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8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80화(275/300)
280화 감정 (1)
[“사실상 전쟁 선포”…창성, 동원령 전격 발표.] [〈공표〉 인류-마족, ‘제2의 인마전쟁’ 돌입.] [〈속보〉 절궁, 이번 전쟁에 참전 의사 밝혀.] [〈속보〉“미국 또한 참전”…올 뮤트,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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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야말로 수라장. 기자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적으로 기사를 냈고, 조회수는 1분도 안 돼서 몇만에 육박했다. 원래 같았으면 언론사는 쾌재를 내질렀을리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론사와 기자진은 핏빛 미래를 과장 없이 보도했다. 그들은 유사시에 이르러, 비로소 담백한 기사를 뽑아냈다.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였다.
그 덕분일까? 서로 물고 뜯기 바쁘던 네티즌들도 오늘만큼은 조용했다. 간간이 분탕을 유도하거나, 현실 부정, 선동과 날조를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금세 묻혔다.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다. 호아킨 참사, 호아킨 테러, 4군단장 퍼머쉬의 침공. 시기가 빠르냐, 늦냐일 뿐. 일련의 사건들만 나열해봐도 ‘2차 인마전쟁’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눈먼 화살이었던 댓글은 참전할 영웅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영웅은 자신을 대신해 싸워줄 전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밀리면 인류는 종말을 맞이한다.
그 말인즉, 영웅들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 그 심리가 기저에 깔린 것.
“…….”
사키 료죠는 활자 하나하나를 곱씹듯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 이윽고 기사 확인을 마친 료죠가 물었다.
“빅스빅. 이 기사들 사실이야?”
[네. 몇몇 찌라시성 기사들과 너튜브 영상들을 제외하곤 전부 사실입니다.]“…….”
료죠는 스마트폰을 뒤집었다. 대꾸할 여력이 없었다. 그녀는 진이 빠지는 걸 느끼며 의자 목받이 뒤로 머리를 젖혔다. 손목으로 형광등의 쨍한 조명으로부터 눈을 보호했다.
‘검마…….’
몇 시간 동안, 그녀가 무수한 기사들을 뒤적거린 이유. 강검마의 참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다만 아직 기밀 사항인지라 관련 기사는 적었다.
말이 나와봤자 이제 열여덟인 천검이 전쟁에 뛰어들까? 비상 전력으로 두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추측성 기사 정도였다.
하나, 료죠는 강검마의 참전을 사실상 확신하고 있었다. 강검마는 인류의 암운에서 눈 돌릴 성격이 아니다. 앞장서면 섰지. 걔는 그런 애다. 그리고 그것은 료죠의 마음을 미어터지게 했다.
‘강검마는… 이번 전쟁에서…….’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와중에도 이성은 냉정을 차리고 생환 가능성을 가늠했다. 확률을 소수점 단위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두뇌가 가속할수록 예쁜 미간은 자꾸만 이지러졌다. 등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인기척을 느낀 건 그때였다.
료죠는 눈을 번쩍 떴다. 시야에 거꾸로 대말려 있는 엄마의 모습. 신시아는 머리를 크게 젖힌 채 상념 하는 딸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딸.”
신시아가 옷소매로 료죠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밥 먹자, 밥. 머리 굴리려면 밥부터 먹어야지.”
“…….”
료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신시아도 빙그레 미소하며 괜스레 앞치마를 툭툭 털었다.
료죠는 식탁 앞에 앉았다. 김치, 멸치볶음, 어묵조림, 무생채. 다분히 한국적인 상차림. 정중앙은 덩그러니 비어 있다.
“짜잔!”
신시아가 뚝배기를 그 빈자리에 놓았다. 그녀의 벙어리 장갑이 야심 차게 뚜껑을 열었다. 모락모락 피는 김 사이로 빨간 국물이 펄펄 끓었다.
“엄마 특제 표, 김치찌개야. 료죠, 네 입맛이 일본이니까 간은 일부러 심심하게 했어. 대신에 단맛을 좀 많이 냈지.”
신시아는 국그릇에 김치찌개를 덜어주려 했다. 본디 한 뚝배기에 숟가락을 품 담가 먹는 것이 한국 정서여도 어쨌든 료죠에겐 생소할 테니까.
