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8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89화(284/300)
289화 결전 (5)
향유 냄새가 가득한 신단.
“…….”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유세인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시작됐나 보군요, 성녀님.”
교황이 말했다. 그는 곁에서 유세인을 보좌하고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른 교인들은 성녀가 기도하는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네.”
유세인은 낮게 끄덕였다. 복잡한 심경이 얼굴에 고스란히 내비쳤다.
“이제부터가 진정한 싸움입니다.”
교황은 길게 침음했다. 그 역시 유세인 못지않게 안색이 굳었다.
“…이 세계선에는 행운이지만, 인간 강검마에게는 불행일 수도 있겠군요. 자칫하면 인간성이 송두리째 사라질 수 있을 테니.”
그 말을 들은 유세인은 가만히 신단을 보았다. 스테인리스를 투과한 햇살은 여러 색채로 치장해 그녀의 새하얀 법복과 백발을 형형색색이 물들였다.
“음.”
교황이 조용히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서 성녀와 마찬가지로 두 무릎을 꿇은 뒤, 눈을 감고 기도를 드렸다.
유세인은 그 모습에 잠깐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외신교의 교리에 따라 교황은 치성을 빌지 못한다. 말인즉, 교황이 몸소 교리를 거스른 것이었다.
외신과 가장 가까운 자인 교황이 기도할 시, 그만을 편애할 거란 다소 어이없는 논리 때문이었다. 신의 존재 여부가 뚜렷한 이 세계이기에 수긍되는 억설이었다.
“이건 외신께 드리는 기도가 아닙니다.”
교황이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검마를 위해 비는 것도 외신께 비는 것과 다름없다는 건 알고 하시는 말씀이죠……?”
“허허, 저 이래 봬도 성찬만 50년 먹은 몸입니다. 식견은 성녀님만 못하나, 그 정도 사리 분별할 종교적 지식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 이 상황에 누구에게 빈다는 겁니까.”
“비밀입니다.”
교황은 입꼬리만 씨익 높였다.
“기도를 남에게 발설하면 약발이 옅어지니까요.”
* * *
바람이 바뀌었다. 역류한다거나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게, 냄새, 질소, 산소의 함량이 확연히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하중이 무거워졌다.
심해의 밑바닥으로 잠수하는 것처럼 숨쉬기가 답답했다. 사방에서 전해지는 압박감이 전신을 지그시 눌렀다. 자리한 이들이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픽픽 기절했을 터다.
“……!”
한창 사투 중이었던 영웅들을 비롯해 마족들이 이변을 눈치챘다. 양측은 동시에 드잡이질을 멈추고서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목의 끝에선 천검 강검마와 2군단장 쿠아른이 대치하고 있었다.
사실 대치가 맞는 표현인가 싶다. 하늘을 바라보는 강검마. 쿠아른은 하염없이 그런 그를 바라본다. 전쟁터와는 맞지 않는 목가적인 풍경이었다.
그 시선은… 마왕군의 수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처연했다. 언뜻 첫사랑을 다시 만난 사람처럼 아련하기 그지없는 눈빛이었다.
그에 영웅뿐만 아니라, 마왕군도 온몸이 쭈뼛 곤두서는 오싹함을 느꼈다. 쿠아른이 저런 변태적인 표정을 했다는 것은, 짐짓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거였다. 그리고 집단적인 불길함은 빗나가는 법이 적다.
“아, 아… 드디어…….”
쿠아른은 흐느끼듯 장탄식을 흘렸다. 그의 투명한 눈망울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신화 시대부터 이날만을 기다렸습니다.”
파슬파슬 경련하는 입꼬리를 가로지른 눈물이 턱 끝에 고여, 굵직하게 방울졌다.
“역천이시여.”
쿠아른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양팔을 들어 높게 떠받들었다. 마치 지금을 위해 법복 같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던 것처럼. 그의 행동거지는 광신도 그 자체였다.
“…….”
강검마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검은 눈에 검은 머리칼을 한 날렵한 인상의 소년. 하지만 그를 아는 면면은 원인 모를 오한이 들었다.
“다, 당신은.”
검제의 반응이 특히나 격했다. 그는 강검마를, 그 너머의 존재를 본 적이 있었다.
‘아발론 섬에서 5군장 아고르를 토벌한 존재.’
이해는 고사하고, 인지조차 어려운 심후한 존재. 이를테면 신과 같은,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될 만한 초월적인 존재다.
‘그때와는 달라.’
먼젓번엔 강검마란 주격에서 ‘그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엄밀히는 강검마보다 그 존재가 아고르를 참살했다 봐도 무방했다.
검제는 떨리는 눈으로 강검마를 다시 봤다. 외적 변화는 없다시피 했다. 그때처럼 공간이 굴절되지도, 몸의 윤곽이 아지랑이 치지도 않았다.
현재 그의 주격은 오롯이 강검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전율했다.
‘확실하다.’
검의 극에 달한 인간이 알에서 깨어났다. 의태를 벗고서 그 위로. 더 위로 진화한 것이다.
