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35)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35화(35/300)
35화 이번에도 심상치 않다 (3)
용(龍) 클래스 문 앞.
나는 빤히 문패를 쳐다보다가 교실의 문을 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용 클래스 생도들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일제히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나름 이런 싸늘한 시선들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고위 클래스여서 그런지 생도들의 시선이 유달리 더 차갑게 느껴졌다.
멸시가 잔뜩 끼어 있는 눈초리들. 뒤통수가 따끔따끔할 정도다. 나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떠 면면을 훑어보았다.
일본 양아치스러운 투톤 헤어라 도드라질 텐데,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자리에 없는 모양.
그리 생각하며 가시방석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덩치가 크고 턱이 각진 남학생이 성큼성큼 걸어 다가왔다. 곧이어 발치에 선 그는 손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이, 유명인사 오셨네?”
남학생은 결코 살갑지 않은 얼굴과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녹스와 치렀던 아공간 전투 덕에 나를 알아보는 듯 보인다.
“근데 말이야. 여기는 네 새끼같이 천한 놈들이 맘대로 들락날락하는 곳이 아니거든.”
느닷없이 시비를 걸고 한다는 말이 삼류 엑스트라나 할 것 같은 대사다. 그는 주머니에서 뺀 오른손을 휙휙 흔들어 댔다.
척 보아하니 반에 하나쯤은 있는 건들거리는 학생 같은데, 전생에 요식업계에서 20년 가까이 몸담아 오며 숱한 취객들을 상대해 왔기에 덩치 좀 큰 사춘기의 을러댐은 코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방해 말고 꺼져.”
그리 말하자 수군거리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수군거림에 눈동자를 열심히 굴리던 녀석의 얼굴이 빨갛게 익어 갔다. 하지만 나와 마주침과 동시에 뻘겋던 안색은 일순 파리해진다.
그 모습에 나는 슬쩍 웃으며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병신.”
“이 개새끼가!”
동시에 뇌를 거치지 않은 녀석의 주먹이 내 관자놀이를 노렸다. 나름 용 클래스여서 그런지 둔중해 보이는 덩치에 비해 손속은 매섭고 날랬다.
다만, 내 눈에는 그 주먹의 움직임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였다.
‘흐음.’
적당하게 맞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팔다리 중 하나 부러지면 정신 좀 차리겠지. 그 정도의 계도는 어른 된 도리로서 해 줄 수 있지 않은가.
그리 생각하며 손을 움찔하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 사각턱 남학생의 어깨를 덥석 붙잡더니 그대로 턱주가리에 주먹을 꽂아 버렸다.
“컥!”
사각턱은 단말마적인 신음을 토하더니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눈꺼풀을 한 차례 떨더니 이내 하얀 눈자위가 드러내는 사각턱. 턱을 제대로 가격당하면 일격에 기절할 수 있다는 너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새끼, 턱 하나는 존나 튼튼하네.”
충격적인 장면에 혼비백산한 분위기 속에서 기절시킨 당사자가 때린 주먹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는 어수선해진 분위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뗐다.
“몸은 좀 괜찮냐?”
“덕분에 좋은 병실에서 며칠 쉬었더니 괜찮더라. 돈이 좋긴 좋아.”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스피드 웨폰은 손목을 몇 번 털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힘 법사는 들어 봤는데 힘 힐러는 또 처음 보네.’
일격에 덩어리 남학생을 기절시켜 버린 스피드 웨폰. 무장이 리코더인 걸 빼면 여러모로 비범한 힐러가 아닐 수 없었다.
“미안하다. 우리 클래스에 오자마자 이딴 새끼들이나 보게 해서. 그래도 이해해 줘. 얘네들 대가리가 안 좋아서 현실을 인지 못 하는 거니까. 한창 사춘기잖냐.”
