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298)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298화(293/300)
298화 호아킨 아카데미 (2)
용사, 레온 반 라인하르트의 재등장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레온은 절궁 사키 코지마를 죽였다. 현장에 있는 모두가 보았다.
살아생전 절궁은 그 오만한 성정 탓에 긍정적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기라도 한 걸까? 절궁은 하늘을 향해 시위를 당겨 수많은 목숨을 살려냈다.
희생. 마지막 모습은 영웅의 귀감이었으므로, 전후 그에 대해선 재평가가 이루어질 터였다. 또한 ‘반전’을 좋아하는 호사가들 특성상 여러 미담이 덧붙여질 것이었다.
‘절궁, 그 양반이 성격은 그 모양이어도, 뼛속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 반대의 경우가 레온 반 라인하르트다. 용사의 업을 짊어졌으나 인류의 적으로 돌아선 소년. 인류의 기대를 배반한 역적. 저지른 일만 나열해도 교과서적인 매국노! 뒤따를 매몰찬 시선과 비난을 피하기란 불가하다.
그럴 터였다.
콰아아아앙!
검제가 눈을 크게 뜨며 폭심지를 쳐다보았다. 폭심지는 하늘이었다. 상아색 깃털 날개의 레온과 시커먼 박쥐 날개의 쿠아른이 대치 중이었다.
“조카님! 당신마저 제 기대를 저버리고 만 겁니까?! 아아, 반푼이 용사여. 마왕의 각성조차 끌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용사여. 어차피 이 전쟁이 끝나도 당신은 인류와 마족 양측의 적입니다. 이는 불변의 사실.”
쿠아른이 혓바닥을 흘리며 레온을 헐뜯었다.
“뿐입니까? 기록으로 남게 되겠지요. 그럴 바엔 이 자리에서 갈기갈기 찢겨 죽으세요. 이 숙부의 넘치는 아량에 피눈물을 흘리면서!”
쿠아른의 목소리는 승냥이처럼 녹이 슬어 있었다. 얼굴은 검은 산양으로 변해 있었으며, 이빨은 삐죽삐죽 날카롭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악마의 모습.
“…모든 것이 내 업보다.”
레온은 발뭉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쿠아른의 말대로다. 살아선 어디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며, 죽어선 세계의 적으로 기술될 것이었다.
‘만약 여기 다시 오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살아서는 어딘가에서 조용히 살 수 있었겠지.’
그러지 않았다. 레온은 기꺼이 자신의 치부와 마주했다. 모두가 자신을 욕한다 해도 겸허히 받아들일 생각이다.
‘쿠아른과의 대치는 그에 대한 속죄가 아니다.’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분노에 눈이 멀어 이제야 그 소임을 수행할 뿐. 무언가를 바라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내 죄를 사해 달라고 신께 빌지 않아.”
레온이 눈을 치떴다. 금빛 고리가 동공의 정중앙에서 회전했다.
“어리석고 불경합니다, 용사. 당신은 신이 아닌 제게 빌게 될 겁니다. 제발 좀 죽여 달라면서요!”
쿠아른의 안광은 광기로 싯누렇다. 그는 샘솟는 쾌락과 교성을 참지 않았다. 있는 대로 토해 냈다. 한마디 한마디가 귀가 썩을 것처럼 더럽고 천박했다.
악마의 속삭임은 레온에게 닿지 않았다. 레온이 가볍게 날갯짓했다. 깃털이 구름에 스미듯 흩날렸다.
쿠구구궁!
둘은 천공에서 얽히고설켰다. 빙글빙글 ∞과 8자로 엇갈린 동심원을 그렸다. 신형의 끄트머리엔 빛과 어둠이 기다란 띠처럼 이끌렸다.
보여 주기식이 아니다. 둘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서로를 죽일 기세로 오러와 마법을 사출했다. 접합 지점에서 교차할 때마다 번쩍번쩍 빛이 튀고 천둥이 하늘을 흔들었다.
꽈르릉! 꽈릉! 쿠르르릉…….
검제를 비롯해 영웅과 마족은 에어쇼를 구경하듯 전투를 봤다. 개중엔 불소처럼 날뛰던 메타트론도 있었다.
메타트론이 침이 뚝뚝 흐르는 입술을 뻥긋했다. 혀가 굳어 발음이 어눌했다.
“레…온…….”
더듬더듬 그 이름을 곱씹었다. 흐릿했던 그의 동공에 서서히 총기가 맺혔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주먹이 느슨하게 풀렸다.
“아, 들…아…….”
