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9)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9화(29/300)
29화 준비 (4)
나를 둘러싼 불온한 시선들. 질투와 노기가 혼재된 무언가.
생도들의 살가운 눈초리 덕에 뒷덜미가 따끔따끔할 정도다. 험담 섞인 목소리들이 귓전에 날아들었다.
나는 시선을 검제에게 두었다. 미동 없는 동공은 상대를 가늠하듯 첨예하게 벼려져 있다.
마치 호적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다. 검제는 강건한 자세로 칼자루를 뽑아 들었다.
키리링―
새벽녘의 이슬처럼 청명한 검명이 번졌다.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온 탄성이 연무장을 메웠다. 검을 고른 생도들이 자신의 검과 검제의 검을 번갈아 보았다. 관중석에서 관망하던 타 클래스 학생들의 눈도 동그랗게 뜨였다.
분명 평범한 철검일 텐데, 그가 쥐자 명세의 보검처럼 칼날이 빛을 내며 반짝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검술의 극에 근접한 사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뭇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바람의 흐름이 인위적으로 바뀌었다.
발의 간격, 칼자루를 움켜쥔 손아귀, 나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검끝의 각도까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이원빈의 제재에도 잠재우지 못했던 어수선함이 일순 고요해졌다. 나를 포함해 전원이 헛숨을 들이켜며 검제를 조각상을 감상하듯 바라봤다.
“뼈는 이제 좀 붙었나, 소년.”
검제의 목소리가 멍한 표정으로 있던 나를 깨웠다.
“네, 뭐…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럼 검을 들게.”
나는 생각했다. 아무리 대련이라 할지라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퇴원한 지 얼마 안 돼서가 아니었다. 푹 쉰 몸의 컨디션은 만전이었다.
게다가 검신의 가호의 영향인지 본능은 승부를 울부짖고 있었다. 하지만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이성의 끈이 그것을 거부했다.
상대는 검제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
그와 날붙이를 맞댈 경우, 적당히로는 끝나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적어도 둘 중 한 명은 운이 좋으면 손 하나, 나쁘면 목이 달아나리라.
게다가 너무 많은 시선이 나와 검제에게 쏠려 있다. 내가 대련을 받아들일 시 파생될 나비 효과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적당히 변명을 대고 거절하자.
나는 그리 결론을 내린 후, 검제를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저는 검제님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부디 검을 거두어 주십쇼.”
생도들 사이에서 피식- 조롱 섞인 비소가 흘러나왔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개쫄았다느니 하는 말들.
자기 일 아니라고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는 저들이 참 속 편해 보인다. 솔직히 저들 중 대부분은 내가 팔 한 번 휘두르면 머리통과 몸통이 작별 인사를 할 텐데.
눈만 살짝 돌려 검제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굵은 혈관 가닥이 솟아 있었고, 노색이 감도는 안광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확연하게 분노가 들어찬 얼굴.
“언제까지 힘을 감춘 채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검사로서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면 무엇 하나. 이리 겁이 많은 소인배인 것을.”
목소리가 크지 않아 생도들의 귀에까진 닿지 않았다. 그는 무정하게 말을 이어 갔다.
“자네는 칼잡이로서 긍지도 없는 건가?”
그 말에 내 오른뺨이 씰룩였다. 검제는 마땅치 않은 듯이 혀를 끌끌 찼다.
‘긍지.’
전국 제일의 칼잡이란 칭호를 거머쥐었을 때부터 항상 가슴속에 새겨 두었던 단어. 그 두 글자가 내가 칼을 놓지 않은 이유였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분위기 속 이원빈 교관의 이마에서 폭포처럼 땀이 줄줄 흘렀다.
말리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상대가 검제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발만 동동 굴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검제는 물러설 기미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방금의 말들 전부 나를 떠보려는 도발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내 반응을 보고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려는 거겠지. 섣불리 저 도발에 넘어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임은 자명하리라.
나는 손가락을 쫙 폈다가 쥐었다. 불끈 쥔 손등에 새파란 핏줄들이 돋아 있었다.
좌중의 시선이 내게 쏠려 있다. 잔뜩 기대감이 서려 있는 얼굴들.
추하게 내가 도망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쳤다.
손이 자석처럼 허리춤에 달라붙었다. 손가락이 칼자루를 더듬다 이내 뽑아 든다.
스릉.
내가 말없이 사시미를 틀어쥐자 시선이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동자가 거짓말 좀 보태서 두 배 정도 커졌다.
이원빈이 헐레벌떡 이쪽으로 달려오려 했지만, 검제가 저지했다.
“마음이 섰나 보군.”
검제의 한쪽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내 결심을 기다렸다는 듯 검제의 검이 치켜세워졌다. 그제야 그는 청아한 음성으로 반색하며 예를 갖추었다.
“검제,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 한 수 부탁하네.”
나는 발로 흙바닥을 한번 쓸고선 자세를 잡았다. 이어서 손목만 까딱 움직여 흔들자 검집이 미끄러지듯 칼날을 쓸며 지나간다.
[검신(劍神)의 가호가 발현됩니다.]“생도 강검마, 한 수 배우겠습니다.”
* * *
새카맣다.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본, 검게 물든 배경 속에 서 있는 건 칼을 쥔 남자 둘이었다.
저벅저벅.
먼저 발걸음을 뗀 사내는 지크프리트였다.
오랜 친우를 마중 나가듯 경쾌한 발소리. 왼손은 똑바로 직검을 틀어쥐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식어 가기만 했던 심장에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 검이 맞닿는 순간 나이는 허례에 불과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 굳어 있던 얼굴 근육이 풀려 미소가 지어진다.
