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36)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36화(36/300)
36화 이번에도 심상치 않다 (4)
흔한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이 플레이어를 모으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그중에서 플레이어들의 지갑에서 가장 손쉽게 돈을 거두어 가는 방법이 바로 매력적인 작중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것.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이지만, 어려운 방법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친절한 국산 양산형 모바일 알피지 게임이신 ‘기적의 가호 M’에선 무엇을 준비할지 몰라 전부 준비했어! 식으로 캐릭터의 개성을 뚜렷하게 했다.
취향에 따라 좀 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매출 순위가 그 성공 여부에 대한 방증인 것을.
지극히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게임이 스토어 순위 5에서 10위권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각자 독특한 개성이 있던 캐릭터들 덕분이리라.
특히 ‘기적의 가호 M’같이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에선 캐릭터의 매력이 플레이어들의 주머니를 털어먹기 좋은 수단이기도 하고. 소위 계층이 탄탄한 장르니까.
게임에 현질하는 걸 꺼리던 나조차도 플레이 당시 아벨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이끌려 홀린 듯 지갑을 열었었다.
…이 세계로 끌어들일 줄 알았으면 현질 안 하는 건데.
아무튼, 이 세계는 재수가 없을 정도로 잘생긴 레온을 주축으로 서사가 진행되기에 미소녀 히로인들이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수요와 공급의 법칙. 쉽게 말해 주인공 레온은 한 명이지만, 그를 원하는 여인들은 너무 많았다. 중반부에 달해선 그에게 달라붙는 히로인들만 해도 대여섯 명 정도니 말이다.
아마 후반부에 들어서 레온이 최강 먼치킨으로 각성할 즈음엔 손발가락으로 전부 꼽아도 부족할 것이다.
그
렇기에 메인 히로인인 아벨을 제외한 나머지는 서서히 공기화되어 갔다.
개개인이 독보적인 개성과 능력을 과시했지만, 작중의 서사는 그녀와 레온이 역경과 고난을 이겨 내고 사랑이 싹트는 과정을 오롯이 담아냈다.
하긴, 게임사에서 콕 메인이라 짚은 아벨을 능가하기는 힘들 터다.
아무튼 그 무수한 패배 히로인들 사이에서도 가장 빨리 공기 캐릭터가 되어 버리는 게, 눈앞에 있는 양갓집 규수같이 생겨선 양갱에서 눈을 못 떼는 미소녀.
절궁가의 신동, 사키 료조였다.
가장 먼저 레온의 짝 후보에서 탈락하는 사키였지만, 커뮤니티에서 그녀의 입지는 나름 탄탄했다. 팬층이 두껍다 해야 하나.
백치처럼 보여도 필기 수석이라는 반전 있는 엘리트 설정에, 허구한 날 잠만 자서 문제이긴 하지만 할 땐 하는, 이른바 고구마 속성이 가장 적은 히로인이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에 따라 인질로 잡히거나 ‘도움!’을 외치는 여타 소녀들과 달리 사키는 그런 모습을 일절 보이지 않았었고, 조력자로서도 그녀는 상당히 유능했다.
게다가 플레이 당시에 사키 료조만의 고유 특성이 있었는데, 그녀 한정으로 상급 포션보다 양갱이 체력 회복 수치가 높았다.
안 그래도 비싼 포션값을 아낄 수 있었기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선호한 가성비 좋은 성능캐 히로인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특이한 특성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양갱 덕후일 줄이야.
나는 사키를 쳐다봤다. 상쾌함마저 주는 하늘색 머리카락. 활을 쓰는 그녀답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눈매를 한 소녀.
‘웨폰이 호언장담한 이유가 있었군…….’
깐깐해 보이던 그 웨폰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올 만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소 다를 순 있어도, 플레이어였던 나로서도 그녀는 꽤나 탐나는 재원이다. 게다가 파티에 원거리 딜러가 한 명 끼어 있으면 그만큼 든든할 수 없는 것이다.
원딜 하나가 전후방 경계를 도맡아 할 수도 있기에 파티의 안정성을 한 단계 끌어 올린다.
심지어 사키 료조는 기적의 가호 M의 스토리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상술했듯이 그녀는 히로인 중 가장 빠르게 공기화되는 캐릭터.
커뮤니티에선 게임사를 향해 왜 사키 료조만 억까하냐고 항의했지만, 당연하게 우리 기적의 가호 M의 게임사께서는 쿨하게 씹었더랬지.
그러니 그녀가 이번 파티에 참여한다고 해서 정사가 흔들리거나 이럴 확률은 낮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웨폰은 사키에게 다가서더니 양갱 하나 더 꺼내 보였다. 사키 료조가 손을 뻗어 낚아채려 하니 웨폰은 씩 웃으며 양갱을 품속에 갈무리했다.