메타트론은 살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신들의 모진 고문 때문에 심계가 닳아 버렸다. 강건한 육체가 남았으나, 외피에 불과했다. 실줄에 걸린 꼭두각시처럼 타인에 의해 생각하고 움직였다.
꿈틀.
메타트론의 팔근육이 박동했다. 뜨거운 피가 심장을 거쳐 전신에 퍼졌다.
와자작.
메타트론은 왼발로 오른발을 속박한 족쇄를 짓눌러 으스러뜨렸다. 이토록 손쉽게 벗어날 수 있건만. 자유는 그에게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접전은 치열했다. 검광과 마법이 맞부딪히고, 때때로는 서로를 깊게 상처 냈다. 공방은 언뜻 비등비등해 보였다.
하나 경지가 높은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이 전쟁으로 인해 경지가 두세 단계 상승했다. 눈으로 공방의 흐름을 쫓는 것이 가능했다.
‘쿠아른 쪽으로 양상이 기울고 있어.’
공방을 지켜보던 메아인은 침음했다. 그녀는 날개 없는 인간이기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발만 동동 굴렸다.
‘쿠아른은 자가 재생이 가능해. 근데 하지 않고 있어. 저놈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거지. 아마 저 전투 다음을 생각해서 힘을 비축하고 있는 것일 테고.’
교활한 놈이다.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놀리는 와중에도 힘을 안배한다. 그 누구보다 미친 것처럼 행동하지만, 전투에 있어선 계산적이다. 유심히 지켜보니 공수 교대도 기민하고 정확하다.
‘입만 산 놈이 아니야. 두 번이나 집단의 지배자들 한 까닭은 저거였어.’
그레고리와 마경 게헤나. 두 세력은 쿠아른의 대의에 감화돼서 함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쿠아른의 힘에 굴종했다. 힘의 논리는 천사든 만족이든, 종의 구분이 없다. 압도적인 폭력은 그 자체만으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남발해선 따르는 이가 없어.’
때에 맞게 실력을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경외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힘의 사용법을 모르면 그저 망나니일 뿐이다.
쿠아른은 전자에 해당한다. 놈이 별종임을 앎에도 마족은 그를 따랐었다. 쿠아른이 동족상잔만 벌이지 않았어도 마족은 목숨을 바쳐 싸웠으리라.
“이대로면 레온이 무조건 져.”
영악하게 싸우는 쿠아른에 반해, 레온의 공세는 너무나 정직했다. 곧게 나아가기만 했다. 몰아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직격타가 없다.
‘아마 물속에서 칼질하는 느낌이겠지.’
단시간에 각성했다 한들, 레온은 아직 열여덟이었다. 반면 쿠아른은 수만 년을 살아온 노괴였다. 힘이 비적할지언정 경험의 차이가 크다.
실전 경험을 상쇄할 만큼의 전투 센스를 지녔으면 모를까.
“강검마처럼…….”
마음의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시기적절한 실력 행사, 힘의 안배, 전투 센스. 강검마는 모든 것을 갖춘 소년이었다. 이따금 검객과 검귀의 갈림길에서 고뇌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그 점이 쿠아른과의 차이다. 쿠아른이 패하기만을 바라는 마족과 달리 영웅들은 강검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만력도 강검마의 부재가 크게 와닿았다.
그때였다. 노면이 들썩이자 깜짝 놀란 사람들은 시선을 퍼뜩 내렸다가, 들었다. 이변의 발원지로 눈길이 모였다.
이목의 중심에서 메타트론이 엉덩이를 깊게 낮춰 도약의 자세를 취했다. 하체 근육의 움직임이 역동적이었다.
“안 돼!”
그 주변에 있던 창성이 그를 저지하려 했다. 메타트론이 쿠아른에게 합세하려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메타트론은 창성을 힐끗 봤다. 눈길에 적의는 없다.
“좀 떨어져 있게. 휘말릴 수 있으니.”
그는 한마디 남기고서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창성은 풍압에 쓸려 멀찌감치 날아갔다. 토무가 잠시 일대를 자욱하게 덮었다.
아랫배를 튕기듯 일어난 창성은 곧장 흙먼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음 순간 그의 동공이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했다.
그는 눈을 비비고서 부릅떴다. 안구가 시큰시큰했다.
‘메, 메타트론이 용사를 돕고 있다!’
메타트론은 쿠아른의 뒤를 잡은 직후, 주먹을 퍼부었다. 주먹의 잔상들이 시야를 갉아먹듯이 빗발쳤다. 앞에서는 레온이 발뭉을 들고 쫓아온다.
부자父子는 해후는 생략하고, 쿠아른을 옭아매었다. 고절한 천사의 피가 두 사람의 혈관을 내달렸다.
