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8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88화(283/300)
288화 결전 (4)
레온은 발뭉을 단단히 쥔 채로 전방을 응시했다. 먹물을 푼 듯 새카만 머리카락과 흑안. 그것은 속내를 조금도 가늠할 수 없게끔 차단하는 암전막처럼 느껴졌다.
‘강검마, 너와 나는 이럴 운명이었던 거야.’
강검마를 처음 봤을 때. 1학기 중간고사에 같은 조가 되었고, 그와 함께한 후에 레온은 확신했다.
‘강검마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존재.’
그것은 필연적으로 레온이 대적해야 할 존재임과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을 소거할 수 있는 거악巨嶽이다.
선도 악도 아니다. 굳이 언어화하자면 기술이 극한까지 치달아 전환된 현상. 검의 극極인 것이다. 그러한 관념에 선·악과 같은 속성의 부여는 부질없다.
‘일 년 전까지만 해도 그에 자각이 없었던 것 같지만.’
성장기 십 대에게 일 년은 긴 시간이다. 그 기간 강검마는 신위의 경지에 근접했다. 같은 시간 동안 레온도 믿기 어려울 만큼 성장했지만, 강검마에겐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외려 도태되어 보일 정도. 심지어 강검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너머를 두드리고 있다.
‘앞으로 한 단계.’
강검마가 진정한 신위에 이르는 데까지는 단 한 발짝만이 남았다. 과연 그는 그 너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왜냐하면 용사인 레온조차 감히 재단이 불가한 신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라건대, 레온은 그가 신위에 등극했으면 했다.
그래야 여지껏 자신이 벌여 온 일들이 정당화되니까. 그래야 아버지 메타트론의 복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만… 비로소 자신이 자유로워질 테니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가능하며, 어떠한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었다.’
그 일환으로 절궁, 사키 코지마를 죽였다.
‘필요한 일이었다.’
입안이 떫을 정도로 쓰다.
‘사키 코지마는 죽일 놈이었어.’
스스로 내뱉었지만 알량한 자기 합리화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절궁은 마지막 순간에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시했다.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 움직이던 절궁이 말이다.
애초에 레온은 정확히 절궁만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그의 공세는 누가 봐도 무분별했다.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
앞만 봐야 한다. 뒤를 돌아본 순간에 즉사. 마왕과의 대치는 그를 의미한다.
‘…지금에 와서는 누가 용사이고, 누가 마왕인지마저 모르게 되었지만.’
이미 선을 넘었다. 돌이킬 수 없다. 그러니 남은 마음의 응어리를 깔끔하게 털어 내자. 사력을 다해서. 말뜻 그대로 죽일 기세로 달려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힘의 차이를 메꾼다.’
레온은 신발창 아래에 공기를 응집했다. 쿠아른의 마법. 용사가 군단장과 계약했다. 궤변이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해서 용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했다.
콰아아앙!
그의 발이 진각을 터뜨렸다. 폭발적인 도약. 자로 잰 듯한 정직한 직선의 경로. 잡기를 걷어 낸 일변도. 그렇기에 위력적이다.
사시미가 흔들렸다. 집중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미미한 움직임. 레온은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꺾었다. 무릎과 오금만으로 전신의 무게를 버텨 냈다.
서걱↔
검풍이 잘생긴 콧등 위를 스쳐 지나갔다. 잘린 이맛머리가 뒤늦게 공중에서 흐트러지더니 입자 단위로 쪼개졌다.
레온은 곧장 몸을 뒤집었다. 데굴데굴 흙바닥을 구르기도 전에, 다시 강검마의 어깨가 들썩였다.
서걱↓
수직으로 떨어지는 참격. 노면에 어림잡아 100M는 될 법한 검상이 생겼다. 검로를 가로막고 있던 마족의 사체는 제각각 상하좌우로 토막 쳤다.
간발의 차였다. 레온은 쭉 미끄러지면서 손가락으로 길게 노면을 할퀴었다. 손톱 두 개가 떨어져 나가 손끝이 쓰렸다.
‘그래도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그거면 됐다. 레온이 자세를 웅크리듯 숙였다. 가슴께를 왼 무릎에 붙였다. 디딤발인 오른 다리는 뒤로 쭉 뺐다. 호흡할 힘도 하체에 집중했다. 단전에서 발한 용력과 공 속성 마법이 다리에 고였다.
터뜨렸다. 먼젓번보다 곱절은 우렁찬 폭음이 울렸다. 속도는 그 이상이었다. 음속을 가볍게 웃도는 용사의 쾌주가 마왕에게 육박했다.
이번에는 강검마도 다른 태세를 취했다. 그는 사시미를 역수로 고쳐 잡았다. 이변의 전조에 레온의 동공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다.
