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8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86화(281/300)
286화 결전 (2)
머리가 웅웅 울린다.
피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속이 메스껍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금방 진정되려나.’
눈을 얇게 떴다. 짙푸른 액체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켄타우로스 무리의, 마족의 피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에서 시선을 떼었다. 머리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새털구름이 뭉게뭉게 흐른다. 빼꼼히 사이한 하늘이 보인다.
푸르다. 다만, 지상의 색채와는 판이하다. 하늘의 그것은 맑고 개운하다. 지상의 그것은 끈적하고 후덥지근하다.
후우웅.
한적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었다. 피 섞인 땀방울을 식혔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사위의 소란이 점차 또렷해진다.
후, 호흡을 한번 짧게 뱉었다. 잠깐의 휴식을 끝냈다.
다시 고개를 내렸다. 나를 중심으로 켄타우로스의 사체들이 바리케이드처럼 고기 벽을 만들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그 덕분에 마족들이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다. 낑낑거리다가 결국 안 되겠는지 불 속성 마법으로 말들을 화장시켜 버린다. 고기 타는 냄새가 콧속을 쑤셨다.
화르륵…….
주검들은 금세 화염에 휩싸였다. 넘쳐 흐르던 핏물도 파란 아지랑이를 일으키고는 파스스- 증발했다.
피부가 후끈하고 악취는 한층 더 독해졌다. 주먹으로 입을 막고 기침했다.
콜록, 콜록.
폐에 멍이 퍼지는 느낌. 담배가 없는 세계에서 분홍색을 유지 중이었는데, 저놈들 때문에 목구멍과 허파가 텁텁하다.
“개같은 새끼들. 간접흡연도 나쁜 거 모르나?”
나는 킁, 코를 먹은 다음 바닥에 침을 뱉었다. 푸른 타액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모르는 새에 핏물을 먹은 모양이다.
“어쩐지 입맛이 비리더라니.”
나는 쓰게 웃고는 사시미를 휘저어 털었다. 피와 지방으로 지저분했던 칼날이 대번에 희게 웃었다.
끼기긱.
검 울림에 잡음이 섞였다. 듬성듬성 이가 나간 곳에 정체 모를 찌꺼기가 끼었기 때문이다. 미간이 슬쩍 모였다.
“날이 좀 상했네.”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아닌 게 아니라 30초도 안 돼서 백 마리가량을 도축했으니 말이다.
마족의 방어 마법이 제법 견고한 탓에 이기어검이 힘을 못 썼다. 해서 그냥 손으로 전부 썰었다.
“어쩔 수 없지…….”
부정 물질만 수두룩한 전장이다. 마음이라도 좋게 좋게 먹어야지.
별개로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청각. 오감은 서로 불쾌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탓에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바로 짜증으로 변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한 소리 했다.
‘얘들아 가만히 있어.’
너희들이 이런 식이면은, 마! 그때는 내가 깡패가 되는 거야!
마침 두 손에 꼬나 쥔 건 사시미. 사이즈도 딱 나오네.
“나도 드디어 미친 건가.”
헛웃음과 함께 자조했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혼자 뭐라 씨불이고 있는지.
이 세상은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살기 힘든 세상이다. 나는 그 환경에 적응했을 뿐, 태생부터 미친놈은 아닐 터다.
마족들이 육벽肉壁을 죄다 허문 건 이즈음이었다.
놈들이 접근했다. 배고픈 짐승처럼 부라리는 눈빛이 매섭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게 거리를 쟀다. 야성과 냉정이 고루 깃든 모습이다.
그러나 불안정했다. 놈들이 그리는 원형진만 해도 그렇다. 나를 조이려는 의도인 것 같은데, 몹시 허술했다.
보라. 가장자리가 완만하지 않고 삐뚤빼뚤하다. 질서 정연하게 진을 이루는 영웅들과 실시간으로 비교가 된다.
“보고 배워라 좀.”
나는 손목을 둥글게 주억였다. [검신의 가호]의 고통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터다. 빌어먹게 아프긴 해도 참을 만했다. 그게 어디야.
나는 칼자루를 느슨하게 잡았다. 마족들이 움찔하며 엄지와 중지를 붙여 자세를 잡는다.
“다들, 대기해. 신호 줄 때 시전한다.”