“인제 와서 부성애라도 도지신 겁니까, 형님.”
쿠아른이 인상을 구기며 중얼거렸다. 레온이 모습을 드러냈을 시점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곤 있었다. 그래서 전력투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힘을 아껴 둘 필요는 없겠군요.”
친형과 조카에게 앞뒤로 포위된 상황. 수십 쌍의 검은 팔들이 쿠아른의 겨드랑이를 찢으며 나왔다. 듬성듬성 난 털에 핏물과 살 찌꺼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검은 팔들의 관절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더니 주먹세례를 맞받아쳤다. 메타트론의 정권은 묵직했으므로, 외려 검은 팔들이 폭사했다.
그러나 팔이 나가떨어질 때마다 두 배로 증식했다. 앞에도 마찬가지였다. 레온이 쏟아지는 팔들을 암만 베어 넘겨도 걷잡을 수 없이 수가 늘어난다. 검은 팔의 수가 순식간에 이 백 쌍이 되었다.
“쿠아른, 네 이놈! 뭔 짓을 한 거냐!”
메타트론이 노호성을 내질렀다. 그의 머리와 몸은 따로 놀았다. 정신을 차린 지 인제 몇 분 남짓이었다. 정신은 주독에 빠진 듯 몽롱했고, 팔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다. 발목의 족쇄는 사라졌어도 정신은 아직 묶여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십니까. 형님을 팔아넘겼을 때, 신들과 계약을 했습니다.”
이 기묘한 이능력의 명칭은 불절不絶. 신의 권능은 추상에 가까운 것. 물리 법칙 바깥의 영역이다. 주먹과 창칼로는 관념을 파괴할 수 없다.
“계약의 조건은 ‘용사’ 레온의 육신. 그들은 바로 그 계약을 받아들이는군요. 웃기지 않습니까? 과거 자신들에게 반역을 저질렀던 수족과 계약을 한다니. 그런 탐욕의 화신들의 주구 노릇을 했다는 게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그분밖에 없다는 것을!”
“미쳤구나, 아자젤. 사냥개 노릇을 피하고자 그들의 힘을 받아들인다니. 그런 되지도 않는 논리를 들먹거리면 네 행동이 정당화될 것 같으냐!”
쿠아른의 검은 관자놀이에 혈관이 솟았다.
“정당화? 웃기는 소리. 나는 그저 이 세계를 그분께 바치고 싶을 뿐이야. 내 모든 것은 그분께 예속돼 있다. 나의 행동이 정당한지 아닌지도 그분이 판단할 영역이다!”
“아자젤…….”
광기에 사로잡혀 천사의 의태마저 내던진 동생의 모습은 메타트론을 괴롭게 했다.
메타트론도 ‘검의 신’에게 감복했던 적이 있었다. 개인의 욕망만을 위하던 신들은 이 세계의 암덩어리였다. 그에 그들을 주인으로 모시던 메타트론마저 깊은 환멸을 느꼈었다.
어느 날. 표홀히 나타난 검의 신이 세상의 환부, 즉 신들을 도려냈다.
‘비록 적이었지만,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신이었어.’
그렇지만 당시의 메타트론은 태생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신들을 거역할 수 없게끔 설계된 천사였다. 그렇기에 가장 강한 힘을 하사받았다.
‘아자젤이 이렇게 변한 것은 검의 신의 탓이 아니야.’
이 모든 건 순전히 쿠아른의 광기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동생이 택한 길이었다. 그는 검의 신을 제멋대로 곡해하고 맹목적으로 신봉했다.
메타트론은 쿠아른 너머를 응시했다. 레온이 쉼 없이 출수하는 검은 팔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내 아들. 레온아, 너는 최선을 다해 주었다.’
메타트론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동자가 결심으로 굳혀졌다. 그는 체내 에너지를 전부 태워 쿠아른과 동귀어진할 심산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은 여기서 끝낸다.’
그렇게 메타트론이 허공을 박차기 직전이었다. 돌연 구름의 틈새에서 신비한 빛이 쏟아졌다.
밤이 개고 새벽이 찾아오듯. 신성한 기운이 지치고 피로한 전장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하늘 위의 하늘. 검은 존재감이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광을 등진 그가 사시미로 쿠아른을 지목했다.
“다, 다다, 당신은.”
조소가 흐르던 쿠아른의 입술이 창백하게 죽었다. 그는 자신의 말로를 직감했다.
죽음이 아닌, ‘말소’. 강검마의 사시미는 존재를 소거하는 칼이다. 자비와 관용 따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