사키 료조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새침하게 물었다. 맹금 같은 궁수의 눈은 스피드 웨폰의 속 주머니에 고정된 채.
“무슨 일로 온 거야, 웨폰.”
“음, 그게 다름이 아니라.”
곧이어 웨폰은 그녀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말솜씨, 육하원칙을 딱딱 지켜 가며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말이 너무 많아.’
투머치토커. 지구에 있는 모 야구선수가 생각날 정도로 말이 많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입술.
과묵한 느낌이었던 첫인상과는 매우 괴리감 있는 모습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닉값 하네.’
사키는 익숙하다는 듯 그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웨폰의 설명이 더 길어질 듯하자 그녀는 눈을 끔뻑끔뻑하더니 그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네 말은 다음 주에 가는 던전 파티에 합류해 달라는 거지?”
“그렇지.”
한참을 신나게 설명 중이던 웨폰은 괜히 코를 찡그리더니 대꾸했다. 사키 료조는 검지로 뺨을 짚으며 고민하다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던전 클리어 보수는 성적에 반영되기도 하니까,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긴 한데.”
사키의 시선이 힐끔 나를 향했다. 이어서 그녀는 내게 턱짓하며 무심하게 물었다.
“너, 그때 아공간 대련 때 걔 맞지?”
나는 말없이 고갯짓으로 긍정했다. 사키는 다시 벌러덩 드러누웠다.
“생각보다 근성이 없어 보이네.”
“…….”
근성이란 말을 한낮에 퍼질러 자고 있던 사람한테 듣게 될 줄이야. 심지어 나만큼 ‘근성’이라는 두 글자가 잘 어울리는 이름이 없을 텐데.
“미안하지만, 나는 근성 없어 보이는 사람이랑은 같이 행동하고 싶지 않아.”
그리 말하고선 웨폰에게 한 손을 뻗는 사키 료조. 한껏 축 늘어진 몸짓과는 달리 기치만큼은 똑 부러지게 어필한다.
“사키, 너도 대련 봤잖아. 그리고 강검마 이 자식 보통내기가 아니라니까?”
“상대가 약했나 보지.”
“아니, 미친. 상대가 무려 아디토레 출신이었다고! 그리고 이 자식이 중간고사 때 무려……. 아오, 말해 줄 수도 없고 답답해. 그냥 말 좀 들어, 이년아!”
“내가 너희 집 강아지냐? 들으라면 곧이곧대로 듣게?”
“야-씨, 양갱만 보면 침 질질 흘리는 게 개지 그럼 뭔데?”
“웨폰, 네가 양갱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들어?!”
몇 분간 계속되는 스피드 웨폰과 사키 료조의 실랑이.
나는 내심 짜증스러운 마음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 하자는 건지.
파티원으로서 탐이 나는 것과 싸가지가 없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구태여 저자세를 하면서까지 그녀가 필요하진 않은 것이다.
나는 열심히 그녀를 설득 중인 웨폰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웨폰, 됐어. 그만 가자. 저런 비협조적인 태도는 파티한테 독이야. 더 나은 사람 찾아보자.”
사키 료조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던전 토벌이 그렇게 급하진 않은가 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몰려오는 상념에 나는 초연한 한숨을 내뱉었다.
며칠 전, 녹스를 보고 깨달은 거지만, 검은 머리 짐승한텐 당근과 채찍만 한 게 없었다. 음, 생각해 보니 이곳에선 검은 머리가 거의 없던가? 아무튼.
나는 교훈을 되새기며 말없이 주머니에서 사시미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순간 흠칫하는 두 사람. 나는 과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휙, 팍―!
곧바로 사시미 한 자루가 50M 거리의 과녁 중앙에 정확히 꽂혔다. 한 틈 남짓한 빨간 원에 직각으로 꽂힌 칼날이 서늘하게 번뜩거렸다.
“…….”
사키와 웨폰은 멍하니 서서 나와 과녁을 번갈아 보았다.
잠시 침음을 흘리는 사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사시미를 하나 더 꺼내 날렸다.
팍―!
과녁을 향해서 뻗어 나간 빛살이 앞서 박힌 칼자루의 끝동에 틀어박힌다.
“…….”
“…….”
곧이어 나와 사키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녀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더 해 줘?”
내가 묻자, 사키 료조는 납득했는지 작게 도리질했다.
머리가 좋은 만큼 ‘다음 과녁은 네 이마다.’란 속뜻을 알아차린 모양. 역시 칼잡이에겐 이만한 대화 수단이 없었다.
“웨폰, 양갱 하나 물려 줘.”
몇 번인가 입만 뻐끔거리던 웨폰은 양갱이를 건넸다. 그 와중에 받아먹는 사키 료조.
이번 파티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아카데미 내 스타복스 카페 회의실 안.
클로이는 내게 먼저 찾아와 파티 참여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궁도장에서의 일 때문인지 사키 료조도 순순히 파티에 합류했다.
