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9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97화(292/300)
297화 호아킨 아카데미 (1)
신들은, 그러니까 해양 생물들은 필사 저항했다. 괜히 신을 위시한 존재들은 아니었다. 놈들의 공격 규모는 단어 그대로 ‘우주’ 구급이었다.
〈이 어리석은 아해야. 인간의 소망 따위로 우리를 전부 없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유피테르가 내게 윽박지른다. 잘생긴 얼굴이 있던 자리엔 웬 녹빛 문어 대가리가 있다.
“어. 가능.”
나는 짧게 대꾸하고 무라사메와 만년서리를 뽑아 들었다. 심연에 작렬하는 사시미들 사이로 광채가 번뜩였다.
서걱!
길게 뻗어 나간 검광은 심연의 지평을 세로로 갈랐다. 칼질 한 번, 수많은 신들이 상/하, 좌/우로 분리되어 소멸했다.
나름대로 저항은 해 보는 듯한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내 사시미는 모든 걸 베고 자르는 칼이다. 신이라 한들 예외는 두지 않는 것이다.
화르르…….
유피테르가 오른손에 축구공만 한 달을, 왼손엔 태양을 생성했다. 그러고서 그 두 구체를 가슴 앞에서 수인을 맺듯 충돌시켰다.
○
●
음과 양, 상반되는 속성을 뭉쳐서 만든 에너지는 빛마저 빨아먹는 어둠. 블랙홀의 형성 과정이다. 예의 쿠아른이 구성한 블랙홀과는 아예 격이 다르다.
쿠구구구궁.
심연 자체를 굴절하여 내 검로를 뒤튼 것. 덕분에 놈은 아슬하게 검광에서 빗겨 갔다. 수염처럼 자란 촉수 몇 가닥이 썰리긴 했다만.
〈네 이놈. 어떻게 과거의 너보다 지금이 더 강할 수 있단 말이냐. 신성을 포기하고 한낱 인간성 따위를 택하고서도.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그런 인과는 함유하지도 않았거늘!〉
유피테르가 시뻘건 눈을 부라렸다. 칼부림을 연달아 버텨 낸 신은 놈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피하거나 검광에 휘말려 우주먼지로 흩어졌다.
신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수천에 가까웠던 개체 수는 이제 스무 마리도 안 됐다. 그리고 남은 신들은 유피테르의 뒤에 줄지어 서서 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검의 신, 네 녀석이 다른 우주에서 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 것이냐? 우리가 모르는 바깥에서 왔기에 그리도 강한 것이냐? 우리의 시야가 그토록 편협한 것이더냐? 말해 다오. 우리가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면 너만큼 강해질 수 있는 것인지.〉
와중에도 놈들은 음습한 욕망을 드러낸다.
‘참 한결같다고 해야 하나.’
라이칸의 말마따나, 놈들은 탐욕의 화신이지만 거짓을 입에 담진 못하는 모양이다. 이상한 데서 성실한 구석이 있는 놈들이네.
근데 핵심을 못 짚고 있다. 놈들의 패착은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그딴 게 아니다.
“네놈들의 문제점이 뭔지 아냐?”
내가 칼날을 보며 말했다. 새삼스럽지만 사시미에 흐르는 물결무늬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 미모에 현혹되어 나는 인생의 전부를 바쳤다.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
눈길을 다시 놈들에게로 돌렸다.
“원인을 항상 바깥에서만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내가 바깥에서 온 존재이기에 강하다고? 지랄하지 마.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 온 줄 알기는 하냐?”
이전 삶의 나는 불행했다. 내 일대기는 핍박과 폭력으로 점철됐었다. 부모라 부르기도 역겨운 작자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집에서 끼니를 챙겨 주는 이가 없었기에 걸음마를 뗐을 무렵부터 동냥하러 다녔다. 옷이 없었기에 헌옷 수거함을 뒤져서 몸을 가렸다. 그마저도 부모란 놈들의 손에 찢기기 일쑤였다.
술만 마시면 나를 개 패듯 폭행하던 아버지, 항상 약에 취해 나를 방치하던 어머니.
