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9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96화(291/300)
296화 기적의 가호 (2)
이 세계 사람들은 젖먹이 시절부터 신화를 듣고 자란다. 신의 심판을 대행하는 이들의 일대기를 들으며 꿈을 키운다.
‘그들, 천사처럼 되고 싶다!’
천진한 어린아이는 순수한 동경을 품는다. 그들은 신보다 천사를 훨씬 좋아했다. 천사가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순백의 날개를 매달고 하늘을 종횡무진 누비며 악을 섬멸한다. 정의를 행사한다. 밤을 찢고 새벽을 밝힌다. 상아색 깃털이 구원을 바라는 이들을 보듬듯 내려앉는다. 아침 햇살이 후광으로 드리워 이목구비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얼굴의 음영 속에서 안광은 고고한 빛을 흘린다. 그들이 따뜻한 손길을 건네며 인간에게 말한다.
-어둠에 떨지 마라. 우리가 왔다.
낭만. 그것은 영웅의 전신이요, 천사의 후신이다. 비록 고대인들에겐 불구대천의 존재지만, 세간에선 그들의 비사를 모른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 천사는 언제나 승자였으므로 그들은 신화의 주역이었다. 신성함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천사를 경외했다.
그중에서도 메타트론은 가장 찬란한 천사로 불렸다. 그는 여타 천사들과도 격이 다른 천사였다, 사실상 반신半神으로 여겨졌을 만큼. 그 힘과 성품을 찬양하자면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분명 그랬다. 그가 관을 깨부수고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르르르르르.”
메타트론이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침을 뚝뚝 흘렸다. 그가 내는 침음성은 곰과 동물의 그것과 비슷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 금수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제 형님이신 메타트론입니다!”
쿠아른이 어깨를 펴며 소개했다. 저 흐리멍덩한 눈빛과 괴음을 흘리는 사내의 정체를 공언한 것이다.
좌중은 혼란을 느꼈다. 수많은 눈동자가 요동쳤다.
‘메타트론.’
어린 시절 동경하고 꿈꾸던 모습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메타트론은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었다. 오래도록 차고 있었는지 살갗이 쓸려 피딱지가 따닥따닥 들러붙어 있다.
공기가 사위스러워졌다. 영웅과 마족,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고오오오오.
메타트론이 내뿜는 기세가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압박했다. 심장이 하도 쿵쾅거려 왼쪽 가슴이 뻐근했다. 어린 시절 경외의 대상이 이제 사신처럼 보였다.
메타트론이 허리를 반쯤 비틀었다. 오른쪽 어깨가 꿈틀거렸다. 급작스레 폭풍이 불어닥친 건 직후였다. 그 규모는 단어 그대로 폭풍이었다.
파공음. 다크 엘프 족장 로그는 눈동자만 옆으로 굴렸다. 그의 동공이 쪼그라들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볼 때의 생체 반응이었다.
“이이, 이건.”
정권. 단순한 주먹 내지르기. 그 한 번에 마족 수십이 절멸했다. 심지어 사정거리 안도 아니었다.
풍압. 주먹이 일으킨 돌개바람이 기차가 터널을 가르듯 진영을 꿰뚫어 버린 것이다.
‘…완력만으로 이게 가능하다고?’
로그는 팩 옆으로 시선을 틀었다. 쿠아른이 빙그레 눈웃음쳤다. 엷게 보이는 눈동자가 간살스럽다.
‘쿠아른이 무슨 수작을 부렸다.’
로그의 추측대로였다. 쿠아른은 부러 공기를 연하게 만들어 정권의 파괴력을 끌어올렸다. 같은 천사였을 무렵에 형제가 즐겨 쓰던 수법이었다.
“역시… 대단합니다, 형님.”
쿠아른이 감탄했다. 자신의 마법이 어렸다고는 하나 결국 조력에 불과했다. 파괴력은 순수하게 메타트론의 영역이었다. 일개 영웅이 주먹을 뻗었다면 산들바람 정도였을 터다.
정지했던 시간이 다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영웅과 마족들도 일사불란하게 태세를 갖췄다. 마족은 재빨리 보호막 마법을 시전했으며, 영웅은 방패를 세워 철벽을 건설했다.
메타트론의 맨발이 진각을 짓이겼다. 노면이 점토처럼 부드럽게 뭉그러졌다.
콰아앙!
그가 질주했다. 일대다의 싸움, 인마대전(?) 이 차전의 포문이었다. 일一이 공격하고, 다多가 막아 내는 형세였다.
“이런, 씹. 뭔 놈의 힘이!”
탱커 서른 명이 기를 쓰고 방패를 지탱했다. 그들은 워리어급 영웅이었다. 전원이 내로라하는 장사였다. 거기에 가호까지 전부 그러모았다.
한데도 버거웠다. 철벽이 정권의 풍압에 옴팡지게 파였다. 충격이 방패는 물론이요, 근육을 뚫고 뼈를 쑤셨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근육은 이완될 새 없이 수축 상태를 유지했다. 피땀이 송골송골 올라왔다.
