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9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90화(285/300)
290화 시조의 영웅 (1)
메아인은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무릎이 깨져 울긋불긋한 멍이 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술을 감싸고는 중얼거렸다.
“설마, 레온… 네 계획이 이거였니……?”
메아인이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용사의 배신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야 레온을 호아킨 아카데미에 입학시킨 이가 그녀였으니까. 그 의도가 불온하다 한들 그녀는 나름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의 상처였으며, 동시에 의아했다. 레온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개인의 잇속을 위해 행동할 성격은 아니다.
‘레온은 천사장 메타트론의 피붙이야. 천성적으로 그리할 수가 없다고.’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터. 메아인은 싸우는 내내 머리 한편으론 그것에 관해 치열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야 레온이 그리한 까닭과 더불어 예언서의 정체에 대해 깨달았다.
“아카식 레코드.”
예언이 사실이라면 용사는 이 자리에서 죽고자 한다.
마왕의 검에.
* * *
신들은 세계의 근원을 알고자 했으며, 따라서 하수인들인 천사에게 명령했다.
신들은 본디 스스로가 전능하고 전지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그것에 가까웠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검의 신.
그가 모든 걸 바꿔 놨다. 전지전능이었던 신들에 단신으로 맞섰다. 당연시되던 진리조차 파편화시켰다.
후대엔 그 전투를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으로 번지르르하게 명명했지만…….
실상은 학살이었다, 전투라고 할 게 못 되는.
그날 이후 신들은 물리적 형상을 잃고 영체만이 우주를 떠돌았다. 그것이 어찌 보면 가장 신다운 형태이리라. 하나, 그들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신들은 형체 없이 천사에게 명령만 내리는 것으론 성에 안 찼다. 우주 곳곳에 그들의 영향력을 직접 끼치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곧바로 행동에 나서기엔 ‘검의 신’이 우주를 가호했다.
하여 적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 그에게 복수할 날을 꿈꾸며.
도중에 검의 신이 자결하는 기묘한 사건이 있었는데, 신들은 그 이유를 기나긴 시간 끝에 알아차렸다.
〈이 우주는 놈이 상주하기에는 너무 약했던 거다.〉
반대로 말해, 전부라 생각했던 이 우주는 여러 갈래 중 하나에 불과하단 소리다.
〈우주는 하나이면서 전부.〉
신들은 그 전부를 원했다. 그들의 속성은 탐욕이었다.
〈모든 것을 발아래 두고 통제하는 것이 진정한 신이니.〉
하여 천사들에게 지시했다. 우주를 모조리 기록하라. 천사들은 그 명을 착실히 수행했고, 그 필두엔 천사장 메타트론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천사가 타락하여 반란했다. 타천사 집단, 그레고리였다. 메타트론은 그들을 홀로 진압했다.
이후 신들은 메타트론에게 혼자서 세계의 진리를 기술할 것을 명했다. 조물주가 피조물마저 믿지 않게 된 것이다.
메타트론은 그렇게 했다. 자신의 삶을 ‘아카식 레코드’에 바칠 것을 신 앞에 맹세했다.
시간이 흘렀다. 숫자란 단위가 무의미할 만큼 기나긴 시간이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완성까지 이윽고 하나의 행성만이 남았다.
메타트론은 인간으로 변장하여 그 행성을 떠돌았다. 전사, 학자, 귀족, 거지, 평민.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인간과 마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노력 덕분일까? 마침내 레코드의 빈칸은 하나뿐. 그것은 ‘감정’이었다.
‘특히나 사랑은 무엇인가.’
골치가 아팠다. 천사는 신들의 인형이었다. 인형은 감정을 느낄 수 없게끔 설계되었다. 천사에게 감정? 언어도단이었다. 감정이라 느끼는 것들도 유사 행위에 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메타트론은 결국 사랑을 했다. 과업을 위해 만든 피조물이건만, 그는 진심으로 아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함께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아들, 레온을 위해서라면 영생마저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신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지.’
설혹 그들이 변덕을 부린다 해도, 아카식 레코드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어불성설.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빨리 아카식 레코드를 완성한다.’
메타트론은 마음을 굳힌 즉시 기록에 박차를 가했다. 그 탓에 아들과는 일 년에 단 하루만을 같이했다.