부모가 있었지만, 나는 고아나 다름없었고. 집은 내게 아늑한 보금자리가 아닌 지옥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학교나 사회가 내게 상냥했었단 말은 아니다.
애들은 나를 거지새끼라고 놀리며 멀리했고, 어른들은 내게 무신경했다. 티만 안 냈을 뿐이지 짐짝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다. 언젠간 밤이 기울고 아침이 찾아오리라고, 작은 희망을 품고서 삶의 의지를 돋웠다.
하나 그것은 약관이 지나지 않은 어린애가 감당하기엔 가혹했단 것이라, 어느 순간에는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어째서 나만.’
그런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그럼, 혹자는 내게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배곯아 죽지 않은 게 어디냐’,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등등.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지라 누군가의 시선에선 그다지 밑바닥의 삶으로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자식을 죽이거나 유기했다는 부모 관련 뉴스가 해마다 꼭 한두 번씩은 보도된다.
그들과 비교하면 내 부모는 적어도 제 자식을 죽이지는 않았으니, 보다 나은 사람들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내 입장에선 개소리다.
그 작자들은 내 육신을 죽이지 않았을 뿐, 정신을 죽여 놨다.
난 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악착같이 명줄을 붙들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의 결실이 사장님과의 만남이었다.
‘인간으로 살아라.’
그가 내게 거듭 강조한 말이다.
‘삶이 고통의 연속인 건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이길 포기해선 안 돼. 불운한 가정이 악행의 면책권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쩌면 스승님의 자기반성 또는 자조가 아니었을까.
‘내가 너를 거둔 이유를 전에 물어봤었지? 그건 네가 간당간당해 보였기 때문이야. 정말 사람이라도 칼로 찌르겠다 싶더라고. 뭐, 나야 처음 본 애새끼가 어디서 누굴 찌르든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내 가게 주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건 사양이었다. 이게 내 솔직한 속내야.’
스승님도 신들과 마찬가지로 사실만을 말했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반대지.’
그러나 말의 무게가 다르다.
신들은 그러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나, 스승님은 그러지 ‘않’는 것이다. 그 한 글자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고저다.
‘네가 인간으로 살아가게 했다는 것에 나는 자부심을 느껴.’
스승님은 시조의 영웅이었다. 폭력과 죽음의 길을 걸어온 사내였다. 과업을 위해 무한히 회귀해야만 하는 시련을 지닌 인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종국에는 낯선 세상에 흘러들었다. 과업의 마침표를 찍어 줄 존재를 찾아 수십 년 동안 지구를 배회했을 것이다.
스승님이 말투가 항상 뚱하고, 냉소적이었던 태도가 일견 이해가 간다. 그의 삶은 어쩌면 나 이상으로 혹독했을 테니까.
‘네게 손을 내밀었던 날.’
스승님은 내 얼굴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그게 내 삶을 통틀어 스스로에게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럽던 날이다.’
그는 내게 칼 쓰는 법과 온정을 베풀었다.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내게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장소와 집을 제공해 주었다.
‘인간성.’
그것이 내 강함이 원천이다.
〈아무래도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듯하군.〉
유피테르의 눈 그늘이 깊어졌다. 놈은 고개를 반만 뒤 돌렸다. 시선의 싸늘함을 느낀 신들이 움찔했다. 눈빛으로 모종의 협의가 오가는 듯했다.
잠시 후, 유피테르를 제외한 신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뜻에 동참하겠다는 의미리라.
〈과거의 실수를 이 자리에서 다잡으리.〉
유피테르가 양팔을 벌렸다. 그의 두 손바닥에 어두운 구멍이 맺혔다. 다음 순간 그 구멍은 회오리를 그리며 신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고오오오오!
신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유피테르의 덩치가 무럭무럭 커졌다. 머리를 크게 젖혀도 문어 대가리의 어두운 윤곽 정도만 보인다.
번뜩.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붉은 점이 빛났다. 고요한 안광이다.
