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30)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30화(30/300)
30화 준비 (5)
강검마는 호기롭게 작달막한 칼을 뽑아 들었다. 검제는 호응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생도들은 그를 향해 조롱을 쏘아 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얼굴들에는 사춘기의 영악함 또한 공존했다.
먼젓번에 강검마와 녹스의 격전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들은 강검마를 고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평가절하했다.
그저 천한 특진생치고는 봐줄 만한 실력이라고 그리 생각했다. 타조가 평야에서 맹수를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것처럼 현실을 부정했다.
머릿속에 깊게 뿌리내린 선민사상이 강검마의 강함을 쉬이 인정하게 두지 않았다. 분명 모종의 사기 같은 것이리라. 생도들은 그리 속단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늘까지. 강검마의 밑천이 드러나는 것도 금방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검제가 페어링 상대로 강검마를 지목했다.
대체 왜?
검제의 속내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이토록 저 자식을 신경 쓰는지, 마음 깊은 곳에서 질투심이 피어올랐다.
생도들은 표정을 구기며 옆 사람에게 속닥거렸다. 강검마가 검제에게 참교육당한 후, 오줌이나 지렸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의 어리석은 생각들이 머리를 휘감았다. 그들은 그리 생각을 정리하고는, 눈을 치켜뜨며 대련을 기다렸다.
그러나 강검마는 그들의 비릿한 기대감을 배신하듯 갑작스러운 대련 요청에 선선히 사시미를 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그는 손에 쥔 사시미를 살짝 풀었다 쥐며 몸을 예열시켰다. 태도가 워낙 당당해서 얼떨떨할 정도였다.
대련이라도 상대는 칠성 영웅인 검제. 엎드려 절하며 예를 갖추어도 모자랄 판에 강검마는 긴장한 기색이 없다.
휘리릭―!
대련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지켜보는 눈들이 가늘어졌다.
“…….”
널찍한 연무장에 숨 막히는 침묵이 가라앉았다. 곧이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생도들의 표정이 미묘했다. 물음표가 이곳저곳에서 떠올랐다.
뭐지?
강검마와 검제가 검을 들고 마주 섰다. 하지만 둘은 발이 땅바닥에 붙은 것처럼 미동 없이 서로를 노려볼 뿐이다.
손에 꼬나 쥔 검들만 태양에 비껴 차가운 광을 뿜고 있다.
곧 인위적인 공기의 흐름만이 좌중의 뺨을 스쳤다. 분명 바람일 텐데 살갗을 베는 칼바람처럼 따끔따끔했다.
여전히 저 둘의 움직임은 없다. 그럼에도 지켜보는 이들의 터럭이 곤두서고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동작이 없음이 분명한데, 검날이 튀는 소음이 들리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두 눈이 인지를 거부하듯 대련을 눈에 담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감히 입을 여는 생도가 없었다. 관자놀이를 타고 무언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원빈 교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가빠진 호흡을 골랐다. 휘둥그레진 눈은 강검마와 검제를 향해 번갈아 움직였다. 둘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다.
대련이 시작되고 수초가 지나도 둘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지척에도 다가가지 않는다. 하지만 뾰족한 검극은 서로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고수들이 맞붙었을 때 승패를 결정짓는 건 수 싸움이다.
상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빈틈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눈꺼풀 깜빡임 한 번에 목이 달아나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가늠과 재단이 쌓여 갈수록 상상 속의 수 싸움마저 구체적인 환영으로 치환되어 전개된다.
생도뿐만 아니라, 이원빈 교관 역시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환영 속에서 무수한 검극이 오간다. 눈에 담을 순 없지만, 느낄 순 있었다. 중간중간 바람 새는 소리도 들린다.
희미하게 귓가를 간지럽히는, 쇠가 터지는 소리만큼은 환청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이원빈의 턱 끝에 모인 물방울이 떨어졌다.