쌀쌀맞던 첫인상과는 달리, 사키는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던전 선별부터 아카데미 측의 허가 절차까지.
웨폰과 나 둘뿐이었다면 다소 시간이 걸렸을 부분들도 그녀가 함께하니 순항이었다.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녀가 들어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꾸벅꾸벅 졸긴 했어도, 할 건 다 하면서 졸았기에 큰 흠결은 아니었다.
사키는 이따금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새침한 표정으로 흘기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층계형으로 잘린 연청빛 긴 생머리. 지구의 젊은 층 사이에선 저걸 히메컷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생경할 수 있는 스타일임에도 잘 어울렸다.
히로인들 중 가장 아가씨스럽다 해야 하나?
다만, 항상 양갱를 우물거리고 있는 게 좀 깨긴 했다.
뭐, 기호 식품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만, 중독 수준으로 볼 때마다 입에 물고 있었다.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 당분 섭취는 필수라나 뭐라나.
‘말이나 못하면.’
나는 에스프레소 잔을 들이켜며 사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옆에 앉은 클로이가 가자미눈으로 흘겨본다. 나는 곧바로 시선을 돌리고선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거, 존나 쓰네.
“버팔로 던전은 이름 그대로 C급 마수 버팔로가 상주하는 곳이야. 통칭 ‘물소’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이지. 먼 거리에서 돌진해 오는 녀석들이라서 중간고사 때의 머맨들과는 달리 근접전이 힘든 녀석들이긴 한데, 원거리 공격에는 무력하다는 분명한 약점이 있거든. 그만큼 원거리 딜러의 역할이 중요한 던전이야.”
자리에서 일어선 웨폰이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이어서 그는 신난 얼굴로 얘기를 시작했다.
웨폰의 시선이 사키를 향했다. 그녀는 알겠다는 듯 양갱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웨폰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목을 축인 다음 설명을 이어 갔다.
“개체 수도 그렇게 많지 않고, 클리어 보수도 좋은 편이라 2, 3학년 선배들도 자주 들르고 인명 사고도 덜한 곳이지. 그래도 중간고사 때를 교훈 삼아서 방심은 하지 말자고. 아, 맞다. 그리고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웨폰이 검지를 치켜세우며 강조했다.
“절대 중심부에 있는 석문을 열지 말 것.”
클로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석문을 열면 어떻게 되는데요?”
“소문으로는 봉인? 비슷한 거라는데. 가설일 뿐이라 정확히 밝혀진 사실은 없어.”
내 질문에 웨폰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뭐, 아카데미 측에서 버팔로 던전 공략 허가를 내린 조건이 ‘석문을 열지 말 것’이니까. 하지 말라는 거 굳이 할 이유는 없잖아, 안 그래?”
“맞아, 그곳은 절대 열면 안 돼.”
내가 그리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뭐야. 강검마 너, 석문 뒤에 뭐가 있는지 아는 거야?”
“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 이거지.”
“아, 난 또 뭐라고.”
내 심드렁한 말에 웨폰은 의뭉스러운 시선을 거두었다. 이어서 던전 루트나 일정을 조율하는 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석문은 절대 열면 안 된다.’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입가를 쓸었다. 소정의 특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을 가진 나이기에 알고 있는 것.
아카데미 생도들의 출입이 가장 잦은 던전에 히든 보스가 잠들어 있다.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겠지.
다만 애당초 그 석문은 조건이 갖춰져야만 열리는 장소다. 게임 시스템적으로 막아 놓은 곳인지라, 지금 시점에선 열고 싶어도 못 여는 문이었다.
게다가 버팔로 던전은 그 석문이란 위험 요소만 빼면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던전이었다. 히든 던전 하나 버티고 있다고 슥 넘기기엔 너무나도 아쉬울 수밖에.
‘…근데.’
전신에 일순 소름이 돋았다. 예민해진 지각력이 따끔따끔하게 피부를 찌르는 느낌. 회의실 사면의 투명 유리 너머에서 느껴지는 어딘가 사늘한 감각.
나는 고개를 돌려 회의실 너머를 둘러보았다. 너도나도 한 손에 음료를 들고 희희낙락 청춘을 즐기고 있는 생도들.
“검마 군, 무슨 일 있어요?”
주위를 빠르게 훑어본 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려 보였다.
“아니, 그냥 누가 쳐다보는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자 클로이의 두 눈에 경계심이 일었다.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녀는 사키 료조를 노려본다.
어느새 반쯤 눈이 풀린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키. 그 모습을 한번 흘겨보더니 클로이는 시선을 거두었다.
“…생각해 보니까 별일 아닌 것 같아, 클로이.”
“아아, 넹!”
뒷덜미를 긁으며 시선을 다시 정면에 두었다.
‘감시하나 보군.’
다소 찝찝하긴 했지만, 일단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때가 되면 눈앞에 나타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