수십의 귀쟁이에게 포위당했다. 저들이 손가락을 까딱하는 순간에 온갖 속성 마법이 빗발칠 것이다.
진형은 조금 엉성했지만 큰 사각은 안 보인다. 이 포위망에서 벗어나려면 피하지 말고, 도려내서 뚫어야 한다.
그러는 사이, 태양은 점점이 부유하는 구름 조각들 속으로 절반쯤 숨었다. 그에 귀쟁이 중 절반이 그림자에 잠겼으며, 나 또한 그림자를 반쯤 몸에 걸쳤다.
일대는 소란통이었다. 영웅들이 있는 힘껏 항거하는 고함이 높게 치솟았다.
무장은 영웅의 악기다. 신경질적인 금속성으로 주인의 처절함을 연주했다.
나는 제자리에서 통통 튀었다. 발소리는 없고, 흙먼지만 점프에 맞춰 올라왔다.
그리고 잠시 후였다.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이목을 돌렸다. 순식간에 깔린 적막. 마족을 비롯해 그 현장에 있던 전원은 기묘한 체험을 한다.
내 발이 세 번쯤 노면을 밟았을, 정확히는 직전에. 빠지지직, 발바닥과 노면의 틈새에서 전류가 시퍼렇게 들끓었다.
찰나였다.
가장 가까이 있던 귀쟁이 놈과 내 자리가 뒤바뀌고, 서로에게 등을 보였다. 발바닥에서 튀기던 샛노란 불티가 내 발뒤꿈치 뒤로 길쭉하게 늘어났다.
“으어, 으어어어.”
나와 등을 내보인 귀쟁이, 그리고 양쪽에 있던 그의 동료들이 눈꺼풀을 찌르르 경련했다.
놈들은 그와 동시에 오른손으론 목을 긁고, 왼손으론 배나 사타구니 등의 다른 신체 부위를 더듬었다. 게슴츠레 열린 입에선 돼지 멱따는 신음을 꺽꺽거렸다.
“커어, 어어, 어어어얽헣.”
목을 부여잡은 그 손에 핏물이 차올랐다. 피부에는 사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혈선이 포승줄처럼 그들을 묶었다.
사시미를 횡으로 털었다. 핏방울이 칼날을 타고 뻗어나갔다. 핏물이 후두둑 땅에 떨어진 순간. 포가 뜨인 귀쟁이 셋이 나란히 미끄러졌다.
이후는 뻔했다. 고기 토막들이 볼품 없이 데굴데굴 굴렀다. 더불어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던 일대는 가늘게 몸을 떨었다.
사시미를 타고 흐르는 피색은 푸르다. 그에 영웅들은 장미처럼 붉은 환희를, 마족들의 얼굴은 파리하게 식었다.
“말, 말도 안 돼.”
뭉클한 구름이 해를 완연히 가렸다. 새하앴던 구름은 먹을 옅게 푼 듯 묵색으로 변했다.
구름의 그림자는 영웅들을 위해로부터 숨겨 주었으며, 반대로 마족들 위로 어두컴컴하게 드리웠다. 이어 먹구름끼리 서로를 물고 뜯으며 짓이겼다.
그르렁거림에 천지가 요동쳤고, 허공을 깎아 내지르는 번개 자국을 남겼다. 마치 자연의 섭리에 누군가의 의지가 서린 듯했다.
꽈르릉!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마족은 번쩍임이 명멸할 때마다 동굴의 횃불처럼 훅훅, 꺼져 갔다.
마족은 허둥거리며 도망쳤다. 하지만 빛은 만물 중 최속이다. 발재간이 잽싼들, 빛의 쾌를 뿌리칠 순 없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것. 삼라만상 평등하게 적용된다.
청천벽력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 관용적 표현이다. 바싹 메마른 하늘에선 불티가 일지 않는 법. 벼락은 먹이 드리워야 비로소 완성된다.
빛과 어둠은 표리일체. 두 성질은 언뜻 평행선을 그리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빛이 어둠이요, 암이 곧 명이다. 이는 내 삶과 부합한다.
칼은 내게 있어 지향점 즉, 빛이다. 이전 생이나 지금 생이나 어두컴컴한 앞길을 비춰 주는 빛이었다.
그리고 내가 칼을 잡게 된 계기는 심연이다. 시궁창 같던 집구석, 핍박받던 삶, 언젠가는 도래했을 암운.