지크프리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노인이 소년기 때의 일이었다. 일흔 줄의 나이였으나 그 순간만큼은 또렷하게 떠올랐다.
야산에서 매일같이 검을 수련하고 있을 때, 우연히 한 방랑 기사를 마주했다. 그자는 팔 한쪽이 없었고, 복색은 추레해 꾀죄죄했다.
하지만 그 기사가 시범 삼아 보인 검로는 ‘그 영역’에 달해 있었다.
‘검을 통한 깨달음.’
지크프리트는 상대에게 집중했다.
반 배정 시험 때부터 눈여겨봐 두었던 소년.
갓 잎이 돋아난 초목처럼 육신은 덜 여물었지만, 눈빛에는 관록이 묻어 있다.
일순간, 강검마와 그 외팔이 방랑 기사가 겹쳐 보였다. 어쩌면 자신을 한층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 줄 실마리. 지크프리트는 그리 생각했다.
가슴은 뜨거웠다. 칼날은 차가웠다.
검사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족속이다. 그저 건강한 살점과 단단한 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강검마를 상대하는 지크프리트는 검제의 칭호를 내려놓았다. 한 명의 전사로서 저 소년을 마주하고 싶었다.
타다닥.
지크프리트의 발소리가 소년처럼 경쾌했다. 그가 지면에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직검의 검극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사시미를 노렸다.
픽!
반듯한 칼날이 애먼 공기를 베며 지나갔다. 지크프리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재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여 높게 튀어 오른 강검마를 찾아냈다.
주름진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이 정도의 움직임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쉬릭!
직검의 칼날이 아래에서 위로 용솟음쳤다. 기예에 가까운 노장의 검놀림. 강검마는 피하지 않고 노인의 공세를 받아 냈다.
캉! 캉!
맞부딪친 쇠붙이가 거친 탁음을 토해 냈다.
팔이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칼을 휘두르는 기세가 좋았다.
이미 지크프리트는 이것이 대련임을 잊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은빛 궤적이 오갔다. 두 칼날은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노인이 공격하면 소년이 받아 내고, 소년이 공격하면 노인이 그것을 쳐 낸다.
곡예와도 같은 강검마의 움직임에 지크프리트는 기예로 응수한다.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뾰족한 사시미가 제비처럼 날아들었다. 휘어져 들어오는 신기 들린 검로. 지크프리트는 뼈 마디마디에 각인 된 경험으로 받아 냈다.
서로의 공격이 맞물릴 때마다 화염 같은 불티가 격하게 튀어 댔다.
지크프리트의 칼날에는 만개한 재능과 검에 바친 노장의 인생이 녹아 있다.
강검마의 칼날에는 인간의 굴레를 벗어난 듯한 신묘함이 깃들어 있다.
두 사내는 검을 매개로 서늘한 대화를 이어 갔다.
찰나의 공방이지만, 인위적으로 시간을 늘어뜨린 것 같다.
집요하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도 사시미만이 이질적인 속도감을 뿜으며 움직였다.
강검마의 손속은 초 단위로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일 분도 채 안 되는 찰나에서마저 소년은 성장한다. 그의 사시미가 호를 그리면 공간이 절삭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노장은 웃음을 흘리는 대신 숨을 집어삼켰다.
‘훌륭하다.’
검제 지크프리트는 어린아이처럼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인류 최강의 전사. 사나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정점이라는 타이틀. 그는 이른 나이에 그 명예를 거머쥐었다.
예전부터 지크프리트의 검을 받아 낼 수 있는 자는 드물었다. 하물며 그들 또한 어느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것도 반세기 전까지.
마왕군 6군단장 바스몬 토벌전에서 동료 여섯 중 셋을 잃었다. 성과는 승리였으나 동료들의 목숨으로 치른 대가를 지울 만큼 값지진 않았다.
바스몬은 여섯 군단장 중 최약이었음에도 터무니없이 강했다. 인류 최대 전력 일곱이 달라붙어 일주일을 밤낮없이 싸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용케도 이겼다 싶다.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마왕군 군단장들 앞에선 한낱 미물처럼 보일 것이다.
마인은 절대적인 강자, 인간은 그에 굴하는 약자. 이 세상은 그만큼 부조리했다.
그렇기에 그날 이후 지크프리트는 방랑 기사의 검로를 되새기며 수련을 거듭했다. 인류의 희망이라는 무게감을 짊어진 어깨를 움직여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마침내 일흔의 나이가 되어서 지크프리트는 겨우 깨달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꾸드득―
거리를 벌려 선 강검마가 허리를 굽히며 상체를 눌렀다. 앞으로 뻗어 나가려는 용력을 간신히 억누르는 것 같은 자세. 마치 사냥감을 향해 달려나가기 직전의 맹수의 몸가짐과도 같았다.
치켜떠진 안광은 이채를 넘어 광채가 채워져 있다. 그는 이 일 합에 승부를 걸려는 듯 양손의 사시미를 돌려 역수로 잡았다.
지크프리트는 짧게 웃었다. 그는 화답하듯 칼자루를 단단히 말아 쥔 뒤.
가호를 발현했다.
검령(劍靈)의 가호.
인지를 아득히 초월하는 집중력으로 검술의 재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리는 정령급 가호. 니벨룽가(家)의 700년 역사 속에서도 능숙히 다룰 수 있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비기 중의 비기였다.
스멀스멀 흘러 들어온 푸른빛이 칼날에 입혀졌다. 새파란 불꽃이 칼자루의 밑동부터 태워 가기 시작한다. 지크프리트는 주름진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외쳤다.
“오거라, 강검마!”
노건한 외침과 동시에 강검마가 몸을 내쏘았다.
파―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