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8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87화(282/300)
287화 결전 (3)
“으갸아아아악!”
마족 서열 7위 오크 족장. 군단장 가운데 쿠아른만 남은 작금, 그의 전투력은 기실 군단장급으로 여겨진다.
“방패 부대 앞으로 나서지 말고 후퇴해! 저거는 못 버틴다! 얼른!”
영웅들은 고전했다. 덩치에 걸맞은 괴력과 중간중간 노련하게 마법까지 섞어 공격하기에. 그 파괴력은 워리어급 탱커 다섯이 붙어도 저지키 힘들었다.
쐐애애액!
창이 쭉 길어지며 두툼한 뒷덜미를 노렸다. 오크 족장은 고개를 비틀어 내질러 온 창날을 피했다. 일개 영웅의 무장이었으면 피하지 않았을 터지만, 이 일격은 ‘일개 영웅’의 것이 아니었으니.
“네 이노옴!”
창성의 기합. 그는 길게 잡았던 창대를 다시 짧게 잡았다. 그리고 벼락처럼 발을 굴렸다.
오크 족장은 몽둥이를 이빨로 물었다. 놈은 재갈 물린 듯한 입으로 무어라 웅얼거렸다.
“부딪쳐 오다니, 멍청한 인간 놈. 나보다 더 멍청하다.”
오크 족장이 자세를 수그리듯 낮췄다. 등이 곱상 등처럼 굽은 모습. 두 손으로 땅만 잡으면 영락없는 멧돼지였다. 근데 덩치가 산만 한.
콰앙!
놈이 마주 돌진했다. 돼지 뒷발이 큰 고랑이 패었다. 이어 쿵쿵쿵, 지면이 크게 들썩였다. 안 그래도 하늘에선 천둥이 번쩍이는데, 말 그대로 천지가 격동하는 전장이었다.
“웬 산이 달리는 것 같구먼.”
창성도 인간치곤 거구였다. 일반 성인 남성보다 머리 두 개는 큰 키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들과 비교해서였다. 인간이 암만 커도 산만 하진 못하다. 때문에 둘의 충돌을 멀리서 본다면 창성이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을 터다.
인간과 괴수. 하지만 작으면 작은 대로의 싸움 방식이 있다. 돌팔매질로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처럼.
창성이 옆으로 몸을 날려 경로를 직각으로 틀어 버렸다. 맹렬한 기세로 질주했기 때문에 관성의 반발력이 그를 엄습했다.
꾸그극.
장딴지와 종아리가 비명을 질렀다. 근육과 힘줄이 다수 끊겼으리라. 만약 자신이 저 멧돼지의 몸무게였다면 이조차도 불가능했으리라. 결국 의지대로 몸을 놀렸다. 그 점이 중요하다.
오크 족장과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지만, 그만큼 창성의 몸은 옆으로 충분히 빠져나온 뒤였다.
창성이 소리쳤다.
“코지마!”
창성이 너른 광배근으로 가리고 있던 시야가 드러났다.
절궁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강궁强弓의 시위를 있는 힘껏 당겼다. 활을 잰 손에 혈관이 울둥불퉁 일어설 정도였다.
절궁이 화살을 놓았다. 햇살을 받은 화살촉의 반짝임이 길쭉한 빛살로 변했다. 활대가 뚝 부러진 것은 그다음이었다. 너무 많은 힘이 실린 탓이었다.
“꾸히이이이이잇!”
강궁의 희생은 그 값어치를 했다. 왼쪽 눈알을 제대로 관통당한 오크 족장이 질주 경로를 이탈한 것이다. 입에 물고 있던 몽둥이는 침과 버무려져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절궁은 짧게 혀를 찼다. 그는 마비 온 손을 쥐었다 피며 중얼거렸다.
“머리통을 박살 낼 심산이었는데, 그건 안 되는구나.”
어쨌거나 오크 족장은 마족 서열 7위다. 절궁이 온 힘을 담아 쏘았다 해도, 화살 한 발로 절명시킬 수 있는 호락호락한 마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느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동그라진 놈은 얼굴의 반을 감싸며 몸서리쳤다. 화살촉이 눈알을 깊게 찔러 뇌까지 닿을락 말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둥거림은 오크 족장의 빈틈이었다.
직검이 두둥실 허공을 날았다. 검제의 이기어검술以氣御劍術. 쐐애액, 바람을 찢으며 나아간 직검이 녹색 목젖을 두드렸다. 다만 가죽이 두툼해 한 번으론 뚫리지 않았다.