“나 때문에 굳이 소분할 필요 없어.”
그런데 웬걸. 딸 쪽에서 거부했다.
“설거지 늘잖아. 그냥 먹자. 엄마도 얼른 앉아.”
“어, 음. 그럴까? 그래. 나도 딸이랑 침 섞으면서 밥 좀 먹어보자.”
“밥상 앞에서 말을 해도… 입맛 달아나게.”
료죠는 짧게 혀를 차고서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갈 함과 동시에 알싸한 마늘과 고추 향에 입천장과 혓바닥을 들쑤셨다.
눈시울과 콧망울이 시큰거렸다. 맵지 않게 끓였다는 엄마 말은 거짓말이었다. 료죠는 훌쩍거리면서 신시아를 째려봤다.
“방구석에서 궁상맞게 우는 것 보단 매운 거 먹어서 울었다는 게 더 그럴싸하잖아.”
신시아가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김치찌개를 먹으며.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돼. 그게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이면 더 목 놓아 울어도 되고. 근데 우리 딸은 태생이 일본인이라 그런지 솔직하지 못한 면이 있으니까. 그리고 겸사겸사…….”
옅은 눈물이 신시아의 뺨을 타고 흘렀다. 료죠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문득 아까 보았던 한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 제목이 분명 ‘절궁, 이번 전쟁에 참전 의사 밝혀.’ 이거였다.
절궁은 전쟁을 앞두고 총리직에서 사임했다. 이번 전쟁이 끝나고 민주적인 선거를 도입한다는 말과 함께. 비록 전쟁 관련 기사에 휩쓸렸으나 그건 그거 나름대로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특히나 절궁을 잘 아는 이들에겐 더더욱. 개중엔 료죠만 아니라 신시아도 포함되었다.
“엄마… 설마…….”
“응. 맞아.”
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뚝배기 안에서는 김치찌개가 여상히 보글보글 끓었다.
“정말 죽일 듯이 밉지만, 이따금 사키 코지마 그 인간이 꿈에 나와.”
“…….”
“어느 날 갑자기 저 초인종이 울려서, 배달인가 싶어 문을 열었는데 네 아빠가 서 있는. 그런 꿈 말이야.”
띵-동-
그 순간, 초인종이 대뜸 길게 울었다. 당황한 모녀는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초인종의 잔울림만 고요히 퍼졌다. 직후 모녀는 약속했다는 듯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택배일 리는 없다. 작금은 데프콘 1, 전시 상태. 편의점이나, 택배 같은 서비스는 저번 주부로 마비됐다. 다행히도 준비성 철저한 신시아는 일찍이 식량들을 비축해뒀기에 삼시세끼 챙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녀들과 같진 않다. 아니, 대부분은 상황이 궁핍했다. 그러므로 이 불청객은 구걸하러 온 주민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아니면 빈집털이 내지 강도든가.
“내가 나가볼게.”
“엄마가? 내가 나가보는 게 낫지 싶은데.”
“얘 좀 봐. 나 무시하니?”
신시아는 거실 서랍을 뒤져 메스 한 자루를 꺼내 위로 던졌다. 그리고 바람개비처럼 빙글빙글 도는 메스를 허공에서 낚아챘다. 민첩하고 능숙한 손놀림이다.
“엄마 별명 잊었니? 나 신의 신시아야.”
“뭔 상관이야.”
“원래 사람 잘 살리는 사람이 잘 죽이는 법이란다.”
“그게 의사가 할 소리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튼 밥이나 먹고 있어.”
신시아는 메스를 비수처럼 옷소매와 손목 사이로 감췄다. 차가운 쇠의 감촉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녀는 빈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이내 문이 열리자, 그녀는 흠칫 굳었다. 예기치 못한 얼굴이 서 있었기에.
“뭐야, 누군데 그래?”
료죠가 엄마 어깨 너머로 빼꼼 눈을 들어 올렸다. 잠시 후, 그녀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검마.
“잠시 실례 좀 해도 될까요?”
작금에 가장 바쁠 그가 대뜸 부산을 방문했다.
