였다. 게인즈 아니었으면 레널드는 창성 손에 죽었다.
“일단 현황 보고부터 제대로 드리겠습니다.”
손에 든 문서들을 팔랑팔랑 흔드는 창성. 그가 원탁의 정중앙에다 흩뿌리듯 던졌다.
“말로는 못 믿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으니, 서생들답게 글로 보시지요.”
장내의 눈길이 서류에 적힌 글줄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창성이 말했다.
“저희 영웅 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족은 2군단장 쿠아른을 필두로 진군하고 있습니다. 적군의 총력은 가늠컨대 2,000만. 마족 인구의 3할이 가세했으며, 마수를 포함하면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이천만이라뇨. 그 협조성 없는 마인 놈들이 그렇게 뭉치는 게 가당키나 한 겝니까? 혹여 조사 중에 오류가 있는 게 아닐는지.”
계피 색 피부의 중년인이 물었다. 창성은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아 놓고 불확실한 정보를 말할 리가요. 2,000만. 확실합니다.”
중년인의 피부색이 계피에서 새하얗게 변색했다.
“진군하는 속도로 보건대, 마족이 게헤나 게이트를 뚫고 오는 데까진…….”
창성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서 아주 못을 박았다.
“…168시간. 아, 방금 이곳에서 푸닥거리하느냐고 한 시간 허비했으니 167시간 남았군요.”
“167시간… 그 말이 사실이면 일주일도 채 안 남은 거 아닙니까!”
“그 말이 정녕 사실입니까, 창성?”
창성의 주먹이 원탁을 거세게 때렸다. 그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제가 한 시간 동안 수시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실입니다. 제 말을 못 믿겠으면 그 눈앞에 있는 자료를 믿으십쇼. 마족은 개전을 선포했고, 침공은 진행 중입니다.”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인류 측 영웅 인구는 얼추 5,000만. 수 자체는 두 배가량이지만, 전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마인은 단일 개체만으로도 터무니없이 강하다. 영웅 다섯으로 팀을 꾸려야 겨우 하나와 대적한다. 더구나 영웅 모두가 소집령에 응할는지도 아직 모른다.
해서 각국의 협조를 구하고자 어찌어찌 이들을 이 자리에 앉혀 놨다.
‘근데 와서 하는 짓거리를 보아하니…….’
협력 의사는 고사하고, 속으론 이문을 따지고 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서 몽땅 청소하고 싶었다. 그날 강검마가 아카데미의 원로단을 깡그리 숙청했던 것처럼.
하지만 현 시국은 데프콘 1, 전시 상태. 애먼 피를 봐 버리면 인류는 단결할 수 없다.
그래서 창성이 인내심을 그러모아 참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 인내심도 이내 한계에 다다랐다. 폭발 직전이었다. 창성의 상태는 물이 가득 찬 컵이었다. 손톱으로 톡 건드려도 살의가 바깥으로 삐져나올 듯했다.
“이의 있소.”
그리고 기어코 누군가 그 물컵을 건들다 못해 거꾸로 뒤집어 버렸다. 바로 미합중국 대통령 레널드였다.
그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내가 볼 땐, 이럴 때일수록 각기 도생을 도모해야 옳은 것 같소. 영웅들이 전부 모여도 마인 전부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오.”
“…….”
“말마따나 전쟁은 일주일 남은 시점 아니오? 무슨 수로 그 짧은 시일 내에 5,000만 영웅을 단합시킨단 거요? 총력전이 불가피하다면 모를까, 그럴 바엔 쪼개져서 차례차례 공습하는 것이 나을 듯하오만.”
“…….”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레널드는 가만히 침묵하는 창성에게 빈정거렸다.
“아. 참고로 말하네만, 미국 내 영웅 에이전시의 협력 의사를 기대하지 마시오. 우리는 자본주의의 본산이요. 그들에게 왕창 세금을 물린다고 하면, 알아서들 꼬리를 말겠지.”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정상들을 둘러보았다.
“내 말에 동의하면 거수하시오. 참고로, 우리 미합중국은 독단적인 방어 체계를 구축해 놨소. 원하는 분들 있으면 방공호라도 한 채씩 내어 드리다.”
달콤한 거래. 수십 쌍의 눈이 좌우로 요동쳤다. 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정말로 나라를 버리고 도망칠 듯한 기색이었다.
“여러분,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입을 뻐끔거리려던 찰나, 게인즈가 소리 높였다.