상황은 마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더 안 좋았다. 영웅들과 달리 그들은 실제 주먹을 맞받아치고 있었으니까.
“왜 우리는 가까이서 공격하는 건데?!”
메타트론의 근육에는 멸악이 각인되어 있었다. 마족에게 유독 가혹한 것은 어쩌면 본성 때문이라.
와장창!
결계가 파괴되는 일은 다반사. 방어를 포기하고, 반격을 가했다가 몸이 터져 나가지는 마인이 수두룩했다.
메타트론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방팔방 날뛰었다. 아음속으로 넘나들며 마족의 방어막과 철벽을 번갈아 주먹질했다. 아래로 축 늘어진 팔을 낫처럼 휘둘러 생명을 수확했다. 팔에 덕지덕지 붙은 근육의 운동이 선명했다.
수백의 운집체는 정권 한 방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떨어지는 주먹 밑면이 마인들을 폭삭 주저앉혔다. 그의 손은 피로 범벅이었다. 채 털지 않은 핏물이 채찍처럼 정권에 이끌렸다. 방어를 도외시한 폭력적인 춤사위였다.
메타트론은 강했다. 신화적인 강함이 피부로 와닿았다. 단신으로 그레고리를 학살했다는 것이 허명이 아니었다. 이조차도 제정신일 때에 비해 약해진 것이었다. 그는 족쇄로 두 발이 봉인된 상태라 두 주먹만 사용했다.
그저 뻗고, 때리고, 부순다. 메타트론의 공격은 파괴의 본질에 충실했다. 이름이 붙은 기술은 없다.
으자작-
그것만으로 무쌍이었다. 속성 마법도 그의 단단한 근육을 뚫지 못했다. 원래라면 용암처럼 뜨거운 화마는 그의 피부를 그을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규격 외의 근력과 내구력이었다.
‘이자와 대치라는 게 성사되려면 적어도 군단장급이 붙어야 한다.’
창성이 어금니를 세게 물었다. 그는 탱커들과 함께 등으로 방패를 떠받치고 있었다. 팔로는 도저히 지탱할 수가 없었다. 발이 푹푹 꺼졌다.
‘쿠아른.’
그는 방패 사이의 비좁은 시야로 쿠아른을 보았다. 놈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다.
“어째서 메타트론에 합류하지 않는 거지.”
쿠아른이 가세하면 양상은 순식간에 기울어질 터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탓에 영웅이나 마족이나 핵심 전력을 여럿 잃었다. 지금도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지만, 생존자들도 지쳤다.
‘이 상황에 메타트론과 놈의 합작은…….’
생각만 해도 섬뜩했다. 하지만 쿠아른은 메타트론을 보조하는 마법만 시전할 뿐이었다.
‘뭔가 이상해. 거대한 마법을 사용했다 해도, 저토록 지켜 보기만 하는 건 분명 뭐가 있다.’
창성은 한참을 노려본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가 검제에게 목청껏 외쳤다.
“니벨룽!”
그의 목소리가 시끌시끌한 소란 통 속에서도 검제의 귀에 닿았다. 검제가 자신을 보자, 창성이 웃었다.
“나와 같이 칼춤 한번 춰 볼 텐가!”
방패에 등을 기댄 창성이 창을 들어 보였다. 검제의 얼굴에 사나운 미소가 지어졌다.
“암. 안 그래도 손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야.”
지체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검명이 깨끗했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 아니겠나.”
“그래. 그래야 내 친구답지.”
창성이 방패에서 등을 뗐다. 견고한 철벽에 사람 하나 오갈 만한 입구가 생겼다.
창성은 탁 트인 전장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메타트론은 현재 마족과 대치 중이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산소가 뇌 활동을 가속했다. 그는 전세를 넓게 읽어 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쿠아른에게 접근해야 한다.’
창성이 앞서 뛰쳐나갔다. 검제도 곧장 따랐다. 현자, 만력, 철각, 올 뮤트도 행렬에 동참했다. 그들이 빠져나간 즉시 다른 방패가 입구를 메웠다.
탱커들의 눈동자가 벌어진 방패 틈새로 여섯 영웅의 등판을 쫓았다.
“저분들은 기꺼이 미끼가 되었다.”
방어선을 넘어선 순간 저들은 죽음을 각오한 것. 가장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이 택한 건, 희생. 영웅의 모범이다.
“으랴아아아!”
탱커 하나가 포효했다. 발 없는 함성은 빠르게 전염됐다. 뒤로 밀려나기만 했던 탱커들은 전진을 시도했다. 딜러들도 그들의 등을 밀어주면서 무게를 함께 견뎠다. 영웅들은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약진했다.
여섯 영웅이 달렸다. 창성이 가장 앞에 섰다. 우익엔 검제와 철각, 올 뮤트. 좌익엔 포이즌 쌍둥이가 함께였다.
“내가 볼 때 메타트론은 아마 조종을 당하고 있어.”