그는 벽에 기대 쓰러진 남학생을 발뒤꿈치로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널브러져 있는 남학생의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자 스피드 웨폰은 씨익 웃어 보이고는 몸을 숙여 정신을 잃은 사각턱에게 속삭였다. 아무도 우리 쪽으로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진 마라. 나 아니었으면 너 뒤졌을 수도 있어. 괜히 객기 부리다가 뒤지면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렇게 두 눈을 까뒤집은 상대에게 몇 마디 던지고선 그는 몸을 일으켰다. 내 메마른 시선이 잠시 기절한 남학생을 응시했다.
“복도에 나가서 이야기할까? 여기는 보는 눈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나 찾아온 거 맞지?”
고개를 끄덕이며 클래스를 나오자 스피드 웨폰이 따라 나왔다. 조금 복도를 걷던 중 스피드 웨폰이 문득 툭 말을 던졌다.
“솔직히 내가 안 말렸으면 너, 쟤 어떻게 하려고 했냐?”
그 말에 나는 우뚝 멈추어 서서 고개를 돌렸다.
“글쎄다.”
나는 차게 웃으면서 대꾸한 뒤, 다시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일순 스피드 웨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무서운 자식.”
웨폰은 뒤에서 빤히 쳐다보다가 나를 따랐다.
* * *
복도 중간 즈음에 멈추어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의 핵심은 파티를 구해서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참여 의사도 물어볼 겸.
웨폰은 연신 고갯짓하며 경청하더니 시원하게 제안을 승낙한다. 의중을 떠볼 겸 물어본 건데, 녀석은 내게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던 중, 웨폰은 턱을 짚으며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빠른 시일 내에 파티를 꾸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말인 거네. 나한테 온 건 내가 조원 꾸리는 걸 좀 도와 달라는 거고. 거기에 네 몫의 클리어 보수는 파티원끼리 나눠 갖는 대신에 마수 소재는 네가 갈무리한다. 내가 맞게 이해한 건가?”
설명하는 재주가 별로라 어렴풋이 이야기했는데 금세 알아듣는 웨폰.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가슴께에 걸린 명찰을 흔들었다. 특진생임을 상징하는 검은 명찰.
“내가 파티 구한다고 하면 클로이 빼고는 올 사람이 없으니까. 적어도 용 클래스인 네가 도와준다면 좀 수월하겠지.”
뿐만 아니라, 웨폰은 그 드물다는 힐러 포지션.
한국에서 제2의 민속놀이로 여겨지는 게임에서야 도구 취급이나 받을 테지만, 이곳에선 둘도 없이 소중한 재원이다.
게다가 외견과는 달리 이해력도 좋아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먹는 재주까지.
‘무장이 리코더이긴 해도 유능하긴 하니까.’
호아킨 아카데미의 교칙에 따르면, 던전 공략을 허락받기 위해서는 최소 네 명 이상으로 파티를 구성해야 했다.
여러 이유가 있긴 했지만, 조원 셋과 동행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카데미 권역 밖에서 생도 중 한 명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에 대한 방지 차원이었다.
군대의 전우조와 비슷한 원리지 않을까? 요컨대, 생도 개개인이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시스템. 보는 눈이 있으면 탈선이나 허튼짓하기 어려울 테니.
또한, 최소 넷이라 기재된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각 포지션을 분담해야 인명 사고를 줄일 수 있을 테니.
웨폰은 잠시 고민하더니 피식- 웃으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아카데미 교칙만 없었어도… 너 정도면 혼자서 하루에 던전 대여섯 개는 클리어할 텐데, 안 그러냐?”
“나 혼자선 던전 하나도 절대 공략 못 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구라 치네. 너 혼자서 머메이드를 토벌해 놓고 그런 말이 나오냐?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재수 없어, 인마.”
“…….”
웨폰은 내 옆구리를 가볍게 툭툭 치며 넉살 좋게 말했다.
‘진짠데.’
40초짜리 스프린터 능력으로는 던전에 입장하자마자 입구 컷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어째 녀석은 내가 겸양을 떠는 것처럼 보는 것 같은데…….
나는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으로 화답했다.
웨폰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둔 던전은?
“C급. 버팔로(Buffalo) 던전.”
