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ing the Academy With a Single Piece of Sashimi RAW novel - Chapters (37)
사시미 한 자루로 아카데미를 씹어먹음-37화(37/300)
37화 물소 던전 (1)
호아킨 아카데미 생도들을 위한 리무진 버스를 타고 2시간. 우리는 버팔로 던전이 있는 강원도 철원군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선 아공간 게이트로 단숨에 도착하고 싶은 거리였지만, 사적인 용무로는 게이트를 사용할 수 없었다.
아마 사용할 수 있었다 해도 조원들이 반대했을 것이다, 특히 멀미를 심하게 하던 스피드 웨폰이.
버스에서 내린 뒤, 쭉 기지개를 켰다. 뒤이어 파티원들도 각자 짐을 챙겨 차례차례 내리기 시작한다.
‘일찍 도착했네.’
버스가 쾌적하고 승차감이 좋아 체감상 짧게 느껴졌던 걸 감안하더라도 서울에서 강원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곳까지 두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릴 줄이야.
그도 그럴 게, 지구에선 강원도 오지 취급인 철원이 이 세계의 영웅들 사이에선 명소였다.
어느 날부터 우후죽순으로 이곳에 뿌리를 내린 파밍 던전들.
기원은 불분명하나, 신화 수업 시간에 들은 바로는 인류가 원숭이가 되기도 전인 신화 시대에 성역을 피해서 마수들이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옛적엔 마굴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파밍 명소로 전락했지만.
클리어 난이도도 그리 높지 않고, 보수도 짭잘한 소위 가성비 좋은 던전들이 많은 곳이었다.
상위 계위의 영웅들도 종종 방문하는 곳인지라, 아스팔트도 깔끔하게 깔려 있었고, 촌락에 어울리지 않는 고층 빌딩도 몇 채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목을 이리저리 돌려 스트레칭을 하고서 고개를 돌려 파티원들을 슥 훑어보았다. 클로이는 일전의 카타나를 등에 매달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쇠뇌를 양손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근접 무기만 특기인 줄 알았는데, 암살자라 그런지 무장의 주종을 가리지 않는 모양.
나는 시선을 돌려 사키 료조를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과 키가 엇비슷한, 천으로 돌돌 말린 무장을 왼쪽 어깨에 걸고 있다. 희어멀뚱하게 뜬 눈을 보자니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시 사키 료조의 무장을 쳐다보자, 클로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러더니 갈 길이 멀다면서 씩씩한 걸음으로 앞장을 선다.
“언제나 제가 선발대니까 앞에 설게요!”
그 모습에 피식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작은 소녀였던 그녀가 어느새 당당하게 선두를 도맡고 있다.
우리는 군말 없이 얀데레 소녀의 뒤를 따랐다.
“검마, 넌 뭔 짐이 그렇게 많은 거냐?”
옆에서 걷던 웨폰이 내 배낭 가방을 흘겼다.
걸을 때마다 양어깨에 들쳐 맨 배낭에서 나는 절그럭 소리가 신경 쓰였나 보다. 나는 별말 없이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 줬다.
가방 안에는 실톱 하나와 회칼 묶음 다발이 엉켜 있었다. 대장장이한테 슈킹 친 천만 원으로 산 다이쏘 사시미들.
“…너 칼 장사 하러 왔냐?”
웨폰이 넌지시 농 섞인 어조로 물었다. 나는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유비무환.”
“…말하는 게 꼭 아저씨 같네. 그래도 네가 준비한 거니까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사키 료조가 무릎을 잡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문득 입을 뗐다.
“나 힘들어.”
“그래 보이네.”
“단 게 있으면 힘이 좀 날 것 같은데…….”
한숨을 푹 내쉬고 가방의 앞주머니에서 주전부리로 싸 온 사탕을 한 주먹 집어 건넸다.
“…사탕은 좀 그런데. 양갱은 없어?”
“나한테 맡겨 놨냐? 너도 챙겨 왔을 거 아니야.”
“그건 이따 아껴 먹으려고, 헿.”
어울리지 않게 해실거리긴. 나는 쯧, 하고 혀를 찬 후 발걸음을 뗐다.
그러자 눈썹을 강아지 꼬리 말듯 내리며 하는 수 없이 사탕을 입안에 털어 넣는 사키 료조. 싫다고 할 땐 언제고, 입에 맞는지 눈을 반짝거린다.
그렇게 십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오솔길을 걷다 보니 우리는 금방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고속 도로 톨게이트 같은 검문소에는 건장한 직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피부가 그을린 직원이 우리의 교복을 한차례 훑고선 낮게 말했다.
“호아킨 아카데미에서 오셨군요. 여기 방함록에 네 분 다 성함 적어 주시면 됩니다.”
클로이부터 시작해 파티원들은 명부에 본인 이름을 적어 갔다. 직원은 곁눈질로 그들의 이름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름 석 자를 적던 순간.
직원의 눈동자가 미미하지만 확실하게 흔들리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나는 직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재빠르게 시선과 표정을 갈무리했다.
위화감에 눈매가 좁혀졌다. 그 와중에 던전 입구에 먼저 들어선 조원들이 얼른 오라며 손을 흔들어 댔다.