벼락 폭풍은 멎었건만, 뇌리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거대한 깨달음을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검제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가 얼마나 편협하고 좁은지를 인지했다.
전부라 생각했던 이 세상은 어쩌면 여러 뿌리 중 한 줄기에 불과하리라.
이 전쟁마저도 그 범우주적 시점에선 먼지의 부대낀 만큼 보잘것없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 범우주적인 존재.
세상 바깥의 존재가 인세로 강림했다.
“그래도 아직 완전하게 돌아오시지는 못하셨군요……. 인간성이 아직도 남아 있으신 걸 보면 말입니다.”
쿠아른은 눈매를 미미하게 찌푸리면서 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 구김살을 폈다.
“그 부분은 당신을 열렬히 사모하는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짝!
그가 손뼉을 치자, 불투명한 장막이 거대한 12면체 형태로 퍼져 나갔다.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는 결계였다.
결계 안은 강검마와 쿠아른, 레온만을 위한 공간이었으므로 이외의 인물들은 풍압에 맞물려 멀찌감치 밀려났다.
“젠장!”
칠성들이 기를 쓰고 침투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날붙이를 휘둘러도 튕겨 나기 일쑤였다. 무장으로는 이 결계를 뚫을 수 없다. 사태가 이러니, 이곳이 밖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쪽이 갇힌 건지 헷갈렸다.
칠성과 여타 영웅들은 제자리에서 마른침만 삼켰다. 타의에 의해 천검과 2군단장의 혈투를 방관하게 된 상황.
쿠아른이 움직인 건 그때였다. 그가 바닥을 박찼다. 밀어냈을 뿐인데 땅의 지반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공중으로 껑충 떠오른 순간, 쿠아른의 등허리에서 24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흔히 알고 있는 상아색이 아닌 땟국물이 탄 듯한 흙빛 날개였다.
“역천이시여. 제가 당신의 완전한 각성을, 인간을 포기하는 것을 돕겠습니다!”
그가 가볍게 날개를 퍼덕였다. 나비와 같은 날갯짓은 순식간에 돌풍을 생성했다.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 뼈를 분쇄할 스산한 바람이었다.
「에어로키네시스」
대기를 사용자의 의지대로 조작하는 마법이다. 이 마법의 요체는 바람을 사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기 내 성분 – 질소,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에 화학적 변주를 주어 상대를 단숨에 질식시킨다.
여기서 끝내지 않는다.
「에우로페」
쿠아른은 팔을 크게 벌렸다가, 공기를 끌어 오듯 가슴 앞에서 구 球를 뭉쳤다. 공기는 탄환 크기까지 압축되어 쿠아른이 세운 촌경의 꼭짓점에 고였다.
“구멍이 좁을수록 파괴력은 올라가는 법입니다.”
공기 탄환에 돌풍을 엮었다. 핵 주변을 회전하는 아원자 입자처럼, 탄환을 에워싸며 소용돌이쳤다.
그것을 쐈다.
───────────!
일 점으로 나아간 공기 탄은 폭음을 동반하지 않았다. 관전자의 귓전에서 울린 것은 무음. 쿠아른의 공기 조작술은 소리의 파장조차 왜곡해 버린다.
강검마는 무라사메를 들었다. 검극은 내쏘아진 공기 탄을 겨냥할 뿐. 그 외의 움직임은 없다. 그대로라면 돌풍이 칭칭 감긴 도탄에 형체도 못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강검마가 미동했다. 칼을 움켜쥔 손이 아닌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 ”
외마디. 그 짧은 구결이 떨어지자 공기 탄에 어/슷 금이 갔다. 하나, 둘, 열… 백, 천, 억, 조, 경. 실금은 무한급수로 늘어났다. 눈의 깜빡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 그 공정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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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 단위보다 더 작게 파편화한 공기 탄. 강검마의 한마디는 ‘절단’이란 결과를 도출했다.
“하하하!”
그 신묘한 현상에 모두가 입을 다문 가운데, 쿠아른만이 소리 내어 기뻐했다.
“완전하지 않은 각성임에도 그 정도인 것입니까?!”
그러는 와중에도 공기 탄을 연달아 발사했다. 독성 가득한 바람을 휘감은 공기 탄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작렬했다. 피부 위로 고름이 터지고 혈무가 자욱이 깔렸다.
터벅.
강검마가 한 걸음 내디뎠다. 적에게 향한다기엔 걸음걸이가 가볍디가벼웠다. 쿠아른이 동시에 재차 움직였다.
쿠아른은 검지를 세워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이 있는 위치에 석유색 구멍이 뚫리더니, 하늘이 그 점으로 쑥 말리듯 빨려 들어간다.
「블랙홀」
배구공만 한 크기. 하나, 일대를 초토화하는 데엔 그로 충분했다.
“으아아아아악! 쿠아른 니이이미미이이!”
그 위력을 증명하듯이 몇몇 마족과 영웅들이 용오름 쳤고, 블랙홀은 그들을 입 안에 욱여넣듯 삼켰다.
강검마의 발도 지면에서 한 뼘가량 떴다. 그가 같은 말을 한 번 더 내뱉었다.