“각기 도생을 도모한다고요? 그건 자살 행위입니다! 여기 문서를 보십쇼. 마족들의 행선지는 호아킨 아카데미입니다. 그들이 그곳부터 파괴한다면 인류는 앞날 자체가 없어집니다.”
“호아킨 아카데미는 한국에 있지, 미합중국엔 없소이다.”
레널드가 픽 코웃음 쳤다. 그는 호아킨 아카데미가 이 코딱지만 한 나라에 있다는 점이 늘 못마땅했다.
“어차피 지금은 방학 기간이지 않나. 생도들도 없으니 걸릴 게 뭐가 있지? 오히려 아카데미를 내어 주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게 나을 것이네.”
“그, 그 뭔 망발입니까! 영웅들의 유산이 무너지는 걸 불구경하라는 소리잖습니까!”
“미국의 역사는 300년 남짓이지만, 우리는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을 이룩했네. 오래된 유산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게 맞아. 혹시 모르지. 전쟁이 끝나면 미합중국에 더 웅장한 아카데미가 설립될지.”
“그 무슨…….”
“한마디 덧붙이자면. 게인즈, 자네는 중립국의 수반이오. 이렇게 나서는 건 중립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요. 내 기억해두겠소.”
레널드의 입매가 비틀렸다. 이어 약장수처럼 두 팔 벌려 영업했다.
“자, 방공호에 한 자리 비었구려. 내 의견에 동조하는 분들은 거수하시오!”
게인즈는 결국 눈가를 덮어 버렸다. 아, 안 된다. 일선에 나서지 않는 이들은 현실 감각이 없다.
인류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자신들의 활로만 찾는다. 아아, 도탄스럽다.
‘…이런 쓰레기들을 위해 천검 님은 몇 번을 몸을 내던지신 건가.’
이마가 뜨끈했다. 현타가 세게 온 것이다. 옆을 보니 창성도 이제 포기한 모양이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게인즈는 툭하면 스위스 관저로 쳐들어와 체벌을 주던 창성을 가슴 깊이 위로했다.
“하하하…….”
이때, 누군가 실소를 터뜨렸다. 소리의 근원지로 이목이 쏠렸다.
절궁이 이마까지 감싸며 웃고 있었다. 창성도 눈을 크게 떴다. 저 새끼도 드디어 노망이 났나?
“…뭐가 웃기십니까, 코지마 총리.”
“아, 아닙니다. 방공호 장사 계속하시지요. 전 그저 천검이 제게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났을 뿐입니다.”
“천검, 그자가 뭐라 말했는데 그리 웃으시오?”
레널드가 표독스레 째려보았다. 절궁은 눈물을 닦았다.
“예전에 제가 그에게 ‘일본을 적으로 돌릴 셈인가?’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무슨 대답이 돌아오셨는지 아십니까. ‘고작 일본? 아니, 미국도 적으로 돌릴 수 있어.’ 정확히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 뭐, 뭬야. 천검,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그딴 헛소리를 했단 말인가!”
레널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순간 절궁의 입가에 흐르던 웃음기가 가셨다.
“그렇게 헛소리를 분간 잘하시는 양반이 그딴 개소리를 지껄이나.”
“……!”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중 창성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그는 거의 비명을 지를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일본은 이번 소집령에 적극적으로 임하겠습니다. 모든 물자와 인원, 장비 지원을 제가 약속합니다. 더불어서 저도 최전선에서 전투에 임하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궁은 창성에게 착 나앉은 어조로 말했다.
“이걸로 부족합니까, 선배?”
창성이 어버버거리며 주억거렸다.
“아, 아닐세. 그, 그, 그래. 일본은 합류 의사 받아들이겠네. 암. 그렇고 말고.”
직후 절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뒤늦게 레널드가 길길이 날뛰었다.
“천검, 그 같잖은 피붙이를 두둔하고, 지금 미국을, 나를 우롱하는 건가! 따지고 보면 마족들이 침공한 것도 그 핏덩이 때문이 아닌가. 그놈만 가만히 있었으면 마족들이 분노할 일도 없었…….”
회의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밀폐됐던 공기가 도망치듯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레널드의 고개가 그곳을 향했다. 그의 눈엔 순간 문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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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반응도 하기 전, 검붉은 살기가 레널드를 물어뜯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커어얽.”
연신 나불거리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쿵!
이내 미합중국 대통령은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탁상에 왼쪽 광대뼈를 박았다.
“지금부터 불만 있다.”
강검마는 모두와 눈을 마주치면서 나지막이 입을 뗐다.
“거수.”
올라갈까 말까 갈팡질팡하던 손들이 스르륵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