애써 시선을 거두고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보 걷고선 나는 고개를 반만 뒤로 돌렸다.
점점 닫혀 가는 던전 입구의 문틈 사이로, 고개만 빼꼼히 해 곁눈질로 나를 주시하는 직원. 나는 몰려오는 위화감을 누그러뜨리며, 겉옷을 끌어안았다.
가슴께에 느껴지는 품속의 날붙이.
무라사메의 검명이 심장 고동과 함께 희미하게 울렸다.
* * *
던전 안은 흔히 동굴같이 생겼을 거란 편견을 깨듯 관광지처럼 잘 조성되어 있었다.
높은 천장에 넓직한 공동과 에어컨이라도 튼 듯 초여름의 무더위를 씻어 주는 산산한 공기. 환경만 놓고 보자면 던전 바깥보다 쾌적하게 느껴졌다.
다만 아무래도 생도들도 자주 찾는 던전이다 보니 ‘누구누구 왔다 감’, ‘철수♥영희’ 같은 유치한 낙서들이 벽보처럼 쓰여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던전인지라, 형광등 같은 조명 대신 벽면에 줄줄이 걸려 일렁이는 횃불들이 나름 소슬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렇게 몇 분을 걷던 중, 선두를 맡은 클로이가 흠칫 멈추어 섰다. 그녀는 귀를 땅에 바짝 붙이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셋, 아니 다섯 마리 정도의 마수가 200M 거리에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어요!”
기척을 감지한 클로이가 바닥에서 귀를 떼며 입을 열었다. 웨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대로만 하자. 그러면 위험할 것 없는 놈들이야. 사키랑 클로이, 부탁할게. 버프는 내가 섭섭지 않게 넣어 줄게.”
웨폰이 가슴을 호쾌하게 퉁퉁 두드렸다. 사키는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며 어깨에 걸치고 있던 무장의 천을 벗겼다. 내 두 눈이 크게 뜨였다.
S급 무장 적궁백시(赤弓白矢).
붉은 활과 끈에 띠처럼 금박이 입혀진 화려한 강궁. 활에 일자무식인 내가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다만 던전에 입장해서까지 졸려 보이는 눈빛은 참 신뢰를 갖기 어려웠다. 그만큼 여유롭다는 방증이겠지만……. 그래도 파티원이니 믿어 보는 수밖에.
사키 료조는 준비가 끝난 듯 나른한 표정으로 활시위를 몇 번 당겼다 놓더니 멈칫한다.
“아, 잠깐만!”
그렇게 말하고서 치마 주머니에서 양갱 하나를 꺼내 포장지를 벗긴다. 보고 있자니 불과 몇 초 전에 생긴 믿음이 사라져 갔다.
그녀는 한입 크게 베어 물더니 웨폰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웨폰이 목에 걸고 있던 리코더를 입술에 갖다 대고서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삐↗리―뤼↘뤽↘
귀에 팍팍 꽂히는 엇나간 박자들. 먼젓번보다 떨어진 연주 실력에 혀가 내둘러진다.
사키 료조는 익숙하다는 듯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서 그녀는 차분히 호흡을 길게 내쉬었다.
두두두두두!
암전막에서 들려오는 살벌한 발굽 소리들. 그 굉음이 넓은 공동이 진동했다.
“버팔로 무리, 전방 100M 앞이에요!”
클로이가 소리 높여 외쳤다. 곧이어 거친 투레질과 함께 암전막을 뚫고 우리 쪽을 향해 돌진해 오는 버팔로 다섯 마리.
외견은 소와 거진 비슷하나 덩치가 두 배 정도 컸으며, 관자놀이의 뿔은 사슴처럼 잔가지들이 돋아 있었다.
안광을 붉게 쭉 늘어뜨리며 덩치에 맞지 않는 속도감을 보여 준다. 과연, 머맨 그 생선 새끼들보다는 훨씬 격이 높은 마수였다. 버프를 마친 스피드 웨폰이 사키와 클로이를 향해 외쳤다.
“물소 새끼들 쳐 내!”
그 말과 동시에 클로이는 양손에 쇠뇌를 잡고 폴짝 뛰어 버팔로를 향해 쏘아 냈다.
푹! 푹! 푹!
“음무우우우우우―!”
왼눈에 화살이 박혀 방향감을 잃은 물소 한 마리가 옆에 있는 벽과 충돌했다. 하지만 나머지 네 마리에겐 데미지가 없다. 쇠뇌가 아직 손에 익지 않았는지 클로이의 표정이 썩 만족스럽진 않았다.
버팔로들은 그 와중에도 속도에 박차를 가해 달려들었다.
높게 튀어 오른 클로이가 계속해서 쇠뇌를 쐈지만, 버팔로들은 뿔을 흔들어 날아오는 화살을 쳐 냈다.
클로이는 혀를 짧게 차고선 등에 멘 카타나의 칼자루를 쥐었다.
“제가 앞에서 놈들의 속력을 줄일게요.”
“클로이, 저놈들한테 가까이 다가가면 안 돼!”