‘맞붙어 오나?’
힘 씨름이라면 자신 있다. 레온은 메타트론의 피붙이다. 아버지는 완력 하나만으로 타천사 집단 그레고리를 일망타진했다.
그리고 최근 그 힘을 일깨웠다. 쿠아른이 그를 도왔다. 조카를 생각해서는 아닐 것이다. 단지 목적이 맞았을 뿐. 경위는 중요치 않다.
성큼 접근한 레온이 발뭉을 사선으로 쳐올렸다. 기류가 사나워졌다. 오러로 허초를 날린 다음 찌르기로 기습할 생각이었다.
강검마는 그 일격을 몸으로 받아 냈다. 상반신에 아로새겨진 칼자국에서 핏물이 왈칵 터졌다.
좁아졌던 레온의 눈동자가 열렸다. 거리가 서른 걸음에서 열 걸음으로 좁혀질 시점에서 강검마의 흉터는 지워졌다.
[재생의 가호 진眞을 발현했습니다.]오러로 입은 상처를 씻기란 본디 불가능하다. 하여 검사가 선망하는 경지인 것이다. 한데 강검마는 간단히 치유했다.
의아함은 찰나다. 사시미와 발뭉이 맞물렸다. 쇠와 쇠가 맞붙는 지점에서 섬광이 폭발했다.
하얗게 표백된 세상에 강검마와 레온의 잔영이 덩어리 없는 선으로 아스라이 맺혔다. 순간 세상은 3차원에서 2차원으로 개변되었다. 입체는 존재감을 잃고 백지장에 점과 선이 형태와 궤적을 그렸다. 둘의 전투는 차원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본격적인 접전이 시작되었다. 공방의 양상은 보통 레온이 공격을 퍼붓고, 강검마는 가볍게 그것을 흘리는 식이었다. 때때로 내질러 오는 반격이 레온의 팔다리를 상처 냈다.
강검마의 일격은 한 방 한 방이 오싹오싹했다. 레온으로선 감히 헤아리기 힘든 깨달음이 녹아 있었다.
겁을 집어먹을 순 없다. 심지가 용맹하기에 용사다. 한없이 오염됐을지언정, 그 본질은 변치 않는다.
레온은 한계까지 자신의 힘과 속도를 몰아붙였다. 심기체를 혹사했다. 더불어 금제까지 해방했다. 귀 근처에서 누군가가 단말마를 속삭였다.
-더.
사시미를 맞받아쳤다. 레온의 근육은 뇌의 지시를 거부했다. 행동이 사고의 흐름보다 먼저였다.
-더.
이성이 날아가고 야성이 고개를 들었다. 일방적이라 예상했던 접전은 일견 치열해 보였다.
-더.
움직임과 현실에 괴리가 생겼다. 관전자들이 보는 두 사람은 2, 3초 전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레온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압도적이라 생각한 차이가 조금씩 좁혀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들뜨거나 하진 않다. 기능만 한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발뭉은 단 하나의 목적성만으로 움직였다. 최대한 합을 나눈다.
발뭉이 오러를 실처럼 뽑아내 그물을 짜냈다. 하나하나가 일격 필살에 준했으나, 레온은 이를 아낌없이 난사했다.
어디를 노릴까 궁리하는 대신 검을 한 번 더 휘두른다. 체력과 스태미나를 아낌없이 끌어다 쓰는 무지막지한 전투 방식. 이는 싸움이란 학문의 정수다. 하나, 이 묘리에 다다르기엔 인간은 너무나 미력한 생물이다.
-더.
체내에 침전물이 층층이 쌓여 간다. 이것이 뭔지 알고 있다.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존재인 신들. 분전이 이어질수록 마각이 레온의 전신을 속속들이 장악했다.
숨소리가 거칠다. 근육은 제멋대로 날뛴다. 그럴수록 레온은 정신력을 그러모았다. 초인적인 정신력이 그의 의식을 붙잡았다.
‘아직은 안 돼.’
레온은 눈을 부릅 치켜떴다. 안광이 집념으로 살벌하게 번뜩였다. 눈동자를 조이듯 눈자위에 핏발이 섰다.
사시미는 쾌검이면서도 묵직했다. 가볍게 넘겨받을 수 있는 검격은 없다. 맞닿는 오러가 되레 먼지로 화했다.
여러 잡기로 어찌어찌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강검마는 칼에 대한 이해도부터가 다르다. 마왕의 힘이 아니었어도 일류의 실력이다. 강검마는 천직이 칼잡이였다.
레온은 격전 이래 처음으로 상대와 눈을 맞추었다. 곧바로 졸아붙었다.
검은 눈이 칙칙하게 상해 있었기 때문이다. 팔다리는 기계적으로 놀리는데, 눈빛은 한없이 심심해 보였다.