기록할 것이 많기도 했거니와, 행여 그들에게 들킨다면 그들이 레온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그들은 탐욕의 화신이다.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레온은 그 무엇보다 달콤한 열매처럼 보일 터다.
그들을 첨단에서 모셔 온 메타트론 눈에는 결말이 눈에 선했다.
‘신들은 레온의 육신을 탈취하고자 할 거다.’
하면, 레온은 인격 없는 쭉정이로서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게 된다. 아비 된 자로서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철저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에 비하면 과거의 원수에게 무릎 꿇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메타트론은 현現 쿠아른, 과거의 아자젤을 찾아가 부탁했다. 차갑게 쳐 낸다면 몇 번이고 찾아갈 공산이었다.
쿠아른을 믿어서가 아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역설 때문만도 아니다.
피를 나눈 형제이기에 쿠아른을 잘 안다. 동생의 교활함은 잠시나마 신들을 속일 정도였다.
쿠아른의 사고방식은 천사답지 않다. 불멸자의 허점을 잘 파고든다. 이 일에 흥미가 동하게만 만든다면 누구보다 믿음직한 조력자가 되리라.
물론 한때 형일지라도 철천지원수의 방문을 달가워할 가능성은 적었다. 메타트론은 쿠아른이 원한다면 어떠한 것도 달게 내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쿠아른은 선뜻 수락했다. 메타트론은 예상치 못한 답변에 벙벙해졌다.
“과거의 일은 과거에 묻었습니다. 형님이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제 상황에 몹시 만족 중입니다.”
그런 형에게 동생이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오히려 형님이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기쁠 따름입니다. 우리 고결하신 메타트론께서 드디어 하늘의 뜻을 거스른다니, 이 또한 역천의 인도가 아닐 수 없군요.”
“…정녕 바라는 것이 없는 건가, 아자젤. 네가 원한다면 아카식 레코드의 사본이라도 건넬 생각이었다.”
“그깟 패배자들의 산물 따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이미 이 세상의 원천은 저희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한데 글줄로 그를 쫓으려 하다니요. 그분을 모시는 저로선 불경하기 짝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메타트론은 동생의 비린 미소에 의심을 지우지 못했다.
“역천께 맹세하겠습니다. 저 쿠아른은 형님께 조카님의 비호를 맹세합니다. 또한 제 개인적인 간섭 없이 조카님은 제 뜻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라.”
“별건 아닙니다. 그저 그분이 재림하실 때 조카님도 그 현장에 대동하겠다, 이 정도랄까요.”
동생이 누차 입에 담는 그분이란 검의 신. 그의 자결을 메타트론은 똑똑히 보았으며, 아카식 레코드에도 소상히 적었다.
재림? 말도 안 된다. 검의 신은 적어도 이 세상에선 더는 있을 수 없는 존재다.
“알겠다.”
그러나 메타트론은 뒷말을 아꼈다. 어찌 되었건, 쿠아른은 검의 신을 이름을 걸고 서약했다.
그만큼 이 맹약엔 무게가 있다. 이를 위반하는 건 정체성의 상실을 의미하는 바이니.
“고맙다, 동생아.”
쿠아른의 거처를 나서기 직전에, 메타트론이 건넨 말이다.
“고맙긴요. 저야말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그것은 불찰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 앞뒤를 재지 못해서 나온 실수였다.
이듬해, 쿠아른은 메타트론을 신들에게 팔아넘겼다. 그러면서도 맹약엔 충실했다.
신들의 눈을 피해 레온이 ‘농익을 때’까지 철저히 숨겼으며, 그의 뜻인 ‘복수’를 존중했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쿠아른의 계획대로였다.
* * *
천지가 사방에서 격동한다. 레온이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거미줄처럼 갈라졌다. 땅이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간은 일그러지다 못해 벌겋게 끓었다.
머리채를 잡은 채로, 눈먼 칼에 배가 꿰뚫린 채로, 내장을 철철 흘리는 채로,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그러고서 레온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신형이 사라진 건 동시였다.
후우우웅!
레온이 강검마에게 접근했다. 움직임이 아니다. 마치 종이 꾸기듯 시간이란 개념을 접어 버린 이동이었다.