그러자 한창 리코더를 연주하던 웨폰이 그녀를 만류했다.
“그치만…….”
클로이는 맹렬하게 돌진해 오는 마수 무리를 쳐다봤다.
마수의 살기를 품은 기세가 느껴졌다. 버팔로들이 접근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저것들의 뿔에 꿰여 죽거나 발굽에 깔려 죽을 것이다.
클로이의 얼굴엔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사키 료조의 뒤로 물러났다.
‘…여차하면 나서야겠네.’
나는 들쳐 멘 배낭을 열어 사시미 몇 자루를 꺼냈다. 쓸 수 있는 무기가 한정된 나이기에 사시미를 투척용으로 사용할 심산이다.
고개를 돌려 웨폰과 사키를 훑어보았다.
웨폰은 자신의 연주에 심취해 있었고, 사키 료조는 숨을 가다듬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고, 오른손엔 네 개의 화살이 활시위에 위에서 아래로 순차적으로 메겨져 있다.
퍽 하면 졸아 대고, 퍽 하면 양갱 달라고 투정 부리는 그 철부지의 면모는 어느새 얼굴에서 걷어 낸 채.
그녀는 호흡을 한 차례 길게 늘어뜨리고는 오른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천천히 활시위를 당긴다.
기리릭.
적궁백시의 현이 연홍색 입술의 중앙에 달라붙었다. 게슴츠레 치켜뜬 왼쪽 눈은 타깃에 고정되어 있다. 그 자세 그대로 수 초간 가만히 있는 사키 료조.
시위를 가슴께까지 당긴 그녀가 오므려진 입술로 설핏 미소를 지었다. 사키의 눈에 번뜩이는 이채가 서렸다.
“미간에 꽂아 주지.”
사키의 손가락이 까딱거리자 산뜻한 바람이 일었고.
그녀의 하늘색 머리칼이 부채처럼 펼쳐진다.
피융!
동시에 일제히 그녀의 오른손을 떠난 네 발의 화살들이 마수의 눈 사이에 정확히 꽂혔다.
“음무우우우우우―!”
버팔로 한 마리가 비명 섞인 울음소리를 내며 균형을 잃고 휘청휘청한다. 그러자 대열이 무너지고 나머지 버팔로들도 이내 발이 꼬인 듯 바닥에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원딜 캐리.’
실력 좋은 원딜은 막을 수 없다더니, 박수가 절로 나올 만했다.
“휴.”
사키는 옷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만 뻗어서 엄지를 치켜들려다 말았다. 그새를 못 참고 흐물거리는 얼굴로 양갱을 우물거리는 그녀.
잠시 쳐다보자 뺏기지 않으려는 듯, 사키는 양갱을 입안으로 쑥 밀어 넣는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무어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상 그녀 혼자 버팔로 다섯 마리를 다 해치웠으니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기도 하고.
쓰러진 줄 알았던 물소 한 마리가 거체를 벌떡 일으키더니 사키 료조에게 달려들었다.
“사키―!”
저승길 동무로 그녀 한 명은 데려가겠다는 듯이.
사키는 예상치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급하게 화살을 메기려 했지만 물소는 거칠게 투레질을 해 대며 돌진한다.
미간에 화살이 꽂힌 버팔로가 사키에게 바투 다가가 뿔로 들이박기 직전. 나는 검집을 벗겼다.
서―걱!
소 형상의 마수가 순간 달음질을 멈추었다. 곧이어 미간에 붉은 선이 세로로 그어지더니 저절로 양으로 갈라졌다.
쿵!
깔끔한 절단면에서 피가 즙처럼 새어 나왔다. 나는 사시미에 묻은 피를 닦아 낸 뒤, 사키 료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괜찮냐?”
사키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딸꾹!”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해 댔다.
“딸꾹!”
* * *
마수 무리가 일어날 기미가 없는 것을 확인한 파티원들은 목을 축이며 휴식했다. 나는 쓰러져 있는 버팔로들을 향해 걸어갔다.
반으로 쪼개진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버팔로 네 마리는 콧구멍을 벌렁거리면서 힘없이 늘어져 있다. 회백색으로 염색되어 가는 눈동자들. 무언가 말하려는 듯 긴 속눈썹의 눈을 끔뻑거린다.
‘…….’
별다른 감흥 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내 무장을 강화시켜 줄 재료들일 뿐.
나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내려다보다 챙겨 두었던 실톱을 꺼냈다. 여기에 온 목적, 마수의 소재 갈무리를 위해서.
슥-삭.
톱질 두 번에 버팔로들의 뿔이 두부처럼 잘려 나갔다.
한참을 톱질하고 있자, 사키가 슬며시 옆에 다가와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문득 조곤조곤하게 말을 걸어온다.
“아까는 고마웠어.”
나는 묵묵히 톱질을 계속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는 답례.”
사키는 불쑥 양갱을 내밀었다. 얼결에 그것을 받아 들자,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발걸음을 옮겼다.
“…….”
양갱을 한입 베어 물었다. 혀가 녹아 버릴 정도로 달았다.
이딴 걸 왜 먹는 거야.