검제는 재빨리 달려 저 혼자 움직이던 검 자루를 공중에서 잡아챘다. 역수로 잡은 직검을 내리찍었다. 푸르죽죽한 핏물이 뺨에 튀어 올랐다.
검제가 눈을 찌푸리며 침음했다. 검자루를 감싸 잡은 두 손과 검날이 잘게 흔들렸다.
“그냥은 안 당해 준다. 이건가.”
오크 족장이 오른 손바닥으로 검격을 막은 것. 놈은 곧장 왼손으로 박힌 화살을 눈알 채로 쭉 뽑아 냈다. 시신경과 뇌수가 딸려 나왔다. 그걸 으적으적 게걸스럽게 씹어 먹는다.
“내 이름은… 하후돈豚……! 지금부로 진정한 전사로 거듭난다! 으갸아아아악!”
오크 족장이 박력 넘치는 피어를 내질렀다. 근처에 있던 영웅들의 고막이 파열됐다. 오크 족장의 얼굴을 밟고 있는 검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눈구멍에서 핏물이 줄줄 흘렀다.
“이 괴물 같은 놈.”
이것이 인간과 마인의 가장 큰 차이다. 마법은 둘째 문제다. 놈들은 쉽사리 지치지 않는다. 하물며 이곳은 인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게다가, 굉장히 호전적이다. 내심 존경심마저 들 정도.
‘역시 그 수밖에 없나.’
검제는 갈등했다. 한 번 더 각성하면 직후 육신은 한계에 다다른다. 즉, 죽는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70년을 이 몸으로 살아왔으니까.
전장에서의 죽음은 영웅을 위시한 전사의 긍지다. 비록 아벨이 못내 눈에 밟히지만, 강검마가 그 곁을 지켜줄 터다. 그가 손녀의 반려라면 언제든 믿고 눈 감을 수 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문제는 이후가 아닌 직후다. 자신이 죽는다면 영웅들의 사기가 팍 꺾일 것은 뻔하다. 당장은 천검이 신묘한 기예로 마족을 몰아친다 한들, 그것도 한시였다. 지구력 싸움으로 가면 인간이 불리했다. 이 오크 놈이 그를 증명한다.
그 찰나, 오크 족장의 뱃살이 꿀렁였다. 튕기듯 벌떡 일어서려는 기세였다.
검제는 고민을 접어 두었다. 그는 혈관을 조이듯 전신을 수축했다. 검 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뼈에 각인시킨 검리를 끄집어 내었다.
그때 하늘에서 한 쌍의 신형이 출몰했다. 메디아와 메아인이었다. 그녀들은 데칼코마니처럼 좌우 반전된 자세로 발을 내리꽂았다.
검제는 겨우 몸을 날려 피했지만, 그 아래 있던 오크 족장은 그러지 못했다. 하이힐의 뾰족한 굽이 뚫린 눈구멍을 지나 뇌를 건드렸다. 인간이든 마족이든 뇌는 급소 중의 급소다.
“으갸갸갸갸갸갹!”
비명이 울려 퍼졌다. 포이즌 쌍둥이는 남은 발로 그 아가리로 들어가 입 안을 헤집었다. 합이 딱딱 맞았다.
푸슛!
피 분수가 화려하게 튀었다. 포이즌 쌍둥이는 무릎까지 피범벅이 되었다.
오크 족장의 입구 멍에서 피거품이 끓었다. 공기를 할퀴듯 꿈지럭거리던 놈의 손가락이 멈췄다.
잠시 후,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던 두 팔이 축 늘어져 떨어졌다. 팔 한 짝이 성인 남자만 하기에 쿵, 하고 큰 소리가 났다.
서열 7위. 마족 측 핵심 전력 오크 족장. 하후돈. 사망.
놈이 죽자 주위의 영웅들이 기세등등해졌다. 인간의 체력은 마족에게 못 미치나, 사기와 정신력만큼은 그 이상이다. 얼굴에 활기가 감돌았다.
“칠성들께서 오크 족장을 죽이셨다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영웅들이 마족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합공에 마족들은 많은 유효타를 허용했다.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마족 세력도 하나둘씩 생겼다.
빠지지지직!
그러는 와중 전격은 마족만 골라 구웠다. 여러모로 전세가 인류 측으로 기울었다.
“지크, 너 각성하려고 했지?”