* * *
온 세계가 혼비백산한 가운데 나는 상대적으로 의연했다. 검신의 가호 영향도 있겠지만, 이 세계로 온 이후로 늘 염두에 뒀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닥치니 머리가 차가웠다. 뭐랄까, 올 것이 왔다는 느낌. 덕분에 냉정해진 머리로 현 시간에 내가 뭐를 놓쳤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냅다 아무 생각 없이 전쟁에 뛰어들면 후회할 거 같아서였다.
‘이번에는 진짜 죽을 수도 있으니까.’
쿠아른은 분명 강적이다. 그러나 내가 상대조차 불가능할 그런 적은 아닐 것이다. 종국의 난 보유 가호를 전부 개방했으며, 라이칸의 마안과 마법까지 익혔다. 일대일의 백병전이라면 할 만했다.
‘내 적은 그놈 너머의 존재들, 거짓된 신.’
검의 신과 라이칸이 한 말이었다. 그들은 쿠아른은 입에 담지 않았어도 거짓된 신들은 꼭 언급했다.
그것은 쿠아른이 약해서가 아니라 주적이 따로 있음을 강조한 것. 한 마디로 내 주적은 신들이며, 그들이 이번 전쟁에 모습을 드러낼 것에 대한 암시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정말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웃기네.’
살아보려고 아득바득했던 내가 언제부터 이리 사명감에 불탔던가.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지만, 참.
아무튼.
나는 마지막 전투를 목전에 두고서야 내게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생각해보았다.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이번 생의 부모님이었다.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분. 이후 뇌리에서도 조금씩 잊히려는 두 분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붙들었다.
두 분이 내 모습을 봤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 호아킨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만으로 서리 강씨의 자랑이라 하셨는데.
‘칠성이 됐다고 하면 자지러지시겠지.’
두 분은 더는 뵐 수 없기에 생각의 흐름은 그다음으로 넘어갔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내게 가장 중요한 존재. 스쳐 가는 면면은 꽤 있다. 학원장님, 검제님, 창성님 등등. 나를 물심양면 도왔던 이들.
감사함은 늘 품고 있다. 하지만 강검마, 엄밀히는 ‘나’란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감정의 찌꺼기만 남은 가슴의 밑바닥은 그리 말했다.
발걸음은 감정에 이끌려 방향성을 정했다. 곧바로 부산으로 출발했다.
“…….”
“…….”
그렇게 현재, 나는 료죠와 식탁을 사이에 두고서 가만 앉아 있다. 입을 꾹 다문 우리를 대신해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소리를 내주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걸까.’
신시아는 내 급작스러운 방문에 어안이 벙벙하길 잠시. 곧장 어디 나갈 곳이 있다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딴에는 눈치껏 한 행동이겠으나 신시아의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그녀가 나간 뒤부터 이 넓고 아늑한 40평대 집에는 우리 둘만 남게 됐으니까.
“바쁠 텐데 여기는 웬일이야…….”
먼저 말문을 연 건 료죠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힐긋힐긋 훔쳐보았다. 옅은 홍조는 료조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는 듯했다. 부끄러움, 낯섦, 반가움.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렇게 낯 가리던 료죠였는데.’
그녀는 정말 많이 변했다. 딴 사람이라 해도 될 정도다. 양갱을 입에 달고 살았던 료죠는 더는 단 걸 찾지 않는다. 내면보다 그 가치를 중시하던 료죠는 상대의 안위를 신경 쓴다. 솔직함과는 영 거리가 멀던 료죠는 이제 얼굴만 봐도 티가 난다. 물론 이런 표정은 내게만 짓는 거였지만.
나도 솔직해지기로 했다. 마지막 결전을 핑계 삼아 솔직해져 보기로. 비겁하다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너.”
“나, …나? 왜?”
입술이 달싹거린다. 마음은 먹었어도 쉽사리 입이 떼지질 않는다. 이런 낯부끄러운 말을 태어나서 해본 적이 있어야지.
‘근데 료죠는 이런 말을 내게 몇 번이고 했었구나.’
입장 바꿔보니 꺼내기 상당히 힘든 말이다.
“료죠.”
“…왜 계속 불러. 사람 불안하게.”
나는 숨을 집어삼키고서 크게 뱉어냈다. 눈은 최대로 내리깔았다. 모쏠에게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너 보고 싶어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