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7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79화(274/300)
279화 우당탕 비상 회의 (2)
강검마가 달렸다. 이어서 그를 제지하기 위해서 성 부장과 메디아가 헐레벌떡 따라붙었다.
성 부장이 소리쳤다.
“천검 님!”
강검마는 그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나선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느리다고 달려서 12층까지 올라가시다니…….’
어찌나 빠른지 자신은 그렇다 쳐도, 메디아도 쫓지 못할 정도였다. 단어 그대로 번개처럼 잽쌌다.
“가시면 안 됩니다!”
일단 외치고 봤다. 부디 이 절박한 외침을 듣고 검마 님이 달음질을 멈춰 주길 바랐다. 물론 헛된 바람이었다. 강검마는 되레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말을 하는 게 아니었어.’
20분 전, 강검마는 협회 서울 지부로 도착했다. 그는 성 부장에게 회의 현황을 물었다. 감청 중이던 성 부장은 폭 한숨지으며 난항을 겪고 있다고 대답했다.
당연히 강검마는 그 이유도 물어왔고, 성 부장은 별 고민 없이 그 원인에 대해 설명했다. 원인은 미국 대통령 레널드. 본래가 협회를 고깝게 보던 인물에다, 모든 권력의 중심이 미국이라 생각하는 제국주의적인 대통령. 성 부장은 정성 들여 레널드를 뒷담했다.
그만큼 강검마를 신뢰했으며, 회의 내용을 들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레널드를 욕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기도 했고.
‘감히 부협회장님을 대놓고 면박 주다니, 돼지가.’
그것이 이 사단의 시작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강검마는 안색을 싹 굳히더니 곧장 발을 굴렸다. 회의장을 향해서였다. 옆에 있던 메디아가 화들짝 놀라 뒤쫓았으나 역부족이었다. 강검마에 비해 그녀는 한참 느렸다.
“허억, 허억… 천검 님이 저렇게 빠르셨나?”
강검마의 쾌속을 모르는 이는 이제 없다. 근데 그건 사시미를 뽑아 들 때 한정 아니던가? 현재 그는 그저 달릴 뿐임에도 빛살을 이끌었다. 더해 그가 지나간 자리엔 파지직, 싯누런 불똥이 자글거렸다.
그래도 꾸역꾸역 쫓아가는 성 부장과 메디아였다. 마침내 두 사람이 차례차례 회의실에 이르자, 일단 무거운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강검마가 입장과 동시에 살기를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몇 번 겪어 봤다고, 성 부장은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다. 이렇듯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그는 엇박자로 튀는 호흡을 다듬고서 눈을 들었다. 그리고 대경실색했다.
“……!”
레널드 대통령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원탁에 관자놀이와 광대뼈를 받은 채 혀를 축 흘리고 있었다. 흉했다.
아니, 잠깐만. 저거 죽은 거 아니지? 그냥 실신한 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해 줘, 제발.
메디아가 재빨리 강검마를 지나쳐 레널드에게로 다가갔다. 구두코로 정강이를 툭툭 건드렸다. 미동이 없다. 귀를 가까이 대었다. 숨소리도 안 들렸다. 생명 반응이랄 게 죄다 끊겨 있었다.
그녀는 레널드에게서 한발 뒤로 물러나, 사망을 선고하는 의사처럼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좆됐다.”
성 부장이 중얼거렸다. 각국 정상들의 뇌리에 팍 꽂히는 저렴한 욕설. 한국어는 만국 공통어였기에 모두가 그 뜻을 이해했다. 성기 됐다.
성 부장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창성을 쳐다보았다. 그는 팔자 좋게 가만있었는데, 성 부장의 아연한 표정을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나?”
“죽었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심장은 멈췄어.”
창성의 물음에 메디아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했다.
“시, 심장이 멎었다는 건 죽었다는 소리 아닙니까!”
성 부장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나머지 정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망이랑은 달라. 심장마비는 골든 타임 안에 심장 충격기로 소생시킬 순 있어. 문제는 그 기계는 1층에 있다는 거고, 여기는 12층이라는 거지. 그 전엔 죽을 거야.”
“그건 곤란한데.”
창성이 턱수염을 긁적였다. 난처하다는 듯 말했으나 표정은 썩 그렇지만은 않다.