“물소 던전이라… 하긴 거기가 가장 클래식하긴 하지.”
웨폰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그럼… 마지막 조원 한 명은 어떤 타입이었으면 한다, 이런 거 있어?”
“…웬만하면 레이첼이나 레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 어차피 걔네는 안 돼. 레이첼은 너 입원한 이후로 폐관 수련 한다고 학내 수련장에서 수행 중이고, 레온은 2, 3학년들이랑 상위급 던전 공략 준비 중일 거야.”
어깨를 으쓱거리며 설명하는 스피드 웨폰. 그 말에 나는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웨폰은 살짝 들뜬 상태였다. 아마 같이할 조원을 머릿속에서 나름대로 추리고 있는 듯했다.
호아킨 아카데미는 정당한 명분 없이는 외부 출입을 금하는 학풍이 있었기에 설레는 표정을 짓는 그가 짐짓 이해가 갔다.
피가 끓는 청춘에게는 이 넓디넓은 아카데미마저 가두리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겠지.
그나마 밖으로 나간 게 중간고사였는데 그곳에선 요단강을 건널 뻔했으니 말이다.
한동안 고민하던 웨폰이 문득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딱 생각나는 애가 한 명 있긴 하네. 지금쯤이면 아마… 거기서 자고 있겠네.”
“지금 시간에 잔다고?”
“걔는 원래 그런 얘라서.”
손목에 걸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선 말을 잇는 스피드 웨폰. 이어서 그는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일단 매점부터 들르자. 살 게 좀 있거든.”
* * *
“아카데미에 이런 곳이 있었나?”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기적의 가호 M’ 플레이 당시에도 와 본 적 없는 곳이다.
아카데미 부지가 웬만한 소도시만 해서 전부 들러 보진 못했다만, 이토록 일본풍이 진한 장소는 처음이었다.
호아킨 아카데미의 궁도장.
삼나무로 건조된 목조 건물.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저 멀리에 사납게 화살이 박힌 과녁들이 보였다.
마치 일본을 여행 온 듯 이국적인 장소. 전생에 나는 일식 요리사였지만, 일본에 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빴으니까. 취미를 즐길 시간도 없었는데, 해외 여행은 분에 넘치는 사치였다. 그래도 꼭 시장 조사 겸 일본은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여기서 대리 만족 하게 될 줄이야.
관광 온 것처럼 주변을 돌려보던 중, 마룻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에게 시선이 끌렸다.
“웨폰, 저기 누구 있는데.”
“아, 저깄네.”
웨폰은 그렇게 말하며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따라 걸었다.
웨폰은 그 소녀에게 바투 가더니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야, 일어나.”
“…….”
꽤 세게 흔드는 것 같은데 소녀는 별 반응이 없었다, 기절한 건가 싶을 정도로. 두 눈을 감은 채 연체동물처럼 몸이 흐느적거렸다.
웨폰이 소리를 높여도 그녀는 그냥 쿨쿨 자고 있었다. 이내 그는 소녀를 놓아주고선 허리를 짚으며 낮게 말했다.
“양갱 사 왔다.”
“!”
그 말에 여태껏 꾹 다물어져 있던 미려한 눈꺼풀이 천천히 뜨이는 게 아닌가. 그리고 잠시 두 눈을 비비고선 바닥에서 몸을 떼며 천천히 웨폰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몽롱한 얼굴.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양갱, 있어?”
웨폰은 옳거니 하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신 우리 이야기 다 듣고 나면 줄게.”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양갱 바를 속주머니에서 꺼내 소녀 눈앞에서 흔드는 웨폰. 양갱을 따라 그녀의 연청색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였다.
절궁(絶弓)의 딸, 사키 료조.
호리호리한 체격에 궁도복이 잘 어울리는 양갓집 규수 같은 미소녀. 허리까지 내려오는 맑은 하늘 같은 연한 푸른빛의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그녀는 크게 하품하고선 입을 두드리더니 몇 미터 떨어져 있던 내게 말을 건넸다.
“너도 양갱 있어?”
“…….”
뭐라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