창성이 앞만 보고 달리면서 말했다. 만력이 부연했다.
“즉, 숙주는 쿠아른이란 소리지? 오케이.”
메아인이 동생에게 눈짓했다.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이 민첩하게 좌우로 갈라졌다. 하나에서 둘로 쪼개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쌍둥이다.
“올 뮤트, 자네는 나와 함께하세나. 가호로 메타트론의 오감을 교란해 주면 돼. 찰나여도 괜찮네.”
창성이 말했다. 올 뮤트는 대답 대신 손바닥을 활짝 폈다. 그러곤 세게 손뼉을 쳤다. 흰소리가 파문을 그리며 웅웅- 일대를 울렸다.
메타트론의 주먹이 멈칫했다. 그는 탁한 백안을 들어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눈빛이 몽롱했다. 올 뮤트의 [가호]가 시야를 잠시간 빼앗은 것이다. 이로써 쿠아른에게 접근할 시간을 벌었다. 창성은 메타트론에게서 몸을 돌려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
“철각, 자네는 나랑 가지. 쿠아른의 저 상판에 발차기 한번 먹여 주게나. 나는 저 새끼 배때기에 칼침을 넣어야겠네.”
검제가 말했다. 마오 랑이 장딴지를 부풀렸다.
“저 반반한 녀석을 그냥 추남으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구시대의 전설과 신세대가 원활히 소통했다. 쿠아른과의 거리도 단숨에 좁혀졌다. 가장 먼저 달려 나갔던 포이즌 쌍둥이의 주먹이 쿠아른에게 쇄도했다.
“쓸데없는 짓을.”
쿠아른이 이맛살을 좁히면서 장막을 전개했다. 비눗방울처럼 몰캉몰캉한 결계는 타점을 흐트러뜨린다. 하지만 터졌다. 포이즌 쌍둥이가 손톱을 세워 결계를 쭉 찢어 버렸기 때문이다.
메디아의 [시인의 가호]. 바로 앞의 미래를 예지하는 가호다. 쿠아른이 전개할 결계의 종류를 몇 초 전에 파악한 뒤, 언니에게 전달했다.
그 시점에서 메아인이 해법을 제시했다. 그녀는 영웅 중 유일한 마법사였다. 마법에 조예가 깊었다. 전투하는 내내 공空 속성 마법의 허점에 대해서 궁리했다. 그러고 마침내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젠 결계에 맞게 유연한 대처가 가능했다.
결계가 벗겨졌다. 포이즌 쌍둥이는 다시 양옆으로 벌어졌다. 후발대가 나설 차례다.
검제의 검은 주인의 손을 떠나 자유로이 활공했다. 극에 달한 이기어검술. 쐐애애애액-, 직검이 어지러운 검로를 그리다가 벼락처럼 곤두박질쳤다. 검극이 쿠아른의 안면을 노렸다.
쿠아른이 고개를 비틀었다. 왼뺨에 혈선이 쭉 그였다. 오른편에서 절그럭 쇳소리가 들려왔다. 낭창낭창 흔들리는 마오 랑의 다리가 그의 관자놀이에 엄습했다.
쿠아른은 그것을 잡아챈 다음 날려 버렸다. 하지만 마오 랑은 가뿐히 낙법을 쳤다. 쿠아른의 체술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할 만했다.
쿠아른의 얼굴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메타트론을 세뇌하는 것에 있는 마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형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생각해 보니, 네 녀석 때문이었구나.”
쿠아른이 굳은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눈꼬리에서 희미한 빛줄기가 삐져나왔다.
“네 녀석이 그분을 오염시킨 원인이었어.”
그가 서늘한 실소를 흘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전부, 이 자리에서.”
쿠아른의 피부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마에선 뿔 한 쌍이 삐죽 섰으며, 동공이 세로로 눈자위를 양분했다. 등가죽을 뚫고 박쥐 날개 열 쌍이 쫙 펼쳐졌다. 날개 표면이 핏물과 점액질로 끈적끈적했다.
마귀.
여섯 영웅이 주춤했다. 쿠아른이 입매를 위로 찢으며 선언했다. 그의 꼴은 어느 마족보다도 흉측했다.
“네놈들의 살가죽을 엮어 그분께 바치리라.”
그때. 혜성이 꼬리를 끌며 지상에 떨어졌다. 이목은 쿠아른과 그 별 쪽으로 분산됐다. 이변이 동시에 일어난 터라, 모두가 갈팡질팡했다.
-어둠에 떨지 마라.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려는 듯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내가 왔다.
상아색 깃털이 대지에 스몄다. 빛나는 이채를 머금은 푸른 눈을 한 소년…….
[기적의 가호가 발현됩니다.]…레온 반 라인하르. 영웅과 마족, 메타트론도 넋을 잃고 용사를 쳐다보았다.
시야의 사각지대. 강검마, 외신이 그곳에서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다가 곧 눈을 감았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지.’
이제는 심연을 들여다볼 차례다. 진짜 주인공은 아직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