‘설마……. 봐주고 있는 건가?’
티끌처럼 자그마한 잡념. 그것은 빈틈이었다. 적당히 움직이던 사시미가 순간적으로 가속했다.
파지짓!
전류가 흐르는 칼날이 왼쪽 어깻죽지를 찔렀다. 일개 칼침임에도 상박 전체가 뜨거운 기운에 휩싸였다. 번개가 온몸을 지지는 듯한 감각.
“…커억!”
레온의 침방울이 신음에 함께 튀었다. 강검마는 사시미를 대각선으로 그어 버렸다.
투드드득.
칼날이 빗장과 갈비뼈를 끊었다. 칼끝은 그 밑의 허파와 내장을 쑤셨다.
레온은 손을 뻗어 강검마를 밀어냈다. 사시미에 뼛조각과 분홍빛 찌꺼기가 같이 뽑혀 나왔다.
퍼어어엉!
그 순간이었다. 거대한 폭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단숨에 200M까지 거리가 벌어졌다. 강검마는 제비를 몇 번 돌며 사뿐히 착지했다.
그에 반해, 레온은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그는 엎드린 채로 숨만 씨근거렸다. 마법과 신들의 힘이 상처를 봉합했지만, 아무는 속도가 더뎠다.
레온은 눈만 들었다. 쿠아른이 강검마와 자신의 정중앙에 깃털처럼 내려섰다.
잠시간 일은 침묵. 쿠아른은 건조한 눈으로 레온을 흘기다가, 강검마에 눈길을 돌렸다.
“제 조카분이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해서 제가 대신할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니.”
강검마는 무라사메를 빙글빙글 돌렸다. 칼날이 트림하듯 여러 이물질을 뱉어냈다.
“둘이 같이 덤벼라. 시간 아까우니까.”
강검마가 눈두덩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겉으론 말짱해도 그 역시 속이 곪아 있었다.
‘무통의 가호’ 제한 시간은 진작에 초과했다. ‘무장의 격’이 올라 고통은 경감되었지만 오래는 못 버틴다. 이대로라면 몸이 망가지는 건 그렇다 치고 정신이 부서질 터다.
“너무 무리하시는 건 아닐는지요.”
쿠아른이 환히 미소했다. 조롱의 웃음은 아니다. 정말로 자신을 걱정하는 말투였다. 강검마는 짧게 실소했다.
“적을 걱정하네, 미친 새끼.”
그사이 레온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핏기가 쑥 빨린 창백한 낯빛과 새파래진 입술. 꼬락서니가 무슨 걸어 다니는 시체였다.
그럼에도 대단한 것은 두 다리로 서 있다는 점이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내장을 줄줄 흘리면서도 말이다.
“저희 대계를 위해서는 저한테 맡기세요.”
쿠아른은 한숨을 섞어 레온에게 말했다.
“조카님은 ‘아직’ 죽으면 안 됩니다.”
“…….”
레온이 핏기 가신 입술을 비틀었다. 그렇지만 결국 한 수 물렀다. 그는 검을 목발 삼아 뒤로 빠졌다. 그리고 회복에 전념했다.
“자, 드디어 저희 둘만의 시간이 왔군요. 슬슬 즐겨 볼까요?”
쿠아른이 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볐다. 놀이동산을 온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즐거워하는 표정이다. 강검마는 그 역한 얼굴에서 시선을 떼었다.
어느새 벼락 폭풍이 잦아든 하늘엔 새벽녘처럼 심홍색 해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신성함마저 드는 햇살을 올려보며 조금 전의 감각을 되새겼다.
레온과 칼을 맞대면서 기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래서 굳이 어울려 줬다. 정 때문에? 지랄. 성격이 그렇게 말랑말랑하지도 않거니와 적은 이유 불문 썰고 본다.
아무튼. 잠깐 전의 체험은 강검마라는 사람의 주체보다는 검의 신에 기인한 감각이었다. 방금의 전투를 촉매로 그 너머의 영역을 인지했다.
‘검신의 숙적, 거짓된 신들.’
다른 동물들이 땅을 보며 먹이를 쫓을 적에, 인간은 하늘을 보며 별자리를 매겼다.
고대 인류의 호기심은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에까지 계승됐다. 거기서 만물의 영장이 갈렸다.
인류는 선대의 유산을 발판 삼아 갇혀 지내던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더 나아가 달로 향해 월면을 밟았다.
환상에서 그치지 마라. 어제의 나보다 하루 더 발전하라.
도달이 불가할 것 같은 영역을 뛰어넘으려면 시공간의 제약을 해금하고, 인지의 범위를 확장하라.
…그것들이 쌓이면 마침내.
[검신劍神의 가호를 각성합니다.]인간은 진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