〈처음으로 우리 애시르 신족이 하나로 뭉쳤다.〉
유피테르가 내게 그리 말했다. 놈이 입을 열 때마다 보랏빛 연무가 짙게 뿜어져 나왔다. 독무에 휘말린 빛 사시미들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수십억의 소망이 촛불처럼 훅훅 꺼진다.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유피테르가 호언장담하듯 말했다. 그에 나는 픽 웃을 밖에 없었다.
“아니.”
조금 쪽팔리지만 응수할 만한 말이 이것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직 한 자루 남았다.”
성결한 빛이 무라사메를 휘어 감는다. 어서 이 악신들을 청소한 후, 내 집으로. 모두가 있는 아카데미로 돌아가고 싶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자 인간성이다.
“그리고 고맙다.”
사시미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칼에 기술과 감정을 담지 않는다. 칼을 세웠다가 내리는 것은 그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원인’에 불과하다.
“덕분에 칼질 여러 번 하는 수고는 덜었어.”
유피테르의 어깻죽지부터 옆구리까지 아로새겨진 영롱한 붉은 선. 내 눈에는 신의 죽음이 보인다. 더불어 내 사시미는 그 죽음을 도출하는 검. 과거와 현재, 미래의 영역이 아울러 뇌리에 스며든다. 인과는 명쾌하게 풀이되고 검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움직인다.
“베여라.”
유피테르가 무지막지한 손을 출수함과 동시에 내 사시미도 대각선을 그었다.
최후의 일검. 신의 손아귀와 인간의 칼이 교차했다. 한 우주의 탄생과 종말이 한 시에 폭발했다.
* * *
“얌마.”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가늘게 뜬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축하해.”
나를 깨운 이는 대뜸 그렇게 말했다. 초점이 덜 잡힌 탓일까. 얼굴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무어라 대답하려 해도 목소리가 목 아래에서 잠겼다.
“일단 누워서 들어.”
나 누워 있구나. 근데 팔자 좋게 누워 있을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젠장.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오르는 게 없다. 잘게 토막 난 시간선이 머릿속에서 얼기설기 꼬였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자, 상대는 말문을 열기에 앞서 손으로 내 눈가를 덮어 주었다. 굳은살의 감촉이 느껴졌다. 굳은살의 위치로 가늠컨대, 칼 꽤나 써 본 손이다.
“강검마, 너는 방금 한 세계, 아니지, 아니야. 세계선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던 악의 굴레를 끊어 냈어.”
목소리에 웃음기가 짙다.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확률이야. 수치상으로는 글쎄. 지구식 표현으론 벼락 맞을 확률? 그 번개를 76경 번 맞을 확률이라 하면 되려나.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르겠네. 숫자에 약해서. 아무튼 검마, 네가 세계선 전체를 구원한 셈인 거지.”
입술이 바싹바싹 탄다. 뭐라 대꾸하거나 묻고 싶은데 쉰 소리조차 안 나온다.
“사담은 이쯤하고. 본제로 넘어가자.”
“……?”
“너한테 선택권을 줄게.”
맑은 기운이 이마를 거쳐 뇌 내로 깃든다. 머리가 개운하다. 뒤죽박죽 파편화한 인과의 얼개가 명쾌하게 조립된다.
나는 지금, 영역의 구분 없이 모든 세계를 관찰했고 진리를 깨달았다. 하여 내게 일방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이자의 정체도 자연스레 알게 됐다.
내가 입을 뻥긋거렸다. 소리는 상대가 대신 내주었다.
“너는 나구나.”
“너는 나구나.”
단어 그대로의 공명. 기묘한 경험이다. 뇌를 두 사람이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상대가 내 눈가에서 손을 떼어 냈다. 이제야 얼굴이 선명히 보임과 함께 문장이 떠오른다.
[G.M.이 당신에게 두 가지를 제안합니다.]머나먼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하는 제안.
[1. 외신으로 군림하여 삼라만상을 아래로 두며 통제하겠습니까.] [2. 아니면, 인간으로 남아 호아킨 아카데미로 돌아가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