“ ”
이후 블랙홀은 도탄과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입자 단위로 쪼개져 거무스레한 먼지 조각으로 비산했다.
쿠아른은 희희덕거리며 계속해서 블랙홀을 생성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전부 공통적으로 가공할 만한 살상력을 자랑했다.
“버텨-!”
영웅들은 질서정연하게 진용을 짜내서 아등바등 버텼다. 반면 마족들은 질서 체계가 덜했다.
“끼야아아아아아!”
그들은 뒤죽박죽 얽히고설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괴성을 내지르며 비참하게 죽어 나갔다. 내장이 꼬인 척추가 후드득거리며 유실물로 떨어졌다.
그 죽음의 연쇄를, 아이러니하게도 강검마의 단말마가 잘라 냈다. 블랙홀이 생성되는 속도보다 그가 입을 떼는 게 빨랐다.
영웅들은 공중에 붕 떴다 내려오길 반복했다. 그러며 하늘과 강검마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은 이 경이로운 광경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감탄? 놀람? 경악? 공포? 모르겠다. 그냥 입만 헤- 벌리고 혼을 빼놓고 구경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크흐흐흐흐, 이마저도 당신에게는 조금의 여흥도 주지 못하는 겁니까.”
쿠아른이 눈가를 덮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마족들은 순간 기가 질렸다.
뜻이 맞아 2군단장에게 가세했다. 한데 동족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을 만들지 않나, 그러고 나서 미친놈처럼 낄낄거린다. 그 모습에 마족의 과반이 냉정을 차렸다. 쿠아른의 만행에 학을 뗀 것이다.
“그만하시오!”
외친 것은 뱀파이어 족장이었다. 그는 마족 내에서 입지가 탄탄했고, 그에 맞는 강함을 겸비했다.
“우리는 인계를 정복하겠단 뜻이 일치하여 뭉쳤소. 근데 이게 뭐란 말이오. 이 전쟁이 순전히 당신만을 위한 유흥거리요?”
쿠아른은 그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분위기가 한창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데. 하여간 장해가 되는 놈은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말해 보시오. 어째서 동족을 그리 거리낌 없이 죽이는지를!”
굳이 대꾸하진 않았다. 종용해도 시선도 안 주고 외면했다. 벌레보다도 못한 취급. 창백했던 뱀파이어 족장의 얼굴이 사과처럼 익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아른은 웃는 낯으로 다시금 앞을 보았다. 언령을 거듭할수록 강검마는 차츰차츰 표정이 사라져 갔다. 인간성의 탈피였다.
“아아.”
저 무기질적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몸이 달아올랐다. 뜨끈한 쾌락이 아래에서부터 샘솟았다. 사타구니가 드높이 상승했다.
‘저분의 진정한 이면을 보고야 말겠다.’
그것만을 위해 그 지긋지긋한 세월을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종착점에 도달했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다.’
저분의 시작과 마지막을 볼 때까지는 죽음도 허락할 수 없다.
‘그 관찰자의 역은 나만의 것이야.’
집착은 집념으로, 집념은 신념이 되어 손과 발, 날개를 이끌었다.
쿠아른은 광기로 흔들리는 눈동자로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레온이 아득바득 회복을 마쳤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군요, 조카님.”
레온은 섬찟하게 그를 노려보다가, 결국 작게 끄덕였다. 쿠아른이 웃었다.
준비가 끝났다. 흘린 피와 제물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충분할 듯했다.
“‘그들’을 부릅시다.”
쿠아른은 마력의 출력을 올렸다. 여기서 더 돌파할 한계선이 있겠냐마는, 그는 억겁의 세월 동안 힘을 축적해 왔다.
‘오로지 이날만을 위해서.’
쿠아른은 날개를 마저 개방했다. 36쌍의 날개가 몸을 공중에 묶었다.
그 상태로 결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두 손은 느릿하게 움직이며 인印을 구성했다.
왼 손날은 단전에 붙여 손바닥을 하늘과 마주하게 만들고, 오른손은 무릎에 얹어 땅을 가리켰다.
「천상천하天上天下」
그 상태로 심력을 전부 쏟아부은 구결을 외웠다. 차원의 경계에 흠집을 내어 통로를 뚫는 주문을, 선언했다.
「유아독존唯我獨尊」
하늘이 쩍 절반을 갈라져 활짝 열렸다. 칠흑색의 바다. 황망히 하늘을 올려보던 이들은 촘촘히 박힌 티끌로 말미암아 그 저편을 추정했다.
우주.
다음 순간 우주를 수놓은 별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별들은 낙하점을 한 곳에 집중했다.
네팜렘이자 용사. 더불어 그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성배. 레온 반 라인하르트.
악귀인지 신인지 모를 것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육으로 침투했다. 블랙홀의 흡입은 우스워 보일 정도로 게걸스러운 기세. 탐욕을 가시화한다면 딱 이러리라.
하늘을 전부 뒤덮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천지에 적막이 녹아내렸다.
불멸자들이 필멸의 세상에 도래했다. 사람들이 빙의憑依라 부르는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