어쨌든 물리의 굴레 안에서 행동하는 강검마다. 아직 완전한 각성도 전이었다. 그 때문에 반응이 한발 늦었다. 레온의 주먹이 강검마의 턱을 가격했다.
뻐억-!
타격음이라고는 믿기 힘든 파공음이 났다. 하늘로 솟구친 강검마의 몸은 가볍게 성층권을 뚫고, 더 위로 올라갔다.
중력이 옅어지고, 부유감에 휩싸였다. 기분이 몽롱했다. 완만한 푸른 포물선이 시야에 어린 건 얼마 후였다. 구름이 조각배처럼 하늘 위를 부표한다.
‘지구.’
발붙이고 있던 땅덩어리는 한없이 작아졌으며, 대륙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광고한 장관은 찰나의 시선을 빼앗고 마는 것이었다. 다만 고양감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공기가 희박해 숨이 안 쉬어진다. 오존층의 마모를 받지 않은 직사광이 눈을 괴롭혔다.
강검마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내렸다. 레온이 허공을 연신 박차며 쏜살같이 날아오는 게 아닌가. 매질이 없으므로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폭음이 고막에 때려 박히는 듯했다.
강검마와 눈이 마주친 레온, 아니 그 너머의 것들은 이죽 웃었다.
강검마의 턱뼈가 다시금 후들거렸다. 볼살이 느릿하게 출렁거렸다. 핏물은 얼어붙어 홍색 낱알이 되었다.
그것은 타격보다는 폭발에 가까웠다. 고로 폭심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강검마는 고스란히 충격파를 받아 냈다.
중력을 이탈한 몸은 길쭉한 빛살을 그리며, 저 멀리 있는 점을 향해 올곧게 나아갔다. 그에 맞춰 레온이 성층권을 박차고 재차 뛰어올랐다.
풍경이 휙휙 전환됐다. 그 자리에 박혀 있을 별들은 유성처럼 꼬리를 내뺐으며, 지구와 태양이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뜨문뜨문 우주를 주유하는 돌조각이 등에 와서 부딪쳤다.
‘아.’
그제야 이성이 머리를 들었다. 저 악귀 나찰처럼 달려오는 놈은 내가 자르고 베어야 할 적. 손에서 사시미와 일체감이 느껴졌다.
‘그거면 충분하다.’
강검마가 입꼬리를 당겼다. 웃으면서 날아간 그는 이내 달에 처박혔다. 월면이 산산이 박살 났다.
그득한 잿빛 먼지 더미 사이에서 안광이 빛났다. 동공은 희고, 눈자위는 검었다.
강검마는 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투둑, 돌조각 같은 잔해들이 아주 느리게 몸에서 떨어졌다.
내면에서 울컥울컥한 질감이 태동했다. 미처 놓지 못한 인간성이었다.
“베면.”
강검마는 촛불처럼 가녀리게 흔들리는 인간성을, 훅- 꺼뜨렸다
“잘릴 것이다.”
둥그런 달이 사과처럼 뚝 부러졌다.
* * *
의식이 지독한 어둠 아래로 가라앉길 잠시.
·
·
·
《역천의 마안을 발동합니다.》
* * *
먼지가 잔뜩 낀 고즈넉한 조명등, 대문짝만 한 한자가 적힌 적등과 동양풍 물씬 나는 인형이 주렁주렁 매달린 천장.
달큼한 주향과 생선 비린내가 콧속에 스몄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다.
“여긴 어디지?”
나는 이마를 붙잡으며 상체를 세웠다. 그러다 무심결에 팔꿈치가 옆을 쳤다.
들썩이는 식탁. 초록 병이 데굴데굴 구르더니 쨍한 소음을 내며 조각을 튀겼다.
“예끼, 이 녀석아!”
불쑥 튀어나온 호통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옆을 돌아봤다.
곧이어 풍선처럼 부푼 눈동자가 씩씩거리는 한 남자를 반영했다. 한쪽 팔소매를 펄럭이는, 신경질적인 인상의 남자.
“정신 안 차릴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첫 사장님. 시조의 영웅, 발로르 호아킨이 사시미를 쥔 채 내 코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