“정상회담에서 사망자가 나오면 문제가 좀 커질 수도 있어. 심장마비라고 해도 말이지. 게다가 저 양돼지, 아니 레널드 대통령은 랜슬럿 컴퍼니의 대주주이기도 해. 저자가 없으면 영웅 에어전시의 협조를 구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네.”
창성이 그래서 화를 꾹꾹 담은 것이었다. 뭐, 근데 이젠 상관없나?
저벅.
이때까지도 조용히 있던 강검마가 돌연 걸음을 옮겼다. 레널드에게 접근한 그는 손을 뻗기 전, 창성을 돌아보았다.
“창성 님 말은 이 양키를 살리는 게 이득이다. 이거죠?”
“사람 목숨을 두고 손익을 메기긴 그렇네만, 그런 셈이지.”
말하던 와중, 창성은 슬쩍 레널드를 곁눈질했다.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벌어진 동공이 생각보다 빠르게 부패가 진행됐다.
“근데 눈깔을 보니 살리기엔 글렀어.”
“그건 해 봐야 알죠.”
“어? 그게 무슨…….”
창성은 잠시 깜빡거리다가 곧 화등잔만 하게 눈이 커졌다. 이 또한 모두가 창성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간접등만 켜 놔 어두컴컴했던 회의장. 시퍼런 전류 줄기들이 바닥과 벽에 부딪치고 튕겨, 장내를 환히 밝혔다.
파지지직!
다들 멍청한 얼굴로 강검마를 바라보았다. 할 말을 잃고 있길 잠시. 그들은 손으로 시야를 가려 버렸다.
눈이 부셨다. 강검마의 오른손이 안구가 시릴 정도의 섬광을 뿜어내고 있다.
…저딴 게 가호? 저건 마법 아닌가?
강검마는 곧바로 레널드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더 세찬 번개가 터져 나왔다. 눈이 부신 걸 넘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광선.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번쩍-!
일순 백탁으로 물들었던 회의장이 차츰차츰 본연의 색을 되찾아 갔다. 다음 순간, 어디선가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붕어처럼 뻐끔거리던 눈들을 부릅떴다. 아직 산란 중인 시야에 어슴푸레 맺힌 광경. 레널드가 이마를 감싸며 신음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레널드는 경황이 없었다. 가위로 멋대로 오린 뒤 짜깁기한 것처럼 전후 사정이 뒤죽박죽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강검마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맛머리가 만든 거무스름한 음영에서 검은 눈이 희번덕였다.
“죽었다 깨어난 기분이 어때.”
강검마가 낮게 말했다. 반말이었다. 미국 대통령을 향한 존중이 한없이 희미하다.
“그것이, 전선으로 몸을 던지는 영웅들은 매시 매초마다 느끼는 감각이다. 너 같은 새끼들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형편 좋게 고기를 썰고, 와인이나 처마실 때 말이야.”
강검마의 시선이 원탁 위로 도열한 와인잔들을 훑었다. 그러자 일거에 잔이 깨지고, 유리 파편이 비산했다.
내친김에 살기를 담아 고급 생수들도 쏘아봤다. 플라스틱이 마른행주처럼 꾸겨졌다.
“한국 왔으면 영창수 마셔, 영창수. 신토불이 몰라?”
레널드의 안색은 시체처럼 푸르죽죽했다. 생사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했던 조금 전보다도.
강검마가 말했다.
“그래도 너를 대통령이랍시고 뽑아 놓은 국민을 생각해서 살려 주마.”
“…….”
“나 누구랑 말하냐?”
“자, 자비에 감사합니다, 천검 님.”
“참고로, 방금까지 네가 지껄였던 망발은 녹취되어 있다. 전쟁 끝나고 대대적으로 뿌릴 테니까, 그런 걸로 알아.”
“그건 좀…….”
강검마가 사납게 눈썹을 모았다.
“왜. 그새 황천이 그리워졌어? 말해. 난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게 쉬운 사람이니까. 근데 생각 잘하고 말해야 할 거야. 그게 유언이 될 수도 있으니까.”
“…죄송합니다.”
강검마가 의자 다리를 차면서 회의장 구석을 턱짓했다.
“알았으면 저기서 손 들고 서 있어.”
“예…….”