강검마를 바라보는 이원빈의 얼굴에 놀람을 넘어서 경악이 번졌다. 교관 생활 10년, 괜찮은 재원들을 봐 왔고 육성했다 자부했다.
이곳은 세계 최고 명문의 호아킨 아카데미. 입학하는 것만으로 부러움을 사며, 찬사를 받는다. 더불어 전 세계 모든 천재가 모인다.
교관 생활 10년, 보석처럼 반짝이는 재능들을 키워 냈다. 몇몇은 장차 역사서에 이름이 새겨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게다가 올해는 칠성 영웅 세대 이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 세대였다. 교육자로서 보기만 해도 절로 자부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데없는 강검마의 등장이 호아킨 아카데미 교관 이원빈의 기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강검마는 상식이라는 것을 비웃는 듯 무기를 잡을 때마다 얼얼한 충격을 선사했다.
심지어 고작 열일곱의 나이에 경지에 오른 검사들만이 가능하다는 심상(心想)의 검을 검제와 나누고 있다. 말이 나오지 않는 천부적 재능.
저 자식을 보고 있자니 황금 세대라 불리는 이번 해의 보석들조차 해변의 자갈처럼 우스워 보일 정도다.
‘…이 정도일 줄이야.’
그 와중에도 이어지는 보이지도 않는 격전에 이원빈은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사나이의 가슴을 뒤흔드는 무언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범인의 인지를 아득히 초월해 있다. 그러던 중, 공기의 압력이 가일층 무거워졌다.
화악―!
갑작스럽게 피어오르는 바다처럼 푸른 기운.
뭉쳐진 검기가 형태를 이뤄 검제가 쥔 직검에 베일처럼 둘렸다.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이 인류 최강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자 경지에 달한 검사만이 다룰 수 있다는 푸른 검강(劍罡). 사람들은 그것을 오러(Aura)라 불렀다.
하늘이 점지한 재능과 기나긴 세월의 노력으로 연단된 검기는 이미 마법의 영역.
이원빈은 전신을 휘감아 오는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다. 평범한 철검으로는 기운을 버티지 못하는지 검제의 직검이 칼자루 밑동부터 먼지처럼 바스러져 간다.
목도하는 생도와 이원빈의 입술 사이로 마른 침음이 흘러나왔다. 지켜보는 몇몇이 눈을 부볐다. 삽시간에 연무장의 공기를 건조시키는 훈기가 휘감았다.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침조차 삼켜지지 않는다.
오직 강검마만이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검제를 마주한다. 곧이어 힘을 응축시키듯 몸을 웅크리는 자세를 취한다. 환영이 아닌 실제 상황이었다.
이원빈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땀을 너무 흘려 축축해진 옷과 목덜미가 착 달라붙었다.
“검제님!”
이원빈의 둔중한 목소리로 검제를 불렀다.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 중 한 명은 죽는다. 직감이 그리 맹렬하게 경고음을 울려 댔다.
그의 외침에도 검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게 아닌가. 강검마에게 고정된 동공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다.
황옥처럼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머물렀다.
오러의 기세가 거세짐과 맞춰 강검마의 팔뚝에도 굵은 힘줄이 맺히기 시작한다.
저 두 사람은 이미 자신과 다른 공간에 있다. 아무리 이름을 외쳐도 그들의 귓가에는 닿지 않을 것이다.
다가가서 말려야만 한다. 하지만 휘적거리는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무능한 자신이 한심했다. 이원빈은 어기적어기적 걸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꾸그극―
강검마의 상체가 앞으로 좀 더 기울었다. 한 발은 크게 내딛고, 다른 발은 뒤로 쭉 빼는 기이한 품세. 그늘진 얼굴에 눈동자만이 이리처럼 번뜩였다.
검제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강검마와 비슷한 자세를 취한 채로 검의 끝을 흙바닥에 끌었다. 절반 정도 타 버린 칼자루에서 바스러진 먼지가 흩날렸다.