이러한 어둠들이 있었기에 나는 칼을 놓지 않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내 삶은 늘 빛과 어둠이 공생했다.
항상 빛과 어둠의 강역에 놓여 있던 인간, 그게 나다.
그렇기에 내 이름이 강검마剛劍魔인 것이다.
* * *
마경의 지배자. 너희의 주인. 게헤나의 절대군주.
뇌제 라이칸이 왔노니.
진정한 마魔 앞에서 경배하고, 전율하라.
* * *
쿠아른이 가부좌를 풀었다. 그는 느릿하게 몸을 바로 세워 기립한 자세로 공중을 부양했다.
“세 가지 중 두 가지를 만족시켰군.”
쿠아른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레온과 헤르야가 허공을 밟고 서 있었다. 쿠아른의 마법이 대기질에 공기막을 형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뇌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헤르야.”
“예, 주인님.”
“아직 피가 부족합니다.”
쿠아른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존대했다. 그는 기분에 따라서 하대와 존대가 오락가락했다. 존대했다는 것은 그가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거다.
“내려가서 마족들을 독려하세요. 아시겠죠? 더 많은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예.”
헤르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나 끝말에 신경을 기울였다.
‘더 많은 제물.’
그 말인즉슨, 피아를 구분 짓지 말라는 소리였다. 쿠아른에게 마족들은 대계를 위한 일개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다.
헤르야는 애써 표정을 지우고서 곧바로 지상으로 향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벼락을 어떻게든 비껴 가며.
‘으읏.’
전부 피할 순 없는 노릇인지라 몇 번의 번개를 허용해 피부가 그을렸다. 그녀는 고통을 참아 가면서 끝내 마족들 틈에 섞여 들었다.
“조카님도 이제 슬슬 나설 차례입니다.”
쿠아른이 말그레 미소 지었다.
“나서기 전에 하나만 묻자, 쿠아른. 어째서 이 시기에 인계를 침공한 거지? 분명 너와 나의 약속은 2년 후였을 텐데.”
“원래는 대계를 2년 후로 예정했습니다. 마경 자체적으로 피를 좀 흘릴 심산이었지요. 근데 일이 좀 꼬여 버렸더군요.”
쿠아른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뭐, 어쩌겠습니까. 시기를 놓치면 완전히 무용지물입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그렇다 쳐도 조카님의 목적이 헝클어지지 않습니까?”
“…….”
“저 하나 좋자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목적이 일치합니다. 레온, 당신은 거짓된 신들에게 복수하고 싶지만 할 수 없죠. 용사이기 때문입니다.”
“…….”
“저를 미워하세요, 조카님. 더 원망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이자 제 친족인 메타트론의 부정을 고발한 건 저니까요. 하지만 아시잖습니까.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레온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메타트론이 참시 당한 원인은 쿠아른이다.
“그들은 부활의 때가 가까웠고, 자신의 하수인이 뭐를 하는지 알려 했습니다. 그들이 알고자 했다면 조금의 노력 없이도 알아냈을 겁니다. 가령, 그들이 직접 메타트론을 발견했다면 즉결 처형이었을 겁니다. 그나마 제가 고발했기에 숨이나마 붙어 있는 것이지요. 살아만 있을 뿐, 그들에게 고문당하고 있겠지만요.”
맞는 말이다. 이를 알기에 레온은 이자와 협조했다.
“제 말의 요는 시기가 늦다 빠르다였지, 결국은 발각됐을 거란 이야깁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원인을 찾아야지요. 그걸 알았기에 메타트론은 죽이고 싶어 안달 난 아우에게 부탁한 겁니다. 자기 아들을 봐 달라고.”
근원에 다다르려면 이 씹어 죽일 놈의 도움이 불가결하다.
“그러니까 어서 가서 기적을 행사하세요, 용사. 당신의 과업은 인류‘만’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구하는 것이죠. 미시적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으로 보는 겁니다. 좁은 시야로 보기에 우주는 너무도 광활해요.”
장광설을 들은 레온은 조용히 눈을 내렸다. 시선의 끝엔 흑발의 소년이 있다.
“신을 죽이는 자…….”
용사가 한마디 씹어뱉었다. 대해처럼 푸른 눈은 스산한 살기를 뿜으며.
“…마왕.”
그의 신형이 지상으로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