메아인이 잔망스레 다리를 털고는 짝다리를 짚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다른 칠성이 모여들었다.
“내가 너 가르쳤을 때 뭐라 했어. 더 편하고 쉬운 길만 찾지 말라 했지.”
“만력님과 메디아가 오지 않았다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검제는 항변했다. 메아인은 차갑게 일축했다.
“그것밖에 없기는. 오크 족장은 6군단장 바스몬 수준이었어. 근데 그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너한테 각성밖에 없었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넌 고지식해 보이면서 은근히 요령 피운단 말이지. 예나 지금이나. 그래서 메디아한테 틀딱 소리나 듣지.”
“…….”
“잘못했어, 안 했어.”
스승의 채근에 검제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정말 위기 상황이 아니면 각성은 최대한 보류하는 선택지로 남겨 놓겠습니다.”
“아니. 너는 생각도 하지 마. 고대인인 나도 어지간하면 더 이상 각성할 생각은 없으니…….”
메아인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 칠성 모두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쪽으로 접근해 오는 어마무시한 기척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뭔.”
샛노란 꼬리를 끌면서 접근하는 유성. 그 끄트머리엔 용사, 레온 반 라인하르트가 있다.
“쟤가 왜……?”
레온과 면식이 있는 칠성은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었다. 하여 레온이 검을 휘둘러오는 것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레온이 섬전처럼 쏘아 낸 오러와 강검마의 뇌전 마법이 얽혀들었다. 성검이자 마검인 발뭉의 특성을 십분 발휘한 검격.
「뇌반雷反」
한창 분전 중이던 영웅들의 위로 천둥이 내리쳤다. 하늘은 인간의 편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무방비했다.
꽈릉! 콰르르릉! 콰과과과광!
몰아닥치는 공세. 대응하기엔 날아드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한 사람은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에선 절궁 사키 코지마였다. 그는 레온과 일면식이 없었기에 당황하지 않았으며, 본 성정 자체가 침착했다.
절궁이 아공간 반지로 새로운 활대를 꺼내 들었다. 레온의 검날이 흔들렸을 땐 이미 활대가 구붓한 반원을 그렸다. 단숨에 메겨진 십 수발의 화살은 그의 손을 떠난 뒤, 벼락 폭풍을 요격했다.
쎄에에에엑-
이기로 점철되었던 인생에서 처음으로 남을 지키고자 나섰다. 이것은 이타심.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해는 못 하고 있던 개념을 행사한 것이다.
번개가 느리게 느껴질 만큼 정지한 시간 속, 절궁의 동공은 과거를 더듬었다.
-왜 영웅은 인류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던져야 하는 거지?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키는 거 아닌가.
알리스에게 던졌던 명제다. 지난날의 장소 또한 바로 이곳, 호아킨 아카데미.
-누군가는 그 무게를 대신 짊어져야 하잖아.
장소의 영향인지 그녀가 직접 답해 주는 것만 같다.
-우리가 더 강한 힘을 지녔으니까. 더 잘 버틸 수 있지.
장정 40년 동안 아련하기만 했던 그 얼굴이 지금만큼은 또렷이 보인다.
-코지마, 너도 언젠간 이 말을 이해할 날이 오게 될 거야.
절궁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울컥 핏물이 솟구쳤다. 옆구리가 휑한 게 아무래도 내장이 죄다 뜯긴 모양이다.
덕분에 쇄도하던 공격들은 자신을 향한 단 하나를 제외하고 영웅들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절궁의 등이 바닥과 닿기 직전. 누군가의 손이 그를 부드럽게 받쳤다.
그 얼굴이 시야에 희미하게 맺혔다. 안력이 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왜인지 그리웠던 얼굴과 몹시 닮아 있었다.
“인류를…….”
절궁 사키 코지마는 흐리게 웃으며 목소리를 짜냈다. 턱 밑의 핏빛 선이 가슴까지 이어졌다.
“…제 가족을… 부탁합니다.”
절궁의 두 눈이 툭 떨어졌다. 강검마는 그를 한참 응시하다가, 눈꺼풀을 닫아 주었다.
강검마는 절궁을 고이 눕히고서 한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새 레온이 지상에 내려섰다.
“사키 코지마는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
레온이 말했다. 그의 초점은 불안정했다.
“그랬지.”
강검마는 순순히 그 말을 받았다. 하나 표정은 조각이라도 한 것처럼 무심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심연의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마왕의 눈이, 용사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