이윽고 이원빈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렇게 강검마와 검제가 동시에 지면을 박차려던 순간.
“야, 이 새끼야!”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쳤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들이 끔뻑거렸다. 학원장 메디아가 검은 로브를 나풀거리며 창공에서 부유하고 있다.
곧바로 급류처럼 빠른 속도로 펄럭이는 검은 로브가 지면에 닿았다.
현자 메디아. 그녀는 열이 잔뜩 오른 얼굴로 검제를 향해 다가갔다.
성큼성큼 검제를 향해 걸어간 메디아가 멱살을 잡으며 일갈했다. 검제의 목에 걸린 호루라기에서 쇠구슬이 굴러다니는 소음이 났다.
“틀딱 새끼야! 노망났어?! 지금 학생 상대로 뭐 하는 짓이야!”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검제는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메디아는 차갑게 눈을 치켜떴다.
“너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치매에 걸렸으면 집에 가만히 있든가. 학원에 있고 싶다 해서 어렵게 자리 하나 만들어 줬더니, 학생 상대로 가호나 발현하고. 미쳤어? 너 진짜 뒤져 볼래? 어?!”
움켜쥔 멱살을 흔들자 백금발의 머리가 앞뒤로 움직였다. 검제는 뺨을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지랄.”
검제는 대꾸하고 싶었지만 삼켰다. 이거저거 재 볼 것 없이 그 자신의 잘못이 맞았다. 검령의 가호까지 발현할 생각은 없었는데 끝없는 도취감에 자신도 모르게 오러를 피워 냈다.
검제는 입을 굳게 다물고 강검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메디아가 어찌나 세게 흔들어 대는지 강검마의 모습이 잔상 져 보였다.
강검마는 어느새 검집에 사시미를 집어넣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초연한지 방금까지 심상 속에서 칼판을 벌인 그 소년과 동일 인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검제는 목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후끈한 통증이 목을 후비는 게 생경한 감각이었다.
금빛 살의 궤적이 검제의 목을 미끄러지면서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또한 사력을 다해 오러를 쥐어짜 내 맞상대했다. 승부가 가려지려던 찰나의 순간, 메디아의 호통이 두 사람을 깨웠다.
“야! 내 말 듣고 있냐, 이 노친네야!”
“메디아, 미안하네.”
“어……?!”
사납게 노려보는 메디아에게 지크프리트가 목 인사로 사과했다. 그러자 그녀의 정수리까지 차오르던 분노가 쑥 내려갔다. 예상치 못한 반응.
자그마치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크프리트가 사과한 적은 없었다.
꼬장꼬장한 성격에 자존심은 드럽게 세서 곧 죽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꼰대의 표상인 검제였다. 위화감을 느낀 메디아의 얼굴에 일순간에 걱정이 잔뜩 번졌다.
“…지크, 너 설마 진짜 치매야?”
“메디아! 생도들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구나!”
“풉.”
생도 중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서 안 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검제와 학원장이 생도 무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피어싱을 한 남학생이 입을 틀어막은 채 눈동자를 굴렸다.
남학생을 잠시 노려본 검제가 한숨을 흘리며 멱살 쥔 고운 손을 뿌리쳤다. 메디아도 선선히 그를 놔 주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있다. 이야기는 잠시 미루지.”
검제는 옷매무시를 단정케 한 후, 강검마를 향해 발걸음을 틀었다.
저벅, 저벅
그리웠던 동료를 맞이하듯 발소리는 묵직했다. 이내 검제 지크프리트가 강검마 앞에 우뚝 섰다.
주위가 일순 고요해졌다. 찬찬히 강검마를 바라보던 검제가 팔을 뻗어 악수를 청한다.
“지크프리트 폰 니벨룽, 한 수 배웠네.”
잠시 생각에 잠긴 강검마도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았다. 굳은살이 틈틈이 배긴 주름진 감촉.
“강검마, 한 수 배웠습니다.”
소년과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