레널드는 엉거주춤 구석으로 향했다. 모두가 그 축 늘어진 뒷모습을 보기만 했다. 붙잡거나 위로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레널드는 무릎을 꿇고서 손을 번쩍 들었다. 고개는 죄인처럼 푹 숙였다. 양복에 꼬깃한 주름이 잡혔다. 수치심에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흘렀다.
강검마는 레널드가 앉았던 의자에 깊게 등을 기댔다. 그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한바탕 소요가 휩쓸고 지나갔다. 회의장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강검마는 폭력으로 지방 방송을 껐으며, 특유의 분위기로 각국 정상들을 제압했다.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한순간에 벌어졌다.
그 연장선인 무언의 압박에 정상들은 고급 생수 대신 침만 꼴깍였다. 노욕에 찌든 중년인들은 속된 말로 쫄았다. 올해로 열여덟인 소년에게 말이다.
“제대로 시작합시다, 회의.”
이 회의장에서, 강검마는 폭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폭군이 필요한 법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딱 그러했다.
“아까 말했듯이 불만 제기 있으시면 거수하세요.”
회의가 끝날 때까지 누구 하나 손드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으로 예정되었던 회의는 세 시간 단축됐다.
* * *
“잠깐, 코지마.”
창성이 회의장을 나가려던 절궁을 불러 세웠다.
“…뭡니까.”
절궁은 뒤돌지 않은 채 답했다. 창성은 멋쩍게 웃었다.
“그, 뭐야. 오늘 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분위기가 완전히 그 양키 놈 쪽으로 넘어갈 뻔했어.”
“듣다 보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했을 뿐. 선배한테 감사를 들으려고 한 말이 아닙니다.”
창성의 미소가 진해졌다. 솔직하지 못한 놈.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제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이유 말입니까?”
“눈치 하난 백 단이군.”
“당연히 저와 제가 몸담은 일본을 위해서였습니다. 다른 정상들은 몰라도 군단장을 상대해 본 저는 알지 않겠습니까. 각자도생? 그리하면 인류는 반나절도 못 버티고 멸망할 테니까요.”
“내 말은 정말 그 때문만인가. 그걸 묻고 싶은 거네.”
“이것도 대답해 드려야 합니까?”
창성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건 자네 자유네만,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말을 주고받겠나. 전쟁이 터지면 우리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죽을 수도 있을 텐데.”
“…….”
절궁은 그저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들었다. 허옇게 눈이 내린 머리 가마가 한눈에 들어왔다.
“천검에게 칼침을 맞고 입원하는 동안, 시간이 남아돌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더군요, 그렇게 한량처럼 시간을 죽이던 게. 저는 제 아내 알리스가 죽은 후부턴 미친 듯이 일에만 몰두했으니까요.”
천장을 바라보며. 절궁은 그 자세 그대로 삶을 자조했다.
“시간을 축내면서 저와 알리스에 대해 돌이켜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전 알리스에 빠져 살았을까. 그 부분부터 의문이었어요.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알리스를 사랑했던 이유는…….”
시선을 내린 절궁은 천천히 절궁을 돌아보았다. 하늘색 홍채가 생도 시절의 그때처럼 싱싱했다.
“…그녀의 신념. ‘다른 이의 무게마저 자신이 짊어지겠다.’ 그 신념을 동경해 왔던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요.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이니 더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랑이란 낱말로 포장한 집착. 너무 추하지 않습니까?”
절궁은, 코지마는 힘겹게 내뱉었다.
“저는 60년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추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알리스는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죽었지만, 지금의 저보다 몇 갑은 어른스러운 여인이었습니다.”
“…….”
“그래서… 어차피 대전쟁이 곧이라면. 늦었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 어른이 되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야 먼저 간 그이를 뵐 면이 생길 것 같거든요.”
코지마는 말을 하다 말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노망이 났나 보군요. 보기만 하면 드잡이질 하던 뮈라 선배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늙는다는 게 무섭긴 무섭군요.”
“피차, 늙어가는 노부들 아닌가.”
창성은 만면에 미소가 만개했다.
“나는 내일모레 칠순이네. 아마 이 말도 내일이면 깜빡할 거야. 걱정하지 말게.”
“선배도 늙긴 늙으셨군요. 젊었던 시절엔 그렇게 막무가내셨던 분이, 그런 말을 다 하시고.”
그리 말하면서